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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패러데이>

[가난한 가족]

[기독교 정신]

[주경야독]

[행운의 티켓]

[왕립학회]

[험프리 데이비 경]

[그랜드 투어]

[과학자 패러데이]

[결혼]

[힘의 선]

[수많은 업적들]

[데이비의 가장 큰 발견]

[욕심없는 과학자]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전자기 유도(패러데이의 법칙)]

[평범한 마이클 패러데이]

<라봉봉>

 

마이클 패러데이

 

[가난한 가족]

마이클 패러데이는 1791년 9월 22일 영국 서리주 뉴잉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영국의 물리학자 , 화학자로 전자기학의 이해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알려졌습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잉글랜드 서리주 뉴잉턴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런던 남부의 일부인 지역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대장장이로서

생계를 위해 1791년 초 잉글랜드 북쪽에서 이주해온 인물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농부의 딸로서 매우 침착하고 현명했고

어려운 어린시절을 겪은 그녀는 아들 페러데이를 정서적으로 도왔습니다

 

패러데이는 네 아이들중 하나였고

패러데이의 아버지는 자주 병이나서 꾸준히 일하지 못한 가장이라

네 아이들은 누구던지 충분히 음식을 먹기 힘들었습니다

훗날 성공한 과학자가 된 패러데이는 회상하기를

 

<패러데이>일주일에 한번 빵한덩어리가 주어졌고 그걸로 한 주를 버텨야했을만큼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18세기 영국

 

[기독교 정신]

패러데이네 가족은 샌데마니안스라 불리는 스코틀랜드계의 작은 교회 종파에 속했는데

기독교 정신은 패러데이에게 영적 생계를 제공했습니다

 

샌드매니아인들은 성경의 문자 그대로의 진리를 믿었고

초기 기독교 교회의 특징인 사랑과 공동체의식을 재현하려 노력했는데

패러데이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 종교적 영향은 그가 자연의 비밀을 풀고 접근하는 방법에 강한 영향을 주었고

자신이 개발한 과학이론들이 세계의 화합에 기여할거라 생각했습니다

 

패러데이는 교회의 일요일 학교(주일학교)에서 숫자 , 글쓰기 , 읽기교육의

기초만 받았고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그 이상의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습니다

 

18세기 주일학교

 

[주경야독]

일찍이 13살인 어린나이때부터 패러데이는 돈을벌러

책을 파는 사업을 하는 조지 리바우라는 제본업자에 고용되 심부름꾼이 되었고

그리고 다음해인 1805년 ,

14살의 나이에 그는 그 제본소의 견습공(제본기술자)이 되었습니다

패러데이는 7년동안 리바우의 견습공으로 살았는데

다른 견습공들과 달리 패러데이는 책을 묶는 일만하지 않고

재제본을 위해 가져온 책들을 읽기도했고

 

옛날 영국 소년노동공들

 

즉 패러데이는 제본소 , 서점에서 일하며

낮에는 책만드는 일을 하고

밤에는 그 책들을 읽으며

주경야독(낮에 일하고 밤에 독서한다) 을 했습니다

 

 

패러데이는 온화한 생활을 했고

깨끗한 물 이외에는 거의 마시지 않았으며

하루 일과를 끝내면 작업장에 자리잡아 앉았습니다

 

패러데이는

정규업무시간 뒤 남은 시간을 활용해 제본소의 여러 다양한 서적을 읽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제3판에 실린 전기에 관한 이야기는

특히 패러데이를 매료시켰습니다

 

<패러데이>내가 견습공이었던 시기 ,

나는 내 수중에 있는 과학서적을 읽는 것을 사랑했다

 

패러데이는 오래된 병과 목재를 이용해

투박한 전기발전기를 만들어 단순한 실험들을 하였고

그는 또한 연약한 '볼타의 전지' 로 전기화학에 대한 실험을 해냈습니다

 

[행운의 티켓]

