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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해왕 , 파사왕 , 지마왕 , 일성왕 , 아달라왕>

[최초의 석씨왕 석탈해]

[알에서 태어난 석탈해]

[호공의 집을 빼앗은 석탈해]

[금궤에서 나온 김씨의 시조 김알지]

[정복군주 파사왕]

[한명은 각간 , 한명은 태자비]

[지마왕의 가야정벌]

[농사에 힘쓴 일성왕]

[아달라왕의 죽령개척]

[신라와 백제의 대결]

<라봉봉>

 

[최초의 석씨왕 석탈해]

신라 유리왕(유리 이사금) 이 병에 걸렸을때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유리왕>석탈해는 신분이 국척(왕실 친척) 이오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고

공을 여러번 세웠는데

 

나의 두 아들은 재능이 그를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죽은 뒤에는 탈해를 왕위에 오르게 하라

나의 유언을 잊지 말라

 

유리왕이 사망하자

유리왕의 유언에 따라 석탈해가 왕위에 올랐는데

당시 석탈해의 나이 62세였고

석탈해는 이에

신라 4대왕 탈해왕(탈해 이사금) 이 됩니다

 

이는 그동안의 박씨왕이 아닌 석씨왕으로서

유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알에서 태어난 석탈해]

석탈해는 원래 왜국(일본)의 동북쪽 천리 밖에

다파나국에서 태어났는데

다파나국 왕비는 임신한지 7년만에 큰 알을 낳았습니다

 

이에 다파나국 왕은

 

<다파나국 왕>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

그것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말하고

알을 버리라 합니다

 

그러나 왕비는 알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과 보물을 싸서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습니다

 

처음 그 알은 가야로 갔지만

가야 사람들은 기괴하게 여겨서 줍지 않았고

이후 혁거세왕이 다스리는 신라로 왔는데

해변에 사는 할머니가 상자를 끌어올려 열어보니

한 어린 사내 아이가 있었기에

노인은 아이를 데려다 길렀습니다

 

뛰어난 이는 알에서 태어난다는 , 비범한 출생을 의미하는 '난생설화'

 

탈해왕이 탄생한 장소인 '석탈해왕탄강유허'

 

아이가 어른이 되자

키도 크고 기풍과 지식이 뛰어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아이에게

 

<어떤 사람>아이가 처음 도착했을때

까치 한마리가 울면서 날아왔으니

까치 작 鵲 자를 줄여

석 昔 을 성으로 삼게하고

또 상자를 풀고 나왔으니

벗을 탈 , 풀 해로 이름을 짓는 것이 좋겠군요

 

라고 말해

아이 이름은 석탈해가 되었습니다

 

[호공의 집을 빼앗은 석탈해]

석탈해는 처음에는 고기잡이를 하며 할머니를 봉양했는데

한번도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탈해에게

생김새를 보니 너는 보통사람이 아니니

학문에 종사하라 했고

이에 따라 탈해는 열심히 학문을 공부했습니다

 

어느날 탈해는 호공의 집을 보고

이곳이 좋은 집터라 생각했고

그의 집에 몰래 숯과 숫돌을 묻어둔 뒤

 

김홍도의 '대장간' , 숫돌에 농기구를 가는 사람

 

호공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석탈해>이 집은 원래 조상때부터 우리집 입니다

 

이에 호공은 그렇지 않다며 서로 다투다

관가에 고했고

관가에서는 석탈해에게

 

<관리>그집이 너의 집임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

 

고 말했는데

석탈해는

 

<석탈해>우리 집안은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얼마전 이웃고을에 간 사이

그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청컨대 땅을 파서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이에 석탈해의 말대로 하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기에

석탈해는 호공의 집을 빼앗아 살게 됬습니다

이 땅은 훗날 신라의 왕궁 월성의 자리가 됩니다

 

월성 복원도 , 초승달 모양이기에 월성입니다

 

남해왕(남해차차웅) 은

석탈해가 어질고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딸 , 공주를 탈해에게 시집보냈고

석탈해를 재상에 임명하고 나랏일을 맏겼습니다

 

이후 유리왕은 유언으로

석탈해를 왕위에 오르라 했기에

석탈해는

신라 4대왕 탈해이사금 , 탈해왕이 되었습니다

 

[금궤에서 나온 김씨의 시조 김알지]

왕이 된 석탈해는

이전 자기가 집을 빼앗았던 호공을

재상에 임명했고

나랏일에 집중했습니다

 

