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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방계출신왕 선조>

[찌질이 임금 선조]

[최초의 방계출신 임금]

[익선관을 거부한 하성군]

[명종의 죽음]

[신데렐라 하성군]

[사림 , 선비들의 모임]

[선비들을 등용한 선조]

[종계변무]

<라봉봉>

 

[찌질이 임금 선조]

한국인들이 가장 폭군으로 여기는 왕이 연산군이라면

가장 싫어하는 왕 , 암군은

역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의 굴욕적 임금인 선조와 인조일 것입니다

 

조선의 암군 투탑왕 선조와 인조 , MBC

 

폭군이 폭력적인 왕을 뜻하면

암군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뜻하는 말로서

폭군이 더 나쁘냐 암군이 더 나쁘냐는 이야기도 있고

 

대놓고 미친놈(폭군) VS 암걸리게 하는 놈(암군)

 

급이라 둘다 막장인건 마찬가지입니다

 

선조와 인조 , 그들이 한국사상 최악이라 미움받는 왕이 된 이유는

단순히 정치적 능력이 낮아서가 아니라

국난 상황에서도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 ,

유능한 충신들을 견제하며 괴롭힌 무능하고 찌질한 모습때문이고

선조나 인조는 조선의 찌질이(지지리도 못난 놈 , 소인배) 임금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와 별개로 개인들의 능력치 , 정치력 등은 연산군보다 높았고

무능한 임금들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런 논리라면 매국노 이완용 역시 다방면에서 유능한 신하였고

긴급하고 중요한 상황에서 백성을 버렸다는 것 같이

나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최초의 방계출신 임금]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 ...

명종까지 조선왕실은 나름 적장자 상속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지는 않음에도

왕실 인사들로 주우욱 이어갔는데

선조대부터 최초로

서출 방계(직계가 아닌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혈통) 임금으로 대군출신이 아닌

임금이 탄생합니다

 

조선 선조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어진

 

선조 이전 임금 인종과 명종은 유약했던 왕이었고

후사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익선관을 거부한 하성군]

명종의 세자 순회세자가 이미 12살의 나이로 일찍 죽어 후계자가 없던 상태였기에

명종은 죽은 이복형 덕흥군(선조의 아버지) 의 아들 , 조카들에게 잔정을 주었고

하루는 명종은 덕흥군의 세아들

 

하원군 이정 ,

하릉군 이린 ,

하성군 이균

 

을 궁궐로 불렀고

조카들이 귀여운 명종은 자신의 왕관인 익선관을 벗어

조카들에게 한번씩 써보라 했는데

하성군의 두 형은 명종이 시키는대로 했지만

항상 예법을 따르길 좋아하는

하성군은 사양했습니다

 

 

셋째 하성군은 자신이 익선관을 쓸 차례가 되자

명종 앞에 꿇어 앉아 사양하기를

 

<하성군>군왕께서 쓰시던 것을 신하된 자가 어떻게 감히

머리에 얹어 쓸 수 있겠습니까 ?

 

어린 하성군이 당돌하게 대답하자

명종은 경탄하며

 

<명종>그렇다 마땅히 이 관을 너에게 주겠다

 

말했고

다시 명종은 하성군에게

 

<명종>근데 임금과 아버지가 누가 더 중하냐 ?

 

물었는데

하성군은

 

<하성군>임금과 아버지는 똑같은 것이 아니지만

충과 효는 본래 하나인 것입니다

 

하자 명종은 매우 기특히 여겨

하성군을 혹시 모를 다음 후계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총명하고 예스러운 어린 왕족 하성군이

바로 훗날 이순신 장군을 괴롭힌 조선 찌질이 임금 끝판왕 선조 ...

