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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5.16 군사정변>

[박정희의 복귀]

[만주군 인맥]

[육영수]

[장군 박정희]

[장면 내각 VS 군부]

[혁명전야]

[마지막 인사]

[진압군 VS 쿠데타군]

[장도영 VS 박정희]

[한강 인도교를 건너다]

[5.16 군사정변]

[혁명공약]

[육군본부 점령]

[미국의 침묵]

[국가재건최고회의]

<라봉봉>

 

[박정희의 복귀]

하여튼 ,

박정희는 남로당(공산주의) 에서 활동한게 딱걸려서

숙군시기에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곧 만주군 선배였던 백선엽 대령이 

만주군 수석이었던 박정희를 높이 사서 풀어주게 되었고

뒤를 봐주었는데

 

박정희는 백의종군마냥

민간인 신분으로 군에서

'실장님' 이라 불리며 군문서작성일을 했고

젊은 장교들과 술도 마시고 어울려 다니며 환심을 쌓고

훗날 5.16 군사정변의 인맥들을 만들고 있었고

 

남로당활동 이후 백의종군(?) 하던 박정희 실장

 

그럼에도 이도저도 아닌 민간인 신분이었기에

그의 처지는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1950년 6월 25일 ,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6.25전쟁) 이 터지자

결국 소령으로 현역에 복귀하며

좆될뻔하다 다시 부활합니다

 

군인시절 박정희

 

[만주군 인맥]

박정희는 만주군 , 일본육사 출신의

만주국 일본 장교 출신이었고

박정희와 박정희의 만주군 선배 , 동기들은

풍부한 경력이나 교육경험을 바탕으로

광복후 한국군으로 편입되었고

당대 이미 군경력자로서

한국군 내부에서 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었기에

만주군 수석출신인 박정희를 적극 살려준 것이고

 

사실 일본군 엘리트로 여겨지던

박정희 한명이 좆되면

나머지 만주군 , 일본군 출신 국군장교들도

곧 줄줄이 소세지로 다좆되버리는 상황이기에

규정 등을 무시하고 일단 살리고 보는 캐릭터였습니다

 

[육영수]

박정희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때 곧 중령으로 승진했고

 

1950년 11월

전쟁의 혼란을 틈타서

아내 김호남과 협의 이혼으로 갈라서고

 

1950년 12월 12일에는

곧바로 육영수 여사와 재혼합니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결혼식 사진

 

육영수 여사는 오늘날에도

사악한 독재자였던 박정희와 달리

올곧고 현명한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유명한 영부인이고

 

기품으로 유명한 육영수 여사

 

박정희와 궁합도 좋았고

박정희 역시 육영수 여사 생전에는

막나가지 않다가

육영수 여사 사후부터 점차 고삐가 풀려

폭군화 되었을 정도로

한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부인으로 유명합니다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군 갑부의 딸로서

명문여학교 배화고등여학교를 나온 고학력 여성이었고

이후 고향 충청북도 옥천군에 내려와 가사 교사를 했던 인물이고

 

박정희가 

한국전쟁으로 군에 복귀하자

1950년 8월 사촌 소개를 받아 육영수는

소령 박정희를 만납니다

 

박정희는 거의 조선 숙종임금마냥

3번째 여인인 육영수에게 큰 호감을 느꼈고

목이 길고 고상하게 생겼으며 자신과 같은 교사출신 엘리트 +

부잣집 딸이었던

육영수에게 호감을 느꼈고

 

당연 부자였던 육영수 아버지는

신식교육받은 딸내미가

8살 많은 전쟁통 군인+이혼남에게 시집간다하자

개빡돌았습니다

 

또 육영수 어머니는 육영수 사주를 무속인에게 보이니

무속인은

 

'후처 자리로 시집가면 육영수가 잘살기는 하지만

마지막에는 두 사람다 비극적 결말을 맞을 것'

 

이라는 불길한 사주를 내놓았고

가히 훗날 박정희-육영수 부부는 모두 총에 맞아 죽게 되고

자식들 역시 불운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끝내

육영수의 고집에

 

1950년 12월 12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34세의 박정희와

26세의 육영수는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고

 

주례를 하던 대구 시장은

두 사람의 이름때문에 

성별을 착각해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

 

