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 , 근구수왕 , 침류왕 , 진사왕 , 아신왕>
[정복군주 근초고왕]
[고구려왕을 죽인 근초고왕]
[용맹했던 근구수왕]
[불교를 받아들인 침류왕]
[관미성을 잃은 진사왕]
[아신왕 VS 광개토대왕]
[백제와 왜의 연합]
<라봉봉>
[정복군주 근초고왕]
계왕이 즉위 2년만에
사망하자
비류왕의 둘째아들이었던
부여초고가 왕위를 이어
백제 13대왕 근초고왕이 됩니다
근초고왕은 체격과 외모가 뛰어났으며
근초고왕은 백제의 정복군주이자 백제 최전성기의 임금입니다
근초고왕 시기부터 백제 왕권은 전제화(한사람에 몰림)되고
왕위의 부자상속이 시작됬습니다
이전 백제의 시초국가였던 마한은
근초고왕대에 이르러 완전히 백제에 합병되는데
근초고왕은 마한을 정복해
전라도 지역까지 백제영역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근초고왕은 남부지역의 패권을 잡았는데
신라 , 가야를 아들과 동생으로 여기며
한반도 남부의 독자적인 패권을 구축합니다
또 당시 중국은 여러 분열로 이어지는 혼란의 상황이었기에
근초고왕은 바다건너 요서지방을 점령했고
백제는 바다를 타고 동아시아 세계를 제패한
해상대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근초고왕은
왜(일본)에 문물을 전해주었는데
왜왕에게 칠지도라는 검을 하사했습니다
<칠지도에 적힌 내용>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귀하게
성음(성스러운 소리)으로 태어났다.
그런 까닭에 왜왕 지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또한 왜에 백제학자 왕인박사를 보내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주었습니다
왕인박사는 일본태자와 일본인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고구려왕을 죽인 근초고왕]
북방 고구려의 왕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군사를 시켜 민가를 약탈하자
근초고왕은 태자 부여구수(부여수)에 군사를 주어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 그들을 격파시켰고
고구려군 5천명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근초고왕은 한강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했는데
모두 황제의 색 황색 깃발을 사용했습니다
이후에도 고구려군이 공격해오자
근초고왕은 물리쳤고
이후 근초고왕은 태자 부여구수와 함께
정예군 3만명을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했고
고구려 고국원왕은 필사적으로 항전했으나
백제군의 눈먼화살에 맞고 전사합니다
당시 고구려 역시 강대국이었기에
고국원왕이 전사하자 근초고왕은 군대를 이끌고 물러났습니다
이로인해 백제와 고구려의 악연이 시작됩니다
근초고왕은 마한 , 신라 , 가야 , 왜 , 요서 , 고구려 등
동서남북을 정복한 정복군주였고
이시기 동아시아 바다는 백제의 호수였습니다
당시 백제인들의 자신감은 컸고
근초고왕은 이전까지 백제의 역사를 기록한 적이 없었기에
이러한 이야기들을
박사 고흥을 시켜서
역사로 남기게 했고
고흥 박사는 '서기' 라는 백제 역사서를 썼습니다
[용맹했던 근구수왕]
백제 근초고왕이 사망하자
그의 태자 부여구수가 왕위를 이어
백제 14대왕 근구수왕이 되었습니다
근구수왕은 백제의 '흑태자' 같은 인물로서
태자시절부터 용맹하고
직접 전쟁에 나선 인물이었는데
태자시절
고구려 고국원왕이 쳐들어오자
근초고왕은 태자 부여구수를 보내 방어하게 합니다
당시 백제왕이 타는 말발굽을 상처나게 해서
벌을 받을까 두려워 고구려로 도망친 백제인이 있는데
그는 다시 돌아와서 태자 부여구수에게 말했습니다
<도망쳤던 백제인>고구려 군사는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가짜 군사로 수를 채운 것에 불과하고
실제 제일 강한 부대는 붉은 깃발을 든 부대입니다
태자께서 그 부대를 먼저 공략하면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태자는 이말에 따라
붉은 깃발 부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고구려군은 무너졌습니다
도망치는 고구려군을 추격하던 태자는
수곡성 서북지역에 도착했는데
백제 장수 막고해가 말했습니다
<막고해>일찍이 도가(도교)의 말에
'만족할 줄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고 하였습니다
지금 얻은 바도 많은데
어찌 더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 ?
태자는 이말을 옳다고 여겨
추격을 중단했고
즉시 그곳에 돌을 쌓아 표적을 만들고
그위에 올라가 말했습니다
<부여구수>오늘 이후로
누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겠는가 ?
