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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독총리 최규하>

[국무총리]

[우연과 운명]

[엘리트 코스]

[영어실력]

[이승만정부 외교관 최규하]

[민주공화당]

[검소한 애국자]

[조용한 외교]

[외교왕 최규하]

[국무총리 최규하]

[대독총리]

<라봉봉>

 

[국무총리]

그렇게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을 선포하며 영구집권을 꿈꾸며

오랜 18년간의 독재를 하다가

박정희 정부의 실질적 2인자였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을 맞고 암살당했고

 

박정희의 죽음 , MBC 제5공화국(第五共和國) (2005) The Fifth Republic

 

이미 박정희 말년대부터 반독재 , 반유신 시위로 전국이 난리였지만

급작스럽게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대혼란이 시작되고

그 대혼란속에 독재자가 죽었다는 것에 대해

민주화열기 , 소망도 하나하나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박정희 죽음 이후 민주화를 열망하며 모인 서울시민들 , 서울의 봄

 

한국과 미국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로서

대통령이 재임도중 사망할 경우

새로 대선을 치루는 것이 아닌

정권의 헌법상 2인자인

한국은 국무총리 ,

미국은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는데

 

링컨 암살후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 , 그러나 역시 링컨의 후광에 밀려 듣보잡행

 

당시 박정희 유신정권의 2인자이자 국무총리는

최규하였고 

최규하 역시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10대 대통령 최규하

 

박정희는 애초에 자신과 함께한

5.16 군사정변의 충복이었던 군장교출신 정치인 김종필을 2인자 , 후계자로 해놨지만

국무총리까지 하며 박정희의 세자역활을 하던

김종필은 박정희가 생각보다 깔끔하게 2선만 하고 물러나는게 아니라

3선 , 유신까지 하며 ㅈㄹㅈㄹ하자

환멸을 느껴

1975년 12월 건강상 이유로 국무총리직에서 사퇴했고

 

정치거물 , 만년세자 , 영원한 2인자 김종필

 

박정희 역시

영구집권을 꿈꾸며

김종필이 그냥 닥치고 세자자리에만 가만히 있을 것을 원했는데

김종필이 계속 대권 야심을 보이자

안되겠다 싶어

 

정치적 야망이 없는

순수관료출신 최규하에게 국무총리직을 짬때려버렸고

 

최규하

 

사실 영의정 , 국무총리 등 

2인자 자리는 그래도 왕 , 대통령 다음 최고의 자리로서

예로부터 '일인지상만인지하(한명만 위에있고 나머지는 다 아래)' 라고도 불렸기에

권력 끝판왕직이기도 하고 

야심가들이 원하는 최고위직책이기도 한데

 

이렇게 정치적 상황의 이유로

능력과 상관없이

그냥 자리가 비면 , 마땅한 인물이 없으면 짬때려버리는 상황도 분명 존재하고

 

최규하 역시 조용히 은퇴할 계획의 야심없는 헬조선 공무원이었지만

김종필의 야심 + 박정희의 의도에 의해

김종필이 나간 자리의 국무총리직에 임명된 것이었고

이로인해 우연찮게 대통령직까지 하게 된 인물입니다

 

[우연과 운명]

그렇게 최규하는 형식적인 박정희 유신정권의 허수아비 2인자였는데

최규하 총리는 존재감도 없고 ,

아무도 그에게 관심조차 없었고

최규하 역시 자신의 처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원래는 조용히 총리직 몇년하다 은퇴할 운명이었습니다

 

근데 ,

1979년 10월 26일

총성이 울려퍼지며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살해당했고

 

이런 혼란의 상황에서

최규하 국무총리는 자동으로

대통령 권한대행(대통령 대리) 이 되었고

 

최규하는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막강한 유신헌법(독재헌법)에 의해

단독출마해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만장일치급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곧바로 12.12 사태 , 전두환과 신군부의 군사쿠데타를 맞고

허수아비 대통령으로서 전두환에게 차근차근 대통령직 승계작업을 하다가

허수아비 대통령으로서 재임기간 1년도 못채우고

전두환에게 대통령직을 넘겼고

 

마치 민주당의 윤보선 대통령처럼

보수계의 윤보선 , 허수아비 대통령으로서

존재감 없는 대통령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민주계에 윤보선이 있다면

보수계에 최규하가 있는 ,

혼란속에 어찌저찌 대통령이 되어

존재감은 없는 인물이지만

입을 다물고 뒤에서 한국정치계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던

허수아비 대통령이라 보면 됩니다

 

