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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카네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부자]

[가난한 직공의 아들]

[어머니가 알려준 정직과 감사]

[근로소년 카네기]

[코로넬씨의 작은 도서관]

[성실한 직원]

[철강업에 투신하다]

[은퇴 계획]

[강철왕 카네기]

[우정과 사랑]

[홈스테드 학살사건]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자의 소명]

[카네기 도서관]

[평화주의와 예술사랑]

<라봉봉>

 

앤드루 카네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부자]

세계 최고의 부자 ,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은

역시 자본주의의 나라인 미국에서 많이 나왔는데

록펠러 , 카네기 , 헨리포드 , 빌게이츠 등이 유명하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미국 기업가들 왼쪽부터 록펠러 , 포드 , 카네기

 

특히 카네기는 철강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며

평생동안 노력해서 번 많은 돈을

자신의 이익에만 쓰지 않고

사회복지 , 사회 환원 , 세계평화에 힘쓰다 사망한 인물이라

부자중의 부자 , 위인으로 이야기 되는 인물입니다

 

[가난한 직공의 아들]

앤드류 카네기는

1835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수직공(직물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직조공이었던 카네기의 아버지는 가내공장을 운영했는데

1847년 증기식 직조기가 도입되며

하루아침에 생계가 어려워지게 되었고

가난해진 카네기는 일찌감치 세상물정에 눈뜨게 됩니다

그럼에도 카네기의 가족은 가난했지만 밝고 정직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카네기 생가

 

[어머니가 알려준 정직과 감사]

카네기가 14살이 되던 해

미국에 사는 숙모가 미국은 기회의 땅이니

미국으로 오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에 카네기의 어머니는 그 편지를 결심하고

모든 재산을 팔아 미국으로 이주하려 했는데

여비 20프랑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카네기 어머니는 친구 핸더슨 부인에게

20프랑을 빌려 미국으로 건너갔고

어머니는 삯바느질과 파출부일을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어느날 어머니는 소년 카네기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카네기의 어머니>얘야 ! 오늘은 참 기쁜 날이다

아마 내 생애에 최고로 기쁜 날 같다

 

<카네기>엄마 뭐가 그리 기뻐요 ?

 

<카네기>핸더슨 부인에게 빌린 20프랑을 오늘에야 다 갚았다

너는 앞으로 핸더슨 부인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라

 

카네기는 이때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정직한 분이구나 ! 그리고 감사를 아는 분이구나 !'

 

카네기는 정직과 감사의 중요를 어머니를 통해 깨닫게 되었고

이는 훗날 그가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카네기 명언>

나의 좌우명은 집중이다. 

첫째는 정직 ,

그 다음은 열심히 일하는것이고 ,

그 다음은 집중이다.

Concentration is my motto.

First honest , then industry , then concentration.

 

[근로소년 카네기]

미국에 간 소년 카네기는 집안이 가난해 학교를 가지 못했고

처음엔 장사를 하려했지만

어머니는 장삿일을 하면 배울게 없다하며 다른 일을 하라했고

결국 카네기는 일주일에 1달러 20센트를 받고

새벽부터 밤까지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16세때의 카네기 , 오른쪽

 

카네기는 소년시절부터

방적공 , 기관조수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는데

일하면서도 항상 작은 일일지언정 최고가 되려 성실히 일했고

이로 인해 어떤 하찮은 일을 하던간에

상사 , 사장의 눈에 띄어 호감을 사고

러브콜 , 행운의 기회가 계속오게 되었습니다

 

소년시절 처음 취직한 방적회사에서는

공장에서 제일가는 직원이 되겠다 결심하고

이리저리 연구하고 궁리하며 일했고

성실하게 일하는 태도를 보고 어떤 사람이 카네기에게

전신국의 우편 배달부를 추천해줍니다

 

전화가 없던 시절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소식을 전해주러 다니는

전신국 우편 배달부(메신저 보이)가 된 15살의 소년 카네기는

한집 한집의 번지와 이름까지 암기해

배달구역 내에서는 모르는 구역이 없는 최고의 우편 배달부가 되었습니다

 

뉴스보이 , 빵모자를 쓰고 신문을 판매하던 소년신문배달부들

 

<카네기의 회상>우리 메신저보이들은 모두 즐겁게 열심히 일했다. 

매일 전신국이 문을 닫을 때까지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밤 11시 전에 집에 가는 날이 거의 없었다. 