이라 부르는 헤프닝도 있습니다

 

육영수는 아버지의 반대에 결국 가출해

박정희의 임지인 대구에서 살게 되었고

박정희와 금슬이 좋아 근혜 , 근령 , 지만(아들) 등

1남 2녀를 두었습니다

 

박정희 일가

 

하여튼 ,

숙군으로 죽을뻔하던

박정희 인생이 다시 떡상하던 순간이 이때였고

결국 박정희는 다시 원하던 군복무 +

원하던 여성상의 여인과 결혼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됩니다

 

[장군 박정희]

그러나 ,

그의 반골기질 , 혁명가+역적 기질은 변하지 않아서

박정희는 한국전쟁 , 국가적 혼란을 틈타

1952년 5월 군부의 이승만 축출 정변 시도에서 참여하지만

 

(거의 삼국지의 맹획처럼

계속 살려줘도 다시 죽이려드는 놈임ㅋㅋㅋ)

 

미수로 끝났고

다행히 소극참여 및 무산된거라

또다시 박정희는 안좆되버렸고

 

1953년 11월 25일에는 

육군 준장(별 1개 , 원스타) 에 승진해

끝내 그가 동경하던 '장군' 이 됩니다

 

1954년 포병사령관 박정희 준장

 

1957년 3월

소장(별 2개 , 투스타) 진급자 명단에 오를때

박정희가 남로당 경력 , 사상문제 , 결혼문제에

문제가 크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백선엽은 만주군 후배였던 박정희에 대해서

자신이 보장하겠다며 박정희가 진급하도록 도와주었고

 

결국 박정희는 슬슬 쿠데타를 일으킬 규모의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지휘관의 꽃' 이라 불리는

소장 , 투스타가 됩니다

 

1958년 박정희 소장

 

지금 대한민국 국군 기준으론

이런 좌우 왔다리갔다리하는 기회주의자 역적 캐릭터가

소장까지 진급하는게 불가능하지만

한국군 건군 초기는 20대 장군도 나오고

만주군 ,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주류였기에

이런게 쌉가능하던 시절이었고

결국 이들은 대한민국에 쿠데타로 보답해주지만

 

이승만이 이미 반공을 위해

친일경력자 , 친일파들을 다시 요직에 불러들일때부터

이런건 굳이 박정희가 아니어도

예고된 상황이기도 했고

 

군내부는 정치나 경찰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

대놓고 친일파 , 만주군 출신들이 주 요직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독립운동가 출신 반공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결국 반공을 위해 친일파들과 손을 잡다가

대한민국은 일본군 장교 출신들에게 칼통수를 제대로 맞게 됩니다

 

박정희가 소장 진급까지 된 것은

한국군에서 가히 호랑이 새끼를 키운 꼴이었고

만주군 수석 박정희는

한국군내 주류이자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만주군 , 일본군 장교 출신들의

아이돌 , 간판캐릭터였기에

박정희가 뒤지면 만주군 , 일본군들역시 줄줄히 숙청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쿠데타는 굳이 박정희 뿐만 아니라

해방후 이도저도 아니게 된

만주군 , 일본군 출신 장교들에게서 

최후의 발악 격으로

한번쯤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그나마 일단은 이승만이 반공을 국시로

군경을 강력하게 통제하며

친일파들에게는 패자부활전 , 유화적 제스쳐를 취해주자

일단 군부는

자유당 ,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입다물고 가만히 있었고

박정희 역시 마찬가지로 장군으로서

조용히 과거를 세탁하던 상황이었습니다

 

1955년 박정희 준장과 악수하는 이승만 대통령

 

[장면 내각 VS 군부]

근데 문제는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친일파 등용때문에

국민적 대반발을 받게 됬고

갈수록 독재 , 불법행위 등을 저질러

민심과 국회의원들이 모두 등을 돌려

결국 한국최초 시민혁명

4.19 혁명을 맞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해서 하와이로 망명가게 됬고

자유당은 멸망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헌법이 개정되어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 책임제가 되어

제 2공화국 , 민주당 장면 내각이 등장합니다

 

제 2공화국 , 윤보선 대통령(왼쪽) 과 장면 총리

 

청렴하지만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던 장면은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민주당은 파벌갈등 , 군경 통제실패로

