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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 신화 이명박>

[현대자동차를 지켜낸 이명박]

[고르바초프와의 만남]

[통일국민당]

[신화는 없다]

[현대에서 나온 이명박]

[야망의 세월]

[선거법 위반]

[서울특별시장]

[청계천과 환승제도]

[이명박 VS 박근혜]

<라봉봉>

 

[현대자동차를 지켜낸 이명박]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던

1980년 5월 ,

 

'샐러리맨 신화'

 

를 쓰던

고작 38세의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

한창 현대건설에서 승승장구하던 시기

신군부의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자신을 상임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를 설치했고

 

국보위 현판 설치를 마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전두환 국보위는

이전 박정희의 혁명정부(구군부 , 국가재건최고회의) 가

그랬던 것을 완전히 벤치마킹해서

 

다시금 군사독재에 대한 민심을 경제로 돌리려했고

국보위는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이라는 경제정책을 들고나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중화학공업 중복투자를 통합한다 했고

이로인해 현대는 자동차와 발전설비 중 한가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ㅆㅂ 나는 지금 화가 많이 나있어

 

신군부는 현대그룹에게

3김씨(김대중 , 김영삼 , 김종필) 에게 준 정치자금을 대라며 추궁하며

동시에

 

현대자동차를 포기하기를 종용했고

정주영 회장은 포기각서에 도장찍는 일을 이명박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은 

 

<이명박>내 손으로 넘겨줄 수 없다

 

며 끝내 버텼고

 

<이명박>그날밤 회사로 돌아와 정회장을 만나니

말로만 듣던 피눈물이 정말로 눈에서 나더라

 

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이명박은 보안사(군대 정보조직 , 군인용 국정원)에 끌려가서

세차례 불려다니며 온갖 외유와 협박을 받았고

그럼에도 이명박은 끝까지 버티며 현대자동차를 지켜냈습니다

 

현대자동차를 지켜낸 이명박

 

결국 국보위도 현대에게 한수 접어주어야 했고

당시 국보위 뜻대로 됬다면

오늘날 세계를 누비는 현대자동차는 없었을 것이고

그것을 바로 이명박이 지켜낸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자동차회사인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근데 이로인해

현대그룹 , 정주영 회장은 이전 박정희 , 구군부때까지는

박정희 정부와 경부고속도로 산업 , 중동진출 등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다가

전두환 , 신군부 , 5공시절엔 점차 관계가 악화되었고

 

전경련(전국 경제인 연합) 회장이었던 정주영 회장은

이 일로 사퇴를 종용받기도 했고

이런 정치권의 경제 개입 등의 경험떄문에

권력에 환멸과 동경을 가진 정주영 회장은 결국

압박에 지쳐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 직접 출마하기도 합니다

 

[고르바초프와의 만남]

1988년 3월 이명박은

46세의 나이로 현대건설 회장이 됬고

이무렵부터 이명박은 좀더 무대를 넓혀

공산권 등 북방과의 교류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명박은 기업활동을 하며 얻은 여러 인맥을 통해

당시 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상황의 모스크바에 접근했고

소련정부는 결국 이명박과 정주영에게 초청장을 주었고

이명박은 정주영을 설득하여 같이 1989년 모스크바를 방문합니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정주영-이명박 , 왠만한 부자지간 같습니다

 

정주영은 이에 소련 곳곳을 누비며

레닌그라드의 알루미늄 제련소 건설 ,

연해주 임산업 합자회사 설립 ,

석유화학제품 회사설립 ,

올가항 펄프제지공장 건설 ,

옐큰스코어 석탄개발과 철도건설 ,

야쿠티야 가스개발 등

굵직한 합의를 이루어 냈고

 

1991년 11월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

한국기업의 소련내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이명박은 세계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던

마지막 소련 황제(서기장=황제급)

정치거물 고르바초프를 본 이후 정치입문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명박>고르바초프라는 한 인물로 인해

세계에 생긴 변화를 지켜보면서도

나도 뭔가 일을 해야겠디고 생각하게 됐다

 

당시 이명박-정주영-고르바초프

 

이 자리에서 고르바초프는

북한이 한국보다 가난한 이유가 공산주의를 채택한 탓이라 말해

일행을 놀라게 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들도 다들 각국 엘리트들이라

자기 국가 현실을 사실 매우 잘 알고있음)

 

고르바초프는 이때 북한을 가난한 상태로 방치하면 핵개발의 위험이 있다

경고해 주었는데

이명박은 이 이야기를 정부에 전했지만

정부는 

 

'북한은 그럴 능력이 없다'

 

고 이명박의 말을 무시해버렸습니다

 

[통일국민당]

하여튼 ,

그런 와중에도

정치인들의 갑질에 분노한 정주영 현대 왕회장은

결국 신당창당을 선언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었고

 

답답해서 내가 뛴다 ㅆㅂ~~~

 

1992년 1월 정주영은 '통일국민당' 을 창당했고

1992년 12월에 있을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결심합니다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도 상당히 난놈이었기에

정주영 현대 왕회장은 자신의 최핵심부하였던 이명박에게

통일국민당에 합류하기를 원했고

그러나 이명박은 재벌총수가 대통령이 될경우

사회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정주영의 창당을 반대했습니다

 

아니 왕회장님 그래도 그건 아니죠 씨부랄

 

