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폭정>
[빡대가리 세자]
[폭군 연산군]
[장녹수]
[임사홍]
[갑자사화]
[어째서 내 어머니를 죽였느냐]
[금표]
[사치와 탕진]
[채홍사]
[흥청망청]
[중종반정]
[연산군의 마지막 양심]
<라봉봉>
[빡대가리 세자]
한국사를 대표하는 폭군 연산군 ,
그는 불행한 가정사속에 성장한 인물이었는데
처음에 원자(왕의 맏아들 , 보통 세자가 됨) 연산군을 낳은
왕비 윤씨는 얼굴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성격이 모질고 질투해
악행이 날로 심했기에
성종은 할 수 없이 왕비를 폐하고 궐밖으로 쫓아냈고
폐비 윤씨의 성격도 장난이 아니라서
성종은 폐비 윤씨라면 치를 떨면서 윤씨가 언급만 되어도
버럭 짜증을 냈고
이후 폐비 윤씨는 친정집에서 지내다 성종이 보낸 사약을 받고 사망합니다
당시 포대기속에 있던 연산군이었는데
성종은 일찍 그가 어머니를 여읜 것을 불쌍히 여기고 ,
또한 그가 적장자이기 때문에
연산군은 그대로 왕세자로 세웠습니다
연산군은 어머니를 닮아 잘생긴 미남왕이었지만
그럼에도 시기와 모진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고
성격도 지혜롭지 못해
성종은 지혜로운 선비들을 뽑아 세자를 지극하게 교육시키게 합니다
그럼에도 호방한 성향이 강하고 빡대가리였던 연산군은
공부를 잘 하지 못했고
하루는 성종이 시험삼아
연산군에게 나라의 사무일을 판단 시켜봤는데
연산군은 혼암하여(사리에 어두워) 분간하지 못했기에
성종은 연산군을 꾸짖기를
<성종>생각해보라 네가 어떤 몸인가 ,
어찌 다른 왕자들과 같이
노는데만 힘을 쓰고
학문에는 뜻이 없어
이같이 어리석고 어둡느냐
이 때문에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을 뵙기를 꺼려
불러도 아프다 핑계하고 가지 않은 적이 많았고
하루는 성종이 왕후와 술한잔 하다가
세자 연산군을 불렀는데
연산군은 병을 핑계로 성종이 계속 재촉해도 끝내 오지 않았고
이에 성종이 나인을 보내서 살피게 했는데
연산군은 병이 없으면서도
나인에게
<연산군>만약 병이 없다고 아뢰면
뒷날 너를 마땅히 죽이겠다
하니
나인은 두려워서 성종에게
연산군은 병이 있다고 아룄습니다 (정신병 ㅇㅈ)
성종은 속으로 알고는 마음을 언짢게 여기며
그만두었었고
이때부터 세자를 폐하고 싶었지만
아직 세자가 어리고 다른 적자가 없었고
또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기에
일찍 어머니를 잃고 성장한 연산군이
의지할 곳이 없음을 알고 불쌍히 여겨서 차마 폐하지 못했습니다
[폭군 연산군]
성종이 승하하자
왕위를 이어 조선 10대왕이 된 연산군은 상중에서도
서러워 하는 빛이 없었고
연산군은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이
아버지 성종과 관련이 있는것 때문에
아버지 성종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었기에
성종이 아끼며 기르던 후원의 순록을 활로 쏘아 죽여
그 고기를 먹으며 놀이 즐기기를 평소처럼 했습니다
연산군 초기때는
훌륭한 부왕 성종이 키워둔 신하 , 의로운 선비들이 건재해있었기에
조정이 아직 튼튼해서
문란하지는 않았는데
연산군의 무오사화로 선비들이 도륙당한 이후부터는
대간 , 선비들이 바른말 하기를 꺼리며 극도로 위축되었고
