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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조지와 벚나무]

[구부러진 화살]

[청년시절]

[보스턴 차 사건]

[대륙회의]

[미국 독립 전쟁]

[솔선수범하는 총사령관]

[자유를 지킨 총사령관]

[미합중국의 탄생]

[미국 첫번째 대통령]

[천재는 아니었던 인물]

[고별사]

[건국의 아버지]

<라봉봉>

 

조지 워싱턴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은 누구일까요 ?

당연 노예를 해방한 미국사 , 세계사의 천재인 링컨 대통령도 있지만

가장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대통령은

뛰어난 용기와 사회적 리더십이 있었던 조지 워싱턴 대통령입니다

(둘 다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로 1 , 2위를 다툼)

 

러시모어 산의 조지 워싱턴(맨 왼쪽) 과 링컨(맨 오른쪽) 대통령

 

[조지와 벚나무]

조지 워싱턴은

1732년 2월 22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워싱턴 어머니를 닮아 갈색머리에

아버지를 닮아 체력이 강했습니다

 

워싱턴은 공부보다

운동 , 농사 , 목축을 좋아했고

측량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워싱턴이 6살 되었을때

손도끼를 잘 다루게 되었고

워싱턴은 장난기가 많아

도끼로 이것저것 깎거나 베어냈고

 

하루는 아버지가 매우 아끼던

영국산 벚나무를 도끼로 베어버려

나무가 죽어버렸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조용하고 따뜻한 어조로

누가 그랬는지를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있었고

그때 조지 워싱턴이 손도끼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워싱턴의 아버지>조지 , 누가 정원에 있는 벚나무를

죽였는 지 너는 아니 ?

 

워싱턴과 벚나무

 

난처한 질문에

조지는 한동안 망설였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진실한 눈빛으로 대답했습니다

 

<워싱턴>저는 거짓말 할 수 없어요 ,

아빠가 잘 아시잖아요

제가 손도끼로 벚나무를 잘랐어요

 

이에 아버지는 화가 났지만

정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말한 워싱턴의 모습에 화가 풀려

어린 조지를 야단치지 않고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워싱턴의 아버지>조지 , 나는 네가 나무를 죽였어도 기쁘단다

너는 나에게 용기있는 정직을 선물했으니까 말이다

 

너의 진실한 행동은 나무 천 그루보다 더 소중하다

비록 그 나무가 은으로 꽃을 피우고

순금 열매를 맺는다 하더라도...

 

 

[구부러진 화살]

소년 워싱턴은 종종 숲에서 인디언 놀이를 즐겼고

동생과 활쏘기 놀이를 했습니다

 

활쏘는 인디언

 

그러나 어느날 화살이 계속 이상한데 날아갔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모닥불에 화살에 불을 쪼인 다음

화살을 꼿꼿이 펴주었습니다

 

<워싱턴의 아버지>이제 잘 될거다 한번 쏴보렴

 

아니나 다를까 화살은 잘 날아가 과녁에 맞았고

아버지는

 

<워싱턴의 아버지>굽은 화살로는 과녁을 맞힐 수 없단다

화살은 언제나 꼿꼿해야 한다

 

저 화살처럼 곧은 사람이 되거라

사람도 구부러진 사람은 못쓴다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어린 워싱턴을 사랑한 사람이자

워싱턴의 평생의 스승이 된 워싱턴의 아버지 !

 

그러나 아버지는 워싱턴이 11세가 되는 해

돌아가셨습니다

워싱턴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되려했고

어머니는 혼자서 꿋꿋하게 그런 워싱턴을 잘 키워냈습니다

 

<14세의 워싱턴이 쓴 글>

거룩한 섬광과 같은 것은 부족하지만 

그러나 너의 가슴이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 ,

그것은 양심이다

 

양심과 정직을 중요시한 미국인들 ,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동화 피노키오

 

[청년시절]

1749년

워싱턴은 18세의 나이로 측량기사가 되었고

3년후인

 

1752년

워싱턴은 20세의 나이로

버지니아주의 민병대의 참모 , 소령이 되었습니다

 

버지니아주 군대의 대령 제복을 입고있는 워싱턴

 

당시 미국은 영국에 독립하지 못한 식민지였기에

1년후인

1753년 워싱턴은

영국 정규군에 들어가

프랑스 인디언 전쟁(프렌치 인디언 전쟁)에 참전한 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

 

1759년

27세의 워싱턴은 미망인(남편을 잃은 여인)이었던

마사 댄드리지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엄청난 부자였고

처가 덕분에 워싱턴은 수백병의 노예와

거대한 대농장을 소유한 부자가 됩니다

 

미국 최초의 영부인 마사 댄드리지 워싱턴

 

[보스턴 차 사건]

당시 미국인들은 식민지인으로서

영국인들에게 차별을 받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영국은 자국 이익을 극대화시키려

