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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참여정부]

[노무현이 만난 링컨]

[노무현의 개혁정책]

[10.4 남북공동선언]

[한미동맹]

[자연인 노무현]

[사람사는 세상]

[할아버지 ,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노무현 대통령 자살사건]

<라봉봉>

 

[참여정부]

비주류 정치인 등

여러 악조건속에서도

노무현은 최초의 인터넷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와

청년층의 지지로 경선 , 대선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었고

접전끝에 야당의 대표였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공식 초상화

 

노무현은 김대중 대통령의 후임으로서

2003년 2월 25일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새 정부를

 

'참여정부'

 

라 명명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를 열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

오늘 저는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으로 ,

저는 대한민국의 새 정부를 운영할 영광스러운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를 올리면서 ,

이 벅찬 소명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완수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변방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의존의 역사를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심국가로 웅비할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 왔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살려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도전을 극복한 저력이 있습니다.

위기마저도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 지혜와 저력으로 오늘 우리에게 닥친 도전을 극복합시다.

오늘 우리가 선조들을 기리는 것처럼 ,

먼 훗날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기억하게 합시다.

 

우리는 마음만 합치면 기적을 이루어 내는 국민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모읍시다.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역사를 만드는 위대한 도정에

모두 동참합시다.

항상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취임식 후 전임 김대중 전 대통령 손을 잡고 내려오는 노무현 대통령

 

첫 업무로 노무현 대통령은

고건을 국무총리에 임명하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당시 잠깐 대통령 권한대행 했던 고건 총리

 

노무현 취임식에 참석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한반도 평화 및 한일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합니다

 

고이즈미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정의롭고 합리적인 개혁정부 ,

국민통합 정부 ,

국민과 수평적 , 쌍방향적으로 소통하는 열린정부 ,

모든 국민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희망의 정부를 지향하였고

특히 선거문화를 깨끗하게 했고

독재와 권위주의를 없앴고

 

국민들 역시 노무현 정부 , 참여정부하면 

딱히 업적은 생각 안나도

'탈권위' 가 가장 기억나게 되었고

그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권위에 찌들어 영원히 군림할거마냥 조선국왕마냥 행새했다면

노무현 정부부터는 

권위주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국민들이 대통령을 처음으로 친근하게 대하는 시작이었습니다

 

소탈했던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이 만난 링컨]

노무현 대통령은 롤모델이 있었는데

 

어린시절엔 법대를 다니며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자신의 친형이었고

그러다 사법고시에 낙방한 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형의

꿈을 자신이 이루게 되었고

 

잔트가르(최강의 사내)를 동경한 소년 , 육룡이 나르샤 명장면

 

정치에 입문한 후에는 김대중도 있었지만

원래는 한국위인인 김구 선생님이었습니다

 

<노무현>정치에 입문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왔다.

때마다 나의 답은 생을 마칠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분단에 맞서며 지조를 지킨 김구 선생이었다.

 

한국위인 백범 김구

 

그러면서도 노무현은

 

<노무현>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패배자밖에 없는가 ?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패배하게 되는가 ?

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는 되지 않겠다

 

실제로 이는 역사학자들도 한번쯤을 생각해볼법한 생각이며

한국 위인 겸 정치가들이

도산 안창호 , 백범 김구 등이 있는데

이들은 큰 민족의 별이었지만

링컨이나 엘리자베스 여왕 , 세종대왕 같은

국가 전성기를 연 건설적 위인이라기 보다는

독립운동가로서 일제라는 거악에 맞서 싸우며 국민들을 통합한 위인이었고

 

더욱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엔

좌우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건설적인 위대한 정치가가 나오지 못했고

대통령들도 다들 어딘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큰 결점으로 자신의 공을 가려버렸기에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 , 뭔가 다들 의문점이 있어서 워싱턴 , 링컨 , 쑨원 마냥 국민들이 내놓고 존경한다거나 하기 어렵습니다

 

노무현은 

 

<노무현>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할 있는 그런 인물을 찾았고

결국 찾았던 인물이 바로 링컨

 

이었다고 말하며

 

<노무현>이상이 현실에 굴복하고

현실이 이상을 구박하는 시대를 극복하자면 

김구선생을 뛰어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노무현이 존경한 링컨

 

그때부터 노무현은 점차 롤모델이

김구에서 링컨으로 바뀌었고

특히 링컨이 남북전쟁 승리를 앞두고 한 연설에서

적이었던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도 않고 가르지도 않으며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한 것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회고합니다

 

연설하는 링컨 미국 대통령

 

또한 무엇보다 노무현이 링컨을 롤모델로 삼은 이유가 너무 많았는데

노예해방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위인 링컨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전

자신과 너무 같은 인생을 살아왔고

 

노무현은 흙수저 + 독학으로 상업고등학교졸업 노가다꾼임에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인권변호사로 전향 ,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

유례가 없는 삶을 살아온 개천에서 용난 남자였고

 

 

링컨 역시 흙수저 + 최종학벌이 초등학교 중퇴였고

노가다를 전전하다 사업에 실패 +

간신히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정치인이 되어 계속 낙선하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기에

 

노무현처럼 노동과 공부를 병행한 링컨

 

노무현은 굳이 업적을 따지지 않더라도

같은

 

흙수저 + 노가더 + 대학못감 + 변호사 + 아싸정치인

 

이었던 링컨이 세속 ,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마음에 들 수 밖에 없었고

게다가 평행이론마냥

 

노무현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링컨도 미국 16대 대통령이었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더더욱 링컨 대통령을 존경하며

대통령이 되고서도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무현>22살 주의원 도전 실패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무수한 실패를 반복했던 링컨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

,

부족한 한계를 느끼지만 링컨의 삶에 자신을 투사하며

스스로의 숙제를 풀어나가겠다

 

퇴임 이후에도 노무현에겐 링컨이 가슴속 영원한 대통령이었고

퇴임을 앞두고 노무현은 인터넷 언론과 인터뷰하며

훗날 자신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

링컨에 대한 기괴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퇴임을 앞둔 노무현>

링컨이 성공한 대통령이 것은

첫째는 국가적 통합이요 ,

번째는 노예해방이 이후 보편적인 가치로 계속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번째는 그분의 인간성이 정직하고 소박해서

지금까지 칭송되고 있는 거다.