1810년부터 패러데이는

존 테이텀의 집에서 강의를 들었고

그는 다양한 다른 주제의 강의에 참석했지만

그는 특히 전기 , 직류전기 , 역학(기계학) 강의를 좋아했습니다

 

패러데이는 꾸준히 화학과 전기를 공부하고

노트를 정리하며 과학지식을 쌓았고

그의 정리노트를 보고 감명받은 서점주인은

자신의 거래처에게 노트를 자랑했고

그중 한명이 영국왕립연구소 회원 윌리엄 댄스의 아들이었고

윌리엄 댄스 역시 이 노트에 감동받아

당시 왕립연구소 인기강사였던 험프리 데이비의 화학강연 티켓을

똘똘하고 성실한 어린소년 마이클 패러데이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땐 몰랐지 이 티켓이.. , 찰리와 초콜릿공장 골든티켓

 

[왕립학회]

1812년

그렇게 패러데이는 런던왕립학회(영국 왕립학회) 에서의 험프리 데이비 경의

화학강연에 참석할 기회가 왔고

왕립학회는 영국왕실에서 공인한 과학자들의 모임으로서

찰스 2세의 후원으로 1660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학회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과학자들의 학회였고

패러데이 , 아이작 뉴턴 , 찰스 다윈 , 에드워드 제너 ,

아인슈타인 , 스티븐 호킹 , 일론 머스크(?)

 

등 세계적인 위대한 과학자들을 배출한

오늘날 근현대과학의 요람이자

현재까지 8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현재도 세계 최고수준의 과학단체입니다

 

영국 왕립학회 , 위키백과

 

[험프리 데이비 경]

영국의 위대한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 경이라는

위대한 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수 있게 된 패러데이는

하나도 빠짐없이 열중해 들으며

험프리 데이비가 필기한 노트를 주의깊게 복사했습니다

 

전등발명+마취약발견+대중강연의 마술사 험프리 데이비

 

험프리 데이비경은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화학자라 불리는 인물로서

지금보다 더 심한 출신성분이 중요한 시대에

가난한 출신이면서 자신이 독학하여 18세기 후반 화학자의 대표로

혜성같이 나타난 과학자로서

전기화학의 선구자이자 최초의 직업과학자로

염소와 요요드 연구 , 광부들을 위한 안전램프발명 ,

무엇보다

웃음가스라 불리는 아산화 질소가 수술때 마취제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인물이었고

마취개념이 없던 시기 외과수술때

수술의 고통을 참아가며 신체를 잘라야하거나

심지어 고통에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던 시기에

마취의학의 시초개념을 만든 위대한 화학자였습니다

 

또 데이비는 가난한 집안출신이 영국왕립학회 회장과 준남작이 되는

매우 극적인 신분상승을 한 인물이어서

패러데이와 비슷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데이비는 왕립학회에서 일부로 과학매직쇼의 마술사처럼

대중강연봉사를 하며 과학과 화학을 최초로 대중화 한 인물이었고

 

웃음가스(외과수술 마취제 원조)를 시연하는 데이비 , 사교계에서 과학대중강연하는 과학자의 시초

 

이 인물때문에 과학자가 단순히 연구소에서 혼자 실험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유럽과 영미권은 스타과학자 ,

과학자의 슈퍼스타K 같은 대중과학강연쇼 시스템이 탄생하였고

런던의 사교계인사(대충 연예인+인싸셀럽들) , 지식인층 , 귀족들도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 몰려들었으며

그의 젊고 잘생긴 얼굴도 한몫 해서

상당수의 여성들도 참석했고

 

(지금 일론머스크가 트위터 인수하고 연예인들이랑 기웃거리면서 노는게

다 영국[현대문명의 선과 악의 근원..] 에서부터 시작했으며..