전두환(맨왼쪽) 의 예우를 받는 윤보선(가운데) 과 최규하 전직 대통령

 

하여튼 ,

그럼에도 윤보선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대통령직을 운으로 , 거저먹고 쫓겨난 인물일지라도

그 조그만한 운 , 불운 역시

자신이 살아간 인생의 덕과 업보가 하나하나 쌓여서 발현되는 것이며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명언

 

'정치에서 우연은 없다'

 

라는 말처럼

아무리 듣보잡 대통령이어도

일반 공무원들보단 도덕성 , 능력이 높기도 하고

시대적 상황에도 맞은 인물이었고

 

놀랍게도 국민적 지탄을 받고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 역시 박정희의 딸 , 부모덕으로 정치에 나선 인물이지만

그게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 , 수준이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

최규하 역시

박정희가 일부로 야심없는 인물중 택해서

국무총리로 앉혀버리다 박정희 급사후

우연히 대통령이 된 인물이기도 하지만

능력을 중시하던 박정희의 눈에 띌 정도로 능력있는 공무원이기도 했고

그의 일생을 간략하게 알아봅시다

 

[엘리트 코스]

먼저 최규하는 

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군 원주면 봉산리에서 태어났고

1917년생인 박정희 대통령과 더불어 1910년대의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인물이기도 합니다

 

최규하는 평범한 조선어린이답게

먼저 할아버지에게 한학 , 한문을 배우며

소학 , 논어 등을 공부했고

 

곧 신식교육을 받으며

1928년 10세때 원주보통학교(오늘날 원주초등학교) 3학년으로 입학 ,

 

이후

1932년 3월 당시 고등학교계의 서울대였던

경성제일공립보통학교 (오늘날 경기중 , 경기고) 에 입학했고

이후 고교평준화가 시행되기 전까지

경기고-서울대 출신은 'KS 라인' 이라 불리며

대한민국 학벌관료 , 엘리트코스의 정점으로 여겨지게 됬고

최규하 역시 초기 KS라인을 밟은 정석적 엘리트 관료이기도 했습니다

 

개화파 김옥균과 서재필의 집터위에 만들어진 서울 구 경기고등학교

 

1935년 11월 최규하는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홍기 여사와 결혼합니다

 

최규하-홍기 대통령 부부

 

고등학교 졸업후 최규하는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고등사범학교(오늘날 쓰쿠바대학)에 진학해 영어영문학을 전공 , 

1941년 졸업후 그해 만주로 건너가

만주 국립대동학원 정치행정반을 입학 ,

1943년 수료해서

만주군 출신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만주출신 정치인이 된 것이었고

 

이전 제가 '만주군 장교 박정희' 이야기에서 썼던 것처럼

만주계 인맥들은 대한민국 정치사 초기에 비밀 인맥들이 끈끈하게 형성되 있었기에

박정희가 최규하를 국무총리에 임명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여튼 ,

최규하는 

광복을 맞자

1945년 경성사범대학(서울대 사범대) 영문과 조교수로

영어를 가르쳤고

1946년 4월에는 미군정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발탁됩니다

 

[영어실력]

어학실력에 뛰어났던 최규하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외교관으로 발탁되게 됩니다

 

외교관 시기 최규하

 

말 , 언어는 학문이나 정치의 근본중의 근본으로서

까막눈 , 문맹자도 많고

국제적 외풍을 심하게 받았던

대한민국 건국초기에는 외국어 잘하는 인재가

곧 엘리트 인재로서 우대받았고

 

실제 한국 초기 대통령은

모두 영어나 외국어를 잘했고

미국에서 외교독립운동을 했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한국사에서 가장 영어를 잘한 대통령이었고

 

2번째 대통령 윤보선은 영국 유학출신 ,

2번째 실질 집권자 장면총리 역시 미국 유학출신의 초대 주미대사로서

외국어에 유창 ,

 

3번째 대통령 박정희는

일제령 대구사범학교+만주육사+일본육사 출신 군인으로서

중국어를 알고 평소 일본어로 중얼거릴 정도로 일본어에 유창 ,

 

4번째 대통령 최규하 역시

괴뢰 유신 대통령에 듣보 허수아비 대통령이지만

이승만 다음으로 영어에 능통했던 대통령으로 꼽히는

인물로서

 

초기 한국대통령들은 나라없는 시기에 성장해

외국기관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연히 외국어를 잘하는 인물로만 뽑히게 되었고

또 이런 언어실력을 바탕으로 외국과의 물꼬를 트기도 했습니다

 

외국어에 능통했던 한국 초기 대통령들

 

