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

어린이 개인이야기 2020. 5. 2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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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

[가야금을 만든 가실왕]

[12곡을 만든 우륵]

[화보와 가야공주]

[탄금대의 유래]

[우륵과 세 제자]

[떠나간 악성]

<라봉봉>

 

우륵

 

[가야금을 만든 가실왕]

가야의 가실왕은

당시 중국음악이 한국에서 유행했기에

우리 정서에 맞는 악기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가실왕은

12달의 음률을 떠서

12줄로 된 현금 악기를 만들었는데

 

가야금을 만드는 가야 장인들

 

가야라는 나라의 이름을 본따 가야금이라 이름붙였습니다

 

가야금

 

이어서

가실왕은

 

<가실왕>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르니

음악이 어찌 한결같을 수 있겠는가 ?

 

하고는 가야금 음악을 만들 것을 고심했습니다

 

연맹왕국으로서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었던 가야

 

[12곡을 만든 우륵]

당시 뛰어난 음악가였던 성열현 사람 우륵은

가실왕이 만든 가야금을 매우 아름답게 잘탔고

듣는 사람들은 우륵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마음을 빼앗길 정도였습니다

 

 

이에 가실왕은 우륵을 늘 곁에 두고 우륵의 연주를 즐겼고

우륵을 궁중악사에 임명해

우륵은 520년 초 30대의 나이로

가야궁중의 악사가 됬습니다

 

또 가실왕은 궁중악사 우륵에게

가야금의 12개의 곡을 만들라 명했습니다

 

우륵은 각각 가야의 여러 지역의 음악을 정리하며

 

상가라도(경상북도 고령군)

하가라도(김해시)

보기(사천시 혹은 하동군)

달이(여수시)

사물(사천시)

물혜(광양시)

상/하기물(남원시)

사자기

거열(거창군)

사팔혜(합천군)

이사(의령군)

 

라는 12개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가야금 12곡의 지명 위치도

 

[화보와 가야공주]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우륵의 가야금소리에 반해

우륵을 좋아했고

우륵이 음악을 가르치던 가실왕의 공주 역시

우륵을 남몰래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륵은 오직 화보라는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가야 여인 복원모습

 

어느날은 우륵은 화보를 만났는데

화보가 우울해 보였습니다

 

<우륵>화보낭자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으시오 ?

낯색이 좋지 않구려..

 

이에 화보는 조그만 목소리로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화보>요즘 온나라에

공주님이 당신을 몰래 사랑하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져있답니다

지체 높으신 공주님이 사랑하고 있는데

저같은 사람이 당신 눈에 들어오겠어요

 

이에 우륵은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륵>난 당신처럼 평범한 사람이오.

공주의 사랑을 받을 몸이 못된다오

 

어느날도 우륵이 공주에게 가야금을 가르치고 있는데

공주가 우륵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당황한 우륵은 이를 거절하나

공주는 우륵의 품에 안기며 계속 사랑을 고백합니다

 

 

이때 가실왕이 들어왔고

크게 화를 내며 우륵을 가두어버립니다

 

자신때문에 곤경에 처한 우륵에 미안해진 공주는

우륵을 감옥에서 꺼내 도망치게했고

우륵은 신라로 도망갑니다

 

당시 가야는 가실왕의 실정으로 혼란에 빠져있었고

얼마후 신라에게 멸망합니다

 

[탄금대의 유래]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로 도망치는데

진흥왕은 당대 뛰어난 악공이었던 우륵을 환영하며

국원(충주)에 머물며 편안히 있게했습니다

 

신라의 중원경(국원 , 오늘날 충주)

 

충주 대문산은 기암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 울창한 소나무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고

우륵은 대문산의 빼어난 경치에 매료되

이곳에 머물며 제자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가르칩니다

 

이곳에서 우륵이 산상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탔고

우륵의 아름다운 가야금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갈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 미묘한 소리에 이끌린 사람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게 되니

사람들은 이곳을 탄금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탄금대의 탄금정

 

[우륵과 세 제자]

우륵의 소문을 들은 진흥왕은 우륵에게

계고 , 법지 , 만덕을 보내서

우륵에게 음악을 전수받게 했는데

 

우륵은 세 사람의 재능을 헤아려서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

법지에게는 노래를 ,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습니다

 

세 제자를 가르치는 우륵

 

세명은 이미 우륵의 12곡을 전해받고 서로 말하기를

 

<계고 , 법지 , 만덕>이것은 번잡하고 또 음란해서

우아하고 바르다고 할 수 없다

 

하고 우륵의 12곡을 5곡으로 요약합니다

 

우륵은 처음엔 이 말을 듣고 화를 냈지만

제자들이 만든 5곡의 음을 듣고

눈물흘리며 탄식하며 말하길

 

<우륵>즐거움이 넘치지 않고 애절하면서 슬프지 않으니

가히 바르다고 할 수 있다

너희는 왕의 앞에서 그것을 연주하라

 

이후 진흥왕이 이들의 가야금 연주를 듣고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가야금을 켜는 신라 토우(흙인형)

 

사극 화랑의 진흥왕 , KBS 2TV 월화 드라마 화랑 (2016~2017) Hwarang: The Poet Warrior Youth

 

이때 신하가 아뢰길

 

<신라 신하>가야에서 나라를 망친 음악이니 취할 것이 못됩니다

 

하니

진흥왕은

 

<진흥왕>가야왕이 음란하여 자멸한 것이지

음악이 무슨 죄가 있는가

대개 성인이 음악을 제정하는 것은 감정에 연유하여

법도를 따르도록 하게 한 것이니

나라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음악의 곡조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이에 진흥왕은 가야금 음악을

대악으로 삼았습니다

 

[떠나간 악성]

시간이 흘러

신라에 멸망한 가야를 생각하던

우륵은 마음속에 두고있던 화보를 그리워하며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우륵을 찾아온

화보와 가야공주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탄금대

 

우륵은 너무나 반가웠지만

어느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자신도 몰랐기에

두 여자의 마음에 상처를 둘 수 없다 생각해

두 여인을 돌려보냅니다

 

우륵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곡을 편곡해

웅장하고 밝게 바꾼것을 칭찬했고

동시에 멸망한 고국 가야를 그리워하며

가야금과 함께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우륵을 기리며

우륵을 음악의 성인 , 악성이라 부르게 되었고

우륵의 가야금은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인들은 가야금을 신라금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악성 우륵상

 

일본 정창원의 신라금

 

<라봉봉>우륵은 한국의 음악의 성인 , 악성이라 불리는 인물로

악성 베토벤에 못지않은 한국의 자랑스러운 전통 음악인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음악과 아름다운 그의 연주는 오늘날 전해지지는 않지만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라 이야기 되고 있고

가야라는 그의 나라는 망했지만 가야인들의 마지막 정신을 담으려 했던

한국의 위인이었습니다

 

가야도 참 고구려 , 백제 , 신라처럼 선진화되지도 않았고

삼국시대에서도 빠져 이야기 될 정도로 좋은 나라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가야금과 우륵이 있어서 마지막 자존심은 살린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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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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