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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제4공화국(유신정권)>

[빛과 어둠]

[부정선거]

[10월 유신]

[제4공화국]

[김대중 납치 사건]

[유신시대]

[육영수 저격 사건]

[박정희의 엽색행각]

[어둠의 유신말기]

[10.26 사건]

<라봉봉>

 

[빛과 어둠]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단기간에 눈에 띄는 고속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각종 국가 인프라를 설치하며

극빈국 , 후진국 수준이었던 대한민국을 중진국 수준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 박정희

 

그러나 ,

그런 빛나는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쿠데타 , 언론통제 ,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보수 리즈시절이었던

당대에도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많았고

 

경제에는 유능했지만 민주주의 , 인권에서는 취약했던 인물이기에

당대에도

국민 절반이 지지 , 

절반이 싫어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 , 제3공화국 초기는 그래도

워낙 전정권인 민주당 윤보선+장면 내각이 부패하고 무능했기에

군사혁명을 주장하며 일어난 박정희에 대한 

기대+설레임도 컸고 

실제로 급진적 개혁과 농민+빈민을 위한 정책을 폈기에

박정희에 대한 지지도 상당했는데

 

점차 박정희도 약발이 떨어져갈쯤

박정희는 국민 , 자신의 여당 공화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끝내 3선개헌을 실시해

3선에 나섰습니다

 

3선개헌 반대시위

 

[부정선거]

이에 7대 대선이 실시되며

야당 신민당(민주당) 의 다크호스로 나타난

젊은 대선주자 김대중이 약진하며

박정희와 맞붙었는데

 

7대 대선 포스터

 

위기감에 몰린 박정희는 

표확보를 위해 국가 예산 1/7 인 

700억원을 쏟아붓는 또라이짓을 시행했고

야당 김대중 후보는 박정희에 맞서 거의

3.15 부정선거같은 불공정 대선을 치루게 됩니다

 

그럼에도 민심은 속일 수 없었기에

박정희는 부정선거 , 온갖 무리수까지 다 뒀음에도

 

53.19%(박정희) VS 45.25(김대중)

 

라는 득표차로 간신히 재집권에 성공하였고

온갖 난리를 쳤음에도 듣보잡 정치신인 김대중 후보에게

겨우 이긴 박정희 역시 빡돌게 됩니다

 

선거 다음날 박정희는

 

<박정희>이것 .

내가 그래도 그동안 잠자고 있던 국민이 일어서서 일하게 하는 세상을 만들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기여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

김대중씨가 뭐를 했다고 95 차이밖에 나 ?

내가 이름이 나도 김대중보다 났고 ,

선거비용을 써도 김대중보다 훨씬 많이 썼는데 말이야.

행정력은 얼마나 사용했나.

선거라는 민주주의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긴 하지만 이게 큰일 수도 있어.

다음엔 김대중이 될지도 몰라.

선거를 하다 보면 앞날을 제대로 내다보고 건전하게 나라를 열어 위인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 뽑힐 있어.

그럴 조국 근대화라는 혁명 과업에 지장이 생길 있어.

그러니 특수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없어

 

 

근데 실제로 박정희 역시 독재자였지만

경제 등 뚜렷히 잘한 면도 있어서

국민적 지지도 컸던 인물인데

그런 그는 국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자신의 업적에 도취되어

이번에도 무난하게 당선될 것을 기대했지만

 

결국 독재에 지쳤던 숨은 민심은 김대중을 택해

김대중 후보에게 질뻔하며 체면을 구겼고

만약 부정선거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당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부분으로도 박정희에게 불리했는데

60년대 10%대 고도경제성장률은

70년대들어 한자리수대로 떨어져버리며

인권보다 경제성장을 내세우던 명분도 줄어들어가고 있었고

 

국제분위기도

미국과 중국이 회담을 하는등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에서 평화무드가 흐르자

박정희는 반공을 내세우던 명분도 줄어들어가고 있었기에

 

결국 박정희는 

다음 대선에서는 더이상 민주주의 방식으로는

자신 혹은 여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다 판단했고

또다시 폭력성향을 드러내며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10월 유신]

5.16 군사정변이 군사쿠데타였더라면

이후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더이상 군대를 동원할 명분은 없었고

눈엣 가시였던 야당과 김대중을 두드려 패기 위해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

 

이라는

친위쿠데타 , 정치쿠데타를 일으킵니다

 

10월유신을 선포하는 박정희정부

 

유신은 낡은 제도를 고쳐서 새롭게한다는 뜻으로

개혁의 다른 의미이기도 하고

메이지 개혁 , 메이지 유신의 그 유신이기도 한데

 

