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사회·문화>
[고구려의 신분제]
[고구려의 법]
[고구려인들의 결혼과 장례]
[선배제도]
[상무정신]
[고구려의 종교]
<라봉봉>
[고구려의 신분제]
고구려는 신분제 사회로서
사회 계급은
왕-귀족-평민-노예로 구성되 있었는데
귀족은 상호 , 평민층은 하호라고 불렸습니다
왕족 고씨와
5부 , 다섯 부족 출신 귀족들은
지위를 세습하며 고구려 국정운영에 참여했고
전쟁이 나면 스스로 무장해 앞장서 싸웠습니다
[고구려의 법]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온 나라였기에
부여와 유사한 풍속 , 법이 많고
척박한 환경속 잦은 전투를 하니
통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구려 법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반역자는 화형에 처한뒤 다시 목을 베었고
가족들은 노비로 삼았습니다
또한 적에게 항복한 사람이나 전쟁에서 패한 사람 역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또 절도죄 , 도둑질한자는 훔친 물건의
12배를 갚게 했고
남의 가축을 죽인 사람은 노비로 삼았습니다
고구려 법은 매우 엄격해서
고구려에서는 법을 어기는 자가 드물었습니다
[고구려인들의 결혼과 장례]
고구려인들의 결혼제도는
북방 , 유목민족식 결혼제도가 있었습니다
일단 형이 죽으면 형의 아내 , 형수를 동생이 아내로 맞이하는
유목민족의 풍습인 '형사취수제' 가 있었고
또한 데릴사위제도인 서옥제가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척박한 환경 및 잦은 전쟁으로
인구가 자주 감소했기에
결혼제도가 인구와 노동력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서옥제는 고구려에서 남녀가 혼인한 후
사위가 처갓집에 서옥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살다가
낳은 아이들이 크면 처갓집을 떠나는 풍습으로서
딸과 딸이 낳은 자식들의 노동력을 사위집안에서
다 가져가버리면 치명적이었기에
이런 풍습이 있었던 것이고
고구려인들의 노동력 중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인들의 결혼풍습은 매사에 엄격하고 엄정했을까요 ?
그것은 아니었고
고구려는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그것으로서 혼인을 성사시켰고
남자 집에서 돼지고기와 술만 보낼 뿐
다른 재물을 들고 찾아가지는 않았으며
재물을 받을 경우 사람들은 모두 수치스럽게 여겼다 합니다
결혼 예물은 서로 즐기기위한 삼겹살과 술이 전부였던 고구려인들이었고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재물이 오가는 결혼을 수치스럽게 여긴
깨끗하고 순수한 한국 조상들의 모습이었고
이러한 정신은 이후에도 이어져
이후에도 한국의 근본있거나 의로운 집안에서는 결혼자리에
돈과 예물이 오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요즘 한국 결혼식은 누가더 많은 하객을 불러오고
누가 더 화려하고 호화스럽게 하냐를
과시하고 경쟁하는 잘못된 풍조가 있는데
세계적으로도 도덕성이 떨어지는 결혼을 한 부부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결혼식과 부부생활을 과시하는 풍조가 컸고
화려한 결혼식 , 많은 예단에도 그들의 삶은 대부분 불행했습니다
반대로 도덕성이 높은 결혼을 한 부부들의 경우
결혼식이 거의 없다싶이하고
항상 과시를 경계하거나
빛좋은개살구 , 소문난잔치에 먹을게 없다는
조상들의 현명한 지혜들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하여튼 고구려는 사회적으로 엄격한 사회이기도 했지만
남녀간의 사랑에서는 재산보다 서로의 좋아함이 우선시되는게 보편적이었고
재산이 우선시된 오늘날에도 고구려인들의 올바른 결혼풍습은 많은
동경과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단지 고구려는 잦은 전쟁을 했던 나라였기에
하도 죽는 일과 장례일이 예삿일이어서
고구려 남녀는 혼례와 장례를 함께 준비했고
두가지는 연결되는 것이라 생각해서
결혼할때 수의 , 죽을때 입는 옷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또 유쾌한 고구려인들은
마치 옛날 동화속 나라같이
장례식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북사 고구려전>고구려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눈물 흘리며 곡을 하지만
장사를 지낼 때에는 북치고 춤추고 풍악을 울리면서
죽은 사람을 떠나보낸다
[선배제도]
고구려에서는 선배제도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고구려에서는 사냥시합을 하다가
많은 짐승을 잡거나 내기에서 이긴 사람을
'선배(선인 , 선비)' 라 일컫고
선배는 나라에서 봉급을 받게 되고
대신 몸을 사회와 국가에 바쳤습니다
선배는 신라 화랑제도의 원조였다 할 수 있고
전쟁이 날경우 선배들은
싸움터에 나아가 죽기를 작정해 싸웠고
죽어서 돌아오는 사람은 영광스러운 일로 보고
패해서 물러나오면 업신여겼기에
선배들이 전장에서 가장 용맹했다 합니다
당시 고구려는 엄격한 신분사회였기에
미천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는데
오직 선배 단체는 귀천없이 학문과 기술로 자기 지위를 획득했기에
이 중에서 인물들이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선배제도는 '선비' 의 유래가 됬다고도 하고
한국의 선후배 문화로도 계승되었습니다
[상무정신]
고구려인들은
이승과 저승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고 철저히 믿었던
종교인들이었고
이승에서 살다간 짧은 생애보다
저승에서 영원히 조상들과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떳떳한 명예를 더 소중이 생각하며
이승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유목민족들 및 고구려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기에
거친 환경속에서 무를 중요시하는 풍습이 강했고
이에 '상무정신 , 무를 높이는 정신' 이 국가의 기본 정신이 되었습니다
단 고구려인들의 상무정신은
전쟁을 좋아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고
나라가 위험할때 앞서 나가는 용기 ,
두려움과 어려움에 의연히 맞서는 패기를 의미했습니다
[고구려의 종교]
처음 고구려는 민속 , 토속신앙인 샤머니즘 즉
무당이 국가 종교여서
고구려에는
'사무제도' 가 있었고
임금의 스승 무당인 사무는
임금을 보필하며 제사를 주관하던 종교인 , 무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수림왕대부터 고등종교인 불교가 고구려에 들어오며
점차 무당들은 밀려가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무당 , 토속신앙은 한국인들의 내면 깊은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무속신앙 , 불교 이외에도
고구려인들은 자연 그대로의 것을 중시하는 도교를 참 사랑했고
온갖 벽화에 도교 그림들이 남아있습니다
<라봉봉>고구려인들은 잦은 전쟁으로 평균수명이 남자가 고작 24살밖에 되지 않았고
여자는 22세였다 합니다 (혹은 고구려 평균수명이 약 30살)
고구려인들은 이승못지 않게 저승의 삶에 관심이 많았고
많은 벽화를 남겨 저승과 사후세계를 상상했습니다
한 외국학자는
'고분벽화를 가진 민족은 핵무기를 가진 민족보다 훨씬 위대하고 강하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
한국은 작은 영토임에도
수많은 고분벽화가 있고
역사가 세계에서도 드믈게 매우 깊고 참 위대한 조상들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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