 

마지막으로 노무현은 링컨의 마지막 성공요인으로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노무현>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죽어버렸다는 거다.

골치 아픈 해결해야 때는 죽어버렸거든.

전쟁으로 한쪽을 패배시키는 것은 쉽지만 ,

패배한 상대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그거 성공할 없다.

성공할 없을 죽어버렸거든

 

노예해방과 사랑이라는

거룩했던 인류애를 위해 살은

링컨의 삶과 예수의 삶 ,

링컨의 죽음과 예수의 죽음

은 겹치는게 많아 링컨은 일반적 대통령이 아닌

예수님으로도 비유되는 인물이었고

 

노무현은 이런 링컨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한 인물이었고

이 인터뷰는 노무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시기

자살을 함으로서 이후에 회자되었고

자신을 존경했던 링컨의 죽음과 동일시 시키려했던 것으로도

보여집니다

 

노무현은 대선을 1년 앞두고도

 

'노무현이 만난 링컨'

 

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자신의 정치관을 밝힌 적이 있었고

대통령이 되고나서도 2003년 링컨 기념관을 방문하는 등

미국에게 노무현은 반미주의자(anti-americanㅋㅋ)로 찍혔음에도

꾸준한 링컨 사랑을 보여왔고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입장>

노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링컨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 ,

미국민의 감성을 자극하겠다 (ㄹㅇ 감성정치인ㅋㅋ)

 

미국인들도 껌뻑 죽는 링컨을 공략한 노무현ㅋㅋ

 

이 인연으로 노무현 대통령 저서인

 

'노무현이 만난 링컨'

 

은 링컨이 숨진 페터슨하우스에 특별전시되었습니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노무현 지음ㅋㅋ

 

<노무현이 만난 링컨 저자 서문>

링컨보다 좋은 교과서는 없다.

정치에 대해 답답해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국의 16 대통령 링컨을 만나보라고 진심으로 권한다.

내가 그랬듯이 정치와 역사를 보는 안목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

노무현 대통령 역시 자수성가 + 괜히 대통령이 된 인물이 아닌것 처럼

롤모델을 매우 잘 설정한다거나 좋은 안목은 분명 존재했던 인물이었고

 

개인적 생각으로 실제로 노무현은 링컨이 되고 싶었지만

솔직히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시기에도 국제 바보로도 찍혀버렸고

천재였던 링컨급은 아니었고

한국인들 가슴속에는

미국의 스타정치인이자 링컨과 평행이론 , 공통점이 겹치는 것으로 유명한

 

'존 F.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한국버전이라 생각되고

케네디 대통령 역시 정책이 아닌

인기와 TV정치 시대를 알린

최초의 스타대통령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하벌드 대학나오고

젊은 대통령에 말잘하고 소신있고 자유로운 기풍이 강해

미국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인물이고

노무현은 링컨을 꿈꾼 한국의 케네디였다 생각됩니다

 

엘리트코스+수려한 젊은외모로 스타정치인이 된 미국 케네디 대통령

 

나이도 노무현은 만56세에 대통령이 됬기에 나름 퇴임후에도 고령까진 아니었고

오늘날에도 국민들에게 노무현은 김대중같은

노인 , 할아버지라기보다는 중장년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노무현의 개혁정책]

하여튼 ,

노무현 참여정부의 자유분방함과 탈권위는

링컨의 그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고

노무현은 이런 친근한 정치 이외에도

대통령이 되어 이전 김대중 정부의 뒤를 이어

국가 정보화 사업을 계속해 나갔고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 보급 수준을 세계 1위수준으로 발전시킵니다

 

인터넷 방송하는 노무현(몇수 앞을 보신겁니까..)

 

실제로 프로그램 개발을 할정도로 컴퓨터 이해가 밝았던 노무현

 

또한 문화기반시설을 800개에서

1600개로 늘렸고

신용불량자 600만명 시대에서 개인회생제도를 통해

임기 8개월만에 100만명을 회생시켰고

육아지원예산을 1000억에서 1조로 격상 ,

대한민국 국군 2020 계획을 세워

전투력 1.8 향상시키고 인원은 50만명 수준으로 줄여

모병제를 계획합니다

 

무기모형으로 가득했던 노무현 집무실 , 밀덕+메카덕후였음

 

또 암환자 건강보험 보장률을

40%에서 70% 대로 격상시켰고

주택보급률을 60%에서 105%로 격상 ,

연구개발비 예산을 6조에서 24조원수준으로 끌어올렸고

공약이행률 45%를 달성합니다

 

실제로 노무현은 애국심 ,

대한민국을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던 인물이었고

좌우 할거없이 다들 나라에 힘이 없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몸과 눈으로 겪었던

기성세대들이었기에

공동체주의를 중요시하고

자신을 희생할지언정 국가를 강하게 만들어야한다는

옛날 한국기성세대들의 사고관과 비슷했습니다

 