탈해왕은 왜국과 우호관계를 맺었고

백제의 침공을 방어했습니다

 

하루는 탈해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에서 닭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샐 무렵 호공을 보내 무슨일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호공이 가보니

그곳에는 나무가지에 금빛나는 작은 상자(금궤)가 걸려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조선 인조때 조속이 김알지 탄생설화를 그린 '금궤도'

 

호공이 돌아와서 이 사실을 보고하자

탈해왕은 사람을 보내 상자를 가져와 열게했는데

그 속에서는 잘생긴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있었습니다

 

김알지 탄생설화

 

탈해왕은 기뻐하며

 

<탈해왕>이 아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로 준 것이 아니겠는가 ?

 

하고 아이를 거두어 길렀습니다

 

아이는 자라며 총명하고 뛰어났는데

탈해왕은 아이 이름을 알지라하고

금빛나는 상자에서 나왔기에 성을 김 金 (성씨 김 , 금 금) 이라 했습니다

 

또 탈해왕은

시림을 고쳐서 닭의 숲 , 계림이라 부르고

나라 이름을 계림이라 했습니다

 

(계림=신라=서라벌=사로 등 신라는

여러 이름이었음)

 

경주 계림 , 계림은 '한국'을 의미하는 또다른 말이 되었습니다

 

김알지와 그의 후손 김씨들은 탈해왕의 양자로서

신라 왕족에 편입됬고

박씨에서 석씨로 왕위를 교체한 석탈해와 달리

김알지는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후 김알지의 후손 , 김씨들이 신라의 왕이 됩니다

 

김씨의 시조 김알지 , 김산호 화백 작품

 

[정복군주 파사왕]

탈해왕이 사망하자

유리왕의 둘째아들 박파사가 왕위를 이어

신라 5대왕 파사 이사금 , 파사왕이 되었고

다시 박씨왕 시대가 시작됩니다

 

처음 탈해왕이 사망했을때

신하들은 유리왕의 첫째아들이자 태자 박일성을 왕위에 올려려했지만

어떤 사람이

일성이 비록 첫째지만 사람됨과 총명함이 둘째 파사만 못하다며

파사를 왕위에 옹립합니다

 

파사왕은 절도있고 검소하고 백성을 사랑했고

백성들도 그를 칭송했습니다

 

파사왕은 창고를 풀어 백성을 구제하고

옥에 갇힌 죄수를 조사해 중죄가 아닌 이들을 석방시켰고

 

이후에는

농사와 양잠(누에치기)을 장려하고 군사를 훈련시켜서

비상의 상황에 대비하게합니다

 

누에치기 , 양잠업

 

또한 파사왕은

 

<파사왕>내가 부덕함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맡았다

우리나라는 서쪽으로는 백제에 이웃하고

남쪽으로는 가야에 접하였으나

나의 덕망은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외국을 두렵도록 하기에 부족하였으니

마땅히 성과 보루를 수리하여

외적에 침략에 대비하라

 

라고 말하고

두 성을 쌓았습니다

 

또 사신을 파견해

공무에 성실하지 않은 관리들은

강등시키거나 사직하도록 합니다

 

파사왕은 탈해왕 집터에

신라 왕궁 월성을 쌓았습니다

 

파사왕은 백제와 가야의 공격을 막아내고

주변 소국(고대 한국 도시국가)들을 정벌하며 합병해 신라의 영토를 넓힙니다

 

정복군주 파사왕

 

[한명은 각간 , 한명은 태자비]

파사왕이 사망하자

그의 첫째아들 , 태자 박지마가 왕위를 이어

신라 6대왕 지마왕(지마 이사금) 이 되었습니다

 

이전 지마왕이 태자시절

파사왕을 따라 유찬 못가에서 사냥하는데

사냥을 한 뒤 한기부를 지날 때

이찬 허루가 음식을 차려 대접했습니다

 

술기운이 무르익자

허루의 아내가 젊은 딸을 데리고 나와 춤을 췄고

그러자 이찬 마제의 부인도 자신의 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사극 '선덕여왕' 속 가무(노래와 춤)

 

태자가 허루의 딸을 보고 기뻐했지만

허루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파사왕이 허루에게 말하기를

 

<파사왕>이곳 땅 이름이 대포(큰 부엌) 인데

공이 이곳에서 훌륭한 음식과 좋은 술을 차려

잔치를 베풀어 즐겁게하니

직위를 주다(술이 많음) 라 해서

이찬 위에 두어야 마땅하겠다

 