영-미 간 오가는 무역선을

오직 영국 국적 선박만 이용하게 강제하게 했고

차 무역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해

미국의 무역상과 차농장주는 크게 반발했습니다

 

이에 미국인들은 인디언으로 위장해

1773년 보스턴 항에 입항한 영국 차 상선을 습격해

차를 바다에 버리는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켰고

 

보스턴 차 사건(티 파티)

 

인디언으로 분장해 차를 바다에 버리는 분노한 미국 식민지인들

 

영국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국 식민지인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진압합니다

 

[대륙회의]

이에 점차 미국인들은

영국의 수탈과 횡포에 맞서

독립을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13개주 대표들은 모여서 대륙회의를 개최했는데

워싱턴은 버지니아주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대륙회의

 

그는 이전부터 민병대 참전 경험 ,

성실한 리더쉽을 인정받아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버지니아주 대표가 된 것이었습니다

 

원래 미국 식민지들은 그럼에도 자신들이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독립을 하거나 영국과의 전쟁을 피하려 했는데

당시 미국 식민지인들에게

토머스 페인의 '상식' 이라는 책이 대히트칩니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

1.영국의 군주제는 옳지 않다

2.영국이 부과하는 세금과 제약은 식민지 경제에 큰 손실을 입힌다

3.5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작은 섬나라가 

이 커다란 대륙을 지배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상식이 출간되자 미국 식민지인들은

영국에 독립해야한다는 생각이 크게 강해졌고

이에

존 애덤스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존 애덤스>페인의 펜이 없었더라면 조지 워싱턴의 칼은 쓸모없었을 것

 

[미국 독립 전쟁]

워싱턴은

1775년 2차 대륙회의에서

급진강경파의 중심 인물이 되었고

이전 영국군에 입대한 경험을 인정받아

미국 식민지군 , 독립 민병대(대륙군)의 총사령관으로 추대됩니다

 

<독립전쟁때 전투를 앞둔 워싱턴이 부대원들에게 한 말>

미국인들은 자유인이 될 것인가 ,

아니면 노예가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은 우리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지켜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시기이다. 

...

앞으로 태어날 수백만의 미국인의 운명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우리 부대의 용기와 행동에 달려있다.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우리의 적들은 

우리들이 최고의 용감한 저항을 할 것인가 ,

아니면 가장 비굴한 굴복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우리에게 남겨두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굴복하여 죽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기도하는 워싱턴 장군

 

[솔선수범하는 총사령관]

워싱턴은 항상 솔선수범하고 앞장서는 인자한 총사령관이었습니다

 

하루는 총사령관 워싱턴이 군부대를 시찰하는데

병사들이 큰 나무를 운반할때

장교 한명이 소리만 지르며 병사들을 부리기만 했고

이에 워싱턴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워싱턴>당신은 왜 목재를 나르지 않는 것이오

 

이에 장교는

 

<장교>나는 명령을 하는 상관입니다

 

장교의 대답을 듣자

총사령관 워싱턴은 아무말 없이 말에서 내려

병사들과 함께 목재를 운반했고

장교에게 말했습니다

 

<워싱턴>이보게 앞으로 목재를 운반할 일이 있으면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을 부르시오

 

1776년

대륙회의에서 지식인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 를 발표했고

이는 미국의 영국에 대한 공식적인 선전포고이자

미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독립 선언

 

그러나 워싱턴의 독립민병대는

급조된 미국 식민지인들로 구성되있었기에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 정규군에 비해 모든 상황에서 열악했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 독립민병대였기에

워싱턴은 자신이 영국군에 있던 시기의 경험을 적극 살려

영국군을 분석하고 영국과의 전면전은 적극 피하고

미국의 넓은 영토와 자원을 이용한 게릴라전술을 시도합니다

 

영국군을 기습하기로 한 워싱턴 장군은

은밀하게 델라웨어 강을 건너 영국군을 기습해

영국군에 대승을 거두며 이전까지 열세에 있던 미국 독립군에게

자신감을 고취시키며 미국 독립전쟁을 전환시켰습니다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 에마누엘 로이체 작

 

<워싱턴>

전투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철수작전 , 후퇴작전도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희생을 최소화 하면서 전력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워싱턴의 부대가

사라토가에서 영국군에 대승을 거두자

미국 식민지인들은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여세를 몰아

1781년 요크타운에서 다시 승리를 거두며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미국 독립민병대는

영국의 군사적 항복을 받아냅니다

 

요크타운의 항복 , 1797년 존 트럼블 작품

 

[자유를 지킨 총사령관]

독립전쟁이 끝나가던

1783년 3월

대륙회의의 미국 독립민병대에 대한 처우에 불만을 품은

장교와 사병들은 의회로 쳐들어가려 했고

이에 총사령관 워싱턴은 급히 달려나가

군인들이 민간정부에 도전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유를 버리려는 행위와 같다며