 

하성군 이균

 

하여튼 이후 을축년에 명종이 병을 앓자

대신들은 조카들 중에서 후계자를 미리 정해두길 청했습니다

 

이에 명종은 하성군을 궁궐에 들여와

병 시중(병 간호)에 참여하게 했고

유학자들 중 특별히 가려 사부(스승)로 삼아

하성군을 교도(교육)하게 했습니다

 

명종이 하성군을 특별히 총애해자

나라의 민심이 모두 하성군에 집중되었고

 

이에 대신들은 훗날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는 명종의 왕자가 있을 수 있기에

역모에 연루될까 직접적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잠정적으로는 모두 하성군을 차기 임금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명종의 죽음]

명종이 병에서 낫자

하성군이 후계라 생각하는 말들은 다시 들어갔지만

이후에도 명종이 다시 위독해지자

명종은 밤중에 대신들을 불러들였는데

영의정 이준경이 관복을 갖추고 대기하다 부름을 받고

명종의 침상으로 들어갔는데

명종은 이미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이준경이 울면서 중전(왕비) 인순왕후에게

대계(후계) 를 정할 것을 청하니

인순왕후는 하교하기를

 

<인순왕후>을축년(이전 명종이 병을 앓을때 하성군이 간호한 해)

에 결정한 대로 하려 한다

 

라고 말했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고

죽어가던 명종은 무슨 말을 하고싶어했지만 하지 못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갸는 안되..)

 

이윽고 명종이 사망했습니다

 

[신데렐라 하성군]

사가에서 살던 왕손 하성군을 데려오려

왕비가 받은 유명(유언)에 의해

관원들은 세자행차에 필요한 의장물을 갖추어

하성군의 집에 가서 하성군을 모시고 오게 했고

 

당시 하성군은 모친상을 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왕이 되라 하자

울면서 굳이 사양했고

이에 신하들이 재촉한 뒤에야 비로소 길을 나섰습니다

 

당시 하성군의 나이는 16세의 어린 나이였고

일반 백성으로 자란 하성군이 갑자기 왕실로 가는 수레에 타자

이에 요행을 바라는 무리들이 그 수레 뒤를 따르며

자신들이 하성군을 도왔다며 자신들의 이름을 기록한 종이를 바치자

 

영의정 이준경은

 

<이준경>예전에 결정된 일인데 신하가 무슨 공이 있단 말인가 ?

 

하고는 태워버리게 했습니다

 

 

조선 명재상 영의정 이준경 , 경기일보

 

이처럼 조선 첫 방계출신 왕의 탄생은 백성들에게도 큰 충격이었고

이후에는 여러 특수한 상황에서 별별 출신 왕들이 탄생하기에

무덤덤해지지만

하여튼 거의 2000년대 한국 드라마 여주급 신데렐라 신분상승이었습니다

 

이미 죽은 선조의 아버지 덕흥군은 왕의 아버지라는 뜻의

대원군에 봉해졌고

덕흥군은 중종과 궁녀 창빈 안씨의 아들로서

중종의 서자였고

 

중종의 손자지만

중종의 서자의 아들 하성군이 왕위에 오름으로서

 

조선 왕조는 직계 혈통이 끊기게 됬고

최초의 방계출신 하성군 , 선조의 즉위는

적장자를 지켜갔던 조선 법통을 어기는 것이었기에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에서 ,

선조의 즉위는 사대부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서자출신 임금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당혹감도 있었고

선조 역시 훗날 무수리(궁녀보다 계급이 낮은 궁녀) 어머니를 둔 영조처럼

즉위한 이후에도 평생 이 출생 콤플렉스가 그의 역린이었습니다

 

단 조선 대신들은 인종 , 명종시기 왕위의 측천무후 개념이었던

문정왕후 윤씨와 그녀의 남동생 윤원형에게 20년동안 크게 시달린 악몽때문에

일부로 미약한 집안에 총명했던 하성군을 밀기도 했고

결국 16살의 소년 하성군은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속에 즉위해

조선 14대왕 선조가 되었습니다

 

[사림 , 선비들의 모임]