옛날 게이머들이 오락실 일진+폐인이미지였을때

게이머 , 아이돌 , 스타시스템을 구축한 화학계의 임요환 같은 개념임)

 

아인슈타인과 찰리 채플린

 

생쇼하는 일론머스크 (뭐하니 ;;)

 

데이비는 획기적인 과학실험들을 가지고

대중을 매혹시키면서 과학과 문학의 엘리트들과 같이 여행하며

영국을 단숨에 사로잡은 영국을 대표하는 스타과학자였고

패러데이가 가장 닮고싶어하고 가장 존경한 과학자였습니다

 

데이비의 대중강연에 무척 매료당하고

왕립학회에서 꿈같은 과학의 천국을 느낀 제본업자 견습생 패러데이는

그 과학의 신전에 자신도 들어가겠다는 실현불가능해보이는 꿈을 품고

다시 현실인 제본소에 돌아왔습니다

 

제본소에 돌아온 패러데이는

제대로된 정규교육이나 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진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이제 제본소를 떠나겠다 결심했고

 

패러데이는 왕립학회 회장인 조지프 뱅크스 경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어떻게 과학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답장을 받지 못했고 (ㅠ_ㅠ)

 

1812년 10월 ,

견습기간이 끝난 패러데이는 정규제본업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과학자가 되고 싶었고

패러데이는 그의 노트 복사본을 묶어서

험프리 데이비 경에게 보냈고

데이비경의 조수가 되고싶단 편지도 같이 보냈습니다

 

예전 험프리 데이비 경의 화학대중강연을 들은 후

패러데이에게 데이비는 영웅이 되었고

데이비는 왕립학회장 뱅크스와 달리

패러데이에게 답장을 보내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감동)

 

그러나 데이비는 패러데이에게

책 제본업자로 계속 일할 것을 조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데이비>과학은 가혹한 애인이며

금전적 면에서는 그녀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당장 데이비의 실험실 조수자리는 없어서 패러데이는 데이비의 조수가 되진 못했지만

만남 직후 데이비의 실험실 조수 중 한명이 싸움으로 해고 됬고

데이비는 곧 패러데이에게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패러데이는 데이비의 실험실 조수가 되었고

1813년 패러데이는 왕립학회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대장장이의 아들로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제본소 견습공 패러데이는

훗날 데이비를 능가하는 19세기 가장 위대한 실험과학자로 우뚝서게 됩니다

데이비의 실험실 조수 패러데이는 당대 최고의 실험과학자인

그의 바로 옆에서 화학을 배웠습니다

 

[그랜드 투어]

1813년 10월 ,

데이비는 유럽으로 과학여행을 떠났고

옛날에 여행은 지금 놀러가고 휴양을 가는 의미의 여행이 아닌

'유학' 을 뜻하는 의미였고

 

17~18세기 영국 지성인 , 영국 상류층 귀족자제들은

런던내의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2~3년간 공부한 뒤

교육의 최종단계로서 사회에 나가기 전

예법 , 과학 , 외교 , 언어 , 문화를 배우기 위해

선진적이고 로마 고전 문물이 남아있던 프랑스 , 이탈리아 같은 유럽대륙으로

여행을 책임지는 가정교사와 함께

2~3년간 장기적으로 공부하러 '여행' 을 다녀오는게 유행이었고

이를 '그랜드 투어(Grand Tour)' 라 했습니다

 

그랜드 투어 , 대학생 해외유학개념의 시초

 

철도 , 비행기 , 빠른 배가 지금처럼 보편화된 시절이 아니라

당시 여행은 굉장히 난이도가 상당해

그랜드 투어 외에도 다양한 과학자들의 학문탐방유학이었던 풍조였고

 

1813년 10월 부인과 신혼여행을 겸해서 유럽으로 과학여행을 떠나게 된 데이비는

그의 조수이자 비서로 패러데이를 데려갔고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가방셔틀)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중이었지만

프랑스황제의 특별허가로 데이비는 파리에서 머무르며

나폴레옹이 수여한 메달 및 프랑스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는 환대를 받고 있었고

따라간 패러데이는 파리에서 앙드레마리 앙페르와 다른 과학자들을 만났고

앙페르 , 암페르는 전류를 측정하는 단위 암페어가 그의 이름을 따왔을 정도로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였습니다