사실 재벌이 정치인이 된다면

이미 돈이 많은 사람이기에 뇌물이나 뒷돈을 주면 주었지

받는 것에서는 자유롭기도 하고 

 

막대한 자금력으로 청탁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정경유착' 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고

 

정경유착이란 정치와 경제가 유착한다는 뜻으로

만약 경제인이 정치인이 된다면 국가정책을 자신의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특혜사업을 퍼줄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사람의 욕심은 욕심을 부린다면 끝이없기에

재산이 많다고해서 재산증식활동을 중단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사례가 이전 로마시대에 있었는데

폼페이우스 , 카이사르와 삼두정치를 했던 것으로 유명한

로마 제일의 부자였던 크라수스(현대 정주영 회장 격) 는

권력과 돈을 이용해 소방서를 매수해 불을 끄는 것을 늦추고

불에 탄 집을 싸게 사서 리모델링해 비싸게 팔았다는 야사도 유명하고

전문노예로 이루어진 단체를 거느리며 전문인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노예를 빌려주는 사업을 하는 등

돈을 벌기위해 수단 방법안가린 인물로 유명하고

이런 인물이 카이사르 , 폼페이우스와 권력까지 잡아

더욱 무소불위로 행동하였고

이게 바로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폐해의 예시였기에

 

이전부터 양심있는 정치인 , 학자들은

계속해서 정경유착을 경고해왔던 것이고

정주영 회장을 말린 이명박 역시 이런 이유였던 것이고

 

또한 경상도의 부자에 속했던 멸치어장을 거느렸던

김영삼 집안 역시

김영삼이 정치 초기활동할때는 무리없이 자금을 지원해주었으나

개인이 아무리 재산이 지역 탑급으로 많아도 

국가경제 GDP 급에서는 새발의 피이기에

김영삼도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나

길거리에서 민주화운동 하다가

결국 신군부의 노태우에게 무릎을 꿇고

3천억을 지원받아야 했고

 

세계 제일의 부자로 유명한 석유왕 록펠러 역시

돈에 파묻혀 죽을 수준으로 많았음에도

그의 재산 최고액인 당시돈 15억 달러는 

당시 미국 GDP 의 고작 1.6% 에 불과했고

세계적 그룹으로 성장한 한국 삼성그룹도

2014년 국내총생산 GDP 에서는 4.7% 에 불과한데

 

국가 경제에 비해서는 삼성 , 현대를 다 합쳐도 안되는 수준이라

수천억 , 조단위로 재산을 가진 기업인들도

10억~50억이 재산이 다인 정치인들에 비해

굴리는 액수가 훨씬 적게 되는 것이고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나 , 정치인들은 개인재산이 20억에 불과하더라도

 

(2021년 국회의원 평균재산 23억이고

2021년 문재인 대통령 재산이 20억 7천 700만원으로 집계)

 

실제로 그들이 굴리는 돈은 현재 2021년 대한민국 총예산이 482조기에

 

지금 한국부자

1위인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14조 가량이나

2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14조 가량이기에

서정진 이재용 김정주 김범수 정몽구 등 온갖 한국 재벌 회장들 다합쳐도

재산 20억따리인 문재인 대통령 한명의

482조 보다 적게 돈을 굴리는 것이고

 

다른 말로보면 정치의 영역은

경제의 영역와 절대로 같게 돌아가지도 않고

정치인과 기업가의 마인드도 다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외국이나 대한민국이 부자들만 세금 많이 낸다고 착각하는데

 

세계사적으로도 현대시기(1945년~) 에는

근대시기에는 없었던 '간접세' 개념이 만들어졌고

1954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도입되었고

대한민국도 박정희 정부때

부가가치세법을 제정하여

1977년 7월 1일부터 시행했고

 

(이거때매 박정희 정부말년

민심이 최악으로 됬고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는 것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봄)

 

이로인해 우리가 평소 소비하는 담배와 술(전 안함ㅋ) ,

유류(석유) , 음식 등 기초생활품에도

문재인 대통령님과 국가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정확하게 떼고 있기에

기초생활수급자 , 고아 , 어린이 , 빈민이나 서민들도

세금 안내는것으로 착각할 뿐이지

실제로 막중한 세금을 내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와 공무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고

 

(세금내는 상위 1프로나 재벌이 아무리 세금 많이내도

그들보다 대한민국 빈민 , 서민 , 중산층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기에

규모의 경제를 무시하기 어려움)

 

기업 제품은 그 기업이 싫거나 마음에 안들거나

내가 핸드메이드 할 기술이 있거나 그제품이 이미 집에 있으면

굳이 살필요가 없고 그건 내 자유인데

 

(또 그로인해 회사가 망하던 흥하던 기업책임일뿐 소비자 책임이 아님)

 

세금이란건 직접세나 간접세는 폐지되지 않는 한

내가 박근혜가 싫던 문재인이 싫던

앞으로 윤석열 , 홍준표나 이재명 , 이낙연 등 누가 대통령 되던지

계속해서 대통령이 바뀌던

여당이 바뀌던 알바 없이 계속 내야되는 것이고

 

국가는 어짜피 경쟁력 관계없이 계속 강제로 세금을 부과하기에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기업인들과 달리 해고 걱정도 적어서

연금이랑 추가수당도 고액으로 꼬박꼬박 나오고

 

