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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패륜>

[조나 종이 아닌 군자 호칭의 왕]

[폐비 윤씨]

[외로움을 타던 세자]

[진실을 알게된 연산군]

[불길한 징조]

[언론을 막다]

[무오사화]

[국고 탕진]

[갑자사화]

[연산군의 패륜]

[부관참시]

<라봉봉>

 

[조나 종이 아닌 군자 호칭의 왕]

한국사 최악의 폭군으로 손꼽히는 조선 10대왕 연산군 ,

연산군은 광해군과 더불어 도중에 신하들에게 반정으로 쫓겨난 임금이었기 때문에

조나 종자 시호가 붙지 않고

왕자의 호칭인 군자 호칭으로 남는 불명예를 겪은 임금입니다

 

왕권이 약해 신하들에 의해 국정이 주도됬던 고려와 달리

연산군 이전까지 조선 왕권은 막강했고

왕실 내부에서 골육상쟁은 있었을지언정

유교적 명분에 따라

감히 신하들이 왕을 바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연산군이 워낙 엽기적이고 잔인한 짓을 일삼자

결국 신하들과 백성들의 원망이 높아져

민심이 반 연산군 기조로 통일되게 되었고

연산군대에 이르러

조선 최초로 신하들이 왕을 갈아엎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폐비 윤씨]

하여튼 ,

연산군은

성종과 왕비 윤씨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성종은 키만 크고 얼굴은 별로였고

유교적 이상주의자였지만

여자를 밝혀서 12명의 부인을 두고

궁궐에서 하렘생활을 즐긴 인물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왕비 윤씨는

야사에 의하면

마치 선녀와 같고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위가 서늘해질 만큼의 미녀였다 합니다

(얼음공쥬)

 

미인+왕실암투극+억울한 죽음 등으로 사극 단골 인물이 된 폐비 윤씨 , 폐비 윤씨를 연기한 배우들

 

이에 왕비 윤씨에게서 태어난 성종의 아들 연산군은

키는 아버지를 , 외모는 어머니를 닮아

부모의 유전적 장점만 쏙쏙 골라닮았고

연산군은 의외로

ㅈㄴ 변태같고 포악하게 생겼다기 보다는

곱상한 기생오라비 외모의 키큰 존잘남이었습니다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을 연기한 배우들 , 미남상에 불만많은 표정이 필수요소

 

그러나 성종이 다른 후궁들을 총애하자

왕비 윤씨는 질투를 해서

성종과 부부싸움을 벌이거나

성종의 후궁들을 저주하려

궁궐 내에 후궁들을 저주하는 주술서나 독약등을 반입하는 등

악행을 벌여 성종이 분노했고

결국 왕비 윤씨는

폐비된 후 궐밖을 나가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고

 

돌아간 집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성종의 후궁들의 모함을 받아

결국 사약을 받고 살해당합니다

 

폐비 윤씨의 죽음

 

사약을 먹고 피를 토해가며 죽어가던 폐비 윤씨는

친정어머니에게

궁궐내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고 있던

6살의 세자가 장성하면 자신의 피묻은 옷을 아들에게 보여달라 전했습니다

 

<폐비 윤씨의 유언>세자가 자라거든 이를 전달해주세요

 

왕자 , 훗날 연산군는 어머니가 사약을 먹은 다음해

1483년(성종 14년)

7살의 나이에 세자로 정식책봉됩니다

 

[외로움을 타던 세자]

세자 연산군은 너무 어린 나이에 어머니 폐비 윤씨가 사망했기에

어머니의 일을 잘 알지 못했고

어머니 없이 외로움속에 성장합니다

 

하루는 외로움을 타던 세자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연산군>송아지 한마리가 어미 소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미 소가 음매 하고 울면

뒤따르던 송아지고 곧바로 따라 울었습니다

 

어미소와 송아지가 생전(살아서 온전) 하니

그것이 가장 부럽습니다

 

어미소와 송아지

 

학문을 좋아했던 아버지 성종과 달리

아들 연산군은 호방한 성향이 강해

공부를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세자를 교육하는 시강원에서 말하기를

 

<시강원>세자께서 바야흐로 학문이 더욱 진보하여야 할때인데도

강습을 게을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성종은

잘 타이르며 세자를 좋은 말과 착한 행실로 잘 가르치도록 당부했습니다

 

[진실을 알게된 연산군]

12년동안 세자수업을 받고

성종이 사망하자 왕위를 이은

19세의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즉위 하고서 , 연산군 1년에

아버지 성종의 묘지의 글을 읽으며

윤기견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보게 되고

자세한 전말을 알게됩니다

 

<연산군>이른바 판봉상시사 윤기견(연산군의 외할아버지 , 폐비 윤씨의 아버지)

이란 이는 어떤 사람이냐 ?