점차 연산군의 뜻이 방자해져서
엄한 형벌로 아랫사람들을 억제하자
선비들의 기개가 날로 꺾여서
감히 바른말 , 격한 주장 하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연산군은 더욱 꺼릴 것이 없어
멋대로 방탕해집니다
[장녹수]
이후부터 연산군은 장녹수라는 여인에게 빠졌는데
장녹수는 양반 아버지 , 첩 어머니에서 태어난
기생 출신 인물이었고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
노래가 들을만 했습니다
장녹수는 30대이자
시집을 2번갔던 유부녀이자 아이까지 있었던 인물인데
연산군의 눈에 띄어 궁에 들어와
후궁이 됩니다
그녀의 얼굴은 보통을 넘지는 못했지만
남모르는 스킬과 요사스러운 아양이 견줄 사람이 없었고
어머니에 대한 결핍이 있었던 연산군의 심리를 파고든
연산군의 연상녀 장녹수는
애정결핍이었던 조선 국왕 연산군을 아기나 어린아이 취급하며
때리고 꼬집고 조롱하며 연산군을 푹빠지게 합니다
(SM 취향 + 노련미 ㄷㄷ)
좀 ㅄ같지만
둘은 껌딱지처럼 붙어다녔기에
연산군이 등장하는 사극에서는
눈을 미친사람처럼 크게 뜨고
매일같이 연회를 즐기는 또라이왕 연산군 옆에 달라붙어
알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왕을 어린아이 취급하며 달래주는
장녹수가 나옵니다
하여튼 연산군은 점차 장녹수에게 빠져
방탕이 날로 심해지고 미쳐갔고
성종의 어머니이자 연산군의 할머니 인수대비가 걱정이 되어
연산군을 누차 타일렀지만
도리어 연산군은 인수대비를 원망하게 됬습니다
연산군이 자신의 말을 안듣자 인수대비는
이에 몰래 대신들에게 말해
대신들에게 연산군에게 간절히 간하게 했고
이에 항상 조정에 구애되
하고싶은 대로 못하는 것을 불만스럽게 여긴 연산군은 더욱 분해했습니다
[임사홍]
이런 상황에서
성종때 폐비윤씨 폐비에 반대하다 유배당해 조정에서 쫓겨난 임사홍은
오랫동안 이를 갈다가
연산군의 도움으로 다시 복권했는데
임사홍은 폐비 윤씨에 대한 진실을 연산군에게 알려서
갑자사화를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임사홍은 자신을 핍박했던
사대부들을 숙청하고 부관참시하고
연산군의 측근으로서 권세를 휘두릅니다
[어째서 내 어머니를 죽였느냐]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을 이유삼아
갑자사화를 일으켜
마음에 안드는 신하들을 훈구 , 사림파 할것없이 모두 죽여버렸고
대신 , 대간(언론인) , 시종들까지 거의 다 죽이거나
귀양보내서 조정이 텅 비어버렸고
폐비한 일을 원망해 성종의 후궁은 매에 맞아 죽고
이때 연산군은 후궁의 아들들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칼을 꽂은 채 대왕대비전으로 끌고가서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를 죽이는데 동참했던
자신의 할머니이자 폐비 윤씨의 시어머니 인수대비를 위협하며
<연산군>대비는 어째서 내 어머니를 죽였느냐
하고 할머니를 꾸짖으며 욕했고
손자의 폭력적인 행동과 폭언에 충격을 받은 인수대비는
근심과 두려움으로 병나 한달만에 사망합니다
그럼에도 상중의 연산군은
풍악을 그치지 않았고
갑자사화 ,
피의 대숙청으로
모든 반대세력들을 쓸어버린 연산군은
드디어 옛 제도들을 고쳤는데
언론기관인 홍문관 , 사간원을 없애버려
언로 , 간언을 막아버렸고
말이 조금만 뜻에 거슬리면
