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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에 오르기전 수양대군 세조>

[왕위를 찬탈한 자]

[수양대군]

[호방한 둘째왕자]

[당태종 이세민 VS 한고조 유방]

[넉넉한 옷]

[다재다능했던 수양대군]

[문종의 요절]

[김종서의 황표정사]

[따를 자는 따르고 , 갈 자는 가라.]

[계유정난과 살생부]

<라봉봉>

 

[왕위를 찬탈한 자]

왕위를 찬탈한자 !

한국사에서 찬탈의 교과서인 수양대군 세조는

그저 찬탈 그 자체였습니다

(뭔가 이상한데 ㅋ;;,,)

 

실제 세조의 어진 , 얼굴에 무서움과 착함이 공존해보입니다

 

비록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이런 찬탈사례는 있었고

조선은 왕자의 난으로 유명한

수양대군 세조의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유명하지만

 

태종은 나름 태조 이성계의 아들중 

가장 총명하고 가장 조선건국에 공을 세운 인물이어서

명분이 있긴 있었고

 

세조는 그런것도 별로 없고

ㄹㅇ 찬탈 그 자체였습니다

 

사극 공주의 남자 중 수양대군

 

이에 태종과 세조는 다른 조선왕들과 달리

일반적 시호로만 불리지 않고

항상

 

'태종 이방원'

 

'수양대군 세조'

 

이라는 이름 혹은 왕자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왕위를 강제로 빼앗는 일 찬탈 ,

찬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고

아무리 힘으로 왕위를 빼앗아도 명분이 없을경우

찬탈자로 비판받으며

곧바로 독살당하거나 부하들의 뒤통수를 맞고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고

 

고려시대의 경우에도

무신정권의 무인 , 무신들 역시

별다른 찬탈명분까진 없어서

힘이 있음에도

그냥 고려 왕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뒤에서 조종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어려운게 찬탈인데

수양대군은 이런 찬탈을 자기를 따르는 패거리 ,

거의 동네 건달 , 양아치들로 이루어진 소수 모임들과 함께

세종대왕 사후 고작 3년만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국가를 뒤집어 엎고 해냈습니다

 

'찬탈 , 쿠데타 , 군사정변'

 

역사의 죄인으로 남는다는것 ,

혹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힘으로 뒤집어 엎고

나서겠다는 변론 등

여러 이야기되는게 많고

 

이런 논란의 중심에

위대한 왕 세종대왕의 둘째아들

'수양대군 세조' 가 있었습니다

 

[수양대군]

수양대군은 태종 임금시기

세종대왕이 왕자시절 충녕대군으로 불릴때

충녕대군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수양대군이 태어난 다음해 곧

충녕대군은 아버지 태종 , 수양대군의 할아버지 태종에게 양위를 받아

조선 4대임금 세종대왕으로 즉위했고

 

아버지 세종이 태종의 셋째아들에서 급하게 세자가 되고

세자가 된 뒤 2달만에 국왕으로 초고속승진하자

 

세종의 둘째아들은 곧 왕자가 되었고

그는 진평대군에 봉해졌다 함평대군으로 바뀌고

다시 진양대군에 봉해졌다

이후 수양대군으로 고쳐져

오늘날까지 수양대군이라 불리게 됩니다

 

[호방한 둘째왕자]

5살의 수양대군은

효경을 외우기도 했고

또 사람들이 활과 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좋아했고

항상 활과 화살을 몸에 지니고 다녔던

무인적 기풍이 있었던 인물입니다

 

단 공검하고 예절도 있었고

충성스럽고 효도하고 우애가 돈독했다하고

활쏘기와 말타기가 뛰어나고

역학 , 산학 , 음률 , 의술 , 점 , 기예 까지

다 잘했던 엄친아 짱짱맨 , 우리왕 멋쟁이였습니다

(세조실록의 내용)

 

13살때 수양대군은

군사훈련 겸 사냥에서 사슴을 쏜 7발이 모두 그 목을 관통했고

 

