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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의 즉위>

[급작스러운 예종의 죽음]

[블루칩 자산군]

[훈구파들의 결탁]

[수렴청정]

[빵빵했던 어린왕 성종]

[총명한 어린왕]

<라봉봉>

 

[급작스러운 예종의 죽음]

조선 전기 유학적 소양을 갖춘 명군으로는

세종대왕 이외에는 바로 조선 9대왕 성종이 있습니다

완성할 , 이룰 성자가 들어간 시호는 아무 임금에게나 주어지는 시호가 아니었으며

성종의 뛰어난 모습을 의미합니다

 

조선 성종 상상도

 

조선 8대왕 예종이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정치를 하다가

발에 종기가 난 것으로 (족질)

20세의 한창때 나이로 급사했는데

 

당시 아무도 예종의 죽음을 예상치 못했기에

급작스러운 왕의 죽음에 조선 왕실과 대신들은 혼란에 빠졌고

 

당시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나이가 겨우 4살이었기에

결국 예종의 어머니이자 세조의 부인이자 왕실 할머니였던

대비 정희왕후는 

중신들을 불러놓고 후사를 논의합니다

 

계유정난때 망설이던 남편 수양대군에게 직접 갑옷을 입혀준 조선 철의여인 정희왕후 , SBS 대하사극 왕과 나 (2007~2008) The King and I

 

<정희왕후>누가 주상(임금)할 만한 사람인가 ?

 

이에 권신 신숙주 등은

 

<신숙주>이 일은 신 등이 감히 의논할 바가 아닙니다

교지(임금의 명령)를 듣기 원합니다

 

악마의 재능 , 썩어버린 천재였던 훈구대신 신숙주

 

이에 대비는

 

<정희왕후>원자(예종의 아들)는 바야흐로 포대기 속에 있고

월산군(예종의 형 의경세자의 첫째아들)은 본디부터 질병이 있다

자산군(예종의 형 의경세자의 둘째아들) 은 비록 나기는 어리지마는

세조께서 매양 그의 기상과 도량을 일컬으면서

태조에게 견주기까지 하였으니

그로 하여금 주상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

 

하니

신숙주 등이 대답하기를

 

<신숙주>진실로 마땅합니다

 

했고

의논이 마침내 정해지자

대비가 목이 메어 울면서 슬픔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비 정희왕후는

이전에 요절한 예종의 형 의경세자의

둘째아들 자을산군(자산군)을 지목해서

자을산군은 13세의 나이로 조선 9대왕 성종이 됩니다

 

[블루칩 자산군]

성종은 자산군(자을산군) 시절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의경세자가 요절하며

어머니 세자빈 한씨와 함께 궁밖으로 나가살았고

 

할아버지 세조는 세자빈 한씨일가를 아끼며

그들에게 궁궐에서 살아도 좋다했지만

한씨는 사저에서 물러 앉습니다

 

어린나이에도 궁궐에서 나와 곤궁한 생활을 하던

왕손 자산군은

곤궁한 생활에 대해서도 불평불만이 없고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학문을 좋아하고 총명했던 자산군 , SBS 대하사극 왕과 나 (2007~2008) The King and I

 

한명회와 신숙주는 이에 첫째 월산군이 아닌

둘째 자산군이 더 낫다 생각하고

 

특히 기회와 이익에 매우 밝았던 정치 9단이었던 영의정 한명회는

앞으로 자산군 코인이 떡상할 것을 예감하고 자신의 딸을

10살의 블루칩(우량주) 자산군에게 결혼시킵니다 (권력과 돈에 미친 한명회 ㅋㅋ)

 

ㅈㄴ 야비하고 특이한 모략가형 권신 캐릭터라 사극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인 한명회

 

자산군 코인으로 가즈아 !!!!!

