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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휴왕 , 내해왕 , 조분왕 , 첨해왕 , 미추왕 , 유례왕 , 기림왕 , 흘해왕>

[벌휴왕과 석씨왕조]

[내해왕시대 포상팔국의 난]

[조분왕과 석우로 장군]

[첨해왕과 석우로 장군의 죽음]

[최초의 김씨왕 미추왕]

[유례왕을 지킨 대나무 군사들]

[관대했던 기림왕]

[마지막 석씨왕 흘해왕]

<라봉봉>

 

[벌휴왕과 석씨왕조]

신라 8대왕 아달라왕 박아달라가 아들없이 사망하자

신라 4대왕 탈해왕 석탈해의 손자 석벌휴가

백성들의 추대로 왕위를 이어

신라 9대왕 벌휴왕(벌휴 이사금) 이 되었고

신라에는 석씨왕조가 시작됩니다

 

벌휴왕은 바람과 구름을 보고 점을쳐서

홍수와 가뭄 , 풍흉년을 미리 알았고 (기상관측력이 있는 왕으로 보임)

사람이 정직한지 사악한지를 알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성인이라 불렀습니다

 

홍수와 가뭄

 

벌휴왕은 구도와 구수혜를 좌 , 우 군주(신라 행정관 및 장군) 로 임명해

소문국이라는 소국을 정복했고

벌휴왕은 백제의 공격을 방어했습니다

 

[내해왕시대 포상팔국의 난]

벌휴왕이 사망하자 벌휴왕의 태자 석골정과 둘째아들 석이매가 먼저 죽었기에

벌휴왕의 손자 석내해(=석나해)가 왕위를 이어

신라 10대왕 내해왕 , 내해이사금이 됩니다

 

내해왕시대 바닷가의 8나라(한반도 남부 8개 소국) 가 연합해서

가야를 침공하자

가야왕자가 신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포상팔국의 난)

내해왕은 태자 석우로에게 6부 군사를 주어

가서 구원하게 했고

용맹한 태자 석우로는 여덟나라 장군을 죽이고

포로 6천명을 잡아 돌와왔습니다

 

포상팔국의 난 , 신라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의 강성함을 보여준 사건

 

신라 명장 석우로 왕자

 

이외에도 내해왕 시대에는

백제의 침공이 극심했습니다

 

[조분왕과 석우로 장군]

내해왕이 사망하자

벌휴왕의 또다른 손자 석조분이 왕위를 이어

신라 11대왕 조분왕 , 조분 이사금이 되었습니다

 

내해왕은 태자 석우로보다

사위였던 석조분으로 하여금(신라 왕실의 근친혼) 왕위를 잇게하라 유언해서

조분왕이 왕위에 오릅니다

 

조분왕은 한때 내해왕의 태자였던 석우로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을 정복시켰고

석우로 장군은 왜병을 물리치는 등 나라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석우로 장군은 이후 고구려가 신라 북쪽변경을 침범하자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다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서 목책을 수비했는데

그날 밤 날씨가 몹시 추워지자

석우로 장군은 손수 장작불을 피워 병사들을 위로했고

병사들은 진심으로 감격했습니다

 

방어시설 '목책'

 

장작불

 

[첨해왕과 석우로 장군의 죽음]

조분왕이 사망하자

조분왕의 친동생 석첨해가 왕위를 이어

신라 12대왕 첨해왕 , 첨해이사금이 되었습니다

 

첨해왕대에

왜국 사신 갈나고가 객관(사신 , 손님 맞는 곳) 에 왔는데

석우로가 대접을 맡았습니다

 

당염립본왕회도의 왜국사신 모습

 

석우로는 왜국 사신을 희롱하면서

 

<석우로>조만간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만들고

왕비를 밥짓는 여자로 삼겠다

 

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왜국왕은 노해서

신라를 침공했고

첨해왕은 피난가게 됩니다

 

임나일본부설에 나오는 왜국 신공황후가 신라왕의 항복을 받는다는 그림(일본의 망상)

 

석우로가 말하기를

 

<석우로>지금 이 환란은 내가 조심하지 않아 생긴것이니

내가 당해내겠다

 

하고 왜군에게 찾아가서 말합니다

 

<석우로>전일의 말은 농담이었을 뿐이었다

어찌 군사를 일으켜 이렇게까지 할 줄 생각했겠는가 ?