수양대군은 체구가 크고 활쏘기와 말달리기가

남보다 뛰어나서

16세의 나이에 아버지 세종대왕을 따라

왕방산에서 군사훈련겸 사냥대회를 열때

하루아침에 사슴과 노루 수십마리를 쏘아서

피묻은 털이 바람에 날아와

겉옷에 다 붙었습니다

 

호방했던 수양대군 , 영화 '관상' 에서 화제가된 수양대군 등장신 (뭔가 자랑스러운 일이 있을때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애용되는 짤방)

 

늙은 무사 이영기 등이 그것을 보고서 눈물을 흘리며

 

<이영기>오늘 뜻밖에 다시 태조(이성계) 의

신무(神武 뛰어난 무용) 를 뵙니다

 

했습니다

 

[당태종 이세민 VS 한고조 유방]

이외에도 기록상 세조는

하늘이 낳은 호방한 인물이라서

평소엔 당태종(형제의난과 패륜 , 왕위 찬탈자 , 카리스마 악당캐릭)을 사모하고

한고조(정치 9단 , 인덕있는 백수건달 , 평민출신 자수성가 황제) 를 박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동양 군주의 모범이 된 중국사의 두 명군 한고조 유방과 당태종 이세민

 

세조가 높게 여긴 당태종의 경우엔

비록 고구려를 침공하다 고구려 양만춘 장군한테 눈알이 뽑혔지만

 

중국사에선 '왕위를 찬탈한 자' 그 자체였고

카리스마있는 야심가 , 나쁜놈인데 능력있는 씹간지 캐릭 이미지가 강해

서양에서 카이사르나 나폴레옹이 독재자들의 우상이 되듯이

동양에서 제왕중 제왕이라 불리며

흠모된 야심가 중국 황제였고

 

화려했던 당태종의 태평성세 '정관의 치' , 중국사극 정관의 치

 

반대로 한고조 유방의 경우는

여자를 밝히고 술마시길 좋아하는 백수건달 한량출신이었지만

코믹캐릭에 인덕과 사람을 끄는 매력이 강해서

가혹했던 진시황의 진나라시대를 종결하고

중국을 통일하고 한나라를 개국한

중국사 명군중의 명군이었는데

 

나쁜놈이었지만

당태종 이세민이 부하들과 의리로서 끝까지

생사고락을 한것과 달리

 

설렁설렁했던

한고조 유방은 부하들을 이용하다 뒤통수를 치며 숙청하는 등

통수킹 , 음탕한 기색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

일단

두 인물다 중국사 당대의 호걸 , 영웅으로 인정받는 인물이고

성향이 뚜렷히 달랐는데

(일종의 미통당과 민주당의 성향이랄까 ?)

 

세조는 이세민을 높게여기고 유방을 낮게여긴

현실주의자 , 애국보수 스타일이었고

실제로 세조의 신하들인 한명회나 신숙주같은 인물들이

개인적 부패 , 결함이 있었지언정

세조가 끝까지 함께한 것을 보면

자기 부하들은 아낀

이세민 성향의 의리있는 나쁜놈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라봉봉의 과학적 분석)

 

[넉넉한 옷]

하여튼 워낙 찬탈자 , 나쁜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지만

대왕세종의 아들답게 기본적으로 능력은 출중했던 인물이었고

사실 세종의 아들들이 다 뛰어났지만

그나마 수양대군의 경우는

능력은 있었지만 허약하고 유약했던 문종이나 안평대군과 달리

체력과 정신력 부분에서 조화를 이루며

세종의 아들 중 가장 뛰어난 아들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런데 ,

세종대왕도 이런것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다 알고있는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둘째아들 수양대군이 재능을 드러내자

다른 유약한 아들들 , 첫째 문종 이향보다

더 출중하고 기상있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그를 기특히 여기고 사랑해서 다른 아들과 달리 대우했지만

한편으론 걱정했습니다

 

세종대왕 자신 역시

망나니였던 첫째형 양녕대군을 제치고 왕이 된 것이었는데

이전 아버지 태종도 수많은 형들을 제치고 왕이 된 것이었고

할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역성혁명을 일으켜

아예 고려 왕실을 멸망시키고 왕이 된 것이었기에

조선 초기는 철저히 능력중심의 왕위계승이 이루어졌지만

또 이로 인해 불안정한것도 있었기에

 