 

앙드레마리 앙페르 , 암페어의 유래

 

데이비와 패러데이는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제노바 , 피렌체 , 로마 , 나폴리로 갔고

다시 북쪽 밀라노도 갔는데 그 여행은 패러데이에게 귀중한 여행이었습니다

 

패러데이는 대학을 안나왔지만

18개월의 해외생활은 패러데이에겐 대학생활같은 시기였고

그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배워 과학적 성취에 도움을 받았고

많은 외국 과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자 패러데이]

런던으로 돌아온 패러데이는 왕립연구소(영국왕립과학연구소) 조수로 재취업했고

실험실에서 화학실험하는게 주 연구였습니다

 

왕립연구소 화학교수였던 데이비는 이제 명예교수가 됬고

새 화학교수가 영입됬지만

이후에도 데이비는 패러데이의 지도교수 역할을 꾸준히 해주었고

패러데이는 교수들의 강연을 보조하고

연구소의 실험재료들을 준비하고 실험장비들을 관리했습니다

 

왕립연구소의 패러데이의 실험실

 

1816년

패러데이는 토스카나 지방의 생석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렇게 패러데이는 왕립연구소와 그의 평생의 은사 데이비의 도움으로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나갔습니다

 

왕립연구소 지하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패러데이

 

[결혼]

1821년 패러데이는 샌드매니아 교회에서 만난

사라 바너드와 결혼했고

패러데이는 사라 바너드에게 구애하기 위한 편지에

로맨티스트적인 면모도 보였습니다

 

<패러데이의 구애편지>당신의 행복을 위해 당신을 향한 마음에 충실한 것이 좋을지

아니면 당신에게 다가서지 않는 편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내가 단순한 친구 이상이 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친구 이하로 떨어뜨리는 형벌을 내리지는 말아 주십시오

만약 지금보다 당신에게 나아가는 것을 당신이 허락할 없다면

적어도 당신을 향한 지금의 감정만큼은 그대로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허락해 주기를 기도합니다

 

패러데이 부부

 

1820년대부터 패러데이는 어느덧 데이비의 어엿한 독립화학자로 성장하여

왕립연구소의 하원 및 연구소장으로 임명되고

결혼생활이 가능한 방도 제공받았습니다

 

[힘의 선]

1821년은 패러데이에게 또다른 중요한 시기였는데

그는 전적으로 화학자로 일했지만

제본업자로서 그의 관심사중 하나는 전기였고

 

1820년 암페르 같은 파리의 몇몇 과학자들은

전기와 자기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고

데이비는 이 주제에 관심을 갖았고 제자 패러데이 역시 이 주제에 대해

작업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1821년 10월

패러데이는 새로운 전자기운동과 자기 이론을 발표합니다

그것은 전기에너지가 기계에너지로 처음 전환되는 것을 기록하고

힘의 선(lines of force , 힘이 공간에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 에 대한

최초의 개념도 포함했습니다

 

훗날 패러데이는

1852년 힘의 선이 실재한다고 선언하며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예를들면 자석이 있으면 그 주위공간에 자기력선들로 채워진 자기장이 형성되어

자기장에 이동하게 되는데

즉 자석이 철을 직접 끌어당기는게 아니라

자석에 의해 형성된 자기장이 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고

 

당시만해도 사람들은

자석에서 철가루의 힘으로 움직인다 알았지만

패러데이는 자기장의 힘으로 저렇게 움직인다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자석 주변의 자기장

 

패러데이는 전자기 현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거리 직접작용을 버리고 전기와 자기작용이 '힘의 선' 을 따라

점진적으로 전달된다는 개념을 처음 제안했고

장(field) 이라는 용어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의 새로운 관념은 초기에는 어렴풋한 형태로

거의 증거도 없는 상태였지만

수십 년 동안 끈질긴 노력끝에 그는 상당히 통합적 형태의

독자적 이론을 구축하였고 

 

'작용을 매개하는 힘의선'