근초고왕이 재위 30년만에 사망하자
그가 왕위를 이어
백제 14대왕 근구수왕이 되었습니다
근구수왕은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침공하기도 했고
부왕 근초고왕의 뒤를 이어
부강한 백제를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불교를 받아들인 침류왕]
근구수왕이 사망하자
근구수왕의 맏아들
부여침류가 왕위를 이어
백제 15대왕 침류왕이 되었습니다
침류왕 역시 할아버지 근초고왕 , 아버지 근구수왕에 이어
백제의 전성기를 이어가려 노력했고
그는 중국 남조 진나라와 교류했는데
진나라에서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왔고
침류왕은 마라난타를 궁궐로 맞아들여
우대하고 공경했습니다
이때부터 백제에 불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침류왕은 절을 창건하고
스님 10명에게 도첩 , 국가공인 승려공인장을 주었습니다
침류왕은 불교를 흥하게하며
오랜 전쟁으로 지친 백제인의 마음을 치유하려 했습니다
[관미성을 잃은 진사왕]
침류왕이 사망하자
태자의 나이가 어렸기에
근구수왕의 둘째아들이자 침류왕의 동생
부여진사가 왕위에 올라
백제 16대왕 진사왕이 되었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고국원왕이 백제왕에게 전사한 것에 대해
칼을 갈고 있었고
진사왕대부터 남하해 백제를 침공합니다
진사왕은 15세 이상 장정들을 동원해
관문에 방어시설을 실시했습니다
진사왕은 완전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고
침류왕의 태자의 숙부(삼촌) 로서
급하게 왕위에 올랐기에
신하들에게 무언가 보여주려 고구려를 침공하려고도 했지만
문제는 상대가 고구려 최전성기 임금 '광개토대왕' 이었다는 점입니다
고구려왕 담덕 , 광개토대왕은
4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백제 북쪽의 석현성 등
10여성을 함락시켰고
진사왕은 광개토대왕이 용병에 능통하다는 말을 듣고
싸우기를 회피했습니다
이후 광개토대왕은 백제 요충지이자 요새였던
관미성을 쳐서 함락시켰고
멘탈이 나간 진사왕은 갑자기 사냥에 빠지다
곧 사망합니다
[아신왕 VS 광개토대왕]
진사왕이 사망하자
이전 나이가 어려 즉위하지 못했던
침류왕의 태자 부여아신이 왕위를 이어
백제 17대왕 아신왕이 됩니다
아신왕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맞서 위기의 백제를 구하려 했고
곧 외삼촌 진무장군에게 관미성을 회복하게 명령합니다
<아신왕>관미성은 우리나라 북쪽의 요새인데
지금은 고구려 소유로 되어있소
짐은 이것을 애통해하니
그대는 응당 이곳에 힘을 다해
이땅을 빼앗긴 치욕을 갚아야 할 것입니다
진무 장군은 침차고 굳세며 지략이 많았던 인물이었고
그는 병사들보다 앞장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나서
관미성을 포위했지만
고구려 사람들이 굳게 방어하자
진무 장군은 군량 수송로를 확보하지 못해
군사를 이끌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후에도 근성의 아신왕은
진무장군에게 고구려를 치게했지만
광개토대왕이 직접 군사 7천을 거느리고 패수에 나와 막았고
이에 백제군이 크게 패해서 사망자가 8천이었습니다
결국 아신왕은 패수전투의 패배를 보복하려
직접 군사 7천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진을 쳤는데
큰 눈이 내려 돌아갑니다
아신왕은 계속해서 고구려를 공격하려 하지만
좋지 않은 징조 , 백성들의 반발로
실패합니다
아신왕의 고구려 공격은 계속 실패했고
분노한 광개토대왕이 직접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침략해
백제 수도를 비롯해
58개 성을 함락시켜버리자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서는
<아신왕>이제부터는 영원히 고구려의
노객(신하 , 노비) 이 되겠습니다
라고 굴욕적으로 말했습니다
[백제와 왜의 연합]
그러나 이후에도 고구려 공격에 집착한
아신왕은 왜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태자 부여전지를 왜에 보내놓았고
왜국 사신들을 위로하고 후하게 대우하며
왜와 손을 잡고 고구려와 신라에 맞서려 했습니다
아신왕은 고구려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왜의 성장을 도왔고
백제인들도 계속 아신왕이 고구려를 공격하려 하자
수많은 백제인들이 개죽음을 피해
이때 일본에 대거 건너가거나 도망가서
백제의 인구가 크게 줄었습니다
덕분에 왜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아신왕은 고구려를 직접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고구려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왜국과는 사이가 나쁜
신라를 공격하려 했고
가야+왜와 함께 신라를 침공했지만
광개토대왕이 직접 5만군을 이끌고 신라를 구원하러 내려왔고
이에 백제군은 또다시 털리고
백제는 근초고왕대부터 가야지역에 구축해놓은 패권을
모두 상실해버립니다
이때부터 백제는 힘을 잃고 멸망의 길을 걷습니다
<라봉봉>백제 최전성기는 근초고왕대로
백제는 일찍부터 한강유역으로 중국과 직접 교류하고
풍요로운 강과 바다 , 곡창지대위에 자리잡았기에
인구도 많고 전성기가 삼국중 가장 빨랐습니다
북진해서 고구려를 위기에 몰고가기도 한 백제였지만
그러나 곧 고구려에서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등의 명군이 나왔고
삼국의 패권은 고구려로 돌아가는데
힘을 상실한 백제는 이후부터는 점차 섬멀티였던 왜국에 집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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