이로인해 아무리 애플이나 삼성 , 세계적 기업들이 날고 기어도

가만히 앉아서 돈찍어내기가 가능한 정부의 세금이 엄청나게 무서운 것이고

규모 자체가 기업과 국가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애플이 현재 시가총액이 2조달러로서

세계 8위 이탈리아 국가 수준이지만

정치인들은 세금을 조정하거나 법을 바꾸는게 가능하기에

애플 조지기로 합의하고 세금올리면

천하의 애플이나 구글 , 삼성같은 초거대 기업도 순식간에 노키아 꼴 나거나

록펠러 석유회사마냥 갈갈이 해체되는 것이고

 

이는 국가수준 약화로 이어지기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근데 미국 정치인들도 점차 미군파병 , 무기 파는거보다

넷플릭스랑 아이폰 , 백신 한개 더파는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고 점차 인식이 변화하고 있기도 함)

 

이런거때문에 기업인들 입장에서도

평생 서울대나 하버드 , 법정 안에만 있어서

경제 ㅈ도 모르는 서생같은 공무원 , 정치인들이

돈 굴릴줄도 모르고 시장경제 개념도 없이

기업 조지고 세금 올리고 혈세낭비하는게 매우 고깝게 보이는 사례가

ㅈㄴ게 흔한 것이고 정주영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자

20세기 한국 재벌들의 불꽃이었다 할 수 있고

 

끝내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정주영 회장

 

이후 이명박 대통령도 좀 문제는 있었지만

기업인 출신으로서 이런 ㅈ같은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본인이 정부 수반이자 대통령임에도 아예 국가 정책을

 

'작은 정부 , 큰시장'

 

으로 지향했고

국민들도 그래서 좀 나빠도 명박이처럼 경제 아는애들 뽑지

착하고 순진해도 경제 모르는 정치인들 무조건 거르려하는게 아닙니다

 

옛날에도 정치인들이 군부 계속 차별하고 갈구기만 하다가

군인들 쿠데타일으켰듯이

지금도 대한민국 재벌들도 정치인들의 갑질과 압박에 지쳐서

본업에 충실 못하고

정주영마냥 정치 마려운 기업인들 한둘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

그로인해 당시 아무리 정주영 회장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끈 혁신적인 기업가이자

세계적 부자 + 대한민국 재산 1위 재벌이었음에도

정치판에서 수십년동안 닳고 닳았던 정치인들을 감당해내기가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고

이로인해 이명박도 본능적으로 잘 안될거라 느끼고

정주영 회장을 말린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정치인들의 견제와 강압에

정치판에 안나가고 기업에서 짜져있기만 하다가는

또 현대그룹이 공격당하는 상황이기에

정주영 회장은 당시 안나가기도 그런 상황이었고

 

실제로 정주영 회장이 14대 대선에서 16.3 % 득표를 얻어

기성정치인이었던 김영삼 당선시키고 김대중 낙선시킬 수준은 됬기에

14대 대선 이후로 정치인들도 더이상 현대를 갈구지 않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되진 못했지만 나름 선방쳤던 14대 대선 정주영 회장

 

일단 정주영회장은 이명박에게 세 번이나 출마하길 권했고

이명박은 세 번 모두 거부했습니다

 

이로인해 이명박은 1992년 1월 현대그룹을 떠나게 됩니다

 

[신화는 없다]

흙수저로 태어나 야간반 동지상고를 진학하였고

낮에는 뻥튀기를 팔던 포항의 수재소년은

주경야독하여 고려대에 입학 ,

학생운동을 하다가 투옥 ,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20대 이사 , 30대 사장 , 40대 회장을 거친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흙수저의 전설이 된 인물이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입지전지적인 인물의 대표로 이야기 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그는 현대 정주영 회장 이후의 '거목' ,

샐러리맨의 희망이라는 명성과 동시에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이야기를 자주했고

그럴때마다 이명박은

 

'신화는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신화는 없다' 는

이명박의 자서전 이름이 되었습니다

 

신화는 없다-이명박

 

사람들이 보기엔 이명박은 정주영 줄 잘잡고 고속승진한 운좋은

봉급직장인(샐러리맨) 의 신화였을 뿐이지만

그에게 있어서 현대그룹에서의 삶은 여러 위기와 도전속의

냉혹한 현실이었고

 

이명박은 자신이 시련속에서도 좌절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도전과 돌파로 이겨냈던

그 '용기' 를 사람들은 '신화' 라 부른다 회고했습니다

 

[현대에서 나온 이명박]

하여튼 ,

정주영 회장의 부탁을 거절한 이명박은 이로인해

현대를 사퇴하게 되고

현대그룹 , 정주영 회장과 좋지 않은 관계가 시작되었고

 

아무리 이명박이 현대가 중소기업 시절일때부터 들어가서

현대에 공이 있고 정주영 회장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어도

이명박은 결국

'이씨' 로서 남이었고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현대는 개인 사기업이기에 결국 정주영 회장의 아들들인

'정씨' 들이 주도하게 됩니다

 

정주영 회장의 새벽 아침과 아들들과 매일 걸어서 출근하는 정주영 회장

 

당시 정주영 회장은 정치에 출마하면서

국민당 대표공약으로 '반값아파트' 를 내세웠는데

여기에도 이명박은 부정적인 뜻을 표했고

정주영 회장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현대일가도 이명박에 대해 불신감을 감추지 않았고