 

이라는 패러데이의 생각은

맥스웰에게 계승되어 보다 정교한 전자기장 이론으로 발전됬고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이론을 발전시켜 모든 전자기 현상을

역학적 매질의 작용으로 설명하는 수학적인 '전자기장' 이론을 완성했고

힘이 전달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패러데이의 추측도

이론적인 계산을 통해 그 정확한 속도를 예측해냈습니다

 

또한 패러데이는 자기장이 정지된 힘이라 생각했지만

맥스웰은 빛의 속도로 퍼지는 파동으로 바꿨고

오늘날 우리는 그 파동을 이용해 메세지를 전달하는 법을 알아냈고

현재의 방송 , 라디오 , 통신 등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었고

패러데이는 이런 마법같은 일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든

세계역사를 바꾼 참과학자였습니다 

 

패러데이와 맥스웰 , 세상을 바꾼 과학자

 

현대문명 패러데이에 압도적 감사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오늘날 전자기장이라는 개념 속에서 우리는 적어도 사람을 함께 만나게 된다

전기와 자기 작용이 공간에 펼쳐진 힘의 선을 따라 전달된다는 생각을 고안한 패러데이 ,

패러데이의 힘의 선에 수학적인 방정식을 입혀 정교한 전자기장 개념을 정립한 맥스웰 ,

그리고 에테르를 제거하여 전자기장을

공간에 존재하는 실체로 다시금 승격시켜준 아인슈타인이 그들이다

 

[수많은 업적들]

패러데이는 1821년 전자기 회전을 발견하며

과학계의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고

1821년 9월 3일

그가 실험 스위치를 누르자 도선에 전류가 흘렀고

거의 동시에  코르크 마개가 움직여 코르크마개는 작은 배처럼

자석 주변을 천천히 돌았고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동기가 탄생합니다

 

패러데이의 전자기력에 의한 회전실험(1921)

 

패러데이는 실험이 성공하자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 ! 라 외친것마냥

기뻐 날뛰며

 

<패러데이>돌았어 ! 돌았다고 !

 

하며 소리질렀습니다

 

<그날 패러데이의 실험일지>

결과가 매우 만족스럽다 ,

그러나 좀 더 반응이 빠른 실험장치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

 

1821년부터 1831년까지 10년동안

패러데이는 화학에 대한 연구도 다시 시작해

1823년 염소를 액화시켰고

1825년 압축된 석유가스에서

벤젠을 처음 추출(발견)한 것이 화학사에 남은 그의 중요한 두 업적이었습니다

 

패러데이가 발견한 벤젠 , 훗날 케쿨레에 의해 재조명됨

 

[데이비의 가장 큰 발견]

점차 패러데이는 과학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며

불후의 영역으로 가는상황이었고

그에비해 업적보다 인싸력과 쇼맨십이 넘쳤던 데이비는

점차 자신의 제자 패러데이를 질투하기 시작합니다 (;;)

 

질투질투~

 

제자가 자신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 데이비는

자신이 발명한 안전등의 결점 몇 가지를 패러데이가 지적하자

몹시 자존심이 상해있었고 (;;;)

 

1824년 패러데이는 왕립학회 회원이 됬는데

이 시기 그의 스승 데이비는 왕립학회 회장이 되어있었고

원래 독재적이었던 학회장 조셉 뱅크스가 42년간 왕립학회 회장직을 수행하다

갑자기 데이비는 회장이 되었던 것인데

데이비는 그렇다고 뱅크스같은 방식으로 학회를 이끌어 갈 수는 없었고

여러 학계의 분파들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왕립학회장 데이비는

패러데이가 왕립학회 회원으로 추천되자 질투가 극에 달했고

여전히 자신의 조수로 생각하는 패러데이가 회원이 되는 것을 볼 수 없었기에

자신의 제자 패러데이가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하는 것을 대놓고 반대했고

패러데이에게 스스로 사퇴하라 강요했지만

이미 뛰어나고 정직한 패러데이와 질투왕 데이비의 인품을 알고있던 과학자들은

압도적 투표로 반대 1표로 패러데이를 회원으로 선출시켰고(이과생들이라 정치질 안통함ㅋㅋ)

