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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왕 , 법왕 , 무왕 , 의자왕 , 백제 부흥운동>

[혜왕]

[살생을 금지한 법왕]

[서동요]

[무왕의 신라공격]

[해동증자 의자왕]

[향락에 빠진 의자왕]

[둥근달과 초승달]

[황산벌 전투]

[백제의 멸망]

[삼천궁녀와 낙화암]

[백제 부흥운동]

<라봉봉>

 

[혜왕]

위덕왕이 사망하자

성왕의 둘째아들이자 고령이었던 위덕왕의 동생

부여계가 왕위를 이어

백제 28대왕 혜왕이 되었습니다

 

혜왕은 이미 늙은 나이에 왕위를 이은 상태라

재위 1년만에 사망하고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살생을 금지한 법왕]

혜왕이 1년만에 사망하자

혜왕의 맏아들 부여선이 왕위를 이어

백제 29대왕 법왕이 되었는데

 

그는 왕이 된 이후

백성들에게 명을내려

살생을 금지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새잡는 매를 놓아주고

고기잡고 사냥하는 도구들을 태워버리라 명령합니다

(육식 금지령 , 고기먹는 것 금지와 비슷)

 

육식을 하지 않는 불교의 사찰음식

 

또한 왕흥사라는 절을 세우고

스님 30명에게 도첩(승려 인증서) 을 주었습니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살생을 금하는 엄격한 불교규율을

민가에까지 강요한 정도가 지나친 불교정책이었지만

삼국유사를 기록한 일연스님은 스님이었기에

이러한 법왕의 정책을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일연스님의 법왕 찬미시>

짐승도 보호한 왕의 명령 천산에 은혜가 미치고

은택이 돼지 물고기까지 흡족하여 어짊이 온 세상에 넘치네.

성군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말하지 말라.

천상의 도솔천은 꽃다운 봄이 한창일지니. 

 

법왕의 법은 불법 , 불교를 뜻하고 있고

법왕 역시 아버지 혜왕처럼

1년을 즉위하고 사망합니다

 

[서동요]

법왕이 사망하자 법왕의 아들

부여장이 왕위를 이어

백제 30대왕 무왕이 되었습니다

 

무왕은 백제 마지막 명군인데

그의 성장기는 특이했고

'서동요' 의 주인공 서동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서동은 백제 왕족이지만

궁궐밖에서 자랐던 인물이고

가난한 서동은 마를 캐면서 살았기에

맛동 , 맛동서방이라 불렸습니다

 

옛날 한국 어린이들의 웰빙 간식이었던 '마'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 수도 서라벌 (=금성 , 경주)으로 갔습니다

 

선화공주

 

서동은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며 아이들과 친해졌고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줄테니

길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라 합니다

 

<서동의 노래 , 서동요>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놓고

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

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

서동방을

夜矣夘乙抱遣去如

야의묘을포견거여

 

서동요를 알려주며 마를 나눠주는 서동

 

서라벌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다니자

어느새 신라 진평왕의 귀에게까지 이노래가 들어갔고

분노한 신하들은 진평왕에게 격렬히 간해서

선화공주를 먼곳으로 귀양보내게 합니다

 

쫓겨난 선화공주는

귀양길에 서동을 만났는데

서동은 선화공주에게 절하면서 모셔가겠다 말합니다

 

선화공주는 그가 어디서온지도 , 누군지도 모르나

우연히 믿고 기뻐하며 그와 정을 나누었고

이후에야 그가 서동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둘은 같이 백제로 왔고

선화공주는 궐에서 쫓겨날때 어머니가 준 금을 내놓으며

이것으로 생계를 꾸리자 했는데

서동은 크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서동>이것이 무엇입니까 ?

 

<선화공주>이것은 황금이니

가히 백년을 넉넉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이래뵈도 공주야 !)

 

이에 서동은

 

<서동>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파던 땅에는

이런 것이 흙처럼 쌓여있습니다

 

대답했고

선화공주는 크게 놀라서 그 보물들을

부모님이 계신 금성 궁궐에 보내자했습니다

 

서동은 좋다하며 금덩이를 모아

쌓아놓고는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금을 어떻게 옮기냐 물었고

지명법사는 신통력으로 금을 신라에 옮기겠다하고

하룻밤 사이에

선화공주의 편지와 함께 금을 신라 궁궐로 옮겨놓았습니다

 

이에 신라 진평왕은 서동의 능력을 존경하고

사위로 인정하며 자주 편지를 보냈고

서동은 신라의 도움으로 민심을 얻어

백제 왕위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백제 무왕)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과 선화공주