철야근무날에는 새벽 6시나 되어야 교대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

가족의 생계 때문에 책 살 돈도 없었다

 

[코로넬씨의 작은 도서관]

소년 배달부 카네기는

한때는 학자를 꿈꿨지만 가난때문에 포기해야 하기도 했기에

바쁜 생계 속에서도 마음속에서 배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고

그러던 와중 반가운 소식을 듣게됩니다

 

당시는 책이 귀해서 도서관은 유료로 운영되거나 했는데

코로넬 제임스 앤더슨이라는 은퇴한 상인이

자신이 가진 400권의 책을 모아

일하는 소년들을 위해 도서관을 열고

토요일마다 책을 빌려준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카네기의 평생의 은인 코로넬 제임스 앤더슨

 

그러나 이 도서관은 공장 소년들을 위한 도서관이었기에

카네기가 일하는 메신저 보이 , 배달부들에게는 책을 빌릴 자격이 없었고

어린 카네기는 너무 책을 읽고싶은 마음에

지방 신문의 편집인에게

 

'모든 근로소년들은 도서관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고

메신저 보이들도 근로소년이기 때문에

배제해서는 안된다'

 

라는 편지를 썼고

이 소식을 들은 코로넬 앤더슨은

곧바로 카네기같은 메신저 보이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규정을 바꿉니다

 

덕분에 카네기는 코로넬의 사설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되었고

동료 메신저보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일하는 와중에

틈틈히 도서관에 들러 빌려온 책을 읽고

일이 끝나고 늦은 밤 집에와서도 불을 밝히며 책을 읽었습니다

 

근로소년 카네기를 철강왕 카네기로 만들어준 독서

 

문학을 좋아하던 카네기는 문호들의 글과 시를 열심히 읽으며

생각의 영역을 넓힐 수 있었고

미국의 역사도 열심히 읽으며 역사에도 심취하게 됩니다

 

<카네기의 회상>코로넬은 그 작은 도서관을 통해

지식의 빛이 흐르는 창을 열어주었다

 

어린 소년 카네기는 코로넬 앤더슨이라는 독지가(자선사업가)의 도움으로

문학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되고

사회의 친절함과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풍부한 독서경험은

그가 위대한 사업가로 가는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이때 받은 코로넬의 친절은

그가 부자가 되었을때 자신이 받은 친절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실한 직원]

카네기는 우편 배달을 하면서도 어깨너머로 전신업무를 익혀두다가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능숙하게 업무를 대신해 상사에 인정받고

카네기는 정식 전신기사로 채용됩니다

 

카네기는 일하는 와중에

틈틈히 모스부호를 공부해서

16살때 전보기사가 되었고

 

모스부호

 

전신국의 전보기사가 된 카네기는

전신국의 단골손님이었던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 피츠버그 지부장

토머스 스콧에게 스카우트 되어서

1853년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합니다

 

(사실 성실한 사람은 사회에서 꽤 희귀한 편이고

기업은 이력서와 면접채용만이 아닌

스카우트 , 특별채용이라는게 있고

사장들도 사람이라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데려가려 합니다)

 

학교는 다니지 않았지만 카네기는 일하는 도중에도

열심히 독서하며 지식을 넓혀갔고

성실히 일해

철도회사에서 점차 승진하게 되었고

소년 시절부터 열심히 한 풍부한 독서경험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 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카네기가 철도회사에서 1865년까지 12년간 근무하는 동안

침대차 회사와 여러 회사에 투자해 큰 이익을 얻어

30세의 나이에 엄청난 부자가 됩니다

 

<카네기 명언>커다란 사업이라는 것은 엄격한 성실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이외의 것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요령이 좋다거나 약삭빠른 거래를 한다는 평판이 퍼지면 큰 사업을 하는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법률적인 문구가 아니라 반드시 정신이 모든 거래의 규칙이 되어야 한다

 

[철강업에 투신하다]

이후 카네기는

앞으로 철강수요를 예견하고

1865년 30세의 카네기는

12년동안 잘다니던 철도회사도 과감하게 사직후

독자적으로 철강업을 경영합니다

 

<카네기 명언>모든 달갈을 한 바구니에 넣고

그것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달걀 바구니

 

어린시절 누더기옷을 입고다니며

'걸레' 라는 별명을 들었던 카네기는

어느덧 한 기업을 이끄는 훌륭한 , 부유한 사업가로 성장했고

카네기는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실함의 중요성을 알고 사람들과 협업을 잘 하게 되었습니다

 

[은퇴 계획]

엄청난 부자가 된 카네기는

1868년 33세의 나이때부터

35세에 은퇴 계획을 세웠는데

카네기는 자신의 삶을

 

'재산을 쌓는 시기'

 

 

'재산을 나누는 시기'

 

두 가지로 나누었고

 

은퇴후 2막에는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머지수입은 모두 자선사업에 쓰겠다는 계획이었고

실제 은퇴는 30년이 늦은 1901년에 이루어지지만

늦게 은퇴한만큼 더 큰 액수를 자선사업에 사용할 수 있게됩니다

 

젊은시절의 카네기

 

[강철왕 카네기]

이후 카네기는 영국 제강소에 방문하다

강철의 놀라운 잠재력을 알게 됩니다

 

<영국 기술자 헨리 베서머>앤드루 , 이건 강철이란 겁니다.

