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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왕 , 실성왕 , 눌지왕 , 자비왕 , 소지왕>

[김씨왕조의 시작 내물왕]

[고구려에 인질로 간 실성]

[실성왕의 복수]

[눌지왕과 마립간]

[고구려에 간 박제상과 구우일모]

[왜국에 간 박제상]

[충신 박제상]

[눌지왕과 나제동맹]

[자비왕의 백제구원]

[소지왕의 결혼동맹]

[소지왕과 벽화부인]

<라봉봉>

 

[김씨왕조의 시작 내물왕]

마지막 석씨왕 흘해이사금이 아들없이 사망하자

신라에는  김씨 왕조시대가 시작되며

김알지의 8세손인 김내물이 왕위를 이어

신라 17대왕 내물왕 (삼국사기 : 내물 이사금 , 삼국유사 : 내물 마립간) 이 됩니다

 

신라 왕조 계보 , 17대왕 내물왕부터 김씨왕조의 시작

 

여기서 내물왕은

삼국사기에서는

이사금으로 ,

삼국유사에서는

마립간이라 나오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때부터 석씨왕조 이사금과 구분하기 위해

왕 칭호로 마립간을 썼다고 보고 있습니다

 

내물왕대에

왜병이 대규모로 공격해와는데

 

내물왕은 이를 대적하기 어렵다 생각해서

풀로 허수아비 수천개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무기를 붙여 군사로 위장시켜

토함산 아래에 세워놓았고

용사 1천을 벌판에 매복시켜 놓았습니다

 

허수아비 병사

 

경주 토함산

 

이에 왜병들은 자신의 병력이 많은 것을 믿고

공격해왔는데

매복한 신라군이 갑자기 공격해 허를 찌르니

왜병은 대패해서 도망쳤고

이때 신라군이 추격해서 거의 모두 죽였습니다

 

(전쟁에서는

서로 직접 맞붙을때는 죄책감이 강해져 죽이기를 머뭇거리는데

상대가 등을 보이고 도망치면

그때는 죄책감이 줄어들어서 사냥감잡듯이 죽인다 하고

전투에서 전사자는 직접적인 전투보다

도망칠때 , 등을 보일때 전사자가 급격히 발생한다고 합니다)

 

백제 독산성주가

백성 3백명을 이끌고 투항해왔는데

백제왕은

 

<백제왕>두 나라가 화목해서

형제처럼 지내기로 약속했는데

 

지금 대왕은 우리나라에서 도망친 백성을 받아들였다

이는 화친하자는 뜻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며

대왕에게 기대했던 바가 아니다

청컨대 그들을 돌려 보내기를 바란다

 

이에 내물왕은

 

<내물왕>백성이란 항상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왕이 그들을 돌보아주면 오고 ,

힘들게 하면 가나니 ,

백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대왕이 백성들을 편하게 해주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과인을 책망함이 어찌 이토록 심한가 ?

 

하고는 거절합니다

 

흔히 왕과 귀족을 용과 백조에 , 평범한 백성들을 개천의 가재 , 개구리에 비유하는 말도 있는데 실제로 한국 토종 참가재는 1급수가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한 깨끗한 생물입니다

 

[고구려에 인질로 간 실성]

당시 고구려왕은 광개토대왕이었는데

고구려가 강성하니

내물왕은 조카 김실성을 고구려에 볼모(인질)로 보냅니다

 

이후 백제+가야+왜가 신라를 협공하자

위기의 신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광개토대왕은 5만 군사로 신라를 보호하고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이 됩니다

 

[실성왕의 복수]

내물왕이 사망하자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고구려에 인질로 갔었던 김실성이 왕위를 이어

신라 18대왕 실성왕 , 실성 이사금이 됩니다

 

실성왕은 고구려의 입김으로 왕위에 올랐는데

이전 내물왕에게 고구려에 인질로 보내진 것을 원망했기에

내물왕의 아들들을 죽여서 내물왕 아들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자신의 원한을 풀려했고

 

유명한 짤방인 한국 시트콤속 실성한 사람 , 실성왕은 닉값하는 인물이어서 외우기 쉽습니다

 

왕이 되자마자

내물왕의 셋째아들 김미사흔을 왜국에 인질로 보냈습니다

 

당시 신라는 끊임없는 왜의 위협등으로

위기의 상황이었고

이어서 실성왕은

내물왕의 둘째아들 김복호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냅니다

 