 

이 이야기가 바로

백제의 사랑이야기 '서동요' 입니다

 

무왕과 서동요 이야기를 다룬 사극 'SBS 창사 15주년 대하드라마 서동요(薯童謠) (2005~2006) Seo Dong'

 

[무왕의 신라공격]

하여튼 왕이 된 서동은

백제 30대왕 무왕이 됬는데

그는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한 인물이었고

백제 왕이 되고부터는 신라 공격에 적극이었습니다

 

백제 마지막 명군 무왕

 

무왕은 재위초부터 계속해서 신라에 맹공을 퍼부었고

신라를 위기에 몰아넣습니다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한강을 요새화시켜놨기 때문에

무왕은 이전부터 백제인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북진 , 한강탈환을 포기하되

신라 수도 서라벌 , 금성을 직접 공격하기로 계획을 바꾸었고

백제인들은 동진하기 시작합니다

 

무왕의 동진

 

대규모로 백제군이 전멸해버린

관산성 전투이후 백제는 신라에 의기소침해져 있었는데

무왕의 동진 , 계속되는 백제군의 승리로

백제는 신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고

신라는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자신감을 찾은 무왕은

왜국이 백제를 거치지 않고 중국과 교류하려 하자

왜국에 간섭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왕권강화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629년 익산에 사찰 미륵사를 완공합니다

 

또 630년 사비궁을 중수하게 했고

634년 왕궁남쪽에 인공호수와 인공섬인 궁남지를 조성합니다

 

한국 최초의 인공연못 '궁남지'

 

무왕은 왕권을 강화하려 자신의 고향이자 기반이었던

전라북도 익산으로 수도를 천도할 계획을 세웠는데

사망 등으로 흐지부지됩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무왕은 백제 마지막 명군으로서

불안한 정국을 수습하고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올려놓았던 인물이고

신라를 떨게한 백제 마지막 불꽃이었습니다

 

[해동증자 의자왕]

무왕이 사망하자

태자 부여의자가 왕위를 이었는데

이 인물이 바로 백제 31대왕이자 백제 마지막왕 의자왕입니다

 

백제 마지막왕 의자왕

 

의자왕은 태자시절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해동증자 , 동방의 효자라 불렸습니다

 

처음 의자왕은 총명하고 영민한 모습을 보여줬고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침공해

40여개 성을 함락시킵니다

신라 최대 요충지 대야성도 백제에게 함락되었고

또 의자왕은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신라를 견제하려 했습니다

 

무왕-의자왕이 신라에게 뺏은 동부영토

 

궁지에 몰린 신라는 이를 갈며 백제에 맞서려 했고

결국 당나라와 동맹을 맺었는데

당나라 역시 고구려를 공격하려 했기에

두 나라는 '나당동맹' 을 결성시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려 합니다

 

돌궐+고구려+백제+왜 동맹 vs 신라+당나라 , 나당동맹 및 십자외교

 

[향락에 빠진 의자왕]

재위초 승기에 자만한 의자왕은

점차 여자와 술 , 잔치에 빠져들었고

국정은 놓고 놀이에만 집중합니다

 

점차 의자왕은 궁궐공사 , 연회장을 공사하는데 집중했고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졌는데

궁녀들의 수는 3천명에 달했습니다

(실제 3천은 아닌데 문학적으로 많은 궁녀를 뜻하는 것이라 함)

 

이에 충신이었던 좌평 성충이 의자왕을 말렸는데

의자왕은 노해서 성충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에 아무도 의자왕에게 충언하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백제 마지막 충신 성충

 

옥안에 갇힌 성충은 죽을때

의자왕에게 마지막 말을 올렸습니다

 

<성충>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한 마디 말만 하고 죽겠습니다

 

제가 항상 형세를 관찰해보니

전쟁은 틀림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 군사들이 백제를 침공해 오거든

육로로는 탄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의 언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험준한 곳에서 방어해야만 방어할 수 있습니다

 

백제의 요충지 탄현과 기벌포

 

성충은 곧 죽었지만

그러나 의자왕은 이 말을 명심하지 않았습니다

 

의자왕은 41명의 서자(첩에게서 낳은 아들) 들을

좌평에 임명하고 각각 땅을 주었고

이에 많은 신하들이 분노했습니다

 

[둥근달과 초승달]

백제에는 큰 가뭄이 들었고

어느날은 여우떼가 궁궐에 들어왓는데

흰 여우가 대신의 책상위에 올라 앉았습니다

 

