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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작지만 강한 아이]

[코르시카의 촌뜨기]

[나폴레옹과 눈싸움]

[포병장교 나폴레옹]

[프랑스 대혁명]

[군사의 천재]

[조세핀과의 결혼]

[이탈리아와 이집트 원정]

[쿠데타]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나폴레옹 법전]

[황제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

[대륙 봉쇄령]

[러시아 원정]

[백일천하]

[세인트헬레나섬의 황제]

<라봉봉>

 

나폴레옹

 

[작지만 강한 아이]

프랑스의 영웅 혹은 독재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1769년 8월 15일 지중해

코르시카섬에서 몰락한 귀족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의 코르시카섬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코르시카 섬

 

나폴레옹 아버지도 한때는 코르시카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전투에서 패하자 곧 식민지배에 순응했고

프랑스 총독에게 귀족대우를 받게 됩니다

 

나폴레옹의 아버지 카를로 부오나파르테

 

프랑스인이 된 나폴레옹 집안이었지만

그럼에도 평생 자신들이 코르시카인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키도 , 덩치도 작았지만

야무지고 영리한 아이였습니다

어릴때부터 항상 지기 싫어한 성격이었기에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대장이었습니다

 

그에비해 형 조제프는 나폴레옹보다 힘이 약해

놀림받고 돌아왔고

나폴레옹은 그때마다 아이들 혼내주었습니다

 

[코르시카의 촌뜨기]

1779년 나폴레옹이 10살이 되자

아버지는 형과 나폴레옹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프랑스가서 공부하거라'

 

얼마 후 형 조제프는 목사학교에 ,

출세하려는 하급 귀족들이 대게 그렇듯이

나폴레옹은 브렌느에 있는 육군 유년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5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육군학교에는 프랑스 대귀족아이들이 많았고

이에비해 집안도 가난하고

키도 작고 코르시카 사투리를 쓰던 나폴레옹은

왕따와 놀림을 당했습니다

 

'얌마 ㅋ 니 프랑스어 할줄은 아노 ?

코르시카 촌뜨기야 ㅋㅋ'

 

놀림당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화를 참았지만

이에 자주 혼자 울기도 했고

나폴레옹은 그곳 아이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나폴레옹 왕궁' 이라는 푯말을 세우고

자기만의 영토를 만들어 혼자 책을 읽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학교다니던 시기 독서를 많이 했고

혼자 독서실에서 역사책 읽는 재미로 보냈는데

역사를 통해 대국적인 눈을 기르게 되었고

특히 나폴레옹은 수학에 재능이 뛰어나

논리적 사고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독서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과 눈싸움]

폭설이 내린 후

어느 겨울날 아침

유년학교 학생들은

두 편으로 갈라서 눈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나폴레옹의 편은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나폴레옹은 스스로 지휘관을 자처하며

 

<나폴레옹>지금 상황이 긴박하니

내가 우리편을 지휘할게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눈덩이를 뭉치기만 하고

나머지는 눈덩이를 던지기만 해

 

내가 가르키는 쪽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

 

라고 말했고

나폴레옹의 팀이 선택과 집중으로

체계적으로 조직화되자

상대편은 급속도로 무너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나폴레옹은 더이상

코르시카 촌뜨기라 놀림받지 않게되었고

그후부터 나폴레옹 놀린 아이들은 나폴레옹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과 눈싸움

 

처음에 아이들은 나폴레옹을 싫어했지만

나중엔 나폴레옹이 아이들을 잘 대해주어서

귀족아이들 사이에서 나폴레옹은 반장까지 되었고

이때부터 나폴레옹은

사람을 잘 다스릴 줄을 아는 기질을 보입니다

 

[포병장교 나폴레옹]

1784년 나폴레옹은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는데

다시금 여기서 코르시카 촌뜨기 별명이 부활했고 (ㅋ;;)

 

하여튼 평소 공부를 많이한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다른과목보다

수학성적이 뛰어나 주목을 받았습니다

 

나폴레옹은 58명중 42등으로 졸업하지만

4년짜리 학교를 11개월만에 졸업할 정도로

학과 공부를 잘했습니다

 