노무현의 가장 큰 업적중 하나가

기초연금제였고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일정액의 연금을 주는 제도로서

개인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워 혼란이 발생된

국민연금제의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제시되었고

처음엔 금액이 적어 제대로 운영될지 의문이 있었으나

이제는 공적 연금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실제로 대한민국 노인빈곤률이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에도 무색하게

2018년에도 43.4%로 가장 높고 (OECD 평균 14.8%)

노인빈곤율이

미국 23% , 일본 19.6% , 영국 14.9% , 독일 10.2% , 프랑스 4.1%

기에 G5 국가에 비교해도 압도적이게 높고

고령화 속도 , 노인인구증가속도도 세계 1위기에

노무현의 노인복지정책은 정책중 크게 이야기 되고 있고

 

노무현 반대자들은 이로인해 국민연금 급여 인하가 됬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2007년 연금개혁으로 인해

대한민국 공적연금은 국민연금 단일체계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이원체계로 전환됬고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소득보장이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고

청장년시기 국민연금을 내지 않았던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극빈층 노인들까지 수혜를 받는다는 점에서

나름 긍정적인 개혁이라 평가됩니다

 

노무현 연금개혁

 

또 무엇보다 한국 노인빈곤률이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고

한국 기성세대 , 노인들은

일본 , 유럽이나 미국같은 기성선진국가들에 비해

제국과 식민지를 경영하거나 조상들의 압도적인 유산을 물려받지 못했고

그로인한 10억 영어권인구 , 기축통화 달러 , 엔화라는 압도적인 유산도 없는

 

현재 대한민국은 5천만 한국어권 인구에

분단국가+휴전국가+사실상 비좁은 섬나라 국가+빈약한 내수국가이고

 

그냥 워낙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망해버린 가난한 환경에서

겨우 문맹에서 나와 아옹다옹하며 대한민국을 선진국 끄트머리에

진입시켰던 인물들이라 일본 , 유럽 , 미국 노인들같이

재산을 축적하지 못했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했음에도

개발도상국 시기가 바로 얼마전이었기에

한국은 노인들은 부유하고 잘사는 기존 선진국 노인들과

다르게 접근해보아야 합니다

 

노후생활을 즐기는 서양노인들

 

한국의 빈곤노인들

 

또한 빈민층이나 빈곤노령층의 경우

이익적 측면으로만 보면 

히틀러가 막 장애인들 죽이려 했던것 처럼

돈만먹고 사회에 도움 안되는 계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은 그 수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많고

근로환경과 경제현실도 빈약하기에

 

(한국어 시장 규모가 작아서 영국애들이 미국애들이나 10억인구들에게 영어로 샬라샬라 장사할때

한국애들은 겨우 외국어를 배우거나 5천만따리 내수장사하며 출혈경쟁하는꼴)

 

대한민국은 현재 계층이동이나 사회 유동성도 나쁘고

빈곤층이 늘어날수록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중산층들이 늘어나야 기성세대들 부동산이나 주식도 받아주고 재화도 구매해주기에

빈곤층이 늘어나는게 결코 좋지않고

복지정책 역시 무작정 손해라 봐서도 안되며

빈곤층에 대한 간접복지예산이 늘어봤자 

결국 그것을 타가는 계층은 지식과 정보에 밝은 중산층이나 상류층들이기에

저도 차라리 말도안되는 간접복지예산 편성할바엔

그냥 가난한 노인들에게 직접 현찰을 쏴주는게 차라리 낫다고도 봅니다

 

[10.4 남북공동선언]

노무현은 외국의 평처럼

과격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향의 대통령이기도 했지만

나름 담당일진 겸 조언자가 되어줄

'김대중' 이라는 훌륭한 선임 대통령이 존재했고

 

노무현을 제어해 줄 수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 (ex:반일정책으로 인기얻으려 하지말게나 같은 ?)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시즌 2기도 해서

김대중 정부때의 IT , 한류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21세기 한국문화가 본격적으로 대중화 , 발전하던 시기였고

 

2003년 나온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

 

영상미로 유명했고 현재 리메이크 준비중인 드라마 '궁(2006년)'

 

남북평화정책도 계승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부터 10월 4일까지 2박 3일동안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였습니다

 

2000년 6월 13일~15일까지 평야엥서

김대중-김정일 간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기에 

2차 남북정상회담이라고도 불립니다

 

2차 남북정상회담

 

이때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최초로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개성고속도로를 통해

평양에 도착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앞에서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군사분계선 넘는 노무현 대통령 부부

 

노무현-김정일은 10월 4일

6.15 남북선언에 기초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

 

'10.4 남북공동선언'

 

을 발표하였고

남북우호와 평화정책 ,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강조했습니다

 

 

[한미동맹]

아울러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 (자유무역협정 , 국가간 관세와 무역장벽 철폐) 협상을 성사시켰고

친미보다는 민족적 성향을 보인 노무현이었고

반미감정이 듫끓던 시기 노무현의 강점으로 작용했던 것이었기에

한미 경제협상은 노무현의 의외로 여겨지는 정책이었고

 

당시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네오콘(신보수주의) 가 장악하고 있었기에

미국에 할말은 한다며 독자노선을 비추기도 한

민족적 성향인 노무현 정부와 충돌이 자주일어났고

 

화제가 된 서로를 바라보는 부시와 노무현 대통령(미국 대통령과 기싸움잼ㅋㅋ)

 

미국의 공화당 보수파는 노무현을 우려스럽게 바라보았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노무현을 좌파라고 강력하게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정부를 두고

 

'좌회전 깜빡이 키고 우회전한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미친건데 이건 ??)