선조가 즉위할 당시는

문정왕후 윤씨와 윤원형 남매가 모두 죽었던 상황이고

조정의 신하들은 그들이 죽자 훈구파 , 척신(왕의 친척 신하) 세력들을

관직삭탈하고 서울 밖으로 쫓아내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선조는 방계 , 서자출신임에도 사림 신하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고

 

이에 선조는 즉위 초부터 좋은 정치에 뜻을 품고 학문에 전념하여

퇴계 이황을 구심점으로 스스로

 

'사림 , 선비들의 모임'

 

이라 이름 붙였던

신진세력 사림파들을 적극 기용했고

 

한국 위인이자 조선 사대부 구심점 퇴계 이황

 

당시 훈구파 대신들은 문정왕후와 윤원형 남매 사후부터

구심점 없이 힘을 잃어갔고

 

또 훈구파 대신들의 아들들은 관직에 진출해

사림파가 되어 자연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데

 

굳이 빵빵한 훈구집안 출신의 젊은 신료들도

좆같고 부패한 , 백성들을 수탈하는 이미지의 훈구파에 껴봤자

더이상 이득볼것도 없었기에

 

왕의 인정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퇴계 이황같은 선비들의 제자로 들어가게 됬고

 

(역시 이익에 밝은 훈구였고

결국 이로인해 사림도 이후 분열 ㅋ,,)

 

훈구파들은 나이도 들고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같은

올곧고 청렴한 선비이자 한국사의 위인에 맞설만한

마땅한 구심점 , 네임드도 없어져 자연도태됩니다

 

훈구파들이 힘을 잃자

다시금 조광조나 사화때 화를 입은 신하들이

복권되고 높은 선비 , 충신으로 재평가되었고

선조대부터 다시 사림파 , 선비들의 세상이 펼쳐지게 되었고

이전과 달리 훈구파 세력은 힘을 완전히 잃고 소멸되어

선조대부터는 사실상 사림파 1당체제가 됩니다

 

조선 사림파 계보

 

[선비들을 등용한 선조]

왕이 된 선조는

덕망있는 신하들을 대거 기용하고

과거시험만으론 덕망있는 선비들을 조정에 부르기 어렵다 생각해

덕망있는 사람들을 천거하게 해

이에 조식이나 성혼같은 유학자가 조정에 발탁됩니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조선 성리학자 남명 조식

 

<선조 즉위년 선조의 전교>

청렴한 덕이 있는 사람은 특별히 초계(인재를 뽑아)하여 발탁하고 ,

청백리(청렴한 관리)의 자손을 우선 발탁 , 등용하여 풍속을 격려하라.

유일(초야에 묻힌 명망있는 사람)의 선비를 추천하여 등용하는 것은

새로 정사를 하는 데에 있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중외로 하여금 이름난 사람들을 천거하여 계문(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림)하게 하라.

 

[종계변무]

이외에도 선조는

사림파들을 팍팍 밀어주며

성리학 서적들을 간행하게 하여

조선에 다시금 성리학적 질서가 뿌리내리도록 하였고

 

자신의 콤플렉스였던 왕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계변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합니다

 

종계변무란

 

종계란 '종가의 혈통' ,

변무란 '사리를 따져서 억울함을 밝힌다'

 

라는 뜻으로

당시 조선이 상국으로 모시던 쭝궈 명나라의 법전 대명회전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를 이인임으로 기록하는 오류를 저질렀는데

그저 같은 이씨라는 이유로 착각한 쭝궈런들이었습니다

 

중종때 이계명이 가져온 1509년판 대명회전 , 서울대도서관

 

이것은 조선 개국시절부터 선조시절까지 수정없이

200년동안 이어졌고

오랫동안 한국인과 쭝국인들 사이에서 잊혀진 , 별 대수롭지 않은 오류기도 했지만

조선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태조 이성계가

고려 간신 이인임의 아들이라 것은

유교국가 조선 왕실 정통성에 큰 손상이었고

 