 

과학바보였던 패러데이에게 스승의 질투와 학계의 정치적 영역은 어려운 상황이었고

패러데이는 그럼에도 데이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항상 데이비를 가장 높이 평가했습니다

 

데이비 역시 이후 병이 위독해지자 질투심을 가라앉히고

어떤이가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뭔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데이비>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과학자 패러데이를 발견한 것이다

 

정식 과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패러데이는

32세의 나이에 일류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그는 그후

전자기 유도(패러데이의 법칙) 발견 , 발전기 발명 , 전기분해법칙의 발견 등

전자기학에 관련된 수많은 중요한 발견들을 이룩합니다

 

[욕심없는 과학자]

패러데이는 현대과학의 문명을 만든 인물로

수많은 연구업적 , 발명을 한 위대한 과학자이자

과학자를 대표하는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가장 존경한 과학자였는데

그럼에도 그는 가난한 유년시절로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기에

늘 '못배운 과학자' 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패러데이는 이런 아픔을 겪었기에

자신이 데이비 선생님의 강연으로 꿈을 키웠던 것처럼

바쁜 일상속에서도 대중과학강연을 하며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려 했고

 

생애 당시에도 세계가 주목하는 엄청난 성공을 겪은 뒤에도

자랑하거나 과시하려 하지 않고 욕심없고 검소하고 겸손한 생활을 했으며

자신이 발명한 어떤 것에도 특허늘 내지않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했고

봉급인상제안 거절 , 왕실에서 내리는 귀족작위 거절도 했고

이런것때문에 과학계에서도

그의 업적 외에도 그의 뛰어난 인품을 엄청나게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패러데이의 신념>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가난끝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수많은 부귀영화를 거절하고 사양한 패러데이였지만

성공한 그가 유일하게 신경썼던 것은

과학이라는 학문이 모든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게 하는 일이었고

 

1826년

패러데이는 대중과학강연을 시작한 그의 스승 데이비처럼

왕립학회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6개의 크리스마스 강의를 소개했고

 

가난한 어린시절 우연히 얻은

데이비의 화학강연회 티켓 한 장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패러데이였기에

어느덧 자신도 데이비의 입장이 되자

그때 기억을 잊지 않고

청소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당시

그런 기회를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했고

당시 상류층 아이들에게만 허용됬던 과학을

자신처럼 누구나 배우고 흥미를 가지기를 바랬습니다

패러데이는 1826년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강연회 (Royal Institution Christmas Lectures)'

 

를 기획해 매해 크리스마스때마다

 

'과학의 산타 할아버지'

 

가 되어 어린아이들 대상으로 강연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과학강연하는 패러데이

 

영국 20파운드 화폐에 그려진 그림이

바로 패러데이의 크리스마스 강연회 그림입니다

 

패러데이 영국20파운드 지폐

 

패러데이가 크리스마스 강연회에서 자주  사용한 소품은 양초였고

그는 양초 한 자루를 들고 불을 붙인 뒤

양초의 재료와 양초가 타오르는 원리 ,

산소와 탄소와 수소의 관계 , 연소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갔고

패러데이는 양초과학강연을 마치면서 늘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패러데이>저는 강연의 마지막 말로서

여러분의 생명이 양초처럼 오래 계속되어 이웃을 위한 밝은 빛으로 빛나고 ,

여러분의 모든 행동이 양초의 불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

여러분이 인류의 복지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는

생명을 바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패러데이는 양초강연을 마치면서

자신을 태워 빛을 내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양초를 설명하며

사람들간의 더불어 사는 삶 , 조화로운 삶을 강조했고

하여튼 괴팍왕 뉴턴 , 바람둥이 아인슈타인 등

위인전에 나오는 수많은 과학위인들이 실제로 품행이 불량했다는

뒷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비해

마이클 패러데이나 라이너스 폴링같은 과학자는 업적도 인성도 짱인

바른생활 끝판왕 참과학자였고 과학자들이 사랑하는 과학자였고

아인슈타인이 평소 그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롤모델로 삼은

아인슈타인의 아인슈타인이었고

원조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1826년부터 패러데이가 시작한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천문학자 칼 세이건 ,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등 유명한 과학자들이