정주영의 아들인 정몽준 의원 역시

이명박이 복잡한 감정이라 말했습니다

 

사실 그래도 자기 기업 키워주고 동고동락한 양반인데

정씨들과 현대가가 왜 이명박을 애증으로 바라보냐면

이명박은 그냥 반대만하고 그친게 아니라 현대 퇴사후

형인 이상득 의원이 몸담고 있는 여당이자

김영삼이 있는 민주자유당에 합류했고

 

이로인해 재계나 정치계에서는 이명박을

 

'주군을 배신한 인물(배신자)'

 

라고 손가락질까지 합니다

 

이명박도 정주영에계 받은 혜택이 워낙 컸기에

양심상 정주영이 어짜피 대통령 될 가망은 없더라도

정주영 밑에서 조력자로 활동하다가 당해체될 시기

형 도움 받고 김영삼 밑으로 가도 충분한데

그랬더라면 이후 정치인이 되고서도

현대가의 거대한 물적 , 심적 지원을 받았을텐데

멀리 못본 것이었고

 

정치나 경제세계가 냉혹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결국 정치나 경제도 사람이 굴리는 것이기에

아무리 가망 없다고 바로 내치는 것은 인간적 도리가 아니기도 하고

 

스티브 잡스 , 정주영 , 이병철-이건희

이런 인물들이 좆소사장이 아니라 대기업가로 성장한 이유도

장사수완 이외에도 이런 점을 잘 알았기에

결국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잘 대해주거나

직원들 사정과 현실을 헤아리거나 월급 팍팍 주고 했기 때문이지

실제로 냉혹하다는 대기업가들도 자기 직원들 월급은 업계 최고수준으로 줬고

직원들 생활 도우려 했기에

 

일 못하면 갈구는 것은 있었다 할지라도

사람들 인식+네거티브들과 달리 대기업 사장들을

좆소 사장들의 그릇과 동일시하면 안되고

기업 노동자나 부하들도

다 사람이기에 인격적으로 잘 대해줘야 또 더 크게 돌아오는 것이고

자기 사업장 직원들이 자기 기업에 악감정 가지면

소문도 금방나고 기업 불매로 이어지기에 결코 좋지가 않습니다

 

근데 이명박은 정주영처럼

자기가 고통스럽게 노가다뛰며 자기 회사 차린 오너사장이 아니라

고려대 나와서 엘리트 사원으로 시작한 봉급쟁이 사장답게

솔직히 이병철-이건희나 정주영보다

그릇은 작았다 생각되고

마인드도 틀린 부분이 있었고

 

이명박은 그렇게 더이상 이익이 안된다 판단되는

정주영 회장 , 현대가와의 오랜 우정과 의리를 단칼에 쳐내고

현대 사장 , 샐러리맨 성공신화라는 후광을 업고

바로 형이 있고 쭉쭉빵빵한 기득권 정당인 민주자유당으로 들어간 것이었고

이런 냉정한 모습으로 인해

현대가도 , 정치계에서도 뒷말이 많았습니다

 

<이명박>나는 정주영 회장에게

김영삼에게 자금조달을 하며 지원을 하라고 했으나

정회장은 듣지 않았다

 

이명박은 근데도 양심상 거의 부모같았던

정주영에 대한 고마움이 없을 수가 없기도 하고

속내를 알수 없고 복잡한 인물이었고

 

<이명박>사업을 같이 했다고 정치도 같이해야하냐

 

현대가와 이별하고 정치권에서 활동했을 당시에도

사무실에 정주영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두었고

 

2001년 3월 정주영 회장의 빈소를 찾은 이명박을 목격한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격자>내가 아는 이명박은 차가우리만큼 냉철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그날 빈소에선 눈물을 흘리는 거에요.

모두들 깜짝 놀랐죠.

 

2007년 정주영 회장 부인 변중석 여사 빈소찾은 이명박 , 정주영 아들 정몽준과 악수하는 이명박

 

그리고 이명박은 훗날 자신의 프로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명박>

내일생 3대사건 :

좋은 어머니를 만난 것 ,

중학교 선생님의 야간고 입학 권유 ,

정주영 회장을 만난 것

 

 

[야망의 세월]

이명박은 하여튼

경제전문가 영입이라는 명목으로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컴퓨터 달린 불도저(컴도저) ,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불리며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14대 총선 전국구(비례대표) 에 출마하여

당선 ,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는데

 

이명박과 김영삼

 

그가 정계입문하게 된 계기에는

사실 이것들보다 이전에 한 드라마가 초대박을 쳐서입니다

 

1990년 당시 이명박과 정주영을 모델로 한

KBS 주말드라마 '야망의 세월' 이 주인공이

대놓고 이명박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거의 에미넴의 8mile 수준ㅋㅋ)

 

야망의 세월 주인공 , 유인촌이 연기한 박형섭은

6.3 사태에 가담해 단식투쟁을 한 주인공이

운동권에 회의를 느낀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세계 각국을 돌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내용을 그린 드라마였고

 

야망의 세월 유인촌(이명박을 본뜬 역할) , 이명박 대통령 만들어준 드라마

 

이명박 모티브한 드라마가

KBS 국영방송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45%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전국에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를 알렸고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된 유인촌(이명박)

 