 

실상은 노무현 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요청에 따른

이라크 전쟁 파병 ,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문제 ,

한미 FTA 추진에서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다수 반영했고

2008년 2월 마이클 그린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선임보자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동맹에 대한 그의 기여는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국제사회 역시 노무현을 반미주의자로 낙인시키며

많은 우려를 표했지만 그런 우려를 의식할 수밖에 없던 노무현이었기에

일부로 더욱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기도 했으며

그시절을 풍미했던 미국 부시대통령도 당시 노무현을 별로 안좋아했지만

퇴임이후 노무현 추도식에 참여하는 등

퇴임이후에서야 노무현의 인간성에 감동합니다

 

<부시 대통령>( 대통령이) 목소리 내는 대상은

미국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모든 일에 대해 마다하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

물론 의견의 차이는 갖고 있었으나

그런 차이점은 한미동맹의 중요성보다 우선되는 가치는 아니다.

(서로)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무현 사후 권양숙 여사를 위로하는 부시 전 미국대통령

 

실제로 노무현식 외교정치는

아무리 미국이나 강대국이어도 할말은 한다 ,

줄건 주고 받을건 받는다였고

 

한국식 외교가 비록 오랜기간동안 거대 제국들의 침략을 받고

사대주의를 했음에도

문명국 , 독립국으로서 지위는 계속 유지했던 역사였고

외국 정치가들도 오히려 지나치게 본인 민족의 이권을 포기하며

외국에 지나친 사대매국외교를 하는 정치인들이 나타나면

그저 이용할 대상이라만 여기고

한번 배신하면 또 배신한다는 생각 등으로

존중한다거나 친구로서 여기지는 않기에

자신의 존엄을 챙기는 것도 중요한 모습이고

노무현식 외교도 참 중요한 모습입니다

 

노무현 정부와 한미동맹에서 가장큰 이야기하면

역시 이라크 파병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6.25 전쟁때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었고

그 이후에도 서로 우방으로서 미국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다는 이유로

미군을 도와 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하였고

그 대가로 현대와 대우 등 많은 국내 대기업이 해외로 진출했고

LG와 삼성 , 기아자동차 등도

가전제품 , 공업제품을 이라크에 판매하게 됩니다

 

중동에 진출한 한국제품들

 

만일 파병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잃어서

경제적으로도 많은 압력을 받고

미국 무디스사도 우리나라 신용 , 경제등급을 많이 낮추어

외국인들도 한국을 점점 떠나게 됬을 것이라 하고

우리 정부도 이라크 파병을 미국 압박에 억지로 했다기 도다

대한민국 국익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3천명의 파병을 결정합니다 (미국 , 영국에 이은 연합군 3위규모)

 

아들아 ! , 파병장병을 안아주는 노무현 대통령

 

국가와 국민을 사랑했던 노무현 대통령

 

단 ,

대한민국은 이라크 파병 당시

전쟁에서는 발을 뺐고

치안유지 및 시설재건 등 평화지원을 위한 자이툰 부대를 파병하였고

미국에서는 이리저리 간보며 발뺀다며 비아냥 받기도 했지만

그나마 아랍측에서는 비난이 덜했고

다행히 당사국인 아랍측에서도 , 미국에서도

한국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는점이고

국가 자원이 없어

아랍에는 석유를 , 미국에는 무역을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었기에 나름 광해군의 중립정책처럼 조심조심한 파병이었습니다

 

한국의 석유수입로 , 미국셰일혁명 이전시기라 많은 국가들이 중동눈치 더더욱보던 시절임

 

해양과 대륙의 중심지라는

지리적 위치로 항상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줄타기 외교 ,

벼랑끝 외교를 해야했던 5천년 한국의 역사였고

바로 국경 옆에 강대국들이 즐비하고

외교에 실패할시에는 점령되기도 했기에

한국 외교는 특히나

다른 국가들보다 까다롭게 전개되었고

미국 역시 이런 한국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부시 대통령>노 대통령 임기중 대한민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한

중요한 동맹국이었다.

미국은 이라크 자유수호 전쟁에 대한 대한민국의 기여를 잊지 않을것

 

미국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 , 한미 FTA 에 대한 대가로

LG 나 삼성 등 한국 대기업들을 키워주었고

대한민국의 국제무대 위상을 인정하기 위해

한국을 G20 국가에 포함(현재는 대충 G10정도로 격상함) ,

대한민국을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명박 정부때까지 이어진 한미 FTA 협상

 

노무현은 실제로 국민의 이익을 생각한 애국 대통령이었고

당시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을 비난했지만

멀리서 , 이후에보면 긍정적이고 의미있는 정책도 많았습니다

 

[자연인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중에서도

서울에 쏠린 대한민국이었기에

국가 균형발전을 이루려 많은 노력을 했고

자신 역시 그것을 지키기 위해 퇴임후 서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가게 됩니다

 

2008년 2월 25일 오전 10시 30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청와대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났고

 

퇴임 두달전 청와대에서 이명박 당선자를 기다리는 노무현 대통령

 

임무교대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오전 11시 퇴임식 행사를 마치고 KTX 열차를 타고

고향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귀향합니다

 

수많은 환영인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고향 진형읍으로 금의환향한 노무현은

오랜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막대한 책임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에

당시 봉하마을에서 지지자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노무현>크으~~!! 여러분 ! 제가 말 놓고 한마디 할까요 ?