엮어서 죄를 만들어 죽여버렸기에
한번만 잘못해도 부자 , 형제가 잇달아 잡혀 살육되고
일가가 화를 입었습니다
이에 익명으로 글을 올린 사람들이나
다른 죄로 잡힌 자들이 서로 연루되며
감옥이 가득찼는데
계속 고문해서 독한 고초가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왕 성종때 조선 법전 경국대전이 반포되어
법치국가화된 조선은
다시 연산군때는 중세시대로 퇴보해버려서
매일같이 사대부들도 연산군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줘터지며 매를 맞았고
온갖 관청 , 지방 관공서에서도
정치를 비방하는 자가 있나 없나를 적어 아뢰게 해서
비록 부자지간이어도 관에 보고한 뒤에라야
서로 만나게 하므로
사람들은 서로 손을 저어 말을 막았고
사람들마다 스스로 위태롭게 여겨서
마주쳐도 길에서 눈짓만 했습니다
[금표]
연산군은 도성 사방 백리를 한계로 모두 금표(출입금지표 , 민간인통제구역) 를 세워
그 안의 주현과 군읍을 폐지하고
주민들을 철거시켜 비운 뒤 사냥터로 삼고
만약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당장 베어 조리돌림했고
서울 근처 지역 수백리를 한없는 풀밭으로 만들어
금수(짐승) 를 기르는 마당으로 삼았고
사방의 진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모아들여 키우고
매와 개를 무수히 기르므로 먹이 비용은 엄청났습니다
이에 원래 금표지역에 살던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사망해
길에 즐비했습니다
[사치와 탕진]
또 연산군은
크게 공사를 일으켜 사방의 장인들을 모으고
백성들을 징발해 궁실을 넓히고 정자를 더 지어
강가에 벌려놓았고
높은 곳은 깎고 낮은 곳은 메워
큰 길을 이리저리 내고 밤낮으로 시녀들과 오가며 놀았습니다
계속해서 극도로 웅장하고 사치스러운 건물들을 지어대는 연산군이었고
건설을 감독하는 벼슬아치들이 인부들을 독촉하기를
가혹하고 급하게해서 때리는 매가 세찼으며
조금만 일정에 미치지 못하면 반드시 물건을 징수하므로
백성들의 원망과 신음이 길에 달았습니다
나라가 탕진되어가자
지방에서는 고을들이 거의 비게 됬고
서울에서는 건설에 동원된 자들은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죽는자가 태반이었고
더러는 굶주리고 지친 나머지
길가에 병들어 쓰러진 자가 아직 숨이 붙어있음에도
그 근방에 사는 사람들이 시체를 버려뒀다는 죄를 입을까 겁내서
서로 끌어다 버리므로 죽지 않는자가 없었습니다
[채홍사]
간신들은 연산군에 달라붙어
아첨을 하며 연산군에게 미녀들을 사방으로 구해 바치니
연산군이 매혹되어 벼슬을 내려주었습니다
임사홍 등 연산군의 총애를 받는 간신들은
연산군에게 조선팔도의 미녀를 바치는 채홍사가 되어
전국 각지의 미녀들을 서울로 뽑아간다거나
사방에 이르는 곳마다 소란을 피우며
수령을 업신여기고 백성을 못살게 굴며
기세가 넘쳤지만
아무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빌며 사양하고 움츠려 피할 뿐이었습니다
[흥청망청]
연산군은
채홍사들이 데려온 전국의 미녀들 중
가장 예쁘거나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을 뽑아
'흥청' 이라 이름붙였고
사람들은 이에 흥청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며