1785년 나폴레옹의 아버지가 사망했고

같은해 11월 30일

나폴레옹은 16세의 어린 나이로

포병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프랑스 포병대

 

포병은 포탄의 위치를 계산해야 하기에

수학적 능력이 필요한 병과이고

수학을 잘한 나폴레옹의 주특기였으며

나폴레옹은 수학으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나폴레옹>국력은 수학의 수준과 같다

 

[프랑스 대혁명]

1789년 프랑스에서는 거대한 시민혁명이 일어납니다

 

왕과 귀족들의 수탈과 굶주림에 지친 국민 , 시민들은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고

못된 정치를 하는

프랑스왕 루이 16세와 귀족들을 몰아내려

시민들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를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합니다

 

'빵을 달라 !'

 

'프랑스는 국민의 것이다 !'

 

프랑스대혁명으로

결국 왕과 귀족들은 프랑스에서 물러나고

국민들에 의한 공화정이 세워졌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대표하는 그림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군사의 천재]

그 무렵부터 프랑스정부에 반대하는 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프랑스는 이전 왕정을 그리워하는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뉘어 싸우게 됩니다

 

당시 귀족들이 대부분이었던

프랑스 장교들은 많은 이들이

프랑스 대혁명을 피해 영국이나 오스트리아로 망명했고

 

나폴레옹은 반대로 공화파(혁명파)에 서게 됩니다

공화파에 섰던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나가 싸웠고

왕당파 반란군은 나폴레옹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왕당파 반란군을 지원하는 영국군과의 전투 ,

툴롱 포위전에서

직접 나서 뛰어난 포병운용으로 손쉽게 영국군을 제압했고

이에 24세의 나이에

단번에 포병대 지휘관(준장 , 장군계급) 이 됩니다

 

툴롱전투를 고민하는 나폴레옹

 

이때부터 나폴레옹은 포병을 운용하며

나서는 전투마다 승리하게 되었고

이에 나폴레옹은

군사의 천재 , 천재 전략가라고 불리게 됩니다

 

[조세핀과의 결혼]

나폴레옹은 사교계에서 유명했던 조제핀의

아름다운 미모에 반하게 됩니다

 

나폴레옹의 첫황후 조제핀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군의 유능한 장군이었지만

키작고 코르시카출신의 가난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폴레옹의 장래를 보고

조제핀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1796년 3월 나폴레옹은 조세핀과 결혼하게 되었고

둘은 많은 사랑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에 푹빠졌고

열렬히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 보낸 편지>

조심하시오 조세핀 , 어느 아름다운 밤 , 문이 부서져 열리면 ,

그곳에 내가 서 있을 테니.

나는 진실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 내 사랑.

당신에게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어요.

내게 빨리 내 마음을 감성과 기쁨으로 채울 네 페이지의 편지를 보내주시오.

되도록 빨리 당신을 내 팔에 안고 싶소.

그리고 적도의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백 만 번의 키스를 퍼붓고 싶습니다

 

(어우 느끼해)

 

[이탈리아와 이집트 원정]

하여튼 결혼 이후 나폴레옹은

프랑스 공화정부로부터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됩니다

 

당시 프랑스혁명으로

프랑스왕 루이 16세가 처형당하고 공화정이 들어서자

왕정을 택하고 있던 유럽 국가 , 유럽 왕들은 모두 놀라서

프랑스를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있었고

결국 프랑스는 유럽 왕정국가들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27세에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된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빈을 점령해

프랑스인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나폴레옹의 인기가 너무 높아지자 나폴레옹을

프랑스 국민들과 떨어뜨려 놓기위해

나폴레옹을 이집트 사령관으로 보내

이집트에 보냈습니다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 , 장 레옹 제롬 (1867~1868)

 

1798년 5월

5만 프랑스군을 이끈 나폴레옹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항에 상륙해 카이로에 입성했고

나폴레옹이 데려간 180명의 학자들은

이집트를 조사했고

이때 로제타석이라는 비석을 발견해

고대 이집트어를 해독할 수 있게됩니다

 

로제타석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 나간동안

영국 , 오스트리아 등 유럽국가들은

프랑스를 위협하고 있었고

결국 나폴레옹은 혼자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쿠데타]