기존의 철보다 몇십배는 더 강력하지요.

 

당시 주로 사용되던 선철은 제조가 쉽지만 수명이 짧았고

강철은 제조가 어려웠지만 선철보다 수명이 길었습니다

 

1872년 홈스테드제강소를 설립한 카네기는

1875년 미국 최초의 강철회사를 설립했고

 

남북전쟁 이전까지 미국은 대부분 철을 외국에서 수입했지만

남북전쟁으로 총과 포탄 , 군함 등을 사용하는데 막대한 철이 사용되며

점차 철강을 만들어야 했고

남북전쟁 이후는 전후복구 및 철도와 철교 등 산업시설 구축에

막대한 철강수요가 있어

카네기 철강회사의 미래가 매우 밝았습니다

 

1915년의 홈스테드 제철소

 

이로인해 카네기는 강철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했고

카네기는 안정적인 철강 원료공급 , 유통과 생산을 위해

관련 업체들을 모조리 합병하거나 매입하며

석탄-철광석-광석운반철도 ,선박 들을 모두 수직계열화하는

거대한 철강 클러스터(무리) 를 구축합니다

 

(채굴부터 생산까지 다해먹는 것)

 

피츠버그 제철소

 

이로인해 엄청난 원가절감 및 카네기의 철강독점이 시작됬고

당시 미국은 강철로 된 산업시설 , 다리 등 수많은 산업기반시설 건설에

카네기 회사의 강철을 사용했는데

 

카네기는 최신 공법 , 최신 기계를 사용해

우수한 고품질의 강철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고

 

처음 미국인들은 매우 품질이 나쁜 똥철만 만들며

유럽 철보다 품질이 낮아 대부분 유럽에서 레일 수입했는데

카네기의 출현 이후부터는 미국의 철강재가 유럽보다 우수하다는 평가가 나타납니다

 

이로인해 미국 강철시장은 카네기의 독점화 되는데

점차 공법이 규격화되고 규모가 커지며

'규모의 경제' 가 시작되자

생산원가가 떨어져 판매가격을 더욱 낮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네기는

1892년에는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카네기철강회사(카네기 스틸) 설립하는데

이 회사는 미국 철강생산의 4분의 1을 담당하는

당시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독점 기업)였습니다

 

카네기 스틸

 

당시 카네기는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셀 수 없는 돈을 벌어들였고

이로인해 카네기는 강철왕이라 불리게 됩니다

 

[우정과 사랑]

카네기는 일에만 있어서는 매우 엄격했는데

직원들의 작은 실수에도 불같은 화를내며 책임을 물었고

불성실한 직원은 보는 즉시 해고합니다

 

그러다 어느날은 본인이 직원들 월급을 잃어버릴뻔한 실수를 해서

이로인해 카네기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직원들을 너그럽게 대하기 시작합니다

 

카네기는 일을 하며 점차 직원들과의 동료애 ,

우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점차 카네기는 은퇴를 생각하게 되는데

일찍 가장이 됬던 카네기는

30년간 모시던 홀어머니와 남동생을 모두

같은시기 장티푸스로 나란히 잃었고

 

어머니가 사망한 후

1887년 52세가 되서야

29세의 루이스 휫필드와 결혼하고

10년후

1897년에 외동딸 마거릿을 낳습니다

 

[홈스테드 학살사건]

1892년에는

카네기의 홈스테드 제강소에서

임금협상을 이유로 노사갈등이 벌어졌고

이에 카네기 회사의 2인자였던 헨리 클레이 프릭은

일방적으로 공장을 폐쇄했고

이에 반발한 파업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자

프릭은 공장을 탈환하려 핑커튼 경비 용역업체의

무장 사설 경비원 3백명을 투입해

경비원과 노동자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는데

 

홈스테드 파업당시 충돌을 묘사한 신문 삽화

 

악명 높은 파업파괴자인 핑커튼 요원들은

1892년 7월 6일 바지선을 타고 강을 건너 공장에 접근했고

파업노동자들은 강물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이고

총과 다이너마이트로 맞섭니다

 