혹씨 영돈녕 윤호를 기무(대충 비슷한 한자) 라 잘못 쓴 것이 아니냐 ?

 

이에 승지(왕의 비서) 들이 아뢰기를

 

<승지들>이는 실로 폐비 윤씨의 아버지인데

윤씨가 왕비로 책봉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했고

이에 연산군은

 

'비로소 윤씨가 죄로 폐위되어 죽은 줄을 알고

수라(왕의 밥상) 를 들지 않았'

 

습니다

 

[불길한 징조]

연산군은 이후부터 계속해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어떤 앙금이 있었던 연산군은

왕이 되고나자마자 아버지가 궁궐 정원에서 기르던 사슴을

활로 쏘아 죽여버립니다

 

연산군이 새로 왕위에 올랐을때

조정과 민간에선 모두 영명(영특하고 총명함) 한 임금이라 일컬었지만

김종직은 늙음을 이유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갔고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

 

김종직과 같은 고향 사람이 그에게

 

<김종직의 고향사람>지금 임금이 영명한데

선생은 어찌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왔습니까 ?

 

하고 묻자

김종직은

 

<김종직>새 임금의 눈동자를 보니

나처럼 늙은 신하는 목숨을 보전하면 다행이지 싶소

 

했고

얼마 안가서 사화들이 일어나 선비들에 떼죽음 당하자

사람들은 김종직이 미리 안 것에 탄복합니다

 

[언론을 막다]

하여튼 즉위 초부터 여러 불길한 징조들이 싹트기 시작했고

연산군은 어머니의 의문사 , 아버지에 대한 앙금 , 신하들과의 대립 ,

학문을 좋아해 여러 업적을 남긴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 등

재위 초반부터 여러 과제가 쌓이게 됩니다

 

문치주의자였던 아버지와 정반대의 성향이었던 연산군은

처음엔 총명하단 소리도 들었지만

갈수록 자신의 뜻에 의견을 제기하는 언관 , 유생들을 싫어해

무시하거나 감옥에 가두었고

 

자신을 어머니대신 키워준 유모에게 보답으로

노비와 토지를 과도하게 하사하려하자

삼사(언론기관) 이 반대하자 연산군은

 

<연산군>임금으로서 한때의 특은(특별한 은혜) 도

시행할 수 없는가 ?

만약 반드시 일마다 막는다면

장차 임금으로 하여금 아무 일도 못하게 하고

신하들이 스스로 하자는 것이리라

 

라며 반발했고

이후에도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의 명예를 회복시키려 하자

삼사 신하들과 격렬히 부딪혔고

나름 폐비 윤씨도 억울한 점이 있었기에

몇몇 대신 , 훈구파(친왕파)들이 연산군의 편을 들었기에

결국 폐비 윤씨 명예회복은 연산군 의도대로 됩니다

 

[무오사화]

그럼에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삼사 ,

언론기관 , 유생과 선비 , 사림파들의

충언을 참지 못했던 연산군은

신하들을 숙청하기 시작했고

 

연산군은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를 일으켜

유자광 등 훈구파들과 손잡고

사림파 선비들을 숙청합니다

 

조선의 4대사화 , 선비들의 재앙

 

사림파 거두 김종직은

조의제문이라는 글을 써서

세조의 왕위 찬탈을 은유적으로 비판 , 뒷담화했고

 

조의제문

 

세조가 잘못한것이 분명 있었지만

결국 성종이나 연산군 등

세조 이후 조선왕실은 모두 세조의 후손이었기에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하는 것은

조선왕실 , 왕조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김종직 제자 25명이 잡혀와 추국을 당하고

김종직의 문집은 전부 소각되고

관련자들은

사형 , 유배 , 파직 등 여러 방식으로

살해당하거나 화를 입게됬고

 

이를 무오년에 일어난 선비들의 재앙이라는 뜻의

 

'무오사화'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신하들 , 사림파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오냐오냐 , 오구오구 오구쌀 피자~ 하면서 잘 받아주던

선대왕 성종에 비해

연산군은 정 반대의 성향임을 알게되었고

 

왕의 광기를 느낀 신하 , 간관들은

불길한 느낌을 직감하고서

입을 다물게 됩니다

 

[국고 탕진]

사화를 통해

신하들에게 폭력적인 경고를 준 연산군은

신하들의 목소리가 급속도로 위축되버리자

곧바로 나랏일에 관심을 두는 것을 중단하고

 