 

이에 왜군은 대답하지 않고 석우로를 잡아서

나무를 쌓아 그 위에 석우로를 얹어놓고 태워죽인 다음 돌아갔습니다

 

당시 너무어려 걷지도 못했던 석우로의 아들 석흘해는

다른 사람이 안고 거두어갔고

후에 흘해왕이 됩니다

 

또한 미추왕대에는

왜국 대신이 와서 문안왔는데

석우로의 아내가 미추왕에게 청해서

직접 왜국사신에게 음식을 대접하겠다 나섰고

왜국 사신이 몹시 취하자

장사(힘센 사람) 을 시켜서 마당에 끌어내 불태워

이전의 원한을 갚았습니다

 

[최초의 김씨왕 미추왕]

첨해 이사금이 사망하자

김알지의 후손인 김미추가 왕위를 이어

첫 김씨 임금인 신라 13대왕 미추왕 , 미추이사금이 왕위를 잇습니다

 

미추왕은 항상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펼치려 노력했고

나라에 사신 5명을 파견해서

각지를 순회하며 백성들이 무엇을 고통스러워하며 걱정하는지 조사하게 합니다

 

신하들이 궁궐을 다시짓기 청했어도

미추왕은 백성들에게 노동 시키는 것은 중대사라 여겨

이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유례왕을 지킨 대나무 군사들]

미추왕이 사망하자

조분왕의 맏아들 석유례가 왕위를 이어

다시 석씨왕이자

신라 14대왕 유례왕 , 유례 이사금이 됩니다

 

유례왕의 어머니 박씨부인은

예전에 밤길을 가다가 별빛이 입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임신이 됬고

석유례를 낳던 날 저녁에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찼다 합니다

 

유례왕대는 유독 왜병의 침입이 많았습니다

이에 유례왕이 신하들에게

 

<유례왕>왜인이 자주 우리를 침범하여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없으니

내가 백제와 함께 계획을 세워 바다를 건너

왜국을 공격하려하는데

이 계획이 어떠한가 ?

 

이에 신하들은

백제는 항상 신라를 병합하려는 생각이 있기에

같이 일을 도모하기는 어렵다했고

유례왕은 신하들의 말을 옳게 여기고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이서고국이 신라수도 금성을 공격해왔는데

신라군이 방어했지만 물리칠 수 없었고

그때 갑자기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이상한 병사들이 나타나

신라 군사들과 함께 적군을 쳐부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만개의 대나무잎이 죽장릉(미추왕의 능) 에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했고

백성들은

 

<신라 백성들>돌아가신 임금(미추왕)께서 하늘의 군사를 보내

전쟁을 도우셨다

 

고 말했습니다

 

미추왕릉

 

대나무 잎

 

[관대했던 기림왕]

유례왕이 사망하자

조분왕의 손자 석기림이 왕위를 이어

신라 15대왕 기림왕 , 기림 이사금이 되었습니다

 

기림왕은 성격이 관대해

사람들이 모두 칭송했고

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나이 많은 자와 가난한 자를 직접 위문하며 곡식을 하사했습니다

 

구휼

 

[마지막 석씨왕 흘해왕]

기림왕이 아들없이 사망하자

내해왕의 손자이자 석우로 장군의 아들 석흘해가 왕위를 이어

신라 마지막 석씨임금이자

신라 16대왕 흘해왕 , 흘해 이사금이 되었습니다

 

이전 석우로 장군은 자신의 어린 아들의 준수한 모습을 보고

여러 제후들에게 말했습니다

 

<석우로>내 집안을 흥하게 할 자는

반드시 이 아이다

 

흘해왕대에

왜와 혼인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왜병이 갑자기 수도 금성을 포위공격했는데

 

신라 왕궁

 

흘해왕은 즉시 군사를 보내 막아내려 했지만

이벌찬 강세는

 

<강세>적병이 멀리서 왔으니

기세가 높습니다

공격시간을 늦추어 그들이 피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이에 흘해왕은 옳다 생각해

성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고

왜병은 식량이 떨어지자 퇴각하려 했고

이때 흘해왕은 강세로 하여금 강한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게 해서

왜병을 격퇴시킵니다

 

<라봉봉>이후부터는 석씨왕이 사라지고

김씨 독점체제가 시작되는데

시조 성씨인 박씨는 이후에도

김씨와 연합해 왕비를 배출한다거나 하며

신라 멸망까지 잘 살았고

석씨들은 김씨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자취를 감춥니다

 

초기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처럼 강성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남부한반도에서 강성했으며

끊임없이 왜와 가야 세력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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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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