즉각 중지할 것을 호소합니다

 

그럼에도 흥분한 군인들이 말을 듣지 않자

무기력해진 워싱턴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 의원이 워싱턴에게 보낸 편지를 꺼내 읽으려 했습니다

그는 편지를 읽기전 말했습니다

 

<워싱턴>여러분 , 제가 안경을 좀 써야겠습니다

조국을 위하여 전쟁을 하다보니

이제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눈은 장님이 될 정도로 침침해졌습니다

 

이에 모여있던 수백명의 장교와 병사들은 엉엉 울고 말았고

군인들의 쿠데타는 중지되었습니다

 

이후 토머스 제퍼슨은 이 일을 언급하며

워싱턴이 없었으면 미국의 자유는 없었을 것이라 회고했습니다

 

[미합중국의 탄생]

계속되는 워싱턴군의 승리에

결국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1783년 프랑스 파리에서 강화조약을 채결해

미국은 동부 13개주를 기반으로

미합중국(미국의 정식 명칭)을 출범시킵니다

 

미국 13개주 식민지

 

미국 국기

 

이해 워싱턴은

대륙회의 의원직과 미국군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농부가 되었습니다

 

오합지졸 미국군을 이끌며

세계 최강의 영국군을 이기고 독립을 얻어낸 총사령관이

독립을 이룬 후 자신의 모든 권한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평민이 되어버리자

당시 적국이었던 영국 국왕 조지 3세는 말했습니다

 

<조지 3세>

조지 워싱턴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조지 3세

 

[미국 첫번째 대통령]

그러나 당시 미국인들은 새로운 나라의 첫 지도자가 필요했고

그것은 '대통령' 이라는 자리로서

당시 전세계에서 있었던 혈연으로 되는 '왕'이 아닌

임기가 정해져있고 선거를 통해 되는 자리였습니다

 

언제나 첫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듯이

첫 대통령은 욕심없고 명망있고 선량한 인물이어야만 했습니다

 

그 인물로는 워싱턴 밖에 없었고

워싱턴은 독립전쟁 시절에도 총사령관으로서 뛰어난 인품으로

병사들의 성향과 고향까지 한명한명 기억하는 인자한 지휘관이었고

그렇다고 부하들이 과도한 음주를 하거나

아무리 보급이 떨어져 배가 고파도

시민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한 인물이었습니다

 

<워싱턴 명언>도덕성과 정직 없이는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놀라운 업적을 달성해도 ,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존경을 얻지 못하고 , 자긍심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에 반대로

영국군은 미국 민간인 마을을 약탈을 자주했기에

결국 중립을 지키던 미국 식민지인들까지

영국군에게서 등을 돌리고

조지 워싱턴의 독립군에게 협조하게 되어

미국 독립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미국 첫 대통령은

미국 독립군을 이끈 워싱턴 밖에 할 사람이 없었고

 

결국 워싱턴은

1789년 4월 30일

만장일치로 미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높은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연임에도 성공했습니다

 

성경책에 취임선서하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

 

워싱턴은 2번의 재임기간동안

연방주의 , 화폐발행 , 유럽에 대한 중립적 자세 유지로

신생국가 미국이 자리잡는데 노력했고

 

상인들과 농민들의 갈등을 화합시키려 했고

적대적인 정파싸움을 크게 경계하며

이러한 워싱턴의 포용력과 리더십에

신생국가 미국은 점차 하나의 미국으로 자리잡아갑니다

 

[천재는 아니었던 인물]

또한 워싱턴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 같은 천재는 아니었고

다른 미국인들 역시 그가 천재는 아니었다 이야기했습니다

 

워싱턴 대통령 공식 초상화

 

그러나 워싱턴은 천재는 아니었지만

통합과 협치의 중요성을 알고

욕망은 없었던 깨끗한 인물이었기에

 

자기보다 똑똑했던 토머스 제퍼슨 , 존 애덤스 같은

당대 지식인 , 동료들을

신생국가 미국의 요직에 앉히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반대파여도 유능하면 요직에 임명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 워싱턴과 제퍼슨과 애덤스

 

[고별사]

뛰어난 포용력으로 미국의 기초를 놓은 워싱턴 대통령을

당시 사람들은 크게 존경했고

2번째 임기를 마친 워싱턴에게 사람들은

3번째 대통령을 하던가

종신 대통령 , 죽을때까지 대통령을 하던가

아예 왕이 되라 권유합니다

 

당시까지 세계에서 대통령제를 경험한 나라가 없었고

미국이 이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세계인들 뿐만 아닌 미국인들 자신들 조차도

대통령을 그저 새로운 이름의 왕이라 여겼고

 

