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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복이 없었던 문종>

[학문을 좋아한 세자]

[문종의 효심]

[한결같이 아버지처럼]

[밀덕 문종]

[부인복이 없었던 문종]

[세자빈의 동성애]

[세번째 세자빈 , 그러나..]

<라봉봉>

 

[학문을 좋아한 세자]

조선에서 가장 권위있는 왕중의 왕 세종대왕의 맏아들 문종 이향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1421년(세종 3년) 세자로 책봉됩니다

 

문종 이향은

시호와 이름이 참 은은한 선비같은 느낌인데

그는 얼굴이 매우 잘생긴 조선왕으로 유명하며

어릴때부터 총명해 학문을 좋아했고

성균관에 입학해 학문이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조선의 미남왕 문종

 

문종의 친필글씨 , 열성어필

 

[문종의 효심]

세종대왕이 병환이 날때마다

왕세자 이향은 직접 여러 정무에 참여했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답게

모든 시행하는 일이 반드시 의리에 합당했기에

세종대왕도 세자로 인해 평안해진 것을 기뻐했습니다

 

세자 이향은 성품도 효성이 지극히 강해

약을 맛보고 세종대왕의 수랏상(왕의 밥상) 을

보살피는 일도 반드시 직접 했고

세종대왕을 옆에서 모시며

밤이 되도록 물러가라고 명령하지 않으면

감히 물러나지 못하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세자 이향은 책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연달아 어머니 소헌왕후와 아버지 세종대왕이 사망하자

3일이나 금식하다 바싹 여위었고

 

결국 왕세자 이향은

세종대왕의 뒤를 이어 조선 5대왕 문종이 되었습니다

 

문종이 세종대왕 초상때 울부짖고 가슴을 치니

대신들이 모두 아뢰기를

 

<대신들>마땅히 물러가 거처하여

옥체(왕의 몸)를 조보(보전) 해야 할 것입니다

 

했지만

문조은 듣지않고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며

3년상을 마쳤습니다

 

[한결같이 아버지처럼]

문종은 정치를 하는 것도

한결같이 아버지 세종처럼 했는데

 

세종대왕은 새벽에 일어나

신하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으며

밤늦게까지 일을한

살인적인 스케줄의 왕으로 유명했고

이런 일들을 문종은 한결같이 아버지처럼 했습니다

 

문종은 늘 스스로 탄식하기를

 

<문종>어찌 정사가 까다롭지 아니하고 

형벌이 번거롭지 아니해서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탈 없이 편안할 수가 있겠는가 ?

 

했고

 

이외에도 조선국왕 문종은

성리학을 강화하고

불교를 약화시켰고

 

이전 고려 왕실후손 , 고려 명신들에 탄압 중지를 해

조선 초기대부터이어진 고려 죽이기를 중단하고

과거사와 화해하려 했습니다

 

세종대왕의 살인적 스케줄을 이어받아

여러 일들을 한 문종은 곧 병이 나서 눕게되었고

어떤사람이 좀 쉬면서 날을 걸러가며 나랏일을 보고

편안히 몸조리를 하기를 청했지만

문종은

 

<문종>군주가 향락을 즐긴다면 

비록 천년을 오래 살더라도 부족하겠지마는 ,

그렇지 않으면 비록 1년이라도 또한 만족할 것이다.

반드시 나라를 근심하고 정사를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이고

스스로 안일해서는 안된다

 

옛날에 안에서는 여색(여자)에 빠지거나 ,

밖에서는 수렵(사냥)에 탐닉하거나 ,

술을 즐겨 마시고 음악을 좋아하거나

높은 가옥과 화려한 원장(울타리)을 한결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

이것은 군주의 공통된 걱정이다.