이에 프랑스 의회는

이를 문제삼아 계속 토론을 벌였고

프랑스 정부가 계속 혼란으로 돌아가자

결국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쿠데타(군대를 이끌고 정권을 빼앗는 일)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시키고 통령이 되어

30세의 나이에 프랑스 정권을 손에 쥐게 됩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나폴레옹 , 의원들의 저항을 받는 나폴레옹 장군(가운데)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유럽국가들에게 강화를 제의하지만

거절당했고

결국 직접 알프스 산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진격하려 했습니다

 

이에 부관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나폴레옹을 말렸지만

나폴레옹은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나폴레옹>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이에 나폴레옹은 눈보라치는 험준한 알프스 산을 넘어

1800년 6월 오스트리아를 굴복시키고

북이탈리아를 프랑스 보호국으로 삼았습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 법전]

이후 나폴레옹은

내정개혁을 실시해

전국적으로 세금과 행정제도를 고쳤고

은행과 산업을 부흥시켰습니다

 

또 그의 일생일대의 업적

나폴레옹 법전을 제정해

이전까지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던

여러 법들을 하나로 통일시켰습니다

 

<나폴레옹>나의 진정한 영광은 마흔 번의 전투에서 거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민법전(나폴레옹 법전) 을 말살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나폴레옹 법전

 

이 법은

성직자와 귀족 특권 금지 ,

농노제 폐지 , 모든 국민의 법앞에서의 평등 , 사유재산의 가치 ,

양심 , 종교와 경제활동의 자유 등을 내세우며

자유주의와 근대적 법의 원형이 되었고

왕의 지배를 받고있던 유럽 , 세계 각국에도 퍼졌습니다

 

[황제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강력한 내정개혁으로

프랑스는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고

나폴레옹의 주변에서는 나폴레옹에게 황제가 될 것을 권유합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했고

높은 인기를 누리던 나폴레옹은

프랑스인들의 99.8%라는 압도적인 지지에

1804년 12월 2일 34세의 나폴레옹은

대관식을 열어

로마 황제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로마 교황에게 왕관을 받지 않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왕관을 써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직접 왕관을 쓰는 나폴레옹 , 나폴레옹의 대관식

 

황제 나폴레옹

 

나폴레옹을 왕과 귀족들에 억눌린 시민들의 영웅이라 여긴

독일 음악가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위해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이름) 라는 교향곡을 짓다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됬다는 소식에 실망해서

악보에서 펜을 던지고 한탄합니다

 

<베토벤>그 녀석도 역시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

 

분노한 베토벤은 표지를 갈갈히 찢고 보나파르트라는 곡의 이름을

영웅으로 고쳐 영웅 교향곡을 만들게 딥니다

 

베토벤

 

베토벤의 영웅교향곡에서 펜으로 거칠게 지워진 나폴레옹의 이름

 

황제가 된 후 나폴레옹은 프랑스 수도 파리를

세계 제일 수도로 만들기 위한

여러 정비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어 점차

독선과 아집에 빠져들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

나폴레옹 황제는

1805년 영국을 정복하려 했고

이에 영국은 오스트리아 , 러시아 제국을 끌어들여

동맹을 하고 프랑스에 맞서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해전에서는 영국에 졌지만

프랑스 농민 , 민중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

유럽 전역을 정복했습니다

 

나폴레옹 제국의 영토

 

당시까지 천민과 다를바 없었던

프랑스 군인들은

나폴레옹이 국민중 단 1%만이 잘먹고 잘사는

왕정을 타파하고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 믿고

지지했고

나폴레옹은 이 프랑스군인들에게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대우하며

살갑게 대하고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며

자부심과 충성을 이끌어냅니다

 

이에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자유와 평등의 사상으로 무장한

당대 유럽에서 가장 강한

'자발적 군대' 였고

 

나폴레옹군은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누구나 노력하면

그 명예를 조국이 알아주고 보상해준다는 것에 힘입어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 이념을 유럽에 전파합니다

 

이에 정복지의 유럽인들 역시

나폴레옹을 일반적인 외국의 정복자나

용감한 군인으로 보지 않았고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전파하는 해방자이자 영웅으로도