사치와 향락 , 사냥과 여색에 빠지며

폭군의 행태를 보입니다

 

사극영화 '왕의 남자' 에 묘사된 연산군의 인간사냥

 

이에 삼사 신하들은 다시금

간언을 올렸지만

연산군은 '좆까' 를 외치며

신하들의 목숨을 건 충언을 무시하며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삼사는 보통 젊은 관리 , 사림파들이 일하는 언론 , 간언 기관이었는데

삼사의 충언에도 왕이 꿈쩍하지 않자

원래부터 언관들(사림파 신하들) 에게 협조적이지 않던

의정부 대신(훈구파 대신)들마저 진짜 나라가 좆망할 느낌에

이번만큼은 언관들의 편을 들며

나라 재산이 고갈되고 있으니

사치를 정지하기를 요청합니다

 

<의정부>신들이 국가의 1년 예산을 보면

그 쓰는 것이 상납의 수보다 더합니다

...

또 전일 아차산에서 사냥할때에

신 등이 미편하다(편안하지 않다) 아뢰었는데

지금 듣자오니 또

창릉 , 경릉 두 산에서 사냥을 한다 하옵는데

지금 한창 눈이 많이와서

군사와 말도 피로할 뿐더러

상체(왕의 몸) 에도 감기가 들 것이오니

이번 거조(사냥) 는 정지하시길 바라나이다

 

이에

연산군은

 

<연산군>금년에는 다만 두번 강무(사냥) 하였다

예전엔 4시절의 사냥이 있었는데

한 번 사냥하는 것이 무슨 방해가 되겠느냐 ,

 

또 용도(씀씀이)가 넓고 많으면

그 수도 자연 많아지는 것이다

 

(돈을 많이 쓰면

세금도 자연 많이 걷힌다는

연산군의 기적의 논리)

 

[갑자사화]

자신의 편인줄 알았던 대신들까지

연산군에 충언을 올려대자

결국 연산군은 다시금 불만이 증폭되었고

점차 신하들이 자신을 불경하고 능멸한다 여기고

죄있다 생각되는 신하들을 또다시 숙청했고

이것이 갑자사화였습니다

 

<연산군>사헌부(관리들 감찰 및 언론기관) 에 관원이 없어

오래도록 추국하지 못하니

의금부(사법부)에서 가두지 말고 국문하되

심문하는 대로 그때그때 놓아주라 !

 

연산군은

친어머니 폐비 윤씨와 관련된 신하들을 숙청했는데

이전 사림파만 쓸려나간 무오사화와 달리

연산군은 나름 자신의 편이자

왕실 우호세력인 훈구 대신들까지 쓸어버렸고

사림파와 훈구파가 골고루 다같이 쓸려나가게 되며

 

이때부터 조선 신하들은 사림 , 훈구 할 것 없이

왕이 대놓고 미친놈인것을 직감합니다

 

[연산군의 패륜]

무오사화때는 연산군은 앵무새처럼

'아니되옵니다' 를 반복하던

사림파 , 대간들을 숙청했고

이때는 사림파들을 미워하던 훈구 대신들이

연산군에 합세해 같이 사림파들을 손봐주었습니다

 

당시 훈구파들은 나름 친왕파 , 보수적 성향이 강한 세력들답게

연산군의 사치를 방관하고 있었는데

연산군이 공신전 , 훈구파들의 경제기반까지 몰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훈구파들은 더이상 연산군의 사치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더 정확히 해석하면

 

'사치하던 말던 사실 알바아닌데

더이상 연산군의 훈구파들에 대한 이권침탈을 방치하면 안된다 생각해' )

 

연산군의 사치에 반발했고

 

그렇게 훈구대신들마저 연산군에 등을 돌려

사림파 , 대간들과 연합 전선을 형성했고

이에 연산군은 폐비 윤씨가 쫓겨나고 살해당한 것을 명분으로 해서

나머지 대간과 훈구대신마저 숙청해버리는데

 

당시 연산군은

외할머니 신씨를 만났고

신씨는 연산군에게 어머니가 남긴 피묻은 적삼을 보여주며

폐비 윤씨는

성종의 후궁이었던 귀인 엄씨와 숙의 정씨가 모함해서

살해당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피묻은 적삼을 보고 흑화하는 연산군

 

이에 격분한 연산군은 곧

귀인 엄씨와 숙의 정씨를 대령하여

창덕궁 뜰에 묶어놓고 피떡이 되도록 팹니다

 

연산군의 복수 , 고문당하는 귀인 엄씨와 숙의 정씨 , 사극 왕과 비

 