조선왕들은 항상 자기대부터는 이런 왕위계승이 아닌

정통있는 적장자 , 첫째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하루는 세종대왕이 문종과 수양대군 두 아들과 함께 궐밖에 나가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는데

 

수양대군이 말을 달려 활쏘는 장소로 나오자

세종대왕은 문종을 돌아보고 말하길

 

<세종대왕>진평대군(수양대군) 은 진실로 효용(날래고 용맹) 한 사람이다

 

했고

평소 수양대군이 항상 품이 넓은 옷을 입고다녔기에

궁인들이 이를 보고 웃었는데

세종대왕이 수양대군에게 말하기를

 

<세종대왕>너같이 효용한 사람은

옷을 넉넉하게 입는 것이 옳다

 

라고 말했는데

 

성질이 급하고 날래고 용맹한 사람은

일부로 옷을 넓게입어 행동을 늦추게 하라는 말로서

이는 세종대왕이 수양대군에게 경계시키는 말로

주의를 준 것이었습니다

 

세종대왕과 수양대군

 

[다재다능했던 수양대군]

세종대왕 시기

비록 세종대왕은 적장자였던 세자 문종에게 왕위를 이어주려 했고

문종 역시 선하고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위대한 아버지와 뛰어난 첫째형이 있었던

둘째아들 수양대군은 감히 왕이 되어야겠다는 야심을 품지는 못했었고

단 그럼에도 세종대왕은 다른 왕자 , 자식들을 아껴

자식들의 재능을 살피고 그들을 지원해주었고

이에 다재다능했던 수양대군은 아버지 세종대왕을 도와서

불교서적을 한글로 쓰고 악보를 정리하는 일등을 했고

 

수양대군이 만든 한글 불경언해서 '석보상절'

 

세종대왕이 사망하고

형 문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문종은 그럼에도 뛰어난 둘째동생 수양대군을 아끼며

여러 글쓰는 일들을 수양대군과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시키고

군사와 나라일에 관한 큰일들은 반드시 수양대군과 더불어 논의했습니다

 

이때까지는 비록 둘째왕자라는 신분에 제약이 있더라도

뛰어난 아버지와 형의 도움을 받아 나랏일에 참여하는

뛰어난 왕자이자 유능한 신하였고

비판받는 말이 아닌 칭찬받는 말만 받으며 살아온

수양대군의 리즈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문종의 요절]

그런데

1452년(문종 2년) 5월

나랏일에 열중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문종이 38세라는 젊은나이에 요절하고

문종의 어린 아들 단종이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비운의 소년왕 단종

 

당시 수양대군은 35세라는 한창의 나이였고

 

당시는 대비들도 없고 왕실에 마땅한 웃어른이 없었기에

문종이 사망하기전 김종서 , 황보인 등 원로대신들에게

어린 아들 단종을 부탁하며

그들을 고명대신(왕의 유언을 받드는 대신) 으로 삼아

나랏일을 부탁하자

 

조선 초기부터 강력한 왕중심의 정치가 이뤄졌던 조선은

갑자기 의정부 재상들 , 신하들 중심으로 정치가 흘러갔고

세종대 이뤄진 절대왕권이 약화되고 급격하게 의정부 재상권이 강화됩니다

 

이에 당시 조선 왕실에서 가장 유력한 인사였던 수양대군은 불만과

야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김종서의 황표정사]

김종서는 황표정사를 하며

어린 단종에게

노란 표식 (황표)에다가 다만 동그라미만 치면 된다 했고

 

영화 관상에 나온 황표정사

 

당시 고명대신 김종서에 대한 평가론

 

세조쪽에선 김종서 일가가 막대한 뇌물을 받으며

부정부패와 국정을 농단했다 했고

 

그러나 ,

당시 백성들에겐 김종서가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는 기록이

전혀 없고

그 집이 호화로웠다는 표현도 없었기에

그는 세종대왕의 명신하이자 4군 6진을 개척한 북방의 호랑이답게

막강한 권력을 잡았음에도 공인으로서 절도를 잘 지켰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세종대 북방의 호랑이 , 단종대의 재상 김종서