흥청은
'흥청망청'
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의자왕의 삼천궁녀는 실제 백제가 삼천명의 궁녀를 유지할 경제력 , 인구가 없었기에
많은 궁녀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나
연산군은 '진짜' 였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연산군이
시녀 , 공사노비 , 평민의 딸을 널리 뽑아들이며
사자들을 팔도에 보내 빠짐없이 여자들을 뽑아들여
1만명에 이르렀다하고
흥청의 규모는 2000명에 이르렀고
미친 연산군은
흥청 , 이 여인들도 급을 나눠서
1급들은 흥청 , 2급들은 운평이라 하며
노래와 춤을 주로 담당한 흥청들과 즐기다
잠자리는 운평이랑 주로 자게 됩니다
(운평 , 계평 , 채홍 , 속홍 , 부화 , 흡려 등 여러 호칭이 있었고
재주가 뛰어나면 운평 , 재주와 미모가 뛰어나면 흥청)
양갓집 규수나 정상적이고 수준높은 다재다능한 여인들은
당연 이런 기생판에 나오는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연산군도 그런 상류 여성들을 끌고가는 것은 무리였고
흥청들에겐 모두 집이 제공되고
가족의 납세와 노역도 면제됬기에
대게 평민 , 천민 출신 여성으로 이뤄진
흥청은 얼굴이 예쁘장하면 무조건 뽑혔고
흥청들은 운평으로 강등당하지 않고
여인들은 흥청이 되려
연산군의 귀여움과 사랑을 받기위해
ㅈㄴ게 화장하고
노래와 춤을 연습하며 노오오오력 합니다
학자와 사대부들을 우습게 여긴 연산군은
세종대왕이 학문연구기관으로 만들어놓은 건물
집현전을 흥청들의 숙소 , 기생방 , 유흥가로 바꿔버리고
성균관을 폐쇄한 뒤 학생들을 모두 몰아낸 후 그곳을 놀당 , 놀이터로 만듭니다
그렇게 조선에 체계적인 아이돌 시스템과 놀이터까지 만들어버린
소속사사장 아니 조선 국왕 연산군은
자신이 만들어낸 동물의 왕국 , 사이비 영화판속에 빠지며
흥청들을 거느리고 금표 안에 달려나가 사냥하거나
음주가무하고 주색에 빠지게 됩니다
대비도 이런 연산군을 두려워 감히 어찌하지 못했고
억지로 잔치에 참석은 했지만
연회가 끝나면 늘 한숨쉬며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산군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이
부도덕함을 알고 내심 부끄러워해서
사람들을 혼란시켜 자신처럼 물들이려 하려 했고
(잘 보면 연산군도 흥과 끼가 넘치는 새끼기도 한데
ㄹㅇ 연예인 해야할 새끼가 왕이 된 케이스)
사대부들의 제사를 단축했고 효행 있는 사람들은
괴이하다며 죽였고
형제들을 핍박해서 그 첩을 서로 간통하게 하니
나라에 도덕이 끊어지고 소멸되었습니다
[중종반정]
그럼에도 임사홍 등 간사하고 아첨하는 군소 무리들이
세력을 믿고 스스로 방자하므로
당시 대신의 반열에 있는 자들은 방관할 뿐 어찌 할 수 없었고
총애를 탐내며 화를 두려워함이 날로 더해
사직을 보전할 계책을 도모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때 박원종과 성희안은
같은 마을에 살았는데
서로 만나 시사를 논할때마다
'이제 정령(법령)이 혼암 가혹하여
백성이 도탄에 빠졌으니
종묘 사직이 장차 전복될 것인데
나라 대신들이 한갓 교령(임금 명령) 을 승순(순종) 하기에 겨를이 없을 뿐
한 사람도 안정시킬 계책을 도모하는 자가 없다
