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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쳥의 서경천도운동>


그렇게 고려 인종때 바깥으로는 금나라의 성장이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이자겸의 난 으로 여러 혼란이 있었을때

인종은 개경의 터가 그런가 하며 고민하게 됩니다

이는 풍수지리에 영향을 받아서 정치가 잘 안되서

수도를 옮겨야되나 이런 생각을 하신거 같습니다,,

개경 귀족들은 힘이 강했고 삼국시대 고구려,백제는 수도를 옮기면서

그런 수도의 귀족들 견제 역활도 하려 했던거 같습니다,,


묘청은 풍수지리설로 고려 조정의 서경세력들을 규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묘청에게 서경출신의 정지상이나 다른 사람들은 매료된거 같습니다,,


이에 정지상등의 고려 관료들은 인종에게 묘청은 성인이므로

조정으로 들이라고 천거하는 상소를 올리고

김부식과,, 반대하는 신료들도 있었으나

인종은 찬성하고 왕사,왕의 스승 신분으로 부르게 됩니다

실제로 묘청의 과거는 서경승,서경출신 이라는 말 이외에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고 다른 기록으로 보아서는

여러 풍수지리나 사상등으로 사람들을 현혹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고려 후기 공민왕때 신돈같은 요승이라 불리는,,그런 이미지 같습니다,,

물론 이는 고려사 같은 정사 위주의 기록이고요

오늘날 평양(서경)을 수도로하는,,북한과,,

민족주의자 신채호 선생님은 묘청을 의의있는 사람으로 보신거 같습니다


이렇게 고려 내외적으로 변화가 있을때

묘청이라는 스님은 인종에게 칭제 건원을 하자고 합니다,,

칭제 건원이란 우리도 왕이 아니라 황제를 칭하고(칭제) 연호도 사용하자(건원)는 뜻인데요,,


실제로 고려는 원나라 이전까지는 동아시아의 강국이기는 했습니다 조선시대 같이

중국이 명이나 청나라 같이 거대했거나 견제할 세력이 없었을때는

사대주의가 기본 정책적이라 할수있었겠으나,,

그당시 북방에서는 요나 금나라가 있었고 송나라도 이런 세력을

견제하려고 고려가 매우 필수적인 나라였고 고려 사신이

송나라에가서 갑질,,하거나 개경에 온 송 사신을 능욕한,, 사건은 유명한거 같습니다 


이런거나 4대왕 광종때 잠깐 칭제건원을 한적도 있고

고려가 개방적인 분위기도 조정 내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거 같습니다,,


인종도 이렇게 내 외부적으로는 여러 변화가 있던 시기에

묘청이라는 스님이 칭제건원을 주장하자 초기에는 솔깃 했던거 같습니다

그러나 김부식 같은 고려 관료,개경파 관료들은 크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당시 고려는 여진족,금나라가 나오고 원래같은 경우에는

나라라기보다 여진족이라고 고려에게 조공을 하던 작은 부족,집단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강대국이 되어버린 그런 시기였고

고려에는 형(금)동생(고려)하자며 지내자거나 이후 고려를

신하로 하자 했고 이자겸,척준경 등의 신하들은 금에게 숙이기로

하기로 하고 고려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었으나 국가적으로

결정이 되기는 됩니다 이런 내 외부적 현실에서

묘청이라는 스님은 금에 맞서 싸워야 하고 칭제건원을 하자해서

인종도 솔깃??,,하게 된거 같습니다,,


인종도 초기에는 묘청의 말을따라 서경을 행차하였는데요

그럴때마다 불이 나거나

폭우,돌풍, 말들이 놀라거나 눈발로 사람이 다치는등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자

개경파 귀족들은 심한 비난을 하게됩니다,,


묘청은 주장이 잘 안받들여서 인지,,

인종을 대동강가로 부른뒤 사람을 시켜 그때 대동강에 기름떡을 던져서

기름은 물에뜨면 무지개빛(오색빛)이 난다는데요,,

인종에게 강에 무지개빛을 보이며 이는 용이 침을 흘려서

상서로운 곳이라고 그런 속이기까지 하려다 서경천도 반대파에 의심으로

잠수부를 보내서 떡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인종도 신하들의 반대에도 묘청의 말을 은근 들은거로 보아서는

기존 개경파 귀족들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개경파 귀족들의 반발에 마음이 바뀌어

묘청을 멀리하게되자 묘청은 폭주하듯이??,,반란을 일으키는데요


여기서 또 의문적이고 요상한게,,

묘청의 난이라 하기도하고 서경천도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묘청은 반란을 일으키면서도 인종이 보낸 사신을 예의있게 대했고

자신들의 목적은 서경천도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도 대위국이라고 나라이름을 정하고

연호도 천개(하늘이 열렸다,,)로 정하나 또 특이한것은,,

황제를 정하지 않습니다

보통 인도역사를 상식적으로??보면 안되고 어메이징 한게 있는거 같은데요,,

고려 역사도 이런 특이한게 여럿 있는거 같습니다,,


묘청과 서경사람들은 황제를 정하지 않는 이유는 인종을 불러들여서

황제로 하려했던거 같습니다,,


이를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보고

김부식,개경파에 진압됬기에 묘청의 난 이다라 기록됬다고 보신거 같습니다,,


묘청은 다른 지지세력도 끌어들이지 않고 서경에서만 일어나고요

또 개경안에 있던 정지상같은 서경파 관료들에게도 알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인종은 이에 김부식을 원수로 하여서 토벌군을 파견합니다,,

김부식은 서경으로 가기전에 인종의 허락도 받지않고 정지상등의

서경파를 끌어내서 죽입니다,, 평소에 은근 데면데면 하다가,,

이런 구실로 바로 죽여버린거 같습니다,,이에 김부식은 욕을 먹는거 같고요,,


그렇게 김부식과 토벌군은 서경으로 가는데요,,

대군이 몰려왔다는 소식이 들자 서경 내부에서도 혼란이 있었고

반란 지역 성들도 다시 고려 정부에 호응합니다,,

서경은 매우 견고한 성이었기에 정부군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고

서경을 포위하고 장기전으로 끌고가고 묘청은 부하에게 살해당하나,,

묘청 사망이후에도 더가다가 김부식의 계속된 포위로 

대규모의 피해는 없이,,마무리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역사는 확실히 보통의 상식적으로 보면 어려운거 같습니다,,

이후 반란을 진압한 문인 김부식은 사실상 왕 다음의 고려 최고권력자 문하시중이 되고

문벌귀족들의 절정기라 할수있겠습니다,, 이후 김부식은 실각하려 할때

마지막 그의 역작 삼국사기를 쓰게되고요,, 김부식,정지상 등의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될거 같습니다,, 


그렇게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은 그 과정이 이상하기도하고,,

문벌귀족 사회의 모순을 보여줄수도 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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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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