워싱턴은 첫 대통령이었고

당시까지는 세계에서 지도자는 모두 왕이었고

대통령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에

미국 국민들은 워싱턴을 왕처럼 생각했고

워싱턴 역시 자신을 왕같이 생각했습니다

 

이에 당시 사람들은 워싱턴에게 진심으로 왕이 되줄것을 요청했지만

그러나 워싱턴은 자신이 이러한 인기와 명망을 이용해

진짜 왕이 되어버리면

장기집권이 가져오는 독재의 가능성에서

자신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여겼고

민주주의의 원칙에 큰 혼란이 온다 생각하고

 

'고별사'

 

라는 글을 남기며

욕심을 버리고 정계에서 깨끗하게 은퇴합니다

 

고별사 , 떠나는 워싱턴 대통령

 

<워싱턴의 고별사>

...

내가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일이 내가 말씀 드린 원칙에 

얼마만큼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인지는 

공적 기록과 내 행동의 다른 증거들이 여러분과 세계에 증언할 것입니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양심을 걸고 내가 그러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였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다른 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점에서도 우리나라의 친절에 의지하고 있으며 ,

그리고 자신의 향토와 구세대에 걸친 선조들의 향토에 대해 애향심을 갖는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러운 열렬한 애국심의 자극을 받은 나는

은퇴하면 자유정부 하에서 선한 법률들의 인자한 영향을 ,

나의 국민들 속에 끼어서 ,

국민들과 함께 향유하는 기쁨을 순수하게 실현하겠노라고

나 스스로 다짐했던 바가 이루어질 것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는 바 ,

이 자유정부는 항상 내가 즐겨 염원해온 것이며 ,

우리들이 서로 돌보고 서로 애쓰고 ,

서로 위험에 부딪히고 한 결과인 복된 보답인 것으로 나는 믿습니다.

 

조지 워싱턴 미국,

1796년 9월 17일

 

워싱턴이 군통수권을 의회에 반환하는 그림

 

[건국의 아버지]

고별사를 남긴 워싱턴은 스스로 정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거두고

고향 , 농장으로 돌아가

안락한 생활을 즐기다

1799년 68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워싱턴의 집 마운트 버넌 농장

 

<워싱턴의 유언>모든 것이 잘 되었다. 

이제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이에 사람들은 욕심을 버린 첫번째 지도자 워싱턴 대통령을 크게 존경하게 되었고

그를 '건국의 아버지' 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미국 1달러 지폐속 워싱턴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미국 수도 워싱턴 D.C , 워싱턴 D.C 의 백악관

 

<헨리 리의 워싱턴 추도글>

여기 위대한 사람을 기립니다. 

전쟁에서도 최고, 평화에서도 최고 ,

이 나라 국민의 마음속에서도 최고입니다.

그가 바로 조지 워싱턴입니다

 

<라봉봉>어떤 미국인 분과 미국 역사이야기를 하다가

워싱턴 대통령과 링컨 대통령 중 누가 더 위대한가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워싱턴이라 했고

저는 링컨이라 한 기억이 납니다

 

두 인물 다 미국인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고

저는 아무래도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링컨이 더 끌린 것은 사실이나

 

요즘 생각하기엔

링컨 역시 독선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기에

노예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이라는 엄청난 인명희생 , 거대한 내전을 겪고

이로인해 남북갈등속에 말년에 암살당한 인물이라

 

만약 링컨에게도 워싱턴같은 포용력이 있었더라면

남북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았나 ,

노예들의 목숨 만큼이나 미국 군인들의 목숨 역시 소중하지 않았나 ,

아무리 천재여도 전쟁은 안된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워싱턴을 링컨보다 더 높게 평하는 자들은 (사실 둘다 훌륭해서 의미는 없음)

특히나 그가 미련없이 3선을 거부함으로서

욕심없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있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의 그런 순수한 모습 이외에도

링컨같이 정직했던 모습 , 국민을 사랑했던 모습은

그가 충분히 1위로 존경받기 충분한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전통속에 오늘날에도 미국인들은 정직의 가치를 아주 중요시여기고 있고

평소엔 순박하게 지내지만

거짓말 , 사기에 아주 민감한

철저한 크레딧 사회(신용사회)이자

교양있는 가정에서도 아무리 겉이 번지르해도 거짓말쟁이들은

쓸모가 없다 가르칩니다

 

어짜피 살면서 노력하다보면 돈이 쌓이고

다 거기서 거기인 상황이 오는 거 같고

그때부터는 누가 더 정직하냐로 입장이 갈리고

과거가 심판되거나 더 나아가거나 하는게 있는거 같은데

 

괜히 옛날부터 어른들이 정직이 최고의 가치다 ,

정직을 잃으면 모든걸 잃는다라 한게 아닌거 같고

 

저는 잘못을 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보다

잘못을 숨기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생각하고 있고

오늘날에도 이런 정직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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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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