강연자로 나오는 등

그 시대에 향유되던 최고급의 문화공연이자

오늘날까지 영국왕립연구소 , 영국의 200년의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습니다

 

1924년 물리학자 윌리엄 헨리 브래그 경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1977년 천문학자 칼세이건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 어린이들을 위한 쇼지만 패러데이 대선배때매 월클학자들이나 노벨상 수상자들 강제동문회 해야함ㅋㅋ

 

2018년 과학강연

 

[전자기 유도(패러데이의 법칙)]

1831년에도 40살의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실험과 전기 변압기 시연 등

역사에 남을 실험을 끊임없이 성공시켜갔고

패러데이는 철사에 흐르는 전류가 조금 떨어진 자석바늘을 움직이게 한다는 연구를 보고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면

반대로 자기장도 전류를 발생시킬 수 있으리라'

 

고 생각했고 몇 년간 걸친 실험 끝에

이 현상이 가능함을 증명해

 

'전자기 유도'

 

라 불리는 이 연구결과는

오늘날까지 전력공급의 기반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실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패러데이 형님..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원리를 이용한 초보적인 발전기를 만들었을때

그의 연구실을 방문한 정치인이 물었습니다

 

<정치인>교수님 이게다 어디에 쓸모가 있겠습니까 ?

 

(그게 순양 아니 영국에 돈 됩니까 ?)

 

마 그거 장난감 아이가 그딴거로 나라세금 낭비하고 앉아있노

 

그딴게 돈 되냐 !!

 

패러데이는 대답했습니다

 

<패러데이>글쎄요 하지만 언젠가 정부가 여기에 세금을 매길 날도 오겠지요

 

(ㅇㅇ 돈 됨)

 

30대 후반의 패러데이

 

[평범한 마이클 패러데이]

1832년 패러데이는 과학에 대한 주요한 공헌으로

그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학위를 받았고

 

1833년 2월

패러데이는 왕립화학연구소의 교수가 됬고

왕립학회에서 수여하는 왕립메달 , 코플리 메달같은 여러 영예가 뒤따랐습니다

 

이후에도 패러데이는 계속해서 전력을 다해 과학연구에 몰두했지만

1850년대 중반부터 패러데이의 정신력은 쇠퇴하고 있었고

이 시기 맥스웰은 페러데이가 만든 기초에 수학적 이론을 구축하고 있었고

패러데이는 왕립학회에서 강의를 계속했으나

1857년 왕립학회 회장직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패러데이는 1820년대 그의 스승 데이비가 실패한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웠고

과시욕이 강했던 데이비에 비해

정부나 정부관련단체에게 과학적 조언을 할 때는

데이비와 달리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빅토리아 여왕이 기사작위를 수여하려할때도

 

<패러데이>평범한 마이클 패러데이로 마지막까지 남고 싶습니다

 

며 또한 거절했고 이런것들로 인해 그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더더욱 존경받았고 이런 그의 기풍은

퀴리부인 , 라이너스 폴링등

후배 스타과학자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패러데이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강의는 계속했고

1859~60년에는 물질의 다양한 힘에 대한 크리스마스 강의를 했습니다

 

<영국왕립협회 공식홈페이지>

1825 마이클 패러데이에 의해 시작된

'크리스마스 강연' 은 이제 영국의 크리스마스 전통이 되었다

 

신이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선택한 인간 마이클 패러데이

 

1860년 패러데이는 어린이 크리스마스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패러데이>어떤 다이아몬드가 이 불꽃만큼 빛을 낼 수 있겠습니까 ?

...