사회는 극도로 불안 , 혼란해지고 있었고

 

이시기 장면총리는 경제개발을 위해

당시 국가예산의 40%가 넘었던 국군예산을

20%로 감축하는 등으로 예산을 만들려 했고

 

당시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된 상황이라

한국군은 급격히 비대해졌고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자

장교들의 진급적체도 심각해지던 상황이러

군 내부에서는 장면내각에 극도로 반발하던 상황었습니다

 

그러다 장면 총리는 박정희 소장을 조사하다가

그가 남로당 , 좌익 출신이었음을 알게되었고

박정희는 결국 궁지에 몰려서

언제 숙청 , 전역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됬는데

 

궁지에 몰린 박정희 소장은 결국

진급적체 + 전망이 불분명해진 장교들을 선동해

4.19 시민혁명을 잇는

군사혁명이라는 이름하에 쿠데타를 계획합니다

 

박정희는 1961년 4월 19일 ,

4.19 혁명 1주년 기념식때 사회혼란 시위를 예측하며

그날을 거사일로 잡았지만

하필 그날은 아무런 시위도 없었고

당황한 박정희는

결국 5월 16일로 계획합니다

 

[혁명전야]

이미 군 내부에서는

박정희 소장의 혁명 모의를 알고 있었는데

박정희 이놈을 구속하냐 마냐에 대해서 검찰총장과 논의도 있던 상황이었고

 

이런 시기 박정희는 쿠데타 이야기를 하며

 

<박정희>군이 한번 나서서 깨끗이 쓸어버린 뒤

병영으로 돌아간 다음에

정치를 감시하다가 마음에 안들면 또 나오면 되는거야

이게 버마 네윈 식이지

 

하는 말이 나왔고

박정희와 장교들도 5.16 군사정변 하루 전인

5월 15일 ,

역적이 될지 , 성공한 쿠데타가 될지 모르는 불안감등에

집에 유서도 미리 써놓고 손톱도 깎아 놓았고

가족들에게 자식들을 잘 키우라 당부하기도 했고

5월 16일날 뿌릴 삐라(선전 전단)들을 인쇄할 준비도 마쳐놓습니다

 

해병대 역시 5월 15일 아침부터 출동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고

해병대원 , 참모들은 그저 야간훈련을 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거대한 쿠데타를 꾸미고 있음은

사실상 웬만한 군장성들이 다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장성들은 장면총리에게 보고해서

적극적으로 쿠데타를 저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고

이는 당시 군부가

장면내각 , 제2공화국이 그저 민주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지 않았고

장면정부에 애착과 충성심이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인사]

그렇게 , 쿠데타 전날의

1961년 5월 15일 월요일

박정희 집안의 육영수는

신당동집에서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고

근혜와 근영 두 딸을 학교에 보낸 뒤

파출부 아줌마를 불러서 차비를 넉넉하게 주며

고향에서 2~3일 쉬다 오라했고

 

이날 박정희 집에는

김종필 , 장태화 이낙선 등

박정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종일 문건을 읽고 고치고있었고

육영수는 이들에게 커피와 과일을 올렸습니다

 

이날 ,

밤이 되자

육영수는 근혜 , 근영 , 지만 3남매를

안방에서 자도록 했고

밤 10시가 되자

박정희가 있던 방으로 건너가

장태화 , 김종필 , 이낙선과 일어나 출동준비를 하고 있던

박정희에게

 

<육영수>저 보세요

 

하고는

 

<육영수>근혜 숙제 좀 봐주시고 나가세요

 

했고

쿠데타 직전 박정희는

 

<박정희>어 , 그러지

 

하고 책상에 앉아있던

국민학교 5학년 박근혜를 굽어보고

잠들고있던 근영 , 지만에게 눈길을 주고는 나왔습니다

 

이에 장태화는

 

<장태화>무슨 숙젭니까 

 

하고 물었고

박정희는

 

<박정희>어 , 뭐 그림 그리는거야

 

하고 대답했는데

장태화는 이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박정희-육영수 부부와 가족들의 순간을 인상적이게 보게 되었습니다

 

<훗날 박근혜>그날 아버님께서 들어오셔서

저를 한번 보고 나가신 것은 기억나는데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

 