하고

허루의 벼슬을 주다로 높여주고

마제의 딸을 태자비로 삼았습니다

 

주다는 후에 각간(=이벌찬)이라 불리며

신라 최고벼슬이 됩니다

 

신라 1등벼슬 각간(이벌찬)

 

[지마왕의 가야정벌]

이후 왕이 된 지마왕은

계속 덤비는 가야를 막기위해

직접 가야정복활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친히 병력을 이끌고 가야를 공격했으나

숲에서 매복한 가야군이 나와

포위되다가 맹렬히 싸워 포위를 뚫고 퇴각합니다

 

철갑병이었던 가야 무사 , 함안박물관

 

지마왕은 일본과 화친했고

북방에서 말갈족이 쳐들어오자

백제에 지원군을 요청해 이들을 물리칩니다

 

초기 신라와 한반도 남부패권을 다퉜던 가야

 

[농사에 힘쓴 일성왕]

지마왕은 사망했지만

아들이 없었고

이에 이전 유리왕의 첫째아들이나

둘째아들 박파사에 능력이 밀려 왕위를 내주어야했던

유리왕의 태자 박일성이 다시 왕위를 이어

신라 7대왕 일성왕(일성 이사금) 이 됩니다

 

일성왕은 장령에 목책(나무 울타리)을 세워 말갈을 방어했고

 

방어시설 '목책'

 

어느날 일성왕이 대신들을 불러

말갈을 공격할 것을 논의했는데

이찬 웅선이

 

'불가능하옵니다'

 

라고 말하자

일성왕은 이를 중지했습니다

 

어느날 일성왕은

 

<일성왕>농사는 정치의 근본이오

먹는 것은 백성들에게 하늘처럼 귀중한 것이다

 

모든 주와 군에서는 제방을 수리하고

밭과 들을 개간하여 넓히라

 

또한 민간에서는 금 , 은 , 구슬 , 옥의 사용을 금하라

 

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삼한과 왜에서 귀하게 여겨졌던 사치품 '구슬' ,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아달라왕의 죽령개척]

일성왕이 사망하자

일성왕의 맏아들

박아달라가 왕위를 이어

신라 8대왕 아달라왕 (아달라 이사금)이 되었습니다

 

아달라왕은 신라에 길과 마을을 설치했고

특히 경상도 북쪽 끝의 죽령을 개통시켰는데

죽령은 천혜의 요새였기에

신라는 이곳을 차지하고 내실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소백산맥과 죽령지역

 

[신라와 백제의 대결]

아찬 길선이

반역을 하려다가 발각되어

백제로 도망쳤고

아달라왕은 백제에 글을 보내서

길선을 넘겨줄 것을 요청했는데

백제왕은 응하지 않았고

이에 아달라왕이 군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하자

백제는 성을 닫고 수비하며 나오지 않아

신라군사들은 식량이 떨어져 돌아갔습니다

 

이때부터 신라와 백제의 사이가 틀어졌고

이후부터는 신라와 백제는 공방전을 벌이게 됩니다

 

견원지간 , 원수지간이었던 신라와 백제군의 싸움 , 영화 황산벌

 

한편 왜국(일본)의 여왕 비미호(히미코) 가 

신라에 사신을 보내왔습니다

히미코는 귀신을 섬기며 신비주의 카리스마로 왜인들을 이끌며

왜국의 왕이 됬고

왕이 된 이후는 궐밖으로 나오지 않고 단지 그녀의 남동생이

나랏일을 도왔다합니다

 

히미코와 그녀가 다스리던 왜국의 나라 '야마타이국'

 

아달라왕 이후부터는 박씨왕의 시대가 끝나고

석씨왕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라봉봉>어렸을때 역사책에서 본

뭉게뭉게 안개가 있는 신비한 계림숲에서 우는 닭과

황금궤짝속 태어난 아이 , 신비스러운 신라의 이미지가 생각납니다

 

중딩때 국사책보고 친구들이랑

신라왕 이름이 박지마 , 박아달라라는 야릇한 이름이어서

낄낄댄 기억도 나고 (이건 역사학계에서 좀 유명한 드립임)

 

하여튼 초기 신라는 참 신비로운 나라였고

초기 신라는 점차 주변 소국들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했으며

석탈해의 경우 박아달라왕 이후부터 석씨왕조가 시작되고

김알지의 경우는 더 시간이 지난뒤 김씨왕이 나오며 김씨 독점체제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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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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