우리들은 함께 성종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차마 앉아서 보고만 있겠는가
천명과 인심을 보건대 이미 촉망된 바 있거늘
어찌 추대하여 사직을 바로 잡지 않을 수 있으랴'
하고는 드디어 큰 계책을 정했는데
모사꾼 (꾀를 내는 사람) 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폭군을 타도할 정의의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고 (디지몬 어드벤쳐인줄 ㅋ,,)
평소 연산군에 불만이 있었던
이조판서 유순정도 참여하겠다 했고
여러 대신들이 빠이야를 외치다가
군사들을 모을 것을 약속했고
이윽고
1506년(연산군 12년) 9월 1일 저녁
반정군은 모두 훈련원에 모였는데
두려워 망설이던 사람들도 결국 따랐습니다
또 예전에 예종시절 충신 남이장군을 죽인
조선 간신의 대명사 유자광은
연산군에 붙어먹으며 권세를 누렸지만
연산군이 계속해서 집권내내 겁주고 달래는 식으로
유자광을 길들이려 했기에
불안했던 유자광은
지모와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결국 반정세력에 회유되
좋은새끼 , 나쁜새끼 , 이상한 새끼들까지 반연산군 기조로 모두 합세해
폭군을 타도하게 되는 중종반정이 시작됩니다
용사들은 연산군의 수족들인
임사홍 등을 철퇴로 쳐 죽이거나 베었고
이를 들은 사람들은 기약도 없이 모여들어 잠깐동안 운집하자
반정군은 즉시 모든 장수들을 편성해
군마를 이끌고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창덕궁을 포위했으니
시간은 벌써 3경(새벽 1시~3시) 이었습니다
승지(왕의 비서) 들이 변을 듣고 다급하게 들어가
연산군에게 아뢰니
연산군은 놀라 뛰어나와 승지의 손을 잡고
턱이 떨려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모시던 사람들은 바깥 동정을 살핀다며 핑계학
점차 흩어져 모두 수채구멍으로 달아났고
더러는 잘못해서 뒷간에 빠지는 자도 있었습니다
중종반정군의 박원종은 내시를 시켜서
힘센 사람 두어명을 거느리고 연산군에게 가서
옥새를 내놓고 또 동궁에 옮길 것을 청했으며
여러 대신들을 베었습니다
동틀 무렵 궁문이 열리자
박원종 등이 경복궁에 나아가 대비에게 아뢰길
<박원종>주상이 크게 군도(왕의 도리) 를 잃어
종묘를 맡을 수 없고
천명과 인심이 이미 진성대군(중종) 에게 돌아갔으므로
모든 신하들이 의지(왕비의 명령)를 받들어
진성대군을 맞아 대통을 잇고자 하니
청컨데 성명을 내리소서
이에 대비는 전교하기를
<대비>나라의 사세가 이에 이르렀으니
사직을 위한 계책이 부득이 하다
경 등이 아뢴대로 따르리라
했고
결국 진성대군은 반정군의 추대에
재삼 거절한뒤 허락해 경복궁에 들어가 즉위했고
길에서 구경하던 백성들이 (폭군의 물러남에) 눈물을 흘리며
모두들 말하기를
<백성들>성주(성스러운 주인) 를 만났으니
고화(기름과 불 ,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했습니다
그렇게 중종반정은 성공해서
조선 11대왕 중종이 즉위했고
전왕은 폐위되어
연산군으로 강등되어 교동에 유배되었고
왕비 신씨와 세자 , 모든 왕자들도 유배됬고
연산군의 후궁과 장녹수 등은 군기시(무기 제조 관청) 앞에서 베니
백성들이 다투어 기왓장과 돌멩이를 그들의 생식기에 던지며
<백성들>나라의 고혈이 모두 여기로 빨려들어갔다 !