나는 천성이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비록 권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능히 좋아할 수가 없다

 

했습니다

결국 문종은 재위 2년 2개월 1일(793일) 만에

경복궁 궁실에서 39세의 한창의 나이에 사망합니다

 

[밀덕 문종]

문종은 유약했던 그 자신의 성향과

학문의 왕 , 문종이라는 시호를 받게 된것과 달리

의외로 밀덕 , 밀리터리 덕후(군사 덕후 , 군사 전문가) 이었는데

 

세자시절부터 문종은 세종시절부터 제작된 조선의 최종병기였던

최첨단 다연장 로켓 화살의 화약무기인 '신기전' 개발에 참여했고

 

문종이 만든 조선 최종병기 신기전(화차)

 

화약무기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화약 조달을 위해

전국에 염초도회관을 설치합니다

 

또 병력을 움직이는 전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친동생 수양대군에게 군사의 운용과 훈련방식을 개정해

새롭게 진법을 만들게 명했고

 

신라~고려때 한국에서 일어난 이민족과의 전쟁을 쓴

동국병감을 편찬하는데

이때에도 역시 수양대군이 책임자로 활약했습니다

 

동국병감

 

문종은 군사제도를 개혁해

군대를 5개의 사로 개편했고

5사는 이후 세조때 오위체제로 개편되는데

5위는 조선 중앙군 제도의 기초가 됩니다

 

조선 초기 군사제도 5위와 후기 군사제도 5군영

 

또 문종은 김종서에게 명령해

방대한 고려사를 정리하기 위해

5개월만에 고려사 요약본 '고려사절요' 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사절요

 

[부인복이 없었던 문종]

세종대왕에겐 두명의 뛰어난 아들이 있었고

한명은 맏아들 문종 이향 ,

그리고 다른 한명은 둘째아들 수양대군 이유 , 훗날 세조입니다

 

문종은 국방덕후였지만 평소 성품이 유약했던 인물이었고

 

수양대군은 성품이 무인성향같아보여도

의외로 세종시절 아버지를 도와 훈민정음 만들기에도 참여했고

수양대군은 어머니 소헌왕후의 죽음에 크게 충격을 받고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을 엮은

'석보상절' 을 한글로 지어 아버지에게 바칠만큼

뛰어난 문인적 성향도 있습니다

 

뛰어난 성품이 있어도

한창 체력이 좋았던 동생 수양대군에 비해 문약했던

문종이었기에

 

수양대군은 뛰어나고 정통성이 강했던

맏형 문종에 감히 도전하거나 야심을 품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문종은 유독 체력이나 우유부단한 면이 강했는데

 

문종은 세자시절부터 안동김씨 가문의 세자빈 김씨 , 휘빈 김씨를 세자빈으로 맞아

첫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조선 세자부부 결혼 재현행사

 

수려한 외모의 세자 이향과 달리

휘빈 김씨는 존못녀였고

 

당시 세자는 자신을 수발드는 궁녀들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16살의 나이에 4살이나 많은 존못녀를

순전히 가문만 보고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에휴

 

이에 세자는 첫날밤 이후

세자빈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세자빈을 찾지 않고

학문과 연구에만 몰두합니다

 

이에 휘빈 김씨는 세자 이향의 사랑을 받기 위해

세자가 자신에 빠져들게 하려

여러 미신적인 일들을 시행하는데

 

당시 세자가 자신을 수발들었던

효동과 덕금이라는 궁녀들을 좋아했기에

휘빈 김씨는 효동과 덕금의 신발을 훔쳐 그걸 태워 재로만들어

세자가 마시는 술에 몰래 넣어

그걸 마시게 하면 세자가 궁녀들을 깨끗이 잊고

세자빈만 찾게된다는 황당한 미신을 실행했고

 

휘빈 김씨의 주술

 

또한 암수뱀의 분비물을 손수건에 묻혀 그 손수건을 지니면

색기가 일어나 세자가 혹한다는 등

여러 미신들을 찾아 실행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결국 꼬리가 밟혀

시어머니 소헌왕후 심씨가 직접 국문해

세자빈이 온갖 ㅈㄹ을 하고 다녔다는 것을 밝혀냈고

중전 소헌왕후 심씨에게 이 사실을 들은 세종대왕은 격노해

휘빈 김씨의 시녀를 참수시키고

휘빈 김씨를 폐서인하고 궁중에서 내쫓았습니다

 