 

[훈구파들의 결탁]

그렇게 성종은 이전 일찍이 세조의 오른팔이었던

권신 영의정 한명회의 딸과 결혼했고

한명회는 돈은 오지게 밝힌 부패한 훈구대신이었지만

왕권에는 관심이 없었던 친왕파적 인물이었기에

 

대비 정희왕후는 글자 , 한자를 잘 몰라서

권신 한명회 , 신숙주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결국 정희왕후 역시 자산군 코인에 탑승하게 되었고

 

한명회와 신숙주는 늙으막에서도

막후에서 왕을 조종하며

열심히 권력을 누리며 편안한 노후를 즐겨야 했기에

이런 세 권력자의 이해관계 , 아다리가 착착 맞아

예종의 아들은 제껴지고 멍청한 바보 왕자로 몰렸고 (ㅋ,,)

결국 자산군이 왕위를 이어 성종이 됩니다

 

물론 성종의 즉위는

이렇게 전부 훈구파 인사들의 합작품이었지만

 

그럼에도 성종이 어린시절부터 어진 모습으로

왕실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분명했고

떡잎의 중요성이나

우리 속담에도

 

'어른들이 보는 눈이 틀림없다'

 

는 말이 있듯이

본인이 그만큼 뛰어났기에

그들이 나름 부패한 어른들일지언정

어린 성종에게 다음 조선의

미래를 맡긴 것이었습니다

 

(뭔가 괴물들에게 키워진 아이 영화 '화이' 나 만화 주인공 포스)

 

하여튼 당시 권력에 미친 한명회도 대단한게

예종과 성종 두 왕의 장인이 되며

권력의 자리를 이어가며 부귀영화를 누리되

또 왕권은 탐하지 않는 기묘한 모습을 보이며

조선왕실과 한솥밥을 먹는 왕실 가족화되었고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되고

조선 훈구파들의 최절정기 , 최전성기가 시작됩니다

 

한명회가 자신의 호 압구를 따서 지은 압구정 정자터 ,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근처의 압구정 옛터

 

[수렴청정]

성종은 즉위할때

13세라는 어린 나이였기에

대비 정희왕후는 대왕대비 , 현재 왕의 할머니가 되어

조선 역사상 최초로 수렴청정 ,

어린 왕이 나올때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국왕를 대신해

나랏일을 결정하는 정치가 시작됩니다

 

옛날 사극에서 왕 뒤에서 발을 내린 할머니가

실루엣속에서 대신들에게 엣헴엣헴하며 스윽 스윽 명령하는 그거 !!

'수렴청정 !!' 이

이때 조선 최초로 시작됩니다

 

수렴청정

 

[빵빵했던 어린왕 성종]

참고로 단종이 ㅈㄴ 불쌍했던게

단종의 아버지 문종이 죽었을때는

문종의 어머니이자 단종의 할머니인 세종대왕비 소헌왕후는 이미 사망한지 오래였고

단종의 어머니까지 단종을 낳은 다음날 산욕열로 죽어

왕실엔 단종을 수렴청정해줄만한 어른이 한명도 없어서

문종도 죽기전 왕실 어른이 한명도 없어서

어린 아들 단종이 워낙 노답이었던 상황이라

오죽하면 김종서 같은 권신에게 단종을 부탁하고 사망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성종은 어린 왕이어도

씹금수저+행운버프를 받고 시작했던게

 

성종은 온화한 성품으로 왕실과 백성들의 사랑을 받던

의경세자의 아들이라는 버프 ,

영의정 훈구대신 한명회가 장인인 빵빵한 처갓집 ,

세조비인 할머니 정희왕후의 생존 ,

의경세자비인 어머니  인수대비의 생존 ,

예종비인 인혜대비(안순왕후)의 생존으로

 

성종을 '보호' 해줄만한

왕실 , 친척 최고어른들이 '모두 생존' 하는 시기였고

성종을 감싸고도는

치맛바람 , 바짓바람이 지리던 시기였습니다

 

성종 : 훈구를 삼킨 아이 , 근데 이후 훈구파들 뒤통수까는 성종

 

조선 초기부터 마치 이전 고려왕실의 저주라던 소문들처럼

조선왕실이 유독 단명하거나 콩가루되는 불상사가 많았지만

성종대는 왕실 인사들의 전원생존 및

유독 이렇게 끈끈하게 왕실과 훈구대신들이

일치단결해서 움직이며 다시금 화려한 절대왕권이 형성됩니다

 

