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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대의 척신정치>

[기묘사화의 여파]

[김안로의 전횡]

[쥐의 시체]

[대윤과 소윤]

<라봉봉>

 

[기묘사화의 여파]

중종은 점차 집권짬밥이 생기자

중종반정을 일으켜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훈구파들의 치마폭에서 벗어나려

조광조와 사림파들을 적극 등용했고

 

그런 와중 조광조와 사림파가 너무 급진적 성향을 보이고

점차 사림파들이 중종의 비호를 믿고 훈구파들을 공격하자

 

빡돈 훈구파들 칼을 뽑아 중종에게 사림파를 조질것을 요구했고

결국 중종 역시 상황이 난처해졌기에

조광조를 죽이고 사림파들을 대숙청하는 기묘사화를 일으킵니다

 

중종이 사림파들을 적극 키웠음에도

당시 훈구파들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새끼들까지

자기네들이랑 친한 놈들 , 어중이 떠중이들 , 잡놈들까지 다 이름을 올리고

공신연금 꿀을 쪼옥 쪼옥 빨아먹고 있었기에

본인들이 ㅄ인것을 알았기에 조용히 있긴 했는데

 

사림파들이 계속해서

훈구파 어중이 떠중이들의 위훈삭제 , 공신삭제를 주장하자

개빡돌아서 다시 힘을 모아서 단결해 중종을 압박해 사림파들을 조진 것이었고

중종 역시 어중이 떠중이 , 훈구 잡놈들 역시 국고를 축내는 ㅄ들이긴 했지만

대신 그만큼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친위세력이기도 했고

계속 사림파들이 중종의 역린(콤플렉스)이었던 중종반정일을 들추면

자신의 집권 정당성에도 큰 타격이 있었기에

조광조를 아꼈음에도 단칼에 죽여버립니다

 

(가운데 중자 시호처럼 ㄹㅇ 훈구나 사림 어느편도 아니었던 왕)

 

그렇게 기묘사화로 정국은 급격히 변화해 사림파는 힘을 잃고

훈구파세력이 다시 집권했고

잠깐 위훈삭제를 했던 것은 다시 복구되어 훈구파들은

공신연금 꿀을 다시 쪼옥쪼옥 츄릅츄릅 빨아먹게 됩니다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 말랑께 우린 한통속이여 ~ , 영화 이끼

 

기묘사화때 드러났듯이

사림파들은 흥분을 잘하거나 현실과 괴리가 있거나 비타협성 , 융통성 부족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기묘사화로 사림파들이 대숙청을 당하고 멸망직전까지 몰려버리며

훈구파들로 조정이 꽉 채워지자

그것 역시 그대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훈구파들은 실익 , 현실정치에는 밝았지만

부패했다는 문제점이 다시 드러났고

이런 훈구파들을 견제했던 사림파들이 몰락하자

조선에는 도학정치 , 군신간의 예의가 다시금 흐트러졌고

훈구파에서 척신세력(왕과 친척인 신하)들이 등장해 국정이 농단됩니다

 

중종 역시 집권기동안

훈구파-사림파-훈구파 이렇게 왔다리 갔다리하는

좆같은 모습을 보였기에

훈구파들은 기묘사화로 재집권하고 나서도

이전처럼 중종을 크게 신임하지 않았고

이에 중종 역시

또다시 훈구파들을 자극했다가

연산군 꼴을 날지 몰랐기에

예전보단 조용히 짜져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안로의 전횡]

훈구파들은 힘이 빠진 중종 다음 왕 , 후계자를 두고

다투게 되는데

 

세자의 친척이었던 권신 김안로가 급부상해

세자의 보호를 명분으로

반대파들을 사소한 것들까지 꼬투리 잡으며 ㅈㄴ게 숙청합니다

 

중종대 간신 김안로

 

훈구조정 내에선 잔인한 성향이 강했던 김안로를 견제하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김안로는 힘이 빠져버린 사림파 , 대간들의 격렬한 지지를 받아

다른 훈구권신들을 조질 수 있었고

 

세자의 지위가 불안정한것 때문에

중종이 조광조 , 남곤에 이어 김안로를 중용하게 됬고

세자의 친척인 김안로는 급부상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림파들도 기묘사화 이후 죽을 맛이었기에

훈구대신 김안로와 손을 잡는 (국공합작 ?)