하아.. 제가.. 예아 !(노무현의 습관) 

제가 오늘 제가 딱 ! 말 놓고 ,

하고 싶은 이야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 기분 좋다 !

 

야 기분좋다 ~

 

퇴임후 그냥 기분좋다고 외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감명받았고

노무현은 젊은층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인물이었기에

유독 대통령 인터넷 합성이 가장 많은 인물이었고

야 기분좋다는 이후 인터넷 동영상 합성에서 필수요소로 쓰이게 됩니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노무현은

고향 진영읍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서

진영읍 , 봉하마을을 부흥시키는데 일조하게 되었고

가장먼저 화포천 청소에 손을 댔고

친환경 농사 시작 , 마을환경 개선 , 봉화산 숲 가꾸기 등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노력합니다

 

화포천 쓰레기 건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 , 사람사는세상

 

하기 어렵다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오리농법을 들여와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논 2만 5천평에 오리농법을 들여왔는데

봉하 토박이였던 노무현은 옛날부터 봉하들판은 습지라서

옛날에 야생오리가 많이 날아왔음을 알았기에

다른데는 몰라도 여기는 오리농법이 된다고 우겼습니다

 

(노무현식 운영ㅋㅋ)

 

하필 조류인풀루엔자까지 번지자

노무현은 오리가 조류독감에 걸리면

살처분하고 (;;)

우렁이를 넣으면 된다고 밀고나갔고

다행히 조류독감은 잦아들고 농사는 성공했고

다른곳에서는 거의 다 포기했는데

승부사 농업인 노무현은 난관을 돌파해냈고

 

오리들을 보는 노무현

 

'봉화오리쌀'

 

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고

오리쌀은 오지게 팔렸습니다

실무자들은 쌀에 노무현 전 대통령 캐릭터를 쓰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는데

노무현은 자신의 이름과 신뢰를 걸겠다며 자신의 캐릭터를 쓰라 했습니다

 

(노무현 굿즈 ㅋㅋ)

 

합성같지만 순정임ㅋㅋ

 

노무현은 봉하산 숲가꾸기도 시작해

봉하마을 방문객들이 수월하게 드나들며

삼림욕도 즐기고 열매도 따고 새도 관찰하는

마을 숲 생태학습장을 만들려 했고

 

습지생태계도 복원해서 낙동강 잉어가

저습지와 논으로 들어와 산란하던

옛날 수생태계를 다시보고싶어 했고

자연 생태계가 복원되 농촌에 아이들이 찾와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다 가는 날을 꿈꾸었습니다

 

요즘 인싸들이 하는 일이기도 해서

시대를 앞서간 정책이기도 했고

반응은 매우 좋았고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는게 아닌

시골 농사꾼으로 완전히 변한 노무현이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산상고 졸업-사법고시합격-대전지법판사-조세변호사-

인권변호사-국회의원-고깃집사장-대한민국 16대 대통령-시골농사꾼

 

이라는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보여준 인물이었고

실제로 너무 독특한 인물이었기에

삶이 파란만장한 한편의 영화같기도 했고

이로인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노무현은 물려받은 재산도 , 화려한 학력도 ,

힘있는 친구도 없는 인물이었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

반칙에대한 분노 ,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열정만을 가진 불꽃남자였고

이러한 그가 꿈꾸던 세상은

 

'사람사는 세상'

 

이었습니다

 

이 사람사는 세상은 일반적 의미가 아닌

노무현 지지자들의 단체 이름이 되기도 했고

노무현을 상징하는 말로 이야기 됩니다

 

사람사는세상 회원들에게 받은 케이크를 나눠주는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 ,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많은 사람들이 퇴임한 노무현이 머무는 봉하마을에 찾아왔고

관광버스까지 대동해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노무현 대통령의 사생팬이 되었습니다

 

그럴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피로감에도

집을 나와서 한명한명 자신을 찾아온 국민들을 따뜻히 맞이해 주었습니다

 

노무현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았고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는

2008년 5월 14일 김해 청소년 수련원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게 되었고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이에 노무현은

 

'여러분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큰 사람이 되고 싶어요 ?'

 

'큰 사람 ! , 착한사람 !(웅성웅성)'

 

'헷갈리지요 ? 네 ?

그러면..

착하고 큰 사람이 되면 좋긴 더 좋겠죠 그죠?'

 

'네'

 

 

이때부터 노무현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노무현>큰 사람에는 권력을 크게 잡은 사람도 큰사람이라 말하고

돈을 크게 번 사람도 큰사람이라고 말하고

또 이름을 크게 날린 사람도 큰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이 바탕에는

착한 일을 크게 한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에요

 

내 이웃과 나라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사람이죠 ?

 

먼 뒷날 성공하려면 지금 잘해야해요.

오늘 또 오늘 또 오늘 또 오늘 연속이

먼 뒷날 여러분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꿈을 가져도

오늘을 착실하게 살지 않으면

뒷날의 꿈은 전부다 신기루에 불과하지요 ?

 

그래서 ,

멀리 보는 것은 좋은데

그 부분만 생각하고 오늘 하는 일들을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아주 작은일 ,

지나가다가 할머니가 뭐 빠뜨렸을 때

그거 하나 주위서 할머니한테 조그만 봉사를 하는 일 ,

오늘 한시간 더또 뭔가 유익한 공부를 하는 일 ,

 

이 작은 것들이 전부 모여서

뒷날의 큰 일을 이루는 것이지 ,

큰일은 한꺼번에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앞에 있는 작은 일들을 열심히 하고 ,

쓰레기 하나라도 더 줍고 ,

착한 일이라는 것은 다 찾아서 하고 ,

그렇게 하셔야 해요.