명나라 역시

훗날 조선이 말을 안듣거나 명과 조선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종계오기를 빌미로 조선과 이성계 일가(조선왕실) 의

정통성을 명분삼아 복속시키려 하는

목적도 있었기에

종계변무는 일부로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명이 가지고 있었던 조커 카드였고

 

(예를들면 싸웠는데

집안 건실한 효자 새끼랑 싸우는 것이랑

패륜아 새끼랑 싸우는 것이랑

천지차이이기에

상대를 패륜아새끼로 몰아야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고

원래 전쟁이나 반정은 힘의 논리로 움직이기에

일부로 말같지도 않은 명분도 최대한 끄집어 내려함)

 

방계 , 서자 출신으로서 혈통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했던 선조는

이에 종계변무 문제를 국책사업으로 설정하고

명나라에 적극적으로 사신을 파견해

요청했고

 

사실 별건 아니었고 명나라와 조선과의 관계도 좋았기에

결국 명나라 황제는 OK 싸인을 내리고

쏘리 ~ 하면서 선조가 요청하는대로 바꿔줍니다

 

(근데 곧 명나라 멸망 ㅋ,,)

 

이로 인해 선조는

200년간 이어진 조선-명나라간 외교분쟁 종계변무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고

이 업적으로 인해 종자 시호가 아닌 조선에서 얼마 없는 조자 시호를 받게됩니다

 

세간에선 선조가

임진왜란 극복 공로로 (조선왕실 수호 공로)

선조 시호를 받았다 생각하지만

실제로 조선에선 종계변무 문제 해결을 더 의의있게 쳐주어

선종이 아닌 선조 시호를 올려주게 됬고

 

또한 세조 , 선조 , 인조 , 영조는 모두 혈연적 정통성 콤플렉스가 있는 왕이었기에

질서 유지를 위해 일부로 더 높여주려 종이 아닌 조자 시호를 올려준 감도 있습니다

 

그렇게 조선 최초의 방계 임금 하성군 선조는

비록 출신적 약점은 있었지만

총명하고 사대부 , 선비들과 도탑게 자알 지내는 모습으로

새로운 임금으로서 기대받고 있었고

임진왜란 전까진 청렴했던 이순신 장군을 찾아내 등용하기도 하는 등

나름 유능한 선비임금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라봉봉>선조는 별볼일 없는 방계 왕족에서 형들을 제치고 왕이 될정도였기에

일단 당시 조선왕족중에서 가장 유능한 왕손이었던 것은 맞고

 

사극에서 무조건적으로 찐따 임금으로 나오는 것과 달리

글도 잘쓰고 이순신 장군이나 여러 이름있는 유학자들을 찾아내 등용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던 것도 맞습니다

 

물론 임진왜란이 없었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임진왜란은 조선 뿐만 아닌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 변화 ,

나아가 세계에 큰 영향을 준

한국사의 크나큰 대사건이었고

한국인들은 역사공부할때 임진왜란을 가장 중요한 한국사 사건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사건에서 백성을 버리고 홀로 도망치며

고군분투하는 충신 이순신을 질투한 것때문에

선조는 한국사의 악인중 악인으로 이름이 높아졌고

반대로 그러한 고난과 모함 , 선조의 괴롭힘 속에서도 꿋꿋이 나라와 백성을 위했던 이순신 장군은

한국사의 성인 , 성웅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하여튼 선조를 보면 시대가 악인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완용도 매국노가 아니라

사실 시대에 타협한 유능한 대한제국 관료였다는 궤변에 빠질 수 있기에

무조건적으로 시대만을 탓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역사를 왜곡한채 그에 대한 이미지로만 그 시대를 봐서도 안됩니다

 

조선 14대 국왕 선조는

시작은 좋은 임금이었지만 ,

끝은 좋은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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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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