5번째 대통령 전두환대부터

순수 한국형 K-지도자가 나타났고

외국어 못하는 대통령들도 나오게 됬지만

 

그전까지는 외국어 , 특히 영어 잘하는 대통령이

한국에서 극주류를 이루었고

괜히 오늘날까지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영어하라고 난리치는게 아니고

오늘날은 번역기 도입 + 선진국화 + 세계화가 되어

좀 덜해졌지만

한국과 외국의 격차가 극심했던

후진국시절 , 옛날엔 이런게 더심했습니다

 

(모두가 마이클조던처럼 농구를 잘할 필요가 없듯이

영어 역시 학문의 한갈래로서

재능있는 녀석들이 파면 되는 한가지의 분야일 뿐이라 생각하고

저는 전국민에게 외국어공부 강요하는 것은 극도의 비효율적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당해본 영어공부 강요경험

 

하여튼 최규하는 영어를 ㅈㄴ게 잘했고

덕분에 이승만정부에 발탁되어

외무부(외교부) 통상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외교관이 되었고

 

독재자였던 이승만이 독립운동가 시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서는 깔게 없듯이

허수아비였던 최규하 역시 외교관으로서는 열정적인 인물이었고

 

초강대국 미국 정치사를 봐도

능력이 뛰어나도

의외로 전분야를 총괄해야하는

대통령직에 안맞는 대통령도 많았고

이승만이나 최규하 역시 그런 부류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승만정부 외교관 최규하]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

독립운동가 출신으로서 당시 일본제국이 이승만 목가져오면

당시돈 30만달러를 현상금으로 했던

A급 현상금의 독립운동가였기에

일제강점기시절 조국땅을 밟지못했던 한이 컸던 인물이고

이에 일본을 극혐했던 극반일주의자였는데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고나서도

그의 뛰어난 외교력은 변하지 않아

미국과 함께 대일전쟁에 참여했던 대한민국은 전범국 , 패전국인 일본과 달리

아시아에서 전범국 일본보다 우월한 입지에 서야한다 주장하며

광복 이후 단절된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미적지근했는데

 

일단 미국은

38선 이북의 북한+중국+소련 공산주의를 막아야했기에

한국과 일본을 동아시아 최전선으로 설정했고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기를 바랬습니다

 

결국 ,

이승만 정부 말기인

1958년

최규하 등 한국 외교대표는

한일회담에 참여해

식민지 배상 및 양국국교정상화에 논의했지만

양측 입장차이로 성과를 얻지 못했고

 

이후 

최규하는 1959년 외무부 차관이 됬고

외무부 장관 직무대행도 하다가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최규하는 외무부 차관직을 사임합니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된후부터 점차 독선 , 독재자화 되어

한국최초의 민주시민혁명 4.19 혁명을 맞고

대통령직에서 하야 , 미국으로 망명가게 된 것이고

 

덩달아

부패했던

이승만의 자유당은 뼈가 가루가 되도록 분해되었고

이승만 정부의 인사들은 혁명후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근데 일단 최규하는 평범한 자유당 관료 , 이승만 정부인사와 달리

청렴한 선비형 인물로서 순수한 외교공무원이었기에

혐의없음으로 수사대상에서 풀려났습니다

 

[민주공화당]

1961년 5월 16일 , 

군부에 있던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인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권력을 장악한 군부의 박정희는

곧 군부 인사들을 동원해 전역후 민간정치인으로 탈바꿈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최규하는 박정희에게 기용되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외교담당 고문이 됬고

 

박정희와 군부인사로 구성된 국가재건최고회의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 군부계정당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는데

김종필 , 최규하 등이

민주공화당 창립에 참여하게 됩니다

 

군부색을 벗기 위한 김종필의 설계로 만들어진 민간보수정당 민주공화당

 

[검소한 애국자]

이후 최규하는 말레이시아 대사로 갔는데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동남아를 순방하며

말레이시아를 방문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박정희>한국식으로 술이나 한 잔 하고 싶다

 

며 말레이시아 대사관을 찾아가며

최규하 말레이시아 대사를 만났고

다음날 박정희 대통령은 이동원 외무부장관에게 말했습니다

 

<박정희>최대사 말이야.

그런 애국자가 없더라고.

글쎄 친구 집에 갔더니 술이랑 안주가 몽땅 국산이야.

막걸리에다 시큼한 김치에다….