또 태자궁에서 암탉이 참새와 교미했고

 

거대한 여자시체가 강에 떠내려오기도 했고

나무가 귀신 곡소리처럼 울었으며

물고기들이 나와 죽었고

사비강의 물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습니다

 

온갖 재앙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백제가 망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날은 귀신이 대궐에 들어와

 

<귀신>백제는 망한다 , 백제는 망한다

 

하고 곧 땅속으로 들어갔고

의자왕이 이상하게 생각해

사람을 시켜 땅을 파보게하니

거북이 한마리가 발견됬습니다

 

거북이 등에는

 

'백제는 둥근달이고

신라는 초승달이다'

 

라고 써있었고

 

보름달(백제)과 초승달(신라)

 

의자왕은 무당에게 무슨 뜻이냐 물으니

무당은

 

<무당>둥근 달 같은 것은 가득 찬 것을 뜻하니

기운다는 뜻이고

초승달 같다는 것은 가득 차지 못한 것이니

흥한다는 뜻입니다

 

라고 하니

의자왕은 노해서 무당을 죽여버렸습니다

 

이에 어느 간신이 나서 말하길

 

<간신>둥근달 같다는 것은 왕성하다는 것이고

초승달 같다는 것은 미약한 것입니다

생각컨데 우리나라는 왕성해지고 신라는 쇠약해진다는 뜻같습니다

 

하니 의자왕이 기뻐했습니다

 

[황산벌 전투]

결국 나당연합군은

당나라군 13만 , 신라군 5만명으로 백제를 침공했고

소정방과 당나라군은 서해 바닷길로 , 김유신과 신라군은 육지에서

서쪽과 동쪽에서 사비성을 향해 몰려왔습니다

 

불안해진 의자왕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다가

이전 죄를 지어 귀양살이하고 있는

좌평 흥수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서 물었습니다

 

<의자왕의 신하>어찌하면 좋겠느냐

 

이에 흥수는

 

<흥수>당나라 군사는 숫자가 많고

신라와 함께 우리 앞뒤를 견제하니

평탄한 벌판에서 싸우면 이길 수 없습니다

 

백강(혹은 기벌포) 과

탄현은 우리나라 요충지이니

 

용감한 군사를 선발해 이곳을 지키게 해서

당나라 군사는 백강을 들어오지 못하게하고

신라 군사는 탄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대왕께서는 성문을 굳게 닫고 든든히 지키면

그들은 물자와 군량이 떨어질것이니

그때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 옥에서 죽은 충신 성충의 말과 똑같았는데

이 말을 들은 백제 대신들은 그가 죄인이기에

의자왕을 원망할 것이니

그 말을 따를 수 없다했고

차라리 이들을 더 깊게 끌어들여 치자고 말했습니다

 

의자왕은 결국 흥수의 마지막 충고를 무시했고

신하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결국 당나라 군사들과 신라 군사들이

백강과 탄현을 지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의자왕은 장군 계백에게 5천 결사대를 주어

황산벌로 가서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을 방어하게 합니다

 

백제 마지막 충신이자 백제 마지막 명장 계백장군

 

이미 불가능한 싸움이었기에

계백은 황산벌로 출정하기전 처와 자식들이 신라군에 잡혀 노비가 될까 싶어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황산벌에 나섭니다

 

계백은 백제 5천 결사대에게 외쳤습니다

 

<계백>옛날 구천은 5천명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하였다

 

오늘은 마땅히 각자 용기를 다하여 싸워 이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자 !

 

계백과 5천 결사대는 필사적으로 김유신의 5만대군에 맞섰고

4번이나 신라군은 패배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사비성에서 당나라군과 합세해야했던

신라군과 김유신 장군은

황산벌의 계백이 악을 쓰며 필사적으로 방어해내자

초조해졌고 신라군은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이에 김유신은

화랑 반굴을 백제군에 돌격시켰고

반굴은 죽어서 돌아왔습니다

 

신라의 청소년 무예집단 '화랑'

 

연이어 김유신은 16살의 어린 화랑 관창을 돌격시켰는데

관창은 창을 들고 진격해 백제군에 분전했지만

사로잡혀 계백에게 끌려갔습니다

 

계백은 놀라면서

 

<계백>신라에는 뛰어난 병사가 많다. 

소년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장년인 병사들이야 !