실성왕은

내물왕의 첫째아들 김눌지도 죽이려했는데

이전 고구려에서 지낼때 알고지내던 사람을 불러와서

눌지를 암살하라 시킵니다

 

<실성왕>눌지를 보거든 죽이라

 

서역벽화속 환두대도를 찬 고구려인(오른쪽)

 

고구려인 자객은

눌지를 죽이려 찾아갔는데

눌지의 외모가 쾌활하고 군자의 기풍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했고

눌지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습니다

 

<고구려 자객>그대의 국왕이 나로 하여금

그대를 죽이도록 하였으나

이제 그대를 보니 차마 죽일 수 없다

 

고구려 자객은 그대로 돌아갔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눌지는 원망하며

실성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눌지왕과 마립간]

이에 김눌지는 신라 19대왕 눌지왕 , 눌지 마립간이 되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이때부터 마립간 칭호를 사용하고 있고

마립은 '말뚝' 이라는 뜻으로서

조정에서는 직위에 따라 말뚝을 박아놓고 기둥인 왕말뚝이 중심 ,

신하말뚝은 그 아래에 나열했기에

이 말뚝이라는 말을 빌어와

마립간이라 했습니다

 

신라의 말뚝과 마립간의 유래

 

조선시대 종묘의 돌기둥 , 신하들이 서는 자리

 

마립간에서 간은 신라 김씨가 북방 유목민족이나 흉노족의 영향을 받아

유목민족에서 왕을 뜻하는 칸=간 이라는 뜻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고구려에 간 박제상과 구우일모]

왕이 된 눌지왕 , 눌지 마립간은

곧바로 실성왕에게 외국에 인질로 보내진 동생들을 구하려 했고

그들을 데려올 사람을 구합니다

 

<눌지왕>나의 아우 두 사람이

왜국과 고구려 두 나라에 인질로 가서

수년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형제인 까닭에 보고싶은 생각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지라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

 

이에 신라 마을 이장들은

 

<마을 이장들>박제상이 사람이 굳세고 용감하며 지모가 있다 하니

그가 족히 전하의 근심을 풀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눌지왕은 박제상을 부릅니다

 

<박제상>신이 비록 어리석고 불초(못나고 어리석다) 하나

어찌 감히 명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

 

신라 충신 박제상

 

박제상은 사신으로서 물품을 갖추고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고구려 장수왕에게 말했습니다

 

<박제상>제가 듣건대 이웃나라와 교제하는 도는

성실과 신의뿐이지

인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임금께서 사랑하는 아우가 여기 있는지

벌써 10년이 되고

우리 임금은 영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왕이 감사하게도 그를 돌려 보내 주신다면

이는 마치

구우일모 九牛一毛 (아홉마리 소 가운데 털하나) 의 격으로서

대왕께서는 손해될 것이 없으나

우리 이금이 대왕의 덕을 칭송함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왕께서는 이점을 유념하여 주소서 !

 

구우일모

 

이에 장수왕은 박제상의 충심과 패기가 마음에 들어

 

<장수왕>좋다

 

하면서

복호를 귀국시키는 것을 허락합니다

 

[왜국에 간 박제상]

박제상이 눌지왕의 둘째동생 복호를 데려오자

눌지왕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눌지왕>나는 두 아우 생각하기를

좌우의 두 팔과 같이 생각하는데

이제 다만 한 팔만 찾았으니 이제 어찌 해야하는가 ?

 

박제상이 대답했습니다

 

<박제상>신이 비록 재주가 노둔하오나

이미 나라에 몸을 바쳤으니

끝까지 명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대국이고 왕은 어진 임금이었기 때문에

신이 한마디 말로서 그를 깨우칠 수 있었지만

왜인들은 말로써 달랠 수 없으니

속임수로써 왕자(미사흔)를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에 박제상은 죽기를 맹세하고

처자식을 만나지도 않은채

율포에서 배를 타고 왜로 향했습니다

 

박제상이 배를 탄 율포

 

박제상의 아내는 그 소식을 듣고

포구로 달려가 배를 바라보면서 대성통곡하며 말했습니다

 

<박제상의 아내>잘 다녀오시오 !