게다가 접대한답시고 친구가 고무신을 신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보니 꽤나 부지런해 보여

 

청빈했던 최규하와 고무신 , 강원도 원주박물관 및 뉴스1

 

[조용한 외교]

결국 박정희의 눈에 뜬 최규하는

1967년 외무부 장관으로 승진하여

박정희 정부의 외무부 장관으로서 활약했고

최규하 외무장관은 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외교전쟁에서 맹활약했습니다

 

외무부 장관 시절 최규하

 

대한민국 초기 당시는

오늘날 압도적으로 남한이 북한보다 더 잘사는 것과 달리

남북격차가 비등비등 혹은 북한이 더 앞서기도 했던 상황이라

북한과 남한의 국제사회에서 정통한국국가라는 지지를 받기 위한

외교전이 한창이었던 시기고

최규하 장관은 이런 상황에서

 

'조용한 외교'

 

를 표방하며

맹활약했습니다

 

[외교왕 최규하]

 

'병은 의사에게 , 약은 약사에게'

 

라는 어떤 일은 전문간에게 맞겨야 한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의외로 이런게 오늘날에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더 깊게 보면 이런 전문직업을 가진 집단에서도 실력이 나뉘어

똑같은 외교관이어도 그중에서도 외교능력 ,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 나뉘는데

당시 최규하는 이승만급의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물로서

외무부 장관으로서 최적임자였기에

당시 외무부 공무원들도 최규하 외무부 장관이 워낙 뛰어났기에

영어로 쓴 문서를 결재받을때 무척 신경을 써야했고

조금만 잘못쓰면 철자하나 , 마침표 하나까지 최규하 장관이 정확히 짚어냈고

 

원래 지도자의 능력이 뛰어나면 부하들의 술책이나 꼼수가 통하지 않는데

마치 세계 2차대전출신 전쟁영웅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시절 장군출신으로서

미국군부의 모든 예산확장꼼수징징스킬들을 빠삭하게 다 알고 있었기에

미국 군부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꼼짝도 못했던 것과 같습니다

 

피로 얼룩지고 부패했던 박정희 정부에서

최규하만큼은 능력도 도덕성도 뛰어난

깨끗한 공무원이기도 했고

 

정치적 의도도 작용했지만

괜히 박정희가 국무총리로

마지막엔 김종필이 아닌 최규하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최규하는 박정희 정부의 외교담당인물이었는데

1968년 1월 23일 미국 푸에블로호가 북한 해군에 납치되버리자

미국은 인질들의 안전을 위해 북한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반발하며 독자적으로 북한을 공격하려 했고

미국은 박정희를 말리며

한국에 국방원조를 해줄테니 북한에 선제공격하지 말라했고

이에 박정희는 최규하를 보내서 미국과 협상하게 합니다

 

외교에서 군사 , 안보부분은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에

최규하는 국운을 걸고 한국대표로서

미국 사이러스 밴스 특사와 협상을 시작했고

둘은 밤이 새도록 협상을 하는데

최규하가 밴스와 협상을 벌이는 동안

20여잔의 커피가 들어갔고

재떨이는 6차례나 바뀌었는데

 

최규하 외무부 장관는 결국 미국과 협상에서

1억달러의 군사원조를 따내는 성과를 거두었고

 

밴스 특사는 한국을 떠나면서

주한미국대사관 직원들에게

 

<사이러스 밴스>최장관의 애국심과 쇠고집 ,

인내력 , 그리고 그가 계속 뿜어대는 담배연기에

손을 들었다

 

고 말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대표 외교관 최규하

 

범생이 이미지와 달리 주머니에 담배 3갑씩 넣고다녔던 최규하

 

이때 최규하는

미국 최신전투기 F-4 팬텀을 요구했고

결국 사이런스 밴스 특사는 F-4 팬텀 공급약속을 해서

한국은 F-4 팬텀 도입을 위해 애쓰던 일본보다 먼저

F-4 팬텀을 보유하게 됬습니다

 

F-4 팬텀

 

1968년 6월 28일

핵확산 금지조약 가입문제를 놓고

한미회담이 열리자

주한미국대사 포터는 최규하 장관에게

 

<포터>한국정부가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을 질질 끌다가

불쾌한 그룹(악의 축) 에 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며 한국을 무시 , 협박하는 태도로 말하자

최규하 장관은

 

<최규하>귀하가 가장 맹방인 한국도 설득시키지 못하면서

무슨 대한 외교를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맞받아치자

한미국방각료 연례회의가 성사됩니다

 

1971년 최규하는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에 취임해

1972년 평양에 다녀오기도 했고

남북대화와 오일쇼크 등 굵직한 사례에서 주도적 활약을 했고

석유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최규하 보좌관은 사우디 국왕을 만나서

 

<최규하>한국 노동자들이 사우디의 발전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횃불을 밝혀 놓고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석유가 없어서 난리가 났습니다.