분노하는 세종대왕 , 사극 뿌리깊은 나무

 

[세자빈의 동성애]

그래서 세종대왕은 세자 이향의 두번째 세자빈 , 며느리를 들였는데

알고보니 휘빈 김씨는 양반이었고

더 개노답의 세자빈이 들어옵니다 (ㅋ;;)

 

세자 이향의 두번째 세자빈은

일단 휘빈김씨의 전철을 밟지 않기위해

외모도 고려했고

양순한 규수를 골라서 순빈 봉씨를 세자빈으로 간택합니다

 

미인으로 묘사되는 세자빈 봉씨 , 사극 대왕세종

 

순빈봉씨는 조선여인치곤 상당히

사랑과 성에 대한 집념과 질투가 강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세자 역시 휘빈 김씨 일로 죄책감이 커서

처음엔 순빈 봉씨에 대해 나름 애를 썼는데

다시 슬슬 세자빈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ㅋ;;)

 

순빈 봉씨는 슬슬 본색을 들어내며

세자가 가장 싫어하던 음주가무를 즐기게 됩니다

 

정이 떨어진 세자가 세자빈을 등한시하자

순빈 봉씨는 체통을 잊고 술에 절었고

상궁을 희롱하거나 화장실로 몰래 들어가

일보는 궁녀들을 훔쳐보는 등 이상행동을 보입니다

 

순빈 봉씨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우려하던 시부모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고심끝에

세자에게 후궁 3명을 더 붙여줬는데

세자는 후궁들을 총해했고 한명이었던

승휘 권씨 , 훗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는는 임신까지 했습니다

 

이에 순빈 봉씨는 임신한 후궁에 분개하고 원망하다

모시는 궁인에게

 

<순빈 봉씨>권 승휘가 아들을 두게 되면

우리들은 쫓겨나야 할거야

 

하고 말하고

때로는 소리내어

울며 그 소리가 궁중까지 들렸습니다

 

이에 시아버지 세종대왕은 중전 소헌왕후 심씨와 함께

세자빈 순빈 봉씨를 불러 타이르기를

 

<세종대왕>네가 매우 어리석다. 

네가 세자의 빈이 되었는데도 자식이 없는데 ,

권 승휘가 다행히 자식을 두게 되었으니 ,

인지상정으로서는 기뻐할 일인데도

도리어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니 ,

또한 괴이하지 않는가

 

라 했지만

순빈 봉씨는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일단 지금기준에선 순빈 봉씨도 당연 빡칠만 한데

일단 '조선시대' 였고 왕실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연관이 많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순빈 봉씨는 후궁이 임신해 위기감을 느끼고

어거지로 세자와 동침한 뒤

자신도 임신했다 거짓말치며

임신쇼를 벌이게 됬습니다

 

순빈 봉씨는 스스로 말하기를

 

<순빈 봉씨>태기가 있다

 

하니 궁중에서 모두 기뻐했고

세종대왕은 세자빈이 임신했다는 소식에

각별히 대우하라 지시했는데

이후 순빈봉씨는 유산이 됬다 보고하며

가짜 임신쇼를 끝냅니다

 

<순빈 봉씨>낙태를 하였다

단단한 물건이 형체에 이루어 나왔는데

지금 이불 속에 있다

 

이에 명탐정 세종대왕은 늙은 여종을 시켜 이불을 뒤져봤더니

이불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음이 드러나

순빈 봉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들통났고 (ㅋ;;)

 

결국 세종대왕은 이전 첫번째 며느리사건에

두번째 며느리까지 말썽을 부리자

이도저도 못했는데

 

순빈 봉씨는 세자에게 소박맞은 것으로

욕구불만이 쌓이자

결국 약자였던 하급자인 궁녀 , 여종 소쌍을 데려와

동성애를 했고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당시 궁녀들은 서로 수군거리면서

 

<궁녀들>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

 

했습니다

 