보았습니다

 

[대륙 봉쇄령]

유럽대륙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렸는데

 

당시 유일하게 나폴레옹의 지배(파란색)를 받지 않았던 영국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유럽의 강국으로 떠오른 영국은

해상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프랑스를 밀어내고 새로운 유럽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었고

나폴레옹의 유럽정복의 유일한 장애물이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나폴레옹은

온 유럽과 영국의 무역을 금지시켜

영국 경제를 몰락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영국과 교역이

경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1810년 봉쇄령 협력을 파기하고

영국과 무역을 재개했고

이에 분노한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감행합니다

 

많은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고집을 꺾지않았습니다

 

[러시아 원정]

그렇게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은 러시아로 나아갔는데

프랑스군은 살을 에는듯한 러시아의 추위에 점차 피로해졌고

추위속에 모스크바를 점령하나

극심한 식량난으로 고생하다 후퇴했는데

후퇴할때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아 엄청난 피해를 입고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러시아에서 퇴각하는 나폴레옹

 

처음에 유럽민중들은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을

자유주의이념 , 평등사상을 전파하는 혁명군으로 바라봤지만

점차 물자가 떨어진 프랑스군은 점령지에서 횡포와 약탈을 벌이고 있었고

러시아 원정까지 실패하자

결국 유럽각국은 반 나폴레옹의 기치를 내걸어

다시 대프랑스동맹을 맺어 연합군으로 프랑스에 맞서게 됩니다

 

이에 연합군은 프랑스수도 파리를 점령했고

오랫동안의 전쟁이 지긋지긋해진 프랑스 국민들에

나폴레옹은 결국

1814년 퇴위를 강요당하고 황제에 자리에서 물러나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섬으로 추방됩니다

 

엘바섬

 

[백일천하]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숨죽이고 있던 유럽 각국들은

다시 왕정을 복구하고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빈 회의(빈 체제) 를 열어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 했습니다

 

빈회의

 

그러나

1815년 46세의 나폴레옹은 격리 1년만에

엘바섬을 탈출해

그를 그리워하던 지지자들과 함께 파리로 돌아와

다시 황제가 되었고

 

복귀하는 나폴레옹을 환호하는 프랑스 병사들

 

영국과의 결전을 벌입니다

 

영국 연합군과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워털루에서 붙었는데

워털루 전투에서 참패를 당했고

황제자리에 복위한지 100일만에

다시 황제자리에서 쫓겨납니다

 

워털루 전투

 

이를 100일천하라 부릅니다

 

[세인트헬레나섬의 황제]

쫓겨난 나폴레옹은

대서양 아프리카지역의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세인트 헬레나 섬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된 나폴레옹

 

한때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던 그는

나폴레옹은

유배지에서 6년동안 온갖 핍박과 조롱을 받으며 살다가

1821년 5월 5일 52세의 나이로 위암으로 쓸쓸하게 사망합니다

 

<나폴레옹의 유언>프랑스 , 군대 , 선봉 , 조제핀

 

<라봉봉>요즘은 나폴레옹이

어린이 위인전에서 빠지는 추세입니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전쟁을 해 자국과 외국 청년들을 죽음에 이르게한

독재자이기도 했고

단지 군부의 영향 및 야성성이 강했던 20세기까지는

나폴레옹 , 알렉산더 대왕이 용맹하고 대담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어린이 위인전에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근대 유럽사 , 근대사를 공부할때

항상 나오는 인물이 나폴레옹이고

나폴레옹은 일반적인 독재자라고만 이야기 되는 인물은 아니고

프랑스의 개혁가 , 유럽근대시민사회 형성에 영향이라는

양면성이 있는 인물이었기에

오늘날까지 여럿 이야기되고 있는 인물입니다

 

하여튼 작은키에 야심이 컸던 인물로 유명하고

근대의 낭만주의와 자유주의 , 여러 이야기를 남긴 인물이었습니다

 

낭만적이고 화려했던 나폴레옹의 모습은

수많은 독재자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고 ;;

머리는 좋고 인간성도 있었던 인물인데

아쉬움과 한계도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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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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