국왕께서 선처해 주십시오

 

라고 설득하며 사우디의 한국 석유지원도 약속받습니다

 

외교가 최규하와 중동의 인연

 

[국무총리 최규하]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가 10월유신을 선포하며

독재를 본격화하자

점차 공화당 , 여당내 박정희 인사도

죽을때까지 해먹으려던 박정희에게 등을 돌려가던 상황에서

 

박정희 역시 부하들의 불만과 동태가 심상치 않자

그냥 야심도 없고 과묵하고 정치질에도 능하지 못했던 최규하를 높이 평가해

1976년 3월 최규하를 국무총리에 발탁해버립니다

 

최규하를 총리서리에 임명장을 수여하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최규하를 국무총리에 임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정희>최 총리 ,

1961년에 권력을 잡은 후 

내정은 내가 장악할 있었소.

경제도 발전시켰고 ,

산림녹화도 했고 ,

내가 하려고 일은 뜻대로 했소 .

그런데 외교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려.

이제 나는 외교에서는 손을 테니 ,

당신이 외무부 장관과 의논해서 처리해 주시오.

 

집권말기의 박정희는 야심없는 외교공무원 최규하를 높이 사서

충복 김종필을 제치고 최규하를 밀어주었고

 

1975년 12월 20일 김종필(오른쪽) 전총리와 총리 이,취임식을 하며 악수하는 두 전현직총리

 

근데 최규하는 이런 박정희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된

국무총리 재임시에도

조용히고 근검절약하고 깨끗한 공직생활을 하며

더욱 높이 평가되

1979년 3월 국무총리에 재선출되었고

 

조금만 ㅈㄹ하면 박정희에게 목이 날아갔던

유식독재시기 최규하 총리의 처세술이라기 보다는

그냥 인간자체가 청렴하고 깨끗해서

박정희 역시 그냥 믿고 임명한 것이었고

허수아비 , 잊혀진 인물임에도

한국 대통령중 퇴임후 욕을 먹지 않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성춘 한국일보 논설위원>

5.16으로 정권을 잡은 15 동안

박정희 대통령 측근이나 혁명 주체들 중에서 부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나 ?

김종필 총리도 금전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이 끊이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규하처럼 청렴결백한 사람을 총리로 앉혀서

이완된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다시 잡으려 했던 같다

 

[대독총리]

그렇게 최규하는

박정희 정부 말기에 아무런 실권 없이

무색무취 , 허수아비 총리로 활동하며

박정희의 말이나 대신 읊는 아나운서 총리 , 대독총리이기도 했는데

실제 그는 대독총리(대신 읽어주는 총리) 라 불렸고

 

대독총리였던 최규하

 

그건 유신독재 , 박정희 정부 관료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고

다들 그랬던 시기였고

최규하 역시 가늘고 긴 총리로서 

다른 유신정권 인사들과 달리

청렴했기에 박정희도 유신정권의 더러움을 감추기 위해 청렴한 그를

유신독재의 방패막이로 내세운 격이 된 것이었습니다

 

유신총리 최규하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결국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살해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됬고

허수아비 총리로 마감할 운명이었던 최규하 총리는

대통령권한대행이 되어

급하게 초헌법적 유신독재 권한을 인수하게 되버립니다

 

<라봉봉>역사를 보면 이 권력이라는게 

무조건 힘이 세고 폭력적인자가 가져간다는 이미지는 있지만

기묘하게 돌아가는 구석도 있어서

 

이렇게 최규하같이 온건하고 안정적 인물들은

평범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으며 승진을 계속하다

어쩌다 국가 최고직까지 승진한 케이스였고

이런 부류들이 은근 있는 것을 보면

참 특이한점도 많습니다

 

굳이 욕심으로 나서서 역사에 불명예한 이름으로 남을 바엔

차라리 이름이 유명하지 않더라도

은은한 향기가 있는 그런 인물로 기억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최규하는 뛰어난 외교능력 + 청렴함으로 

발탁되어 박정희 정부 외교관으로 활약한 인물인데

그럼에도 성공한 정치인 , 유능한 지도자형 인물은 아니었던 인물이고

오히려 이런 부족한 점으로 박정희가 허수아비 국무총리에 임명한 것이었고

단 이후 박정희가 급사하고 국가적 위기가 생기자

역시 허수아비로 임명된 총리답게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다

수장직에서 물러나게 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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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ongbong 라봉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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