불꽃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불꽃이 없으면 빛날 수 없습니다

...

저는 이 강연의 마지막 말로서

여러분의 생명이 양초처럼 오래 계속되어 이웃을 위한 밝은 빛으로 빛나고

모든 행동이 양초의 불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

여러분이 인류 복지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는

생명을 바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촛불같은 우리의 삶

 

1861년 패러데이

 

패러데이는 이 강연 이듬해 왕립학회를 떠났고

1867년 8월 25일 별세했고

여왕이 주선한 웨스트민스터 묘역 대신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묻어달라는게 그의 유언이었고

패러데이는 죽기 전 이런말을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패러데이>나는 예수님 곁에 있을 겁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패러데이의 묘비

 

런던 사보이 광장 마이클 패러데이 상

 

<라봉봉>제가 10대대까진 한국사 , 근현대사 , 세계사 정도 학교나 학원수준 역사에 머물렀다면

20대 초반부터 한창 도서관을 다니며

수학사 , 화학사 , 물리학사 , 의학사 등 여러 이야기를 보고 느낀게 많아서

언젠간 수학 , 과학사도 쓰고

한국에 갈릴레오 , 뉴턴 , 아인슈타인 같은 위인전이 흔한 대중적 과학위인 말고

위인 전기가 잘 없는 여러 인물들 이야기를 쓸거를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충분히 유명하지만

우리에게 안 유명한 여러 위인들이 많아 비슷한 요청들이 이전에 있었고

제가 작년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하며 다행히

영어 사이트 글 읽을 수준은 되서 이젠 쓸 수 있고

이번 패러데이 이야기 역시 이전 도서관에서 읽은 책 + 영어사이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 말고도

웬만한 동네학원 역사강사들도 한국사 , 세계사정도 기본적 이야기는 다꿰고 있는데

제가 역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중 하나는 영어고

하나는 세계 수학 , 과학사를 전부 꿰고있다는건데

제가 문돌이라 세세한 수학과학의 전문분야는 잘 모르고

패러데이 쓸데도 고생 많이하며 썼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이야기를 계속 써서 한국대중들에게 과학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이고

 

제가 세계과학계 판세를 보니

앞으로 예체능이나 문과출신들도

과학을 의무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과학에 무지하면 사이비에 선동 , 비과학이나 잘못된 길로 빠질 경향이 있고

수학과학계 출신들도 역사와 인문예술 ,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 없이는

절대 성공하지 못하고 부패한 문돌이 정치인들 먹이가 되는게 과학적 이치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런 경계가 점차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고

앞으론 우리나라가 세계 선진국 궤도에 완전히 진입하려면

이런 세계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과학 , 수학위인들을 한명한명 전부 알아가야 합니다

 

마이클 패러데이 , 라이너스 폴링 , 가우스는 참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끝까지 노력해서 세상에 큰 이로움을 주고 사망한 인물이라

이전 정말 이들에 대한 전기를 따로 감명깊게 본 위인들이고

각자 분야에서 아인슈타인급 인물임이고

어린아이들이 보기 참 좋은 무공해급 인물임에도

역시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이 세 인물들에 대한 어린이 위인전기는 없다싶이하고

아이들 정서를 해치고 잘못된 신념을 심어줄 수 있는

이상한 정치인 , 대통령들 위인전기는 꼭 있습니다

 

하여튼 ,

업적이 위대함에도 겸허하고 소박한 삶을 산 패러데이의 이야기를

예전에 인상깊게 읽었고

 

반면에 모든 과학자들이 다 패러데이같이 산건 아니고

위대한 업적과 별개로

라부아지에처럼 물욕과 과시욕이 풍부한 과학자도 있었고

하버같이 전쟁 독가스무기를 만든 과학자도 있고

테슬라나 윌리스 캐러더스처럼 비극적 과학자도 있어서

더더욱 인품까지 훌륭했고 살아생전에도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패러데이가

과학자들의 과학자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칭송받고 롤모델로 선정받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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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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