어머님께서는 집안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긴장되어 있었으나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어머님께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변을 정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리 연좌제가 사라졌다지만

결국 쿠데타 , 반역은

실패시 집안이 풍비박살나기에

개인의 목숨뿐만 아니라

일가족의 목숨이 전부 걸린 상황이기도 했고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기 전

주저하던 왕건에게 갑옷을 입혀준 신혜왕후 ,

 

계유정난 전

정보누설로 거사를 망설이던 수양대군 세조에게 갑옷을 입혀준 

정희왕후가 생각나는

 

5.16 군사정변 전

집안을 정리하며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가족들을 한번 다 둘러보게 한

육영수 여사의 일화이기도 하고

 

결국 이날밤 박정희는 칼을 뽑 ,

아니 총기를 들고 일어나게 됩니다

 

[진압군 VS 쿠데타군]

박정희는 김종필과 대기중인 지프차에 올랐고

곧바로 박정희가 탄차에

군수사기관의 미행차가 따라붙었는데

결국 11시쯤 박정희는 신당동 자택에서 출발해

한강 인도교를 넘어갔습니다

 

박정희는 약속시간보다 1시간 지각해서

군 6관구에 나타났고

 

당시 상황을 파악한 군부는 이미 쿠데타 저지에 나서고 있어서

결국 6관구는 반란 진압부대와 쿠데타군이 엉켜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쿠데타군을 체포하려 온

헌병들이 들이닥쳤는데

헌병 장교와 쿠데타군 장교는 친했던 같은 육사 동기였고

쿠데타군들은 상황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절대로 기가 죽어선 안된다 생각합니다

 

<쿠데타군>야 너 아직 몰랐냐 ?

우리 혁명하는거 ?

 

<헌병군>뭐라고 ?

우리는 널 체포하러 왔단 말이야

 

<쿠데타군>누가 누굴 체포해 ?

잘못하면 네가 체포당하게 되어 있어

 

<헌병군>이봐 잡으러 온 사람보고

그런 농담하지마

자세히 이야기 좀 해봐

 

<쿠데타군>잘들어 ,

지휘관은 박정희 장군이시고

해병대 , 공수단 , 그리고 육해공군 전체가 참여하고 있어

임마 ,

잘못하면 너희들이 다 잡혀들어가

 

 

결국 헌병군들은

쿠데타군들의 임기웅변 , 뻥카에 혼란에 빠졌고

 

이렇게 반란군과 진압군 장교들이 뒤범벅이 된 상황에

박정희가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옵니다

 

장교들의 시선은 박정희에게 집중되었고

박정희는 피아가 뒤섞인 수십명 장교들 사이에서

연설합니다

 

<박정희>여러분 , 

우리는 4.19혁명 후

그래도 나라가 바로잡혀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나라 꼴입니까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장관들이 호텔방을 잡고

돈보따리가 오고가는 이권운동 ,

엽관운동에 여념이 없으니 이게 무슨꼴입니까

 

자유당 정권을 능가하는 부패와 무능으로

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는 이 정권을 보다못해

우리는 목숨을 걸고 궐기한 것입니다

 

동지들도 이제부터 구국혁명의 대열에 서서

각자 맡은 임무에 전력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군인들은 박정희에 연설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이때 박정희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번 혁명은 어떤 경우에도

무혈(피를 흘리지 않음) 로 해야한다며

평화적 방법을 강조했습니다

 

[장도영 VS 박정희]

결국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장군은

박정희와 전화통화를 하게 됬고

장도영 장군은 박정희를 달래려 노력합니다

 

장도영

 

<장도영>박장군 그곳에는 뭐하러 가있소

오늘 예정되었던 야간훈련은 모두 취소시켰으니

집으로 돌아가시오

 

<박정희>망해가는 이 나라를 구출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사전에 양해를 받지 못한 것은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장도영>여러말 마시오 이번에는 장면정부에 대해서

경고하는 정도로 그치고

내일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를 해봅시다

 

<박정희>이미 부대는 출동을 개시했습니다

 

<장도영>부대의 출동은 내가 금지시켰어요

박장군 , 취한거 같은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

 

<박정희>아무리 그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보고만 계십시오

 

흥분한 박정희는 전화기를 꽝소리가 날정도로

내려 놓았고

위기에 몰린 장교들 역시 오직 박정희 한명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강 인도교를 건너다]