하고 외쳤고
잠깐 사이에 돌덩이들이 쌓여 돌무덤이 되버렸습니다
한때 연산군은
흥청을 뽑아두며 기필코 1만명을 채우려 했는데
교동으로 유배되어 가시 울타리 안에 거처하게 되자
백성들이 연산군을 뒤쫓아 원망하며
입으로 불리는 속된 노래 , 속요를 지어 부르기를
<백성들의 조롱노래>
일만 흥청 어디두고
석양하늘에 뉘를 좇아 가는고
두어라 이곳 또한 가시(각시=가시 언어유희) 의 집이니
날 새우기엔 무방하고 또 조용하지요
[연산군의 마지막 양심]
의외로 미친 폭군왕과 달리
연산군의 동갑내기 왕비였던 신씨는 극도의 정상인이었는데
폐비된 신씨는 어진 덕이있고 화평하고 온순해서
아랫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만졌고
궁녀와 후궁들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할 정도로 인품이 훌륭했고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 마저도
너무 착해빠진 중전이
너무 답답하다며 한숨을 내지을 정도였습니다
이에 연산군도 유독 왕비 신씨만은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연산군이 가장 총애하는 여인으로
흔히 장녹수를 떠올리지만
비유하자면 실제로 장녹수는 일종의 에로배우 감독 연산군이
밖에서도 다 벗기고 막대하는 욕받이 겸 막장 간판 배우였고
연산군은
어찌보면 자신의 정적들에게 왕비 신씨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더 악역을 자처하고
악녀라는 화살과 어그로를 장녹수라는 간판캐릭터에 유도시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과장된 해석은 아닌게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패전한 뒤
일본 지배층들은 자신들이 점령지에서 행동한것처럼
점령자 미군들이 자신의 딸 , 아내들을 겁탈당할까 두려워
일본에 주둔한 미군들로부터 일본 부유층 , 양갓집 처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로 정부 주도로
'성의 방파제'
를 만들어
정부 주도로 일본의 하류층 여인들 , 창녀들을 풀어서 위안소를 만들어
미군들에게 성접대한 쓰레기 전력이 있기에
쓰레기 임금 연산군 역시 정적들에게 첫사랑을 보호하려
장녹수라는 자극적인 창녀캐릭터로 어그로를 끈 것일지도 모릅니다
연산군이 폐위되자 더불어 폐비가 된 왕비 신씨는
평소 매번 연산군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란 , 방종함을 볼때마다
밤낮으로 근심했고
때론 울며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하게 연산군을 말렸는데
연산군은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씨에게 화내지는 않았습니다
왕비 신씨는
갑자사화가 있던 날에도
연산군이 성종의 후궁들을 때려 죽인 뒤
장검을 뽑아든 채 대비전으로 쳐들어가자
울면서 연산군의 팔을 잡고 말렸는데
그녀는 그날 연산군을 저지한 유일한 인물이었고
연산군의 성격상 당장 베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연산군은 말없이 칼을 꽂고 인수대비전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왕비 신씨는 갑자사화에서 유일하게 무탈하게 살아남은 인물입니다
연산군이 폐위되자 덩달아 폐비된 왕비 신씨는
울부짖으며 연산군을 모시게 해달라고
기필코 연산군의 유배지로 따라가려 했지만
되지 않았고 사저로 보내집니다
중종반정에 참여한 신하들도
당시 조정에서 유일한 정상인이었던 폐비 신씨만은
ㄹㅇ 어진 인물이라 여기며 예우했고
(연산군도 , 중종도 인정한 유일한 착한 여인)
장녹수를 끼고 놀다 폐위된 후
유배지에서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연산군은
신씨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중전이 보고 싶다'
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합니다
중종세력에까지 까방권을 받았던
왕비 신씨는 폐비된 이후에도 큰 모욕을 당하지 않고
편안히 살며 여생을 마쳤고
살아있을때 중종에게 자기가 죽으면 연산군 옆에