이명박은 이미 드라마로 인해 정계입문전부터

한국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전국구 스타로 자리잡은 인물이었고

국민들에게도 이명박의 심했던 초년고생과 기구했던 일생이 퍼지게 되어

성공적인 한국형 기업가상 ,

정의로운 영웅상 ,

이명박의 대중적 인기의 근원으로 여겨진 드라마였고

 

전쟁과 가난으로 가난하고 모두가 못먹고 못살던 시기

20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의 꿈은 오로지 성공이었고

그런 성공신화를 체험한 롤모델이 필요한 시대에

이명박이라는 성공신화는 시대상에 적합해 보이는 인물이었고

 

시청자들은 드라마와 현실을 동일시하기도 했기에

이 대박난 드라마로 인해

이명박은 대통령까지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빈말은 아닌게

김대중 정부때 드라마 허준(1999년~2000년) 이

시청률 65%를 넘길정도로 초대박나자

잠시동안 최상위권 이과생들이 경희대 한의학과로 빠졌고

2001년 대학입시에서 경희대 한의대가

서울대 의대에 준하는 합격커트라인을 기록할 정도였고

대한민국 부자들이나 엘리트들이

ㅈㄴ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무슨 클래식만 볼거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일반인들보다 조금더 공부많이하고 조금더 선동 안당하고 조금더 합리적으로 생각할 뿐이지

그들도 다 인간이고 요플레 껍질도 핥아 먹고

솔직히 소녀시대나 트와이스 좋아하고 감성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정치인들도 영화나 드라마 한번 뽕빠지면

그에 맞는 정책을 피기도 하고

이에 문학 , 만화 , 영상 , 드라마 등 매체수단은 사상전 , 심리전에도

사용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또 이거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되자

이명박은 문화체육관광부 초대 장관에 유인촌을 꽂아주었습니다

 

<이명박 유세장에 나온 유인촌>

영웅시대 보셨습니까 ?

우리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근데 장관되고 흑역사 하나 남기신 유인촌

 

이 드라마 때문에 정주영도 국민적 인기가 높아진

이명박을 국민당에 입당시키려 했고

또한 야망의 세월에서 자신보다 이명박에 더 스포트라이트가 쏠려

두 사람의 갈등이 깊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근데 이명박은 이 드라마 때문에 아예 대통령 각 재고 있었고

그래서 정주영이 아니라 김영삼 밑으로 런한듯)

 

또한 이후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할때

2004년 MBC 에서 방영된

 

'영웅시대'

 

역시 이명박을 모델로한 박대철을 유동근이 연기했고

방영내내 실존인물 미화논란이 끊이지 않아

결국 100부작으로 기획된 영웅시대는 70부를 끝으로 조기종영합니다

 

대한민국 1세대 정재계 인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영웅시대(2004~2005) 英雄時代 Age of Heroes

 

이 야망의 세월과 영웅시대 드라마는

이명박에게 영웅 이미지를 부여하며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효과를 낳았고

영웅시대가 끝난지 3년만에 이명박은

도곡동 땅 , 다스 , BBK 의혹 등 온갖 잡음속에서도

경제살리기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속에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이 됩니다

 

이명박은 잔정이 없는데 

또 정에 약하고 마음이 여린 인물이었다 하고 (??)

사람들이 다들 이명박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이게 기회주의 , 이기주의로 말해도 되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이명박은 '야망' 이 있는 인물이었고

그는 평생동안 야망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고

그 또한 예전에 야망에 대한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이명박>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보면 안되고

야망을 봐야 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이니 ,

야망이 있는 남자에게 가면

같이 서로 성장하는 기쁨이 있을 겁니다

 

 

또한 그는 2007년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이명박>야망을 가져라(Be ambitious)

 

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의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에서 나온 말이고

 

일일 체험교사 이명박은 칠판에

 

'Be a MB tious'

 

(Ambitious 에서 명박 MB 를 대문자로 강조한

언어유희잼 , 이명박은 본인피셜로 영어수준이 상급이라 했고

실제로 연설 보면 또박또박 문과식 영어를 구사하는 박근혜보단

확실히 못하고 이같은 분위기 살리기용이나

노력형 영어라 보여집니다)

 

이라고 쓰면서

 

'MB'

 

는 바로 나다며 유우머와 재치를 보이기도 했고

이게 나름 화제가 되기도 해서

이것때문인지 이명박은 모처럼만에

거물정치인들 DJ , YS 마냥 정치인들

이니셜로 불리는 MB 라고도 불린 인물이고

나름 이명박과 야망이라는 단어는 같이 붙어다니는 단어였고

이명박이 막 짜증나거나 기분나빠도 생각해보니 괜찮은 면도 있는게

바로 이명박이 야망이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이고

본인 스스로나 사람들도 이명박을

야망의 남자로 알고 있었고 본인도 인정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명박은 그렇게 야망의 세월로 다져진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정주영 왕회장을 서운케 하고 대충 정계에 입문했지만

정치인의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고

 

[선거법 위반]

이명박은 

1995년 지방선거때 정원식 전 국무총리와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패배 ,

1996년 15대 총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물리치고

정치 1번지 종로에서 당선됐지만

선거비용 초과 지출혐의로 당선 무효판결을 받고

이로인해 서울시장 출마꿈과

2000년 16대 국회의원 출마도 접어야 했습니다

 