5월 16일 새벽 2시 ,

박정희는 6관구사령부를 나와서

지프차에 올랐고

이미 엎질러진 물속에 장교들 역시

박정희를 따라서 출동하기 시작합니다

 

박정희는 해병대와 만나서

해병대가 이상없이 출동했음을 확인했고

당시 육군은 주저했지만

해병대는 성공하던 실패하던 육군에 당할 것이라는 생각때문에

결국 해병대와 공수단은 새벽 3시 30분경

한강 인도교 남단 노량진쪽에 도착했고

무슨일인가 보러온 경찰관들에게 해병대 병사들이 공포를 쏘자

경찰관들은 달아났습니다

 

장도영은 쿠데타군의 서울진입을 막기위해

한강 인도교를 저지했는데

쿠데타군과 총격전이 벌어져

헌병 3명 , 해병 6명이 부상했고

 

박정희 소장은 차에서 내려

총탄이 날아오는 한강다리를 상체를 숙이지도 않고

걸어서 건너기 시작합니다

 

쿠데타 군인들은

6.25 전쟁때 전쟁경험으로서

아무리 사람이 빨라도 총알을 피할 수 없고

총알이 사람을 피하지 사람이 총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숙이지 않고 꼿꼿이 걸어나갔고

 

저지선이 있다는 말에

박정희는 침착하고 단호하게

 

<박정희>그대로 밀어버리시오

 

했고

박정희는 해병대가 작전하는 것을 바라보며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물었고

이석제 중령은 박정희에게

 

<이석제>각하 , 일이 끝내 안되면

각하 바로 옆 말뚝은 제 것입니다

 

이에 박정희는 씩 웃으면서

 

<박정희>사람의 목숨이 하나뿐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죽어서 쓰나

 

하고 말했습니다

 

또 박정희는

일본말로

 

<박정희>주사위는 던져졌어

 

하고 중얼거립니다

 

한강 인도교를 건너는 박정희

 

박정희가 한강 인도교를 건넌 것은

가히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널때

 

'주사위는 던져졌다'

 

말한것 처럼

군인 박정희의 황제의 길 ,

반역이 시작된 것이었고

가히 로마황제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과 같았습니다

 

[5.16 군사정변]

결국 육본 헌병들은 총격에 겁먹고 도주하며

5월 16일 4시 15분경

한강 인도교를 저지하던 트럭 바리케이드가 뚫렸고

쿠데타군은 조용히 서울로 진입해

중앙청을 접수합니다

 

중앙청을 지키는 정변군

 

서울의회 앞을 지나는 정변군의 셔먼탱크

 

5.16 군사정변

 

장도영은 이때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피신을 권했고

반도호텔에서 머물던 장면총리는 놀라서

장도영에게 직접 와서 자세히 보고해달라 말했고

 

윤보선 대통령 역시

놀라 노모와 처자들만 피신시키고 자신은 청와대를 지키기로 합니다

 

결국 놀란 장면총리 부부는 서둘러 전용차에 몸을 실었고

미국 대사관도 닫혀있자

결국 혜화동 로터리의 카르멜 수녀원으로 피신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점차

무장한 쿠데타군은 서울 거리를 통제하며

신분을 확인하고 있었고

광화문 거리엔 기관총이 설치됩니다

 

박정희는 공수단으로 하여금

방송국을 점령하도록 시켰고

 

해병대와 공수단은 한강다리를 건너

용산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해병대 선두부대는 맞은편에서 오는

6군단 포병단 병력과 만났고

포병들은 육본을 점령한 후였습니다

그렇게 5.16 군사정변이 시작됩니다

 

[혁명공약]

박정희는 육본으로 가지 않고

곧장 중앙방송국(KBS)이 있는 남산으로 달렸고

 

박정희는

군대시설보다 먼저 언론 , 마이크를 쥐어야

쿠데타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방송국에 총성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현관을 통해서 안으로 몰려들었고

숙직실 직원들은 여기저기 책상 밑으로 숨어듭니다

 

박정희 소장도 이때 도착했고

한웅진 준장은

 

<한웅진>빨리 아나운서와 직원들을 찾아서

데리고 와 !