 

그래서 ,

오늘 제가 여러분들한테

대통령 되는 법을 가르쳐 들었어요잉 ?

 

내가..내가 매우 영양가 있는 얘기를 하니까

벌써 조는 사람이 생기네 (웃음) 

 

 

그렇게 노무현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서민적이고 소탈했던 대통령이었는데

많은 국민들은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이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며

한국사회의 존경받는 원로로 활동할 줄알았는데

 

2009년 '박연차 게이트' 가 터지면서 노무현의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역시 수사가 몇개월에 걸쳐서

장기간 진행되었고

노무현은 기업인 박연차에게 받은 15억은

이자율 7% 로 명시된 차용증을 써주고 받은 것이라

거래로 판단되 죄를 묻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리 되었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15억원 차용증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에도

15억원을 또 지원해 달라고 요구해

내가 차용증을 써달라고 해서 받은것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착잡한 심정을 글로 남기며

인테넛에서 모든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더이상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아달라며

스스로 칩거에 들어갑니다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태우 , 전두환에 이어 세번째로 검찰에 소환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고

박연차에게 받은것으로 보이는 500만 달러(50억) ,

권양숙이 받은 100만달러 ,

정상문이 횡령한 12억 5천만원의 업무추진비에 관련한 수사를 받았고

검찰은 노무현에게 이런 돈의 흐름을 재임기간에 알고 있었냐고

집요하게 캐물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른다' 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재산규모가

2008년 2월 공개된 규모로는

9억 7200만원 가량이었는데

노무현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박연차에게 돈을 13억원 받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재인 전 비서실장

 

(최측근이었고 현직 대통령이므로 당시 증언중 가장 신뢰가 있음)

 

은 당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재인>권여사는 이번 일에 대한 자책감과 걱정 때문에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 ,

 

검찰이 이런저런 배려를 해줘서

제가 변호인으로 입회한 가운데 조사를 받았고

중간중간 몇번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

500만달러는 노 전 대통령은 물론 건호(노무현 아들) 씨와도 무관하다 ,

 

권여사가 받은 것이라고 밝혔는데

왜 자꾸 노 전 대통령이 부탁해서 받은 것처럼 하는지 모르겠다

 

많은 국민들이 존경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야당출신 대통령 이명박의 정치보복성 수사로 비춰지게 되어

70% 국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구속에 반대하였고

부정적인 국민여론을 의식한 집권여당 한나라당도

이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늦추며 몸을 사리기 시작하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대부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도

악화된 국민여론을 인식하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게 됬고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역시 국민여론의 의식하여

불구속 수사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한지 3주쯤 지난 뒤인

2009년 5월 23일

노무현은 자택의 컴퓨터에 유서를 작성해두고

사저 뒷산인 봉하산 부엉위바위에서 투신자살하였고

이후 경호차량에 실려 지역병원에 후송됬지만

시골병원 특성상 수술이 불가능해 다시 양산부산대학교 병원에

후송됬지만 도착후 사망합니다

 

 

당시 악화된 국민여론에 노무현 대통령까지 사망하자

민심이 극도로 들끓었고

수사에 부담을 느낀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시켰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등이 자진사표를 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5.23 새벽

 

당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버스를 내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기소침한 모습이 유명했고

 

 

수사를 제대로 종결짓지도 않고

전직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수치주고 망신주는 형태로 하다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검찰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쏟아졌고

검사출신의 한나라당 홍준표 역시

 

'구속을 하려고 했다면 신속히 결정해야지 ,

전직 대통령 수사를 하면서 모욕만 주었다'

 

며 검찰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또한 수사 역시 끝내 의문을 남기며

흐지부지하게 되었는데

 

노무현의 죽음으로 지지자들이 결집하고

노무현의 죽음이 마치 예수나 링컨의

희생적인 죽음마냥 , 숭고한 자결로 포장되기도 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형사처벌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

왜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법으로 다투지 않고 

자살을 선택했는가 ?'

 

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반문을 해볼 수도 있고

오늘날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은

대한민국 정치사를 뒤바꾸어놓았고

끝내 현직 대통령이자 노무현의 최측근인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온 큰 사건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하기 전인

2009년 4월 22일 인터넷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의 최근글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때가 같습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노무현>

...

500만불 , 100만불 ,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는 아무 말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이미 밝혀진 사실 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 나는 몰랐다'

 

이 말은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전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

...

정상문 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마당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면목도 없습니다.

그는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저는 그 인연보다 그의 자세와 역량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

저를 더욱 초라하게 하고 사람들을 더욱 노엽게만 할 것입니다.

이제 제가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입니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나면 그렇게 것입니다.

...

저는 이곳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도덕적 명예가 아니라

피의자의 권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공감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저를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사건 아니라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방향전환을 모색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동안에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상 더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사정이 되었습니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이 사이트를 정리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관리자는 이 사이트는 개인 홈페이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협의를 하자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제 '사람 세상' 문을 닫는 것이 좋겠습니다.

(2009.04.22)

 

여기서 노무현의 자신을 버려달라는 마지막 부탁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망 이후에는

반 이명박 진영이 결집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장례는 국민장에 의해 치루어졌고

국민의 큰 사랑을 받은 대통령답게

5백만명이 조문하는 역대 최대기록이 쓰여집니다

 

노랗게 물든 당시 거리

 

노무현 대통령 사망이후

10% 대의 낮은지지율을 보이던 민주당은

순식간에 28% 지지율로 정당지지율 1위를 기록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일부 한나라당 지지층의 이탈 , 진보진영의 민주당 지지 결집이

이루어졌고 60% 정도의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 죽음이

이명박 정부의 정치보복이라 생각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해야한다 했습니다

 

당시 분위기 파악 못했던 명박이 가카..