당시 유세하는 이명박과 뒤의 노무현 현수막 , 두 대통령의 기구한 운명

 

종로선거당시 이명박은 262억가량 재산을 가진

재력가였고 그가 후보중 가장 공세적인 선거운동을 전개했다는 평도

많았는데

그런데도 그가 3~4위 후보보다 적은 비용을 신고하자

이런거때문에 뒷말이 나오고

당시 이명박과 종로에서 맞붙었던

노무현은 이명박 신고액에 대해

 

<노무현>한마디로 코미디

 

라며 더이상 할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여튼 ,

이때부터 좆될뻔한 이명박은 미국에서 공부하며

몸을 추스렸고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떠났고

그가 한국을 떠난 사이

무주공산이 된 종로구에서는 재보궐선거가 실시되고

훗날 그보다 먼저 대통령이 되는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후보가 다시 도전하여 당선됩니다

 

1998년 7월 종로보궐 국회의원 당선에 기뻐하는 노무현

 

1999년 4월 대법원에서는 벌금형이 확정되며

이명박의 공직선거 피선거권(출마권) 이 박탈되었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가졌는데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과 남북경헙자금을 승인해주는

대가로 이명박 , 홍준표 등 선거법 위반 사범들에 대한 사면에 합의했고

1년후 이명박은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 됩니다

 

[서울특별시장]

다시금 성공신화를 꿈꾸던 이명박은

2002년 서울시장에 선출되며 정치에서도 다시 야망을 가지게 되었고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김대중의 여당 새천년민주당의 참패 ,

야당 한나라당의 대승으로 이어졌고

 

 

새천년민주당은 호남권인 광주광역시 , 전라남도 , 전라북도 , 제주도

4곳에서만 승리하였고

 

한나라당은 서울 , 부산 ,대구 , 인천 , 대전 , 울산 , 경기 , 강원 , 충청 ,

경북 , 경남 11곳에서 대승합니다

 

사실 모든 정치인들이 우리가 잘 모르는 정치인들 조차도

다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 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할 것이고

정치인들에게 있어서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핵심 코스로서

가장 노른자위 , 요직중의 요직이

정치1번가로 불리는 종로구 국회의원과

미니 대선이라 불리는 서울시장인데

 

명박이는 자수성가 현대사장 + 성공신화 바람을 타고

둘다 스무스하게 해먹어버렸고

 

특히 대한민국은 국무총리 힘이 별로 없고

제왕적 대통령제 수준의 국가이고

인구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있기에

대한민국 서울시장이 정치인들에게서도

사실상 대한민국 서열 2위수준이기에

가장 힘세고 막중한 자리중 하나인데

여기서도 한나라당은 국민적 인기가 있었던 야망왕 이명박을 내세운 것이었고

서울특별시장 선거는 격전을 벌였고

민주당의 전도유망한 청년정치인 김민석과

현대사장 출신 한나라당 이명박의 구도로 흘러갔고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내에 치열한 경합이 있다

 

2002년 4월 관훈토론회 하는 이명박과 김민석 서울시장 후보

 

이명박후보가 청계천 복원공사와 중앙버스전용차로 제도 시행을 내놓으며

분위기를 잡았고

김민석 후보가 강북 재개발 , 이명박 후보의 각종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이명박은 52% 표를 얻고

43% 의 김민석 후보에 승리했고

 

이후 이명박은 역대 서울시장중 가장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서울시장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명박의 정치인 성공신화가 쓰여집니다

 

SAVING SEOUL 이명박

 

이명박은 서울시장으로서 '불도저 시장' 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현대건설 사장출신이었기에 토목 , 건축 정책이 유독 많았고

서울 외관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여 바꾸어 나갔습니다

 

가즈아 !!

 

[청계천과 환승제도]

이명박은 취임후 공약대로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행해 공사를 마무리짓는데 성공해

그의 대표적 업적이 되었고

노후화되며 붕괴우려가 있었던

청계천 고가도로가 사라지고

청계천을 복원시켜 시민들의 도심내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고

 

철거된 청계천 고가도로

 

환경적으로도 바람길을 열어내며 도심 대기환경을 개선하고

주변부보다 온도를 3도이상 낮추어 도심의 열섬현상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오늘날의 서울 청계천

 

또한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통해

교통카드 티머니도 이때 도입되고

버스의 번호는 지역에 따라 ,

색은 종류에 따라 체계적으로 재정비됬고

이용요금은 환승횟수가 아닌 이동거리 비례로 바꿔서

어려웠던 버스회사 재정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국민들은 환승제도를 통해 부담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버스왕 이명박

 

<이명박>제가 서울시에서 교통개혁을 할때

저 변두리에 ,

없는 사람들은 다 변두리에 살아요

 

변두리에서 새벽같이 나와서

서울도심에 들어와서

그 사람이 10만원을 벌겠습니까 ,

몇만원을 벌겠습니까 ?

 

버스비를 그렇게 내고

그래도 살기위해서

아침에 첫 버스를 타면

서울 변두리에서 타면

전부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타고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할때

이 아주머니 버스비 한번내고 올 수 없을까

30분안에만 교대하면

몇번타도 공짜로 그렇게 시작했는데

...