 

했고

공수부대원들은

아나운서와 방송 기술자들을 찾아섭니다

 

박종세 아나운서와

방송기술직원들이 결국 공수단원에게 잡혀왔고

방송실엔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곧 박정희와 쿠데타군의 혁명 공약이 방송됩니다

 

 

<혁명공약>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 입법 ,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과 기성정치인들에게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 혁명 위원회는

 

첫째 ,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 동포 여러분 ,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 궐기군 만세 !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중장 장도영

 

(혁명공약은 쿠데타를 교묘하게 혁명으로 포장하는

나름 명문으로서

훗날 한국 학생들이 달달 외워야 했음)

 

혁명공약

 

[육군본부 점령]

아침 7시

박정희는 남산을 출발해

해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육군본부 , 육본으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미국 고문단장 하우스 장군이 나왔고

하우스 장군은 지휘봉으로 박정희쪽을 가르치며

영어로 쌸라쌸라했는데

같이 있는 사람은 무슨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험악한 분위기였고

이에 박정희는 미국 하우스 장군에게

 

<박정희>우리가 살 길은 이 길 뿐이다

너는 간섭하지 말고 비켜 !

 

이에 풀이 죽은 하우스 장군은

길을 비켜주었고

결국 박정희는 육본까지 점령합니다

 

육군본부

 

[미국의 침묵]

청와대의 윤보선 대통령은

내각책임제에서의

허울뿐인 허수아비 대통령이었지만

이전부터 장면 총리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많았고

싸우기도 했기에

장면을 좋아하지 않았고

쿠데타가 일어나자 진압명령도 내리지 않고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고

 

이에 미국 매그루더 사령관은

수녀원에 숨어버린 장면 총리 ,

아무것도 안하는 윤보선 대통령에 충격과 분노를 느꼈고

미국은 5.16 군사정변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는 사이 군인들은 계속 주요기관들을 장악했고

 

오후 5시 30분 ,

쿠데타군은

국회 해산 , 일체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모든 구정치인과의 협상을 배격한다는 포고를 내립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결국 5.16 군사정변으로

허수아비 장면내각 , 제2공화국은

군부에 의해 무너져버렸고

쿠데타는 성공해서

장면총리는 5월 18일 하야하고

윤보선 대통령은 압박을 받고  

박정희와 쿠데타군을 승인해버려

박정희는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에 취임해

5월 20일 군사내각을 발표한 후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해

군정을 이끌게 됩니다

 

박정희와 윤보선 대통령의 만남

 

박정희는 5.16 정변이후

민심을 얻기 위해

구악일소(옛날의 악을 제거)라는 명분으로

부패공무원 4만명을 공직에서 추방했고

이승만 정부 시절 이승만 자유당에 붙어

국민들을 위협하고 괴롭혔던

이정재 등 정치깡패들을 잡아서

사형시켰고

 

사형당하기 전 조리돌림 당하는 이정재

 

4.19혁명때 민간인 발포명령을 해서

무고한 시민을 사살한 곽영주도 사형시켰고

 

이승만 경호실장이었던 곽영주

 

박정희는

민주주의라는 간판을 걸고

암걸릴거 같은 답답한 행정을 하던

장면 총리와 민주당과 정반대되는 급진적 개혁을 실시하며

점차 국민들의 환심을 얻어가기 시작했고

일부 지식인들 역시 방만했던 장면내각을 싫어했기에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 , 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 지지하기도 합니다

 

<라봉봉>무슨 큰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항상 조짐이 반드시 보이는데

5.16 군사정변 역시 박정희 개개인의 야심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만 보기 어렵고

이전 이승만 정부대 친일파 인사들이 그대로 군에 입대했기에

결국 친일파들은 이승만 정부 붕괴 , 4.19 혁명 이후부터는

다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박정희라는 간판을 내세워 일어난 것이기도 합니다

 

의외로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기보다

당시 정치인 , 군인들 할 것없이

이런 상황이 한번쯤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대략 예상하고 있었고

 

이 시기를 시작으로

한국은 오랜 , 30년간의 군사독재 시기가 시작됩니다

 

박정희는 이순신 장군과 나폴레옹을 존경했기에

인생에서 그런 그들의 인생이 보이기도 하지만

김옥균이나 공화정을 전복시킨 카이사르의 모습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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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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