궁지에 몰린 박정희는

1972년 10월유신을 선포해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 ,

전국에 비상계엄령 ,

모든 출판과 언론활동을 검열했고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하며

대한민국 황제 , 초법적 독재자가 되어

민주주의+대통령 중심제인 제3공화국 헌법을 폐기시키고

 

대통령 직선제 폐지 ,

국회의원 1/3 을 대통령이 임명 ,

대통령이 헌법까지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 부여 ,

국회해산권과 법관임명권 , 법률거부권으로 대통령이 3권위에 군림가능 ,

대통령 연임제한 철폐 ,

대통령 간선제

 

의 사기적 내용을 담고 있는

10월 유신을 선포하는데

 

박정희는 나름 자신이 앞장서서

총대매고 가난한 나라의

경제를 살려보겠다 나선건데 야당이 ㅈㄴ게 반발하고

국민들 절반까지 등을 돌리니

엄청난 위기감을 느낀 것이었고

 

이미 총칼로 정권을 잡은 무신정권 무신집권자였던 박정희는

독재자들의 딜레마가 그렇듯이

만약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정권을 잃게 될 경우

곧바로 법의 심판으로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기에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며

마지막 발악을 한 것이었고

사실상 죽을때까지 자신이 집권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4공화국]

그렇게 대한민국 제3공화국은 폐지되고

유신정권 , 제4공화국이 시작되는데

 

유신 대통령(박정희) 은 긴급조치를 실시하며 혼자서 법을 무시해도 되고 (사법부) 

국회의원 1/3을 지꼴리는대로 뽑기도 가능하고 (입법부)

간선제로 자신이 뽑은 국회의원들에게 평생 대통령직을 보장 (행정부)

 

이 가능하는

완전체 독재자가 된 것이었고

 

유신헌법 내용

 

박정희는 더이상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대통령이 아닌

모든 법위에 섰던 나치 히틀러 총통처럼 된 것이었습니다

 

총통이 된 박정희

 

[김대중 납치 사건]

박정희는 곧바로

이전 자신과 대선에서 비등하게 맞선 후

유신반대운동을 주도하던

눈엣가시였던 김대중을 죽여버리려 했고

 

중앙정보부(오늘날 국정원) 요원을 시켜

일본 도쿄에 있는 김대중을 납치해

바닷가에서 배에 태워 묶어서 바다에 던지려 했는데

정보를 입수한 미국의 반발에

겨우 살아났고

 

납치 사건 이후 기자들에게 사건을 인터뷰하는 김대중

 

일본은 자국내에서 한국요원들이 김대중을 납치한 것에 대해

주권침해라며 반발했고

미국 역시 박정희가 야당 유력인사였던 김대중을 죽이려 한 것에 대해

반발하며

 

유신독재자 박정희는

국내에서는 독재자라 반발받고

국제사회에서도 고립됩니다

 

[유신시대]

이 시기에도 박정희는

1973년부터 새마을운동 ,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며

경제발전에 열을 올렸고

국제유가위기에도 오일머니가 넘치던 중동에 건설회사와 근로자들을 파견해

경제를 회복시켰습니다

 

1976년 5월 포항제철 고로에 불을 붙이는 박정희 대통령

 

1976년 6월 사우디왕자와 주베일 산업항 공사 계약을 체결하는 현대 정주영 회장

 

하여튼 ,

그럼에도 법을 무시한 초법적 인간이 된 박정희였고

지 맘에 안들면 다 죽이려 했기에

 

이 시기를 대한민국의 암흑시대 ,

유신시대라 부르고 있고

유신은 원래 개혁을 뜻하는 좋은말이지만 지상락원을 외치는 북한처럼

독재라는 뜻으로 변질된 용어가 되버립니다

 

[육영수 저격 사건]

총으로 흥한자는 총으로 망한다 ,

인과율의 원칙

이라는 말들처럼

 

김대중을 죽이려했던 박정희는

곧바로 1년후 자신이 총에 맞을뻔하게 되는데

 

물론 김대중세력이 보복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사라는게 꼭 A와 주고받지 않더라도

선 혹은 악의 씨앗을 뿌리면 다른 B 나  C 등에게라도

반드시 돌아온다는 그런 것은 있듯이

 

김대중 납치사건 1년후인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

 

유신대통령 박정희는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경축사를 읽던 중

갑자기 재일 조총련계 공산주의자 문세광이 쏜 총성이 울렸고

 