제가 지금도 재래시장가면 되게 환영받는 이유가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버스타고 다니고

한번만 돈내고 들어와서

그게 얼마나 절약되는지 모른다 이거죠

 

(가카 ㅠㅠ)

 

이명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명박이 버스환승제도 도입한것은 안까고 있고

이건 진짜 서로가 윈윈하는

교묘하고 영리한 제도라 생각되고

이로인해 교통도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서울시민들은 자가용이 없어도 수월하게 서울 곳곳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중교통 개편전 헬서울이었던 서울도로

 

그러나 청계천 복원사업시기

대부분 협상과 계약과정을 문서로 남기지 않고 구두(말) 로 처리했고

청계천내 소상공인들을 쫓아내는 등 여러 논란이 있었고

 

기독교신자였던 이명박은 뜬금없이

 

<이명박>서울특별시 전체를 여호와 하나님에게 모두 다 바치겠습니다

 

하며 불교 신자들을 분노케했고

 

이외엔 그래도 대체적으로 시장직을 잘해냈기에

이명박 정치인생 최전성기였고

사람들이나 이명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대통령 이명박 , 이명박 비리는 욕해도

서울시장 이명박은 욕하지 않는편이고

현재도 국민들에겐 가장 인상적이고 뛰어났던 서울시장으로 남아있습니다

 

 

(박원순 , 오세훈도 있는데 좀 이분들은

법조인 출신이라 현실과 괴리가 있어보이기도 함)

 

<이명박 서울시장 업적>

청계천 복원 , 환승제도 도입 ,

뉴타운 , 서울숲 조성 , 숭례문 개방 ,

서울수돗물 아리수 브랜드화 ,

경유버스를 천연가스버스로 개편

 

이런 좋은 성적을 냈기에

이명박은 노무현 이후 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상황속에서도

압도적인 표를 받고 그어렵다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매우 무난하게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저도 어렸을때 서울갈때

서울에서 아리수라고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은걸 나눠줬던거 같은데

수돗물을 마실 수 있다는 정도로 국민들에게

서울의 깨끗한 물을 홍보한

좋은 브랜드였다 생각하고

 

아리수 먹방하는 가카 , ㄹㅇ 제기억에도 아리수 페트병이 딱 저 사이즈였습니다

 

사실 정치인들이 괜히 이상한 사업이니 업적 과시하려하는거보다

제발 이런 기본적인 식품 , 수도 , 전기 , 기름 , 난방 , 세금 등

기초 생활영역에서 국민들 안심하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게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이런 영역은 국민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거고

에너지 안보와도 관련되 고도의 능력이 필요하고

노력에 비해 티도 잘 안나는 것인데

심시티같은 경영게임할때도 잘못관리하면 곧바로 도시폭동+슬럼화되는데

실제로도 관리 하기가 쉽지 않아 

정치인들도 할 역량이 없다거나 소홀히 하는 면이 있다 생각되고

제발 인기나 업적 과시용 말도안되는 저질정책 수립하려하지말고

그냥 이런 기본적인 정책이나 잘 관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명박 VS 박근혜]

이런 업적들로 인해

이명박은 국민적 인기가 높아져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당시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민생 , 경제파탄과

실정을 심판해야한다는 정권심판론이 매우 우세했고

 

<2006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 이낙연>

(노무현 정부는) 군사정권보다 더 빈부격차를 키운

반서민 정권 ,

불행하게도 참여정부는 낙제수준 ,

참여정부는 양극화를 키운 장본인

 

노무현 대통령 자살사건 이후로

분위기가 완전 반전되고 노무현 비판에 조심스러운 형태가 됬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는 여당내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을 별로 안좋아했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는 유행어가 생길정도였기에

 

 

(국민들이 인간노무현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냥 좀 많이 까였음)

 

노무현 정부 말기 2006~2008년동안 지지율 저하와

민주당 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가 쌓여

여당 지지율은 바닥을 쳤고

 

반대로 서민대통령 , 경제를 살리는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걸고 나온

이명박은 바로 직전 서울특별시장직을 매우 잘 수행해내고

여러 드라마와 연예인들의 지지로 미화 , 인기 뽕도 충분히 받아

나가면 무조건 승리하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당시 한나라당 소속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분위기였기에

한나라당 경선만 뚫으면 17대 대통령 확정이라는 말까지 나와서

한나라당 대선경선은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게 돌아갑니다

 

이명박은 이때 박근혜와 ㅈㄴ 오지게 싸웠는데

이명박과 박근혜 둘다 눈앞에 대통령 왕관이 아른아른거리는 상황이라

둘다 흥분을 주체못하고 이성을 잃어

서로 같은당임에도 피아식별 못하고 서로 오지게 똥과 진흙을 던져댔고

 

경선당시 서로 팩트폭탄날리다 같이 자폭하신 명박이 형과 근혜 누나 , MBN

 

이때 서로는 희대의 팩트폭력전을 펼치게 되는데

이명박 캠프는 박근혜 최대 컴플렉스였단 최태민 일가 썰을 풀었고

박근혜 캠프는 이명박 최대 컴플렉스였던 다스 , 도곡동 , BBK 썰을 푸는데

 

<딩시 이명박>

(빡돈 말투로) 제가 지나온 삶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 ,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당시 박근혜>

(분노한 말투로) 도곡동 땅이 누구땅이냐.