묻어달라 요청했습니다
모든 신하들을 숙청시키는 미친놈이고 여색을 밝히던 연산군이었지만
늘 왕비 신씨만을 볼때마다는
분노조절잘해가 되며
하던 악행을 잠깐이나마 멈췄던 연산군이었기에
왕비 신씨는 연산군의 유일한 브레이크였고 (의외로 장녹수가 아님)
연산군의 아주 작은 양심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무슨 나쁜남자 드라마에 나올법한 천사여인 그런 느낌,,)
<라봉봉>연산군 이놈새끼는 백성들을 매우 괴롭힌
한국사를 대표하는 폭군에 암군이었는데
또 연산군의 기록상의 얼굴은
역시 빡대가리지만 초미녀였던 어머니 폐비 윤씨를 그대로 닮아
키 큰 존잘남이었고
기록에서 연산군의 발언들도
뭔가 감수성과 동정심을 유발하는
주옥같은 상처받은 폭군의 명대사들이 많은데
연산군은 뭔가 타고난 끼나 소울같은게 있어서
미친놈이지만 갑자기 한없이 불쌍한느낌도 드는 인물이라
왕이 아닌 연예인을 했어야할 자라는 생각도 들고
성종도 빡대가리 세자새끼를 세자에서 갈아버릴까 생각하다가도
어린 자식 연산군의 소울에 홀려 뭔가 ㅈㄴ 불쌍해서 냅둔 케이스 같습니다
연산군은 왕이 되고나서도
자신의 불우한 성장스토리 ,
여러 여인들과의 미묘한 관계 ,
이야기들을 극적인 상황들을 연출하며 즐긴 인물같고
이에 연산군시대는 워낙 극적인 기록이 많고
뭔가 이시대는 역사라기보다 한편의 잘 짜여진
사극 세트판같은 느낌이 강해서
실제로 연산군의 폭정시대는
온갖 거대한 배경과 굵직하고 잔인한 사건들 ,
배우들이 열연하기도 딱좋은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있기에
유독 사극에서 엄청나게 많이 이야기되는 케이스입니다
연산군은
절제없이 하고싶은것을 다하려는 마음 ,
마음대로 하는 폭군의 모습 , 주지육림 , 삼천궁녀 등
대중들이 잘못된 것이라 여기고 싫어하지만
은근 속으론 쾌락적인 천박한 판타지를 생성해내는 그런것을
아주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던
조선의 광대왕이였다고도 생각됩니다
괜히 광해군의 광기가 나오는 영화
'왕의 남자' 가 동성애나 여러 천박하고 속된 이야기를 다룸에도
천만관객을 돌파한게 아니라 생각되고
단지 그런 금단의 쾌락적인 것들을
생각이나 창작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실제로 현실로 구현해버린것이 문제였고
그의 악행은 말할것도 없지만
나름 기존과 최대한 다른 방식으로
연산군을 이야기해보려 해봤습니다
연산군이 폐위되고 승리한 중종세력이 연산군을 폄훼하려
더 나쁘게 쓴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정도로
폭군이었고
더 자세한 기록들을 보면
중종의 조작을 감안하더라도
인간이 아닌거같다싶은 사악한 기록이 많기에
한국사의 대표적인 악인 , 폭군으로 이야기되는 인물입니다
요부 장녹수와의 이상야릇한 미묘한 이야기 ,
연산군의 숨겨진 여인인 왕비 신씨와의 좋았던 금슬 등
여러 이야기가 있는 인물이고
세종대왕-수양대군(세조) 관계나
연산군-왕비 신씨 관계처럼
무조건적으로 미친놈이고 눈에 뵈는게 없이 다 죽일거 악인 , 폭군들도
놀랍게도 유독 한명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그런게 있는데
실제로 저는 말못하는 동물들도 사람을 가리는데
정신병자들은 마음이 아픈게 크게 밖으로 드러나는 사람이고
자기 자신의 상황이나 현실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뿐
이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에 대해 다르게 대한다고 생각됩니다
참 인생에 존경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것 역시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특히나 연산군과 정반대의 여성이었던 왕비 신씨는
뭐 착한역 , 나쁜역하는 그런게 아닌
참되게 착한 여성이자
미친 연산군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여인이었기에
그녀가 만약 더욱 현명한 여인이었다면 ,
연산군의 불륜과 폭정을 바로잡고 역사는 또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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