곧바로 박정희는 연설대 뒤에서 숨어서 무사했지만

문세광이 난사한 여러 총탄 중 하나가

박정희 단상 옆에 앉아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머리에 맞았고

이외에도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 장봉화양이 피살당해 숨졌습니다

곧 문세광은 잡혀서 사형당했고

 

육영수 저격사건

 

사람들은 박정희는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육영수 여사는 평소 선한 성품으로 박정희가 ㅈㄹ할때마다 잘 다독인 인물이었기에

육영수의 죽음을 국모의 죽음처럼 진심으로 슬퍼했고

 

육영수 여사는 평소

 

박정희 견제 + 한센병환우 돌봄 + 전태일의 뜻을 듣고

노동자권익에 힘쓰는 모습 + 아동복지에 노력

 

여러 선한 행보를 보인 영부인으로서

 

육영수 여사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에게 영부인으로서

가장 기품있고 인상적인 영부인으로 기억되고 있고

박정희에 맞섰던 반체제 , 민주화운동가들 역시

당대나 오늘날까지 육영수에 대한 비판은 자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부창부수 , 끼리끼리라고

육영수 역시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킬때나

10월유신을 선포했을때도 끝까지 같이 있었던 것을 보면 ,

 

육영수 역시

독재자 남편 권력덕을 본 인물로서

선한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일종의 전두환을 달래던 노태우 같은 인물이었고

 

박정희와 육영수

 

그럼에도 박정희 역시 육영수 덕분에

자신의 나쁜 이미지가 많이 중화되기도 하고

내조덕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육영수 사후 정신적 충격이 엄청나게 커졌고

 

결국 박정희가

정적 김대중에게 쏜 총알은

돌고돌아 마누라 육영수에게 박혀버린 꼴이 된 것입니다

 

 

[박정희의 엽색행각]

육영수 여사 사후부터 항상 날선 칼같았던 박정희는

아내라는 정신적 안식처 및 견제장치가 사라져

허무 , 감상적으로 변했고

 

옛날엔 엄격한 관리자의 모습을 보였지만

점차 무언가를 놓은 모습이 되었고

 

박정희는 재혼하라는 권유에도

더이상 결혼을 하지 않고

권력을 이용해 연예인들을 따먹고 돌아다녔는데

 

최후때까지 주색과 함께였던 박정희 ,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코리아게이트

 

박정희는 연산군이 채홍사를 통해 미인들을 잡아왔듯이

경호실을 통해 20대 초반의 연예계 지망생 등을 데려왔고

심지어 신혼유부녀까지 잡아와 성노예로 부려먹었고

박정희 명령을 거부하면 연예인 , 제작사들은 수입이 끊기거나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결국 강제로 이 독재자의 비위를 맞춰야 했습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변호인>

궁정동 안가 불려가 박 전대통령 거쳐간 여성 200명 넘었다 ,

웬만한 일류 연예인들은 전부 불려가

 

박정희는 육영수 여사 생전에도

이짓거리를 하다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는데

육영수 여사 사후부터 더욱 심해졌고

 

박정희를 모시던 사람들 , 박정희 지지자들 역시

만주군(일본군) 입대와 더불어 박정희의 여성편력은

차마 실드를 못치는 더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박정희를 모시던 경호원들 역시

패륜의 극치이자 폭주하는 음란왕 박정희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더이상

초기의 혁명을 해서 부패한 나라를 바꿔보겠다는 멋진 주군이 아닌

결국 그들과 똑같은 추악한 독재자를 모시고 있음에 자괴감이 들게 되었고

 점차 박정희 역시 주변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유신독재를 선포하는 순간부터

박정희에게 민심은 싸늘했고

육영수 사후부터는 더이상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유신시대는 그저 암흑시대이자

박정희는 폭군취급일 뿐이었습니다

 

1970년대 국기하강식을 보며 가슴에 손을 올리는 시민들 , 통제사회였던 유신정권

 

[10.26 사건]

1977년 간접세인 부가가치세가 도입됬는데

직접세와 달리 부가가치세는 물건을 사면

물건에 자동으로 세금이 포함되있는 간접세였고

이에 국민들의 반발이 심했고

또 다음해에는

2차 오일쇼크가 터져 물가가 폭등해

서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더이상 박정희는 민주주의도 , 경제도 수호하지 못하는

쌉퇴물 대통령이 되버립니다

 

국제적 상황으로는

북한(물론 국내기도함) 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저질러

남북관계가 악화되었고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미국의 김대중 대통령인 미국 지미카터 대통령이

인권을 부르짖으며 주한미군 철수 등을 하려하자

박정희와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박정희 역시 미군철수에 반발하며 핵개발을 시행합니다

 

박정희와 지미카터 대통령

 