순빈 봉씨의 레즈짓 , EBS

 

어느날 소쌍이 궁궐안에서

청소하고 있었는데

세자 이향이 갑자기 소쌍에게 묻기를

 

<이향>네가 정말 빈과 같이 자느냐

 

하니

소쌍이 깜짝 놀라며

 

<소쌍>그러하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후에도 순빈 봉씨는 소쌍을 몹시 사랑해

잠시라도 그 곁을 떠나기만 하고 원망하고 성을 내며 말하길

 

<순빈 봉씨>나는 비록 너를 매우 사랑하나

너는 그다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했고

소쌍도 다른 사람에게 늘 말하기를

 

<소쌍>빈께서 나를 사랑하기를 보통보다 매우 다르게 하므로

나는 매우 무섭다

 

했습니다

 

이는 순빈 봉씨가

레즈비언이거나 성이상자가 아닌

세자에게 소박맞은 상황에서

 

군대나 교도소 등에서 일어나는

억압된 상황속 약자에 대해 우월감을 점하고

성욕을 해소하려는 권력형 성범죄였습니다

 

순빈봉씨의 동성애 행각이

소헌왕후와 세종대왕에게 보고들어가자

충격을 받은 시부모들은 충공깽에 빠졌고

결국 순빈봉씨를 폐서인하고 궁밖으로 내치었습니다

 

으윽,,

 

[세번째 세자빈 , 그러나..]

결국 첫 , 두번째 세자빈까지 폐출되자

이미 딸까지 낳았던

후궁 승휘 권씨 , 권 승휘는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세종대왕의 기대대로

세번째 세자빈은

1441년 7월 23일 경복궁 자선당에서

손자인 훗날 단종을 낳았습니다

 

세종대왕은 기뻐하며

대사면령(나라에 경사가 나면 죄수들을 풀어줌)을 내렸는데

그 자리에서 큰 초가 떨어졌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를 불길하게 여기며 즉시 초를 치우게 했고

권씨는 산욕열로 단종을 낳은 다음날 24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이렇게 첫번째 , 두번째 , 세번째 부인까지

연달아 잃은 문종은

부인복이 없어도 너무 없는 인물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라봉봉>유독 세종대왕시기 며느리들이 이상행동이 있었는데

일단 궁궐생활이 보통 인간이라면 버티기 어려울정도로

근엄하고 답답한 경향이 있고

일부다처 , 왕정이라는 근본적 문제도 있어

 

왕실에서도 부부싸움이나 여인들이 총애를 받기위해 싸움을 벌인다거나

여러 문제들이 있기도 했고

 

이런 것들로 인해

세종 며느리 , 문종의 부인들 역시

분노와 스트레스의 원인이 분명 있었다 생각되나

 

당시는 매우 유능해서

감히 배우고 배운 신하들도 왕권에 도전하지 못했던

세종대왕시기였기에

 

제가보니 며느리들이 시아버지 세종대왕에 개쫄아있어서

다른 왕들대에 비해 세종의 아들과 부부싸움을 한다거나

함부로 다른 후궁들을 패기도 어렵고

결국 자신의 분노들을 조절하지 못하다

이상행동으로 나타난게 아닐까 싶습니다

 

단지 문종이 처복이 없었다고만 하기도 뭐한게

결국 문종 스스로도 본인이 유약한 면이 강했고

우유부단한 성향으로서 자신의 부인도 제대로 부인으로 대우하지 못했고

 

이러한 우유부단한 성향때문에 왕이 되고나서도

금방 체력을 소진해버려

한국사에서도 명군의 자질을 갖췄음에도

장수하지 못하고 너무 일찍 사망해버렸습니다

 

혹은 저는 위대한 아버지라는

거대한 방패가 사라지고나서

문종 역시 충격이 컸다고도 생각됩니다

 

하여튼 ,

문종 사후 어린 단종이 즉위하나

곧 수양대군이 정변을 일으켜 세종대 키워진

유능한 인재풀 , 신하들을 숙청해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문종의 단명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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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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