을 벌이며 다른 훈구대신들을 조지게 됬고

 

그렇게 사림 , 언론기관까지 장악한 훈구파 김안로는

전횡(권력을 쥐고 제 마음대로 함) , 공포의 숙청정치를 휘두릅니다

 

새로운 권력자가 된 김안로는 훈구공신 자제였는데

조광조파와도 엮인 인물이었고

이런 모습때문에 훈구 , 사림파에서 양쪽으로 까인

중종대의 간신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쥐의 시체]

1527년 2월 29일

세자(훗날 인종) 의 생일 즈음에 동궁(세자궁) 북쪽 뜰 은행나무에서

쥐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쥐의 입 , 눈 , 귀는 불로 지져서 나무에 매달려있었고

세자가 돼지띠였는데

쥐는 돼지와 비슷하기에 당시 사람들은

이는 세자를 저주하려 한 것이라 했습니다

 

 

왕실인사를 저주하려 한 것은 대역죄 , 반역에 해당하는 것이었기에

결국 조정은 발칵 뒤집혔는데

당시 세자와 왕위계승전을 벌이던 경빈 박씨와 복성군이 죄인으로 몰려

명백한 증거가 없음에도 둘은 폐서인(평민으로 신분격하) 되고

사약이 내려져 살해당합니다

 

이는 김안로가 조작 , 기획한 것이었고

김안로는 중종의 서자지만 중종의 아들까지 살해할 정도로

권신이 되어 지 마음에 안들면 죽여버리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를 펼쳤습니다

 

당시 김안로는

당시 조정에서 일하고 있었던

조선의 천재 성리학자 퇴계 이황의 능력을 보고

이황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도 했지만

대쪽같은 성품이었던 이황은 김안로와 엮이려 하지 않았고

결국 이에 김안로는 대놓고 퇴계 이황을 미워해

모함하기도 했습니다

 

고고한 선비이자 한국 위인 퇴계 이황

 

하여튼 기묘사화 이후 잠시 훈구파들의 눈치를 보며 한발 물러나있었지만

결국 김안로의 횡포에 지친 중종은

다시 김안로를 조지려 했고

김안로의 아들 혼인날에 김안로를 기습 체포해 유배보낸뒤 사약을 내려 죽입니다

 

[대윤과 소윤]

김안로 실각 이후에도

왕위 계승다툼 , 당파싸움은 계속되

 

이번엔 중종의 두명의 부인이 둘다 윤씨였기에

두 부인에게서 낳은 왕자들 세력끼리

대윤(인종파) , 소윤(명종파)으로 나뉘게 됬고

중종 시기는 그렇게 백성들은 나름 편안했던 시기지만

정치권은 온갖 정국 , 권력자들이 자주 교체되는 등

척신정치 , 당파싸움과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대윤과 소윤

 

계속 파벌싸움을 만든 원인제공을 하기도 했던

말년의 중종은

그에 대한 업보인지

자신의 아들들까지 대윤과 소윤으로 파가 갈려버리자

장래를 괴로워하다가

1544년(중종 39년) 57세를 일기로 창경궁에서 사망합니다

 

중종은 조선에서 오래 재위한 왕이고

긴 재위기간동안 너무 많은 세력들을

키워주고 밟고 견제를 반복한 왕이었습니다

 

사실 중종이나 숙종 이런 시기가

역사를 읽거나 쓰는 입장에서도 캐 짜증나는 시기이기도 한데

여러 권신들이 등장하고 막 사화니 환국이니 별별 ㅈㄹㅈㄹ들이 막 일어나는데

막상 까보면 실속이 없는 시기이자

왕권강화를 위해

왕들이 신하들의 분열을 조장한 감도 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나름 그냥저냥 살았지만

무의미한 당파싸움 시기기도 해서

그럴싸한 권신들은 막 등장하고 파들이 복잡하게 갈려서

되게 읽기도 , 쓰기도 복잡하지만

 

실상을 보면

그냥 왕이 키우고 밟은 , 껌처럼 씹다 단물빠지자 뱉은 권신 , 세력들일 뿐

영양가 없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라봉봉>권력강화를 위해 신하들을 분열 , 조지는 것은 여러 있어왔지만

왕이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하고 능력이 있으면

신하들이 똑똑한 왕에게 감히 개길수가 없기에

권력은 자연히 강화되는것이라 생각되고

 

왕이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해서 강화시키는 권력이 권력유지의 좋은 예이고

이렇게 집단을 분열시키며 강화시키는 권력은 자폐적 권력유지로서 나쁜 예라 생각합니다

 

역사상 항상 양 극단세력이 다퉈와서

이에 양쪽 성향을 가지고 있는 중도파들은 항상 좋은 입장에 서기도 했지만

중종이 자신은 중립인 척 하면서

신하들의 분열 , 당파싸움으로 눈을 돌리며 왕권을 강화시키는 것은

참 악질인 행동이라고 생각되며

중도파들 역시 이런 자폐적 중도라면

역시 한쪽 사상으로 치우친 자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조선은 세종대왕 이후부터 외세에 대해 오랜 평화기를 맞은 상태였기에

신하들이나 왕이 마음껏 당파싸움에 집중(?) 해도

당시 백성들은 이런 당파싸움의 여파에서 별다른 타격은 없었지만

점차 이런 소모적인 당파싸움으로 조선의 전체적 국력은 소실되가고 있었고

점차 외세가 넘볼 수준까지 약화됩니다

 

역사에서도 ㅈㄴ 븅신같은 나라 , 기업 지도자들은

이짓거리를 하다가 폭망한 경우가 참 많고

이런 곳은 거를 수 없다면 조용히 지내고

거를 수 있다면 , 지도자가 이런 집단은 걸러야 한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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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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