검찰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왜 덮고 있습니까

 

<당시 이명박>

뭐 도곡동땅이 어떻다고요 ? BBK가 어떻다고요 ?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

 

<2007년 6월 17일 김해호씨 박근혜후보 폭로 기자회견>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ㄹㅇ분위기 ㅆㅎㅌㅊ였던 경선당시 이명박과 박근혜

 

이로런 것들로 인해 민주당은 당시는 집권무능과 실패로 짜져있었지만

이후 다시 힘을 키운뒤 이들이 서로 싸우다 던진 떡밥들을 꽁으로 주워먹고서는

냄새를 맡은 민주당은 이후 이 이야기를 다시 들춰내어서

둘다 퇴임 , 강제퇴임 이후 동시에 감옥에 보내게 됩니다

 

근데 일단 당시 박근혜는

일반 서민들 삶을 살아본적이 없는 장군+대통령수저 물고 태어난 여성이었고

아버지 후광빨로 정치입문했기에

흙수저 출신으로 산전수전 다겪은 명박이를 대항할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박근혜는 당권에서 앞서고

이명박은 여런조사에서 앞서있어

접전이었던 상황이고

경선 되면 대통령 당선이라는 상황속에

경선결과는

 

이명박 49.6%

박근혜 48.1%

 

라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경선에서

이명박이 1.5% 차이로 따돌리며 

겨우 승리했고

이로인해 이명박과 박근혜 세력은

서로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명박이 무난하게 이긴줄 알았는데 잘못 알아서

다시 수정함)

 

이때 이명박도 박근혜 캠프의 공격에

 

<이명박>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하는 희대의 명대사를 펼치며

국민들에게 노무현 '야 기분좋다' 급의 필수 합성요소가 됩니다

 

 

결국 진흙탕 혈투끝에 이명박은 박근혜를 누르고

경선에 승리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고

본선에서

 

여당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26.1 %

야당 한나라당 48.7 %

 

라는 거의 2배급의 압도적인 표차로

1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명박은 아주 쉽게 해버렸고

기존에 쌓은 공적등으로 이미 커리어는 증명이 된 입지전지적 인물이었기에

국민들도 이명박에 거는 기대가 상당했고

민주당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도 컸던 대선이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군부독재정권이 헌정을 유린하는

말도안되는 독재를 행해온건 사실이기에

민도수준 , 경제수준 , 민주주의와 인권수준이 가장 높은

수도 서울에서는 전통적으로는 보수정권 견제를 위해 민주계 정당 지원해주고

역사적으로 군부독재정권이었던 보수정권은 항상 고전했는데

 

이명박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서울에서 이긴 유일한 보수정당 후보이자

서울에서 가장 큰 득표수 차로 이긴 후보였고

그만큼 이명박은 보수정당 출신임에도

가난한 상인과 서민들 , 서울시민들의 큰 희망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뻥튀기 소년 이명박은

현대건설 사장이 되고 서울시장으로 국민들에게 완전히 각인된 후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대한민국 17대 대통령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 공식 초상화

 

<이명박>나는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이니  하루도 소홀히   없다

 

<라봉봉>이명박은 근데 비리비리하고 얍삽하게 생겼어도

은근 맷집도 좋아서 계속해서 뚜두려 맞으면서도 대권을 향해 나아간 모습이 보이고

이명박 대통령을 사람들은 흔히 쥐상이라 하지만 좀 강력한 쥐 느낌입니다

 

위에서 말한것처럼 실제로 이명박이 오너리스크가 없는

월급쟁이 사장 ,

알바로 치면 다른 알바들 관리하는 매니저 정도에 불과했기에

샐러리맨 성공신화니 뭐니하며

날고 기어도 결국 자기 회사도 아니고

월급사장은 실 소유주보다 난이도가 훨씬 쉽고

좀 경제인 시절은 기업가느낌보다는

오히려 그냥 그런느낌 + 정치인이 되기전 과정이라는 느낌이고

 

그에 대한 본격적 검증은 서울시장때 시작된 것이라 보여지고

솔직히 기업가로서는 좀 정주영이나 이건희마냥

막 때려 박고 한방 팡 터트리는 것도 없고

기질이 좀 별로라는 느낌인데

서울시장직은 진짜 꼼꼼하고 섬세하게 매우 잘했다 생각합니다

 

이명박 성격 자체도 막 정주영 회장처럼 호탕하고 큼직큼직하다기보다

냉철하게 고민하면서 신중하게 나아가는 타입이었다 하고

 

이명박 자체가 막 특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하진 못했어도

밑바닥부터 굴러본 곳이 되게 많아서 여러 경험이 진짜 풍부했기때문에

서울시장직이나 대통령 할때에도 서민들 고충과 심리를 진짜 잘 아는 인물이었다 생각되고

 

근데 박근혜는 의외로 당지지도와 경상도 민심이 있었기에

이명박의 복병이었다 생각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나 말하겠지만

이명박도 진짜 비리에 엮인게 오지게 많은거로 알고있고

진짜 실제론 정주영에 비비기도 어려울만큼 질이 좋지가 않아보이는데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어린시절 너무 어렵게 살아와서인지

돈 무서운게 뭔지 몰랐고

 

그럼에도 또 둘다 너무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고

둘다 자수성가했던 입지전적 인물이었기에

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둘다 너무나 잘아는 대통령이었다 생각하고

두 인물 다 참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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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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