[총명한 어린왕]

성종은 어려서부터 , 왕이 되고나서도

총명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왕이 되고나서도 국정토론 , 경연을 여는 것을 매우 좋아해

하루 세번씩 경연을 열어 관원들과 학문을 토론했습니다

 

대왕대비의 수렴청정 시기에도

성종은 아버지 의경세자를 왕으로 높이려 노력했고

결국 신하들을 보내 명나라의 허가도 받아오고

이리저리 끈질기게 노력해서

아버지 의경세자에게 덕종이라는 묘호를 올려

종묘에 안치시킵니다

 

덕종의 능 , 경릉

 

1467년(성종 7년)

어느덧 20세의 성년이 된 성종이었고

총명하고 효심있는 모습을 보였기에

한자를 잘 몰랐던 할머니 대왕대비 정희왕후는

언문 , 한글로 교서를 내려

수렴청정을 중단하겠다 선언합니다

 

<정희왕후>내가 본디 지식이 없는데도 

여러 대신들이 굳이 청하고 주상께서 나이가 어리신 이유로 마지못하여

힘써 같이 정사를 청단(판결)했던 것인데 ,

지금은 주상께서 나이가 장성하고 학문도 성취되어

모든 정무를 재결하여 모두 그 적당함을 얻게 되었다.

더구나 밖에는 정승과 육조와 대간이 있으니

내가 일찍이 사사(사퇴)하려고 하였으나

뜻밖에 중궁이 훙서(사망)하여

궁중의 일이 대부분 처리하지 못한 것이 있었던 까닭으로

시일을 미루어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

 

결국 7년간의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중단되고

세종대왕과 더불어 조선의 성군이라 불린

성종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근엄 , 냉정하게 보면 세종대왕보다는 못했고

사실 그냥 세종대왕이 유래가 드문 케이스지만

성종 역시 뛰어난 왕으로서

괜히 세종대왕에 비유되는게 아닌게

세종대왕이나 성종은 태어나보니 주변 어른들이 전부

배드 페어런츠 , 철퇴충 , 살벌한 킬러 권력자들이었고

 

이런 상황에서도 엇나가지 않고

어린시절부터 학문에 힘쓰며

몸가짐과 태도를 조심히 하며

그런 어른들의 인정을 받아

차근차근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시작해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라봉봉>글쓰면서 뜬금없이

영화 화이가 떠올랐는데

이게 잔인한 성인영화지만

권력관계 , 어두운 사회현실을 풍자하는 면이 있어서 한국 명작영화로 남은거 같고

 

부패하고 사악한 어른들(훈구파)이 각별히 키우는 아이인

화이(성종)가 성장해서

자신을 돌봐준 어른들(훈구파)을 하나하나 죽이는 과정이

 

영화 화이와 성종이 참 겹치는 부분이 많다 생각되고

성종은 ㄹㅇ 훈구파들이 키워낸 화이였습니다

 

총명했던 어린왕 성종은 이후 친정을 시작하며

사림파들을 적극 등용해 훈구파들을 견제했고

점차 이상주의자들 , 사림파들의 시대가 시작되며

성리학 미숙기국가였던 조선은 완전체 성리학 국가가 되기에

이후 사림파 , 선비들이 성종은 성군이라고 유별나게 빨아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권력에 몰두하는 사악한 어른들에게 둘러쌓여 성장한 성종은

그럼에도 참 엇나가지 않고 올바르게 처세하며 왕위에 올랐다 생각되고

 

저도 자라나는 이땅의 어린이들을 보면 속으론

얜 좀 잘나가보이거나 예절바른 느낌이나

얜 그저 그렇다는 생각들이 들기도 하는데

당시 한명회나 신숙주같은 훈구파들이

어린 자산군 , 성종을 점찍어 놓은 것을 보면

ㄹㅇ 어른들도 보는 눈이 있는거 같기도 합니다

 

하여튼 그래도 성종은

성품은 인자하고 어질었던 좋음 임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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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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