 

그러나 ,

일단 문종의 유지를 받아 어린왕 단종을 보호해야했던 김종서는

세종대왕의 뛰어난 둘째 왕자이자 한창때의 나이였던 수양대군을 견제할 수밖에 없었고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 안평대군을 끌여들여 수양대군을 견제합니다

 

수양대군 VS 안평대군

 

당시 한창 야심을 키워가던 수양대군 역시

김종서는 눈엣가시였고

결국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살해 0순위로 지목하고

반역 , 계유정난을 일으킵니다

 

[따를 자는 따르고 , 갈 자는 가라.]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명분은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을 왕위에 옹립하려는 반역을 한다는 것이었고

그 역적들을 처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종 1년 10월 10일 계유정난 발생일 수양대군>

지금 내 한몸에 종사의 이해가 매었으니 ,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

장부가 죽으면 사직(국가)에 죽을 뿐이다.

 

따를 자는 따르고 , 갈 자는 가라.

 

나는 너희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

만일 고집하여 사기(정세)를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먼저 베고 나가겠다.

빠른 우레(천둥)에는 미처 귀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군사는 신속한 것이 귀하다.

내가 곧 간흉(간사하고 흉악한자 , 김종서)을 베어 없앨 것이니 ,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

 

 

[계유정난과 살생부]

곧바로 수양대군은 자신의 무리들을 이끌고 김종서 집에 찾아가

김종서를 철퇴로 쳤고

김종서가 쓰러지자마자 계유정난은 시작되어

도성과 궁궐은 수양대군에 장악됬고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만남 , 시작되는 계유정난

 

관리들 중 죽일자와 살릴자의 이름이 기록된

'살생부' 가 만들어져

김종서 일가 및 입궐하는 신하들 중 수양대군 반대파들은 모두 살해당하고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걸리게 됩니다

 

살생부

 

 

계유정난 다음날

수양대군은 스스로 영의정이 되어 군사와 인사권을 장악하고

자신의 세력들을 모두 주요 권신에 임명합니다

 

또한 수양대군은

사대부 세력들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과 이전 교류가 있었던 집현전 학사들을 끌어들이려

성삼문 , 신숙주를 정난공신에 끌어들였고

 

당시 집현전 학사들 역시

갑자기 조정이 의정부 재상들 중심으로 급변하자

불만이 쌓여갔기에

수양대군의 편에 붙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수양대군은 정권을 장악하고

차차 왕이 될 준비를 시작했고

단종의 측근들을 제거합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단종은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할 뜻을 밝혔고

상왕으로 물러나며

수양대군은 조선 7대왕 세조로 즉위합니다

 

당시 수많은 충신들이 반발했고

이는 찬탈이었습니다

 

영화 관상속 마지막 장면 , 화살을 날리는 수양대군

 

<라봉봉>제가보니 수양대군은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성향이 있었던거 같고

실제 이 두 대통령도 부도덕함에 온갖 욕은 먹었지만

추진력과 야심이 강했고 자기 사람은 잘 챙기기로 유명했습니다

 

개인적 능력은 세종대왕의 아들중 제일 나았다 생각되기에

만약 수양대군이 세종대왕의 둘째아들이 아닌 첫째아들이었다면

저는 나름 세조는 세종의 태평성대를 이은 명군중 명군이라 손꼽힐 것이라 생각되는데

 

일단 오늘날 기준에서 보기엔

뭐도 모르는 너무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른거 자체가

분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었고

사실 그 역시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볼 수는 없었고

능력이 아닌 혈연으로 왕위가 계승되는 것의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단지 세조가 세조라 불리지 않고 수양대군이라 낮춰불리며

오늘날까지 계속 욕을 먹는 이유는

조카를 죽이는 패륜을 한 것과

 

계유정난으로 유능한 인재들을 죽이며

세종대왕이 힘들게 키워놓은 우수한 인재 , 세이브 데이터들을

날려먹었다는 것이고

 

물론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가기에

세조대 이후에도 조선국의 힘은 강력했지만

이런 파벌다툼으로

점차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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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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