 

그러나 이로인해 노사모 , 친노진영은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점차 극도의 배타적 ,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이명박 , 보수진영에 증오심을 가진다거나

노무현의 잘못 역시 실수라는 등으로 무조건적으로 덮으려 하는

모습을 보였고 노무현의 뒤를 이은 문재인 , 친문진영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을 눈살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고 생각됩니다

 

화제가 된 극성지지자들의 '대깨문' 발언

 

오늘날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버려달라 부탁한 그의 의도와 달리

성역화 되고 무슨 비판이 불가능한 존재화 되었고

 

이명박 , 박근혜가 잘못한것은 독재라고

자유분방하게 비판 , 조롱하다가도

노무현 , 문재인 잘못한거 이야기하면

막 정색빨고 털어서 먼지안나오는 사람 어딨냐는등

하는 모습이 참 어처구니 없고

 

진짜 노무현을 좋아했다면

노무현의 마지막 부탁대로 그냥

노무현은 보내주어야 하는게 맞고

노무현 유언대로

화장해서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던가 해야했는데

 

끝까지 불러들여서 노무현 팔이하고

노무현 반대 , 비판자를

완전 일베(극우 정치사이트)마냥 몰아세우고

무덤도 무슨 피라미드 모양으로 기괴 , 거대하게 지어버렸고

참 후진국성 정치의 형태를 보여준다 생각됩니다

 

괴상한 노무현의 피라미드 무덤 , 일루미나티 괴담도있음 ;;

 

전 무조건 노무현이 좋다 생각하고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같이

형성된 이 분위기가 국민 전체의 생각이라 생각되지 않다 보여지고

노무현 정권 밑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꿀빨던 측근들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노골적으로 노무현을 우상화하며

국민들을 선동하고 현혹 , 우민화 시키는 것이라 생각되고

 

대한민국의 법은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이건 서울역의 노숙자에게건

공정하고 평등해야하는데

 

그렇기에 법의 여신상이

칼과 저울 , 혹은 법전과 저울을 든채로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 것인데

 

정의의 여신 디케

 

법조인으로서 법을 누구보다 잘알던 노무현이었기에

이런 것을 모를리가 없었고

 

대한민국 정치가 선진화 되려면 

이제 그만 노무현을 놓아주어야 하고

아닌건 아니라 비판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바로세워야 한다 생각합니다

 

당장 가난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면

곧바로 감옥에 가거나 매스컴에 나오는데

유독 대통령 , 정치인들에게 관대한 법의 한국문화이고

그냥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이딴식으로 할거면

누가 법을 지키고 규칙을 지키려 할지 모르겠습니다

 

노무현-박원순의 죽음 역시

국민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은게

부정부패와 성폭력과 싸운 인물들이

그것에 연루되 자살해버렸다는 것이고

또 극성지지자들이 그런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

곧바로 보복한다거나 하는 모습때매 더욱 충격받고

대한민국사회를 후퇴시켰다 생각하고

 

뒤가 구리니 계속 잘못한걸 인정안하고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선량한 일반준법시민들을

괴롭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노무현 역시 노무현답게

전직 대통령의 품위를 지키며 법정에서 뇌물 안받았다고

검사한테 삿대질하며 호통도 치고 해야 국민들이 존경했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고 노무현답지 못한 마지막이었다 생각됩니다

 

많은 추억을 선사해준 대통령이었고

인간적인 대통령이어서

 

노무현이 사망할 당시에 이명박을 나쁘다 생각하고 노무현을 그리워하면

그건 정상이라 생각하지만

노무현을 좋아한 어린이 , 청년들은

노무현 덕분에

정작 정시와 사법고시가 사라지고

법치주의와 대통령을 비판할 언론자유가 후퇴했다는 점에

지금도 노무현을 지지하면 그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무현이 가장 존경한 링컨의 명언중에는 이런 말이 유명합니다

 

<링컨>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 

몇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You can fool all the people some of the time

and some of the people all the time ,

but you cannot fool all the people all the time

 

노무현은 한국의 링컨이 되고싶었지만

결국 그는 노무현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했을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넑을 기리며 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조사가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한명숙>다음 세상에선 부디 대통령도 ,

정치도 하지 마시라.

다시 '바보 노무현' 으로 살지 마시라

,

설령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님의 뜻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다

,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라봉봉>제가 김대중 대통령때는 너무어려서 기억이 별로 없는데

한창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시절이 노무현 대통령때였고

중학교 고등학교때가 이명박 대통령때라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제 첫 기억속 대통령이긴 한데 

그땐 한창 놀러다니고 재밌는거나 게임좋아하던 어린이였고

솔직히 노무현이 정치를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기억도 별로 없는거 같습니다

 

나이들고 공부하고 돈도 벌어보고 군대다녀오고 글도 쓰면서 느낀게

그때는 보이지 않던 정치인들의 여러 모순이 보이고

반미 , 반일감정등도 다 그시기 정치인들이 계획한 점이 있다는 점에서

마치 소설 1984가 생각나기도 하고 정치라는게 국민 일상에 참 피부로 느껴지게 되었고

그들의 알려진 모습과 알려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더 깊게 한국 역사를 읽어보고 생각해보니

그냥 그게 대한민국 국민들 수준이었다 생각됩니다

 