이 싸움으로 3명의 핑커튼 요원과 10명의 파업노동자가 사망하고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카네기 회사의 요청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8천명의 주 방위군(미군) 이 투입했고

군인들이 투입 되어서야 사태가 진정됩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방위군의 진입

 

당시 미국내 철생산은 카네기 회사가 독점했기에

미국 정부 역시 카네기회사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군대에 진압당한 파업노동자들은 군대의 보호하에

생산을 재개했습니다

 

이 사건을 홈스테드 학살사건이라 불렀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노동탄압사건이라 불렸습니다

 

<홈스테드 학살사건 연구자 윌리엄 세린>

이 사건은 제철산업의 노조를 무릎 꿇게 하였고 , 

그후 50년 이상 노조 설립을 막고 전국적으로 고용자의 권위를 강화시켜 주었다

 

비록 파업 노동자들의 과격행동이 언론에 드러나며

노조들 역시 치명타를 입었고

파업사건은 카네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지만

그럼에도 이전까지 정직한 기업가이자 노동자들의 친구로 행세하던

카네기는 점차 언론에서 유혈사태를 보도하자

점차 궁지에 몰렸습니다

 

<1892년 8월 미국 언론>

죽을 때까지 어떤 사람도 그가 행복하다고 판단하지 말라. 

3개월전까지만 해도 앤드류 카네기는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동정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카네기와 회사 노조들 모두가 피해가 입자

카네기는 자신이 이룬 부가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피와 땀의 일부였을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 결혼후부터 카네기는 결국 은퇴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강해졌고

결국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은퇴를 생각하게 됩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901년 철강업계 1위였던 강철왕 카네기는

철강업계 2위였던 금융왕 모건의 제강회사에

4억 8천만달러에 회사를 매각했고

모건은 미국 철강시장 65%를 지배하는

세계 최대 철강회사 US 스틸회사 탄생시킵니다

 

미국의 금융왕 JP모건

 

1901년 1월 1일 US 스틸 탄생 축하연

 

이 합병을 끝으로 카네기는 인생계획에서

 

'부를 축적하는 1기'

 

를 마감하고

 

'부를 환원하는 2기'

 

를 시작하려

1901년 사업에서 은퇴합니다

 

<카네기 명언>부자인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 카네기는 사업에서 은퇴하고

철강왕 시절

천문학적으로 벌어들인 자신의 재산을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합니다

 

카네기의 사회환원을 돈살포로 풍자한 그림

 

그러나 카네기는 맹목적인 단순한 자선에는 반대했고

아낌없이 평생 번 재산을 전재산을 사회에 나누되

의미있게 나눈다거나

최대한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려는

그러한 방법으로의 사회환원 , 체계적인 사회환원을 시작합니다

 

[부자의 소명]

카네기는 다른 미국의 위대한 사업가들이 그랬던것처럼

부자란 소명을 받고 사람들의 돈을 관리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여겼고

이로 인해 돈의 관리자 , 대리자가 된 부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모든 수입을

이웃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

공동체의 선을 위해 쓰일 신탁(위탁된 것)자금에 불과할 뿐이라

여겼고

부자들의 사회환원은 부자들의 신성한 의무라 강조했습니다

 

저역시 나중에 돈좀 벌면 편안히 쉬다가 사회환원에 투신할 생각이라

인간은 생계에 대한 필요 이상의

자금부터는 철저하게 공공의 이익에 쓰여져야 한다 생각하고 있고

카네기의 생각은 옳은 생각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부자나 대기업에 대한 강도높은 의무 요구는

일반인들 , 중소기업에 비해 더 높은 강도로 여겨야 한다 생각하고

 

(이게 부자증세 , 좌파사상 그런거라기보다

개인이나 사회의 생존과 이익에 타격이 없는 선에서 ,

공익에 이익이 되는 선에서 의무요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하고

가진자들은 도덕성이나 책임을 지는 수준이 더 높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자에 대한 나쁜 인식과 욕심쟁이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주변에서 보이는 그런 부자라 여겨지는 사람들은

실제론 졸부나 부자가 아닐 경우가 많고

진정한 부자는 사회환원과 선함을 추구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카네기 도서관]

사회환원에 투신한 카네기는

1902년 1월 29일 카네기 협회 설립

2500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2500여개에 달하는 도서관을 지었습니다

 

특히 카네기는 도서관에 대한 열정이 매우 강했는데

가난한 어린시절 메신저보이로 일한 근로소년이었을 당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던 코로넬씨에게 받은 친절과 관대함에

카네기는 조금이라도 감사를 표하고 보답하고 싶었고

자신도 코로넬 앤더슨처럼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열려 했습니다

 

(이름없는 상인의 어린이에 대한 조그만 친절이 훗날

세계적 위인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작은 밀알 한알이 수많은 열매를 맺은 것으로서

이런 이야기 보면 눈물날거 같이 감동적입니다)

 

이로인해 자신의 돈을 불우한 소년소녀들이 꿈과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공공 도서관을 짓는데 쓰기로 결심합니다

 

<카네기 도서관 설립 기념비>

웨스턴 펜실베니아의 무료 도서관 설립자인 코로넬 제임스 앤더슨에게 바침. 