조선 제2정궁 창덕궁

 

두 여인의 아들 ,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안양군 이항과 봉안군 이봉이 잡혀 오자

연산군은 그들에게

 

<연산군>죄가 매우 큰 여자들이니 몽둥이로 때리라

 

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때리도록 명령합니다

결국 두 귀인은 모두 그날 사망했고

두 귀인의 숨이 끊어지고도 연산군의 매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후

연산군은

궐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복동생 안양군 이항과 봉안군 이봉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대왕대비전으로 끌고간 후

이항을 시켜 할머니 인수대비에게 억지로 술을 올리게 했고

역시 폐비윤씨의 죽음에 관여했던

시어머니 인수대비는 병중이었는데도

억지로 연산군의 술을 받았습니다

 

술을 마신 할머니 인수대비에게 연산군은

 

<연산군>어째서 내 어머니를 죽였냐

 

하며 할머니를 위협했고

이전부터 오늘내일 하고 있었던 인수대비는

손자의 폭력적 행동과 폭언에 충격을 받고

한달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수대비를 향한 연산군의 광기 , 사극 인수대비

 

이후 연산군은

당시 윤씨의 폐출에 동의한 신하들을 모두 찾아내라는 하교를 내리고

그들을 모두 사사(살해)합니다

 

갑자사화

 

[부관참시]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한 이세좌에겐

자살하라는 명을 내렸고

폐비에 동의한 윤필상에게도 자살을 명합니다

 

윤필상은 임금의 명을 듣고선

 

<윤필상>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연산군은 더욱 빡쳐서

이미 사망한 남효온 , 한명회 , 정창손 등을

부관참시(시체를 꺼내 다시 사형시킴) 시켰고

 

이렇게 갑자사화로

수많은 신하 , 대신들이 훈구 , 사림 할 것없이

갈려나가게 됩니다

 

무오사화때는 51명 처벌 , 6명 사망이었지만

갑자사화는 239명 처벌 , 122명 사망 혹은 부관참시라는

어마무시한 대숙청이었고

 

무오사화 이후에도 나름 신하들에게 형식적인 눈치를 보던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일으킨 이후부터는

대놓고 신하들을 무시하며 막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갑자사화 이후

브레이크가 완전히 사라진 연산군의 폭정이 시작됬고

여색을 탐하며 연회를 자주 열고

사냥을 너무 좋아해

신하와 백성들은 매번 연산군의 사냥 장소와 인원들을 동원하는데 고생하게 됬고

 

백성들이 가뭄과 홍수등으로 도탄에 빠짐에도

연산군은 놀이비용 마련에 골몰합니다

 

<라봉봉>사실 수양대군 세조 같은 경우도

연산군처럼 사냥을 좋아하고 호방한 성향이 강했는데

 

세조 역시 폭군기질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세조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라는 온전한 부모 밑에서

부모의 사랑과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나름 왕다운 왕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반대로 연산군의 경우는

세조와 비슷한 성향의 인물임에도

파탄난 가정에서 외로움속에서 성장한 인물이었고

왕이 되고서도 폭군의 면모를 이어갔기에

어린시절 아이들에 대한

올바른 가정교육과 부모의 중요성이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사실 연산군의 광기에도 불우한 성장 ,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것 때문에

나름 연민과 공감가는 면이 있기에

연산군과 폐비 윤씨 , 인수대비 등 이야기 ,

울분에 가득찬 충혈된 눈의 연산군의 광기 등은

사극에서 단골 소재로 사랑받는 이야기이고

 

사화나 연산군의 폭정에는 정치적인 문제 이외에도

워낙 비극적인 가족사도 엮인 문제라

나름 동정론도 많이 받는 인물입니다

 

요즘 역사가 워낙 다양하게 해석되다보니

아예 동정론 수준을 넘어서

사실 연산군은 유능한 왕이었는데

선비 , 신하들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당해

승자의 기록 역사에 폭군으로 묘사됬다는 등

허언들이 나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연산군은 워낙 많은 신하들을 자신의 사치를 위해 무고하게 살상했고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고

연산군을 폄훼하려 더 많은 과장된 기록이 들어갔다 한들

연산군은 동정론으로 감싸줄 수준을 넘어선 인물이고

폭군의 대명사라 불리고 있습니다

 

하여튼 조선에 폭군 연산군이라는 괴물이 탄생한 것은

성종의 업보이기도 했고

연산군 시대는 정치정쟁만이 아닌

왕실가족관계도 많이 엮여있고

왕의 폭정속 무언가 광기와 울분으로 가득차있기에

민중들에게 참 많이 공감을 받거나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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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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