역사에서는 잘한점과 못한점이 뚜렷이 보이고

또한 역사가의 성향에 의해 그게 두각되기도 하나

실제로 노무현 넘길만한 한국인들이 별로없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거에 그냥 휩쓸리고 그전 선임대통령들이 그래왔으니

자기도 그렇게해도 별 문제없을거라 안일히 여긴것도 여럿 있었다 생각하고

그렇게 대부분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끝이 대부분 안좋았다 이야기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사실상 국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기에

오늘날까지도 국민들을 당혹시킨 인물이기도 하고

 

특히나 역사에서도 그래왔듯이

진보정치인들이 조심해야할게 내로남불과 포풀리즘인데

부정부패의 기성세대를 공격하며 올라왔으면 자기자신도 청렴해야하는데

본인도 부패했으면서 남에게만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다

결국 자기모순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것이라 생각되고

 

또 지나치게 인기위주로만 정치를 하다가

정작 아무런 실속도 챙기지 못한다면

망국의 지름길이고

 

노무현 측근들 역시 노무현을 지지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죄가 더더욱 표면으로 드러나기에

그시절 노무현 측근으로서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면

그냥  자숙하는게 낫다 생각합니다

 

노무현이 참 친구들 즐겁게 해주는 정가는 친구 느낌이기에

저도 사람 노무현은 좋지만

아닌건 아닌거고

역사에 거짓말을 쓸수는 없고

 

노무현은 세속적으로만 보면

흙수저의 사법고시합격-대통령 등

너무나 성공한 사람이고

이에 많은 정치인들이 노무현의 그런 성공한 모습만은 닮고싶어하긴 하지만

박정희나 김대중같은 고상한 느낌이 너무 부족했던 인물이고

속된 느낌이 너무 강한 인물이었다 생각됩니다

 

노무현은 그냥 이전 청년노무현이 그랬던것처럼

살아서 정의롭게 이명박 정부에 맞서거나 법에 당당했어야 했는데

너무 비겁했다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소탈한 이미지와 달리

엄연히 사법고시 출신의 판사 , 조세변호사 출신이었기에

법과 돈개념을 엄청나게 잘 알고있었던 인물이었고

비록 마지막까지 승부수를 던지며

자살을 함으로서 법에서는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만

역사와 하늘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고

 

저는 법보다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 , 윤리를 더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라

법을 설사 못지키더라도 그럴만한 사정이나 사유가 있으면 이해하는 편인데

지나치게 법을 지키려하며

인간간의 기본적 원칙들을 안지키는 사람을 오히려 더 경계하는 편이고

꼭 그런사람들이 결국 법도 안지킨게 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 

조선시대때에도 관료들이 과거공부만 합격하면

책을 안읽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들이 존재했는데

과거시험이나 고시만 합격하면

다들 엘리트라 인정해주고 똑똑하다 해주기에

그다음부터는 안일주의와 향락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되고

이런 고등시험 합격자들이 대부분 어려운 것을 성취했다는 곤조같은게 있어서

자기만 똑똑하다는 식이거나 고집도 강하고 남의 말은 오지게 안듣는 경향도 있다 생각되고

 

오히려 지식인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과 같은 고졸이었음에도

고시합격자는 아니었기에 속으론 열등감이 많았어도

한국 관료들이 뜯어말린다거나 전문가들이 말리면 말을 듣기라도 했는데

노무현은 고졸이지만 엘리트긴 해서 엘리트들 말이나 조언들도 안듣고

본인도 기득권이면서 기득권들이랑 싸우려고하니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고

그들과 싸움을 너무 많이 했다 생각됩니다

 

또 김대중은 전라도식 영어지만 영어가 되긴 되서

한국 엘리트들이나 미국도 김대중을 되게 좋아했고

노무현은 사법고시출신임에도 영어를 못해서

본인도 스스로 답답했다 한적이 있고

그런거때문에 한국기득권이나 미국이 속으로 무시하고 별로 시큰둥하게 여겼다 생각도 됩니다

 

이게 별게 아닐 수 있지만

저도 영어가 되기전엔 노무현식 좌충우돌한 마음이 강했고

사실 저도 최근에서야 영문학책이랑 영어로 쓰인 한국역사 읽고 영어가 트이니 문맹에서 나온 느낌이고

이젠 저도 영어 이외에도 다른나라 언어도 하는 방법을 대충 알거같고

영어로 혼자 작문도 하고 대화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로인해 대한민국 기득권들의 심리를 이젠 아주 잘 알수 있게 되었고

그런것때문에 기득권들이 노무현을 특히 무시하고 조롱한것도 많이 있었다 생각됩니다

 

하여튼 ,

지나친 인기주의 정치인도 위험하지만

보수계들 역시 지나치게 약자에게 냉정하고 악한 모습을 많이 보여왔고

가끔은 어려운 친구를 위해 그것이 손해일지언정

자신의 시간을 낸다거나하는것도 참 의롭고 값진 일이기에

전 좌파나 민주당의 방법이 꼭 나쁘다 생각하지는 않고

배울점도 많이 있다 생각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좀만 더 교양을 쌓았으면

한국 최고의 대통령이 됬을지도 모른다 생각되고

사실 어느 대통령이던 다 그렇다 생각하는데

 

좋은 정치를 하려면

한쪽만 보려 하지 말고

불행한 사례나 값진 사례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아야 한다 생각됩니다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어린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에 실망해

아버지는 잔트가르(영웅) 인줄 알았는데

잔트가르가 아니라고 실망하며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에게 걸었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생각되고

참 슬픈 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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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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