 

이에 박제상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박제상>내가 명을 받들고 적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대는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지 마시오

 

하고 곧장 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박제상 부부 영정

 

왜국에 도착한

박제상은 반역하다가 왜국으로 도망친 것으로 꾸며 행동했으나

왜왕은 박제상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신라왕이 미사흔과 박제상의 가족을 가두었다는 소식을 듣자

왜왕은 박제상이 정말 신라의 배반자라 믿게 됬고

신라를 습격하기로 하고 박제상에게 앞잡이를 하라 명했습니다

 

한편 박제상은 미사흔과 함께 한가롭게 배를 타고 낚시하는 척 놀며

의심을 피하고 있었고

왜인들은 이 둘이 다른 마음이 없다고 좋아했습니다

 

이때 박제상은 미사흔에게 슬며시 신라로 돌아갈 것을 권했습니다

 

미사흔은

 

<미사흔>내가 장군(박제상) 을 아버지처럼 받들고 있는데

어찌 나혼자 돌아가겠는가 ?

 

박제상은

 

<박제상>만약 두 사람이 함께 떠난다면

일이 성사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에 미사흔은 박제상의 목을 껴안고

울면서 하직하고 몰래 신라로 떠났습니다

 

박제상은 왜인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늦잠을 자다 일어났고

여러 왜인들이

 

<왜인들>장군은 왜 늦게 일어났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박제상은

 

<박제상>전 날 배를 탔더니 피곤하여

일찍 일어날 수 없었다

 

왜인들은 그가 밖으로 나오자

마침내 미사흔이 도망친 것을 알고

박제상을 결박해놓고

미사흔의 배를 추격하나

안개가 짙게 끼어서 추격에 실패했고

미사흔은 무사히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충신 박제상]

한편 왜왕은 남은 박제상의 재능이 아깝다 생각해서

그를 문초하며 회유합니다

 

<왜왕>너는 어찌하여 너희나라 왕자를 몰래 돌아보냈느냐 ?

 

박제상은

 

<박제상>나는 오직 계림(신라) 의 신하이지

왜국의 신하가 아니오 ,

나는 단지 우리 임금의 소원을 이루게 했던 것 뿐이오

어찌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겠소

 

이에 왜왕은

 

<왜왕>너는 이미 나의 신하가 되었는데도

감히 계림의 신하라고 말하느냐 ,

그렇다면 반드시 다섯가지 형벌을 모두 쓸 것이나

만약 왜국의 신하라고만 말하면

필히 후한 상을 줄 것이다

 

이에 박제상은

 

<박제상>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

차라리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겠다

 

라 말합니다

 

오랜 옛날부터 한국에서 쓰인 욕이었던 '개돼지 (犬㹠 견돈)'

 

분노한 왜왕은

박제상의 발가죽을 벗기고 갈대를 베어 그 위를 걷게합니다

모진 고문에 왜왕은 박제상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왜왕>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인가 ?

 

박제상은

 

<박제상>나는 계림의 신하다

 

이에 왜왕은 쇠를 달구어 그 위에 박제상을 세워놓고 묻기를

 

<왜왕>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인가 ?

 

박제상은

 

<박제상>나는 계림의 신하다

 

 

이에 왜왕은 박제상을 굴복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불태워 죽였습니다

 

해안가에서 박제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박제상의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어 죽었다 하고

이에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는 돌 , 망부석 望夫石 이 되었습니다

 

돌이 되어버린 박제상의 아내 , 치술령의 망부석

 

미사흔이 홀로 돌아왔지만 박제상이 왜에서 죽자

이 소식을 들은 눌지왕은 애통해하며

박제상의 벼슬을 높여주고

그의 가족들에게 후한 선물을 주고

미사흔으로 하여금 박제상의 둘째딸을 아내삼게 함으로서

은혜에 보답케 했습니다

 

박제상의 사당 치산서원

 

경남 양산시의 박제상 동상 , 한국의 위인

 

처음에 미사흔이 왜국에서 돌아왔을때

눌지왕의 세형제 ,

첫째 김눌지와

둘째 김복호와

셋째 김미사흔은

손을 잡고 엉엉 울었고

셋은 술자리를 마련하고 마음껏 즐겼으며

눌지왕은 노래와 춤을 스스로 지어 자신의 뜻을 나타냈는데

우식곡 (憂息曲 , 근심을 삭이는 노래) 이라는 향악으로 남았습니다

 

[눌지왕과 나제동맹]