그는 자신의 도서관(서재)를 일하는 소년들에게 열어주었고 ,

토요일 오후에 사서로서 활동하여

그의 책 뿐 아니라 그 스스로도 고귀한 역할을 했다. 

 

지식과 상상력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받은 근로 소년 앤드류 카네기가 

감사의 기억으로 이 기념비를 세운다

 

카네기 도서관의 앤더슨 기념비

 

카네기는 말로만 기부한다하고 하지 않고

진짜로 정직하게 자신들의 재산을 아낌없이 의로운 일들에 쏟아부었고

자선사업도 자신이 철강사업을 할때처럼

용광로속 불꽃같이 밀어붙였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비유적 표현 '용광로'

 

카네기는 일평생 모은 재산 4억 8천만 달러 가운데

4분의 3에 해당하는 3억 5000만달러를 전부 사회환원합니다

 

[평화주의와 예술사랑]

카네기는 후기에 세계평화주의에 기울어져서

미국 대통령과 만나 스페인과 하려는 전쟁을 막기도 했고

1910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을 만들었고

네덜란드 헤이그에

거액에 후원금을 쾌척해 국제 평화기구의 건물인

평화궁을 만들었습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

 

<1913년 카네기>백만장자에게 동정을 베푸소서. 박애주의의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평화궁 관련 인물인 스테드는

한국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일행의 헤이그 특사활동을

적극 지원하기도 하고

미국 최고 부자인 앤드루 카네기를 설득해 평화궁을 짓게했고

오늘날에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평화궁은

국제사법재판소(국제법원) , 국제평화운동을 하는 건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음악과 문학을 사랑한 카네기는

음악전용극장 카네기홀을 만들었는데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카네기홀

 

카네기홀 내부모습

 

오늘날까지

카네기 홀에서는 것은 음악인에게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 같은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카네기를 기리기 위해 영국도서관 협회는

1936년 카네기상을 만들어 뛰어난 아동문학작가에게 카네기상을 수상하고 있습니다

 

1914년 자서전을 쓰던 노년의 카네기

 

수많은 기부를 한 영예로운 부자였던 카네기는

마음의 평화와 안식속에서 노후를 보내다

1919년 8월 11일 매사추세츠 레녹스에서 사망했습니다

 

<카네기 명언>다른 이들을 부유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부자가 될 수 없다.

 

<라봉봉>일단 우리나라에서 TV나 뉴스에 자주나오는

금수저 , 부자로 유명한 인물들을

너무 좋아하는 현상은 좋게 보이지 않는데

 

딱봐도 사기꾼이나 좋지 않은 냄새가 나고

제가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얼마후 곧 진실이 드러나며 파멸한 케이스들이 많고

 

투기자본 , 사회의 욕망과 맞물려

이 슬픈 사회의 광대가 되어

언론에 빈번히 노출되는 것일뿐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거나 존경받을 수는 없다 생각하고

어두운 곳에 있는 선한 사람은 제 자리를 찾고

화려한 조명속의 사기꾼들 역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짜 부자들은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로운 일들을 하거나

언론들도 워낙 사상이 무거운 사람들이라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 생각하고 있고

 

항상 어린시절부터 경제나 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저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잘못된 부자 혐오 , 환상과 동경 현상 및

잘못된 자본주의 , 경제사상들이 돌아다닌 것을 많이 목격한 것에 안타까웠고

실제로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본 거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천민자본주의와

부자=나쁜사람 이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땀흘려 일하는 정직한 노동의 가치 , 올바른 부자들의 의무에 대해서 교육해야 한다 생각하고

 

강철왕 카네기는 악덕자본가라고도 불리며

그역시 시대적 , 개인적 한계와 비판도 있었지만

이러한 부자들의 삶의 모범이 되고

사회적 리더 , 부자들이 행해야할 것이 뭔지 직접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사기 , 한탕주의 , 도박'

 

이런 것들과 싸우고

 

'근면 , 성실 , 정직'

 

이라는 가치를 우선시해야한다 생각하고

이 땅에는 카네기 같은 올바른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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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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