 

하고는 관창을 죽이지 않고 말에 매달아

신라 진영에 되돌려보냅니다

 

살아 돌아온 관창은

 

<관창>제가 적진에 들어가

장수의 목을 베지 못하고 깃발을 뽑아오지 못한 것은

죽음이 겁나서가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관창은 손으로 우물물을 움켜마시고는 다시 백제군에 돌진해 싸웠고

또다시 사로잡히자 계백은 씁쓸해 하며

관창의 머리를 베어 말 안장에 매어 신라군 진영에 보냈습니다

 

목만 돌아온 관창의 죽음을 본 신라군들은

비분강개해 슬픔에 가득차 죽음을 각오하고

북을 치고 함성을 울리며 백제군에 진격했고

결국 백제 5천군은 전멸하고

계백 역시 전사합니다

 

성충 , 흥수 , 계백 백제 마지막 세 충신을 모신 '부여 삼충사'

 

황산벌 전투를 다룬 영화 '황산벌 (2003) Once Upon A Time In A Battlefield'

 

[백제의 멸망]

한편 기벌포의 백제군도

소정방의 당나라군에 패배했고

나당연합군은 사비성에 밀려옵니다

 

의자왕이 한탄하며 말했습니다

 

<의자왕>성충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 지경에 온 것이 후회스럽구나

 

결국 의자왕은 항복해 당나라로 끌려갔고

백제는 660년에 700년 왕조를 끝으로 멸망합니다

 

백제의 멸망

 

[삼천궁녀와 낙화암]

백제가 멸망하자

의자왕의 후궁 , 삼천궁녀들은 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슬피 울면서

 

'차라리 자진(자살)할 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 ,

 

흉악한 적군에게 죽을 바에

깨끗히 죽자'

 

라고 말하고 사비성 북쪽 바위에 올라가 사비수에 떨어져 죽었고

이에 사람들은

이곳을 꽃이 떨어진 바위라는 뜻의 '낙화암' 이라 부르게 됩니다

 

낙화암과 삼천궁녀를 그린 부여 고란사 벽화

 

큰 패러디가 됬던 사극 '연개소문' 에서의 삼천궁녀 전설의 CG짤

 

[백제부흥운동]

백제 멸망후

당나라는 백제지역을 신라에 주겠다는 약속을 깨고

백제의 영토를 차지하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멸망한 백제 유민에 대해 가혹한 정치를 했고

백제 잔존세력들은 다시 백제를 건국하기로해

'백제 부흥운동' 을 시작합니다

 

백제부흥운동

 

백제의 신하국이었던 왜국(일본) 역시

적극적으로 모국을 살리기 위해

대군을 보내왔고

처음엔 백제 부흥군은 성들을 탈환하며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백제 부흥군 대표는

복신 장군과 도침스님이었는데

 

복신과 도침

 

복신은 도침과 함께주류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켜

왜에서 왕자 부여풍을 데려와 풍왕으로 추대했고

 

의자왕 이후 백제 마지막왕 풍왕

 

백제 부흥운동을 전개했지만

도침과의 불화가 발생해

도침을 죽이고 부흥군의 권력을 독차지하다

풍왕과의 관계가 나빠졌고

복신은 풍왕까지 죽이려다가 풍왕에 의해 처형됩니다

 

내분에 빠져 전력을 소진한 백제부흥군은

3만 왜군의 대대적 지원을 받아

백강에서 당군과 싸웠는데

백제-왜 연합군은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궤멸됬고

백제 부흥군이 전멸되자 결국 풍왕은 자식들을 버리고

고구려로 도망쳤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주류성과 임존성이 함락되며

백제 부흥운동은 끝나게 됩니다

 

이후 신라에 완전히 합병된 백제였지만

그러나 이후에도 백제인들은 계속해서 신라에 반기를 들었고

백제 부흥운동은 신라 말기 후백제의 건국으로 이어집니다

 

<라봉봉>700년 왕조 백제 이야기였습니다

백제는 문화가 발달한 한류의 원조나라였고

백제인들의 문화는 화려했음에도 검소했고

이러한 백제의 예술들은

중국 ,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동아시아의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망국의 왕 의자왕은

삼천궁녀로 유명한데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에서도

 

'백결선생 떡방아 삼천궁녀 의자왕'

 

가사가 있는데

의자왕이 위인이어서 넣은게 아니고

의자왕의 폭정을 강조하려 넣은 것이고

그 노래에는

 

'안중근은 애국 이완용은 매국'

 

이라는 가사도 있습니다

 

백제는 참 아름다운 나라였으며

멸망 이후에 백제유민들은 신라와 당나라를 피해

대거 왜에 건너가 일본을 건국하기도 했고

이에 백제는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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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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