한편 눌지왕은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었고

고구려에게 공격당해 위기에 몰리던 백제 비유왕은

신라 눌지왕에게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남진에 대항하자 했고

이에 눌지왕은 동맹에 응해서

신라와 백제의 동맹 , 나제동맹(라제동맹) 이 맺어집니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대항한 백제와 신라의 나제동맹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하자

눌지왕은 군사를 보내서 백제를 구원했고

신라는 반 고구려 정책으로 변화합니다

 

[자비왕의 백제구원]

눌지왕이 사망하자

눌지왕의 첫째아들 김자비가 왕위를 이어

신라 20대왕 자비왕 , 자비 마립간이 됩니다

 

자비라는 뜻은 불교에서의 '사랑' 개념으로

불교의 자비와 한자가 같은데

참 좋은 이름이고 한때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던

고구려의 영향으로

이 시기부터 신라에 점차 불교가 들어온듯 합니다

 

자비왕은 왜의 계속되는 침공을 방어해냈고

고구려 장수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수도 한성을 공격하자

백제왕 개로왕은 태자 부여문주를 신라에 보내서 구원군을 요청했는데

신라 구원군이 부여문주 태자와 함께 백제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성은 함락되고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잡혀 살해당했습니다

 

한성백제 최후의 날 , 주저앉은 개로왕

 

[소지왕의 결혼동맹]

자비왕이 사망하자

자비왕의 첫째아들 김소지가 왕위를 이어

신라 21대왕 소지왕 , 소지 마립간이 되었습니다

 

소지왕은 어릴때부터 효성스럽고 겸손한 인물이어서

사람들이 모두 탄복했습니다

 

소지왕은 나제동맹을 굳건히 하고

고구려와 말갈군을 방어했고

 

백제 동성왕이 나제동맹을 강화시키려

신라에 결혼동맹을 요청하자

소지왕은 결혼적령기의 공주가 없었기에

신라 최고위 귀족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백제에 보내어

백제 동성왕과 신라 비지의 딸은 혼인을 해서 혼인동맹을 맺습니다

 

나제동맹 정신을 이은 오늘날 충청도(백제)+경상도(신라)의 교류

 

[소지왕과 벽화부인]

소지왕은 어느날 날이군에 행차했는데

날이군에 살고 있는 파로라는 사람에게는

벽화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16세의 벽화는 실로 국색 , 나라의 미인이었고

파로는 벽화에게 비단옷을 입혀 가마에 태우고

채색비단을 덮어 소지왕에게 바쳤습니다

 

소지왕은 음식을 진상한 것이라 생각해서 가마를 열어보니

얌전한 어린 소녀가 들어있었고

 

삼국시대의 수레

 

소지왕은 이것이 정상적인 일은 아니라 생각해서

받지 않고 대궐로 돌아왔으나

궐에서도 내심 벽화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소지왕은 평복으로 갈아입고

두세차례나 그녀의 집에 방문해

벽화와 관계를 맺었습니다

 

어느날도 소지왕은 평복으로 갈아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다

한 노파(할머니) 의 집에 묵게 됬고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소지왕>오늘날 백성들은 국왕을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중에서 노파

 

이에 노파는

 

<노파>많은 사람들이 성인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소

왜냐하면 내가 듣건대 왕은 날이군에 사는 여자와 관계하면서

자주 평복을 입고 다닌다 하오

 

무릇 용의 겉모습이 고기와 같이 생겼다면

어부의 손에 잡히는 것이라오

 

지금 왕은 만명의 사람들의 위의 지위에 있는데

스스로 신중하지 못하니

이런 사람이 성인이라면

누가 성인이 어니겠소 ? 껄껄

 

이에 소지왕은 몹시 부끄러워 하며

즉시 남모르게 벽화를 맞이해서

별실에 두었고

벽화는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라봉봉>신라 충신 박제상은 한국에서 충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유명하고

모진 고문에도 왜왕에게 굴복하지 않은 그의 정신은

한국의 충 , 선비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까지 신라는

게임이나 만화로 치면

이리저리 얻어맞는 매우 약한 찌질이 주인공이었는데

점차 힘을 기르고 백제와 손잡고 고구려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이후부터 신라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 등장하는데

다음왕인 지증왕은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신라를 개혁했으며

지증왕 이후 법흥왕 , 진흥왕대에 걸쳐

신라는 최전성기가 시작되고 이로인해 신라는 삼국을 통일할 기반이 마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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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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