1968년 한국원자력발전소를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정부 , 유신정권 말기는

국내 , 국외에서 더이상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암울한 상황이 되었고

 

유신독재 말년인

1979년 8월 9일 가발회사

YH무역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근로자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시위를 벌였고

이에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신민당총재 직무 정지 , 국회의원 제명이 되버렸고

 

YH무역사건

 

결국 시민들은 드디어 폭발해

1979년 10월 16일

부산·마산민주항쟁(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납니다

 

부마항쟁

 

부산의 도심시위 , 곽영화

 

이렇게 항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연예인과 술자리를 하다

유신정권 2인자였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고 사망합니다

(10.26 사건)

 

10.26 사건

 

박정희의 죽음 , MBC 제5공화국(第五共和國) (2005) The Fifth Republic

 

김재규는 박정희와 가까운 유신정권 핵심인물이었는데

그런 그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환멸을 느껴가다

결국 우발적+충동적인 감정으로 박정희를 살해했고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키려 혁명을 했다는 주장을 한 후

사형집행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라봉봉>고인물은 썩는다거나 ,

장기집권=독재

라는 이미지는 있지만

사실 저는 장기집권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1세계 선진국들에서도

장기집권은 있는 일들이고

그 과정이 민주적이라면

괜히 검증안되고 자질이 부족한 새인물을 뽑아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바에

기존 유능한 지도자를 계속 재신임하는게 

경제 , 정치학적으로도 맞다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당대 박정희도 굳이 무리수를 안두고

민주적으로 정당하게 개헌해서 장기집권을 했더라면

그를 지지하는 보수층과 절반의 국민들 및

그동안 경제발전의 성과로서

충분히 승산도 있었을 것이라 보는데

 

유신이라는 말도안되는 온국민 , 전세계 , 자신의 편들까지 경악할만한

말도안되는 무리수를 둔게 박정희였고

 

또한 그런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게

박정희는 애초에 과거가 국민들 상식에서 심각하게 벗어나는 너무 불결했던 인물이었고

이미 5.16 군사정변 , 쿠데타를 시작한 순간부터

악마와의 계약 , 데스노트를 손에 쥔 라이토처럼

계속해서 국민들을 속여가며 폭주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도 했고

결국 유신이라는 무리수를 두며 이승만처럼

영구집권으로 끝까지가자는 심보로 가며 황제처럼 군림하다

흥분한 부하의 총에 맞고 사망한 것입니다

 

박정희는 비록 여러 어둠의 행적을 보인 독재자였지만

가난한 조국을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기도 했으며

이런 의의와 한계로 인해

그의 고향 경상북도에서는 그를 위인처럼 여기고 있고

반대로 그에게 탄압을 받았던 지역 , 인물들은

그를 거의 악마 수준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한국경제대통령이었던 박정희 ,

'잘살아보세' 외쳤던

그의 의도 역시 충분히 의의가 있지만

그 수단은 피와 총으로 얼룩져있었고

결국 역사속 찬탈자 , 독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평생동안 죽음의 두려움속에서 고통받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누군가는 박정희에게서

풍운의 혁명가 김옥균 , 나폴레옹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박정희에게서

사악한 독재자 히틀러를 볼 수도 있습니다

 

단 ,

박정희는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을 법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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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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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필귀정 2021.01.23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출세와 성공과 권력욕을 위해 조국, 민족, 동료를 팔고 민주주의를 파괴했습니다. 너무 기회주의적인 삶을 살았지요. 황태성까지도 죽였으니까요. 그러니 마음 나눌 친구도 없고, 술과 여자를 끼면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하들에게까지 신임을 잃었지요. 과정이 잘못되었는데 결코 좋은 결과가 올 리 없지요. 자신의 열등감을 자기객관화로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한다는게 역사의 굥훈이라면 교훈일 겁니다.

    • 라봉봉 2021.01.23 2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당대 정치계에 박정희만한 인물이 없기도 했고 평범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마치 연개소문 열전을 쓴 김부식의 말처럼 당대 나라에 사람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죠 , 원래 별볼일 없는 인물들 보다는 잘하는 녀석들이 실수하는게 더 아깝기도 합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이죠 사실 그냥 박정희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다 그런 면이 있어요 , 또 민주당쪽은 민주주의는 지켰지만 민생과 경제를 파괴했죠 , 한국은 자원도 없어서 외국보다 청렴과 도덕성 기준이 매우 높고 서양 지도자처럼 평범한 인물이 대통령 해먹기 참 힘든나랍니다 우리가 더 좋고 민중을 위하는 인물을 바라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