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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초고왕과 신라의 *공방전,

초고왕 대의 천문관측>


(*공방전 攻防戰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싸움)


백제 5대왕 초고왕

재위기간 48년 166~214년


초고왕은


<김부식>소고라고도 한다


개루왕의 아들입니다


개루왕이 재위 39년에 붕어,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었습니다


초고왕 2년

7월 가을

군사를 몰래 보내서 신라의

서쪽 변경에 있는 두 성을 격파하고

남녀 1천명을 사로잡아서 돌아왔습니다


8월

신라왕(신라 8대왕 박아달라, 아달라 이사금[왕])

이 일길찬 흥선으로 하여금

군사 2만명을 거느리고와서

동쪽의 여러 성을 침공하게 했습니다


신라왕은 또 직접 정예기병 8천명을 거느리고

뒤를 이어서

한수까지 진격해왔습니다


초고왕은 신라군이 많아서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곧 이전에 빼앗았던 성을 돌려줬습니다


초고왕 5년

3월 봄

그믐(달의 마지막 날) 병인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10월 겨울

군사를 출동시켜서 신라의 변경을

침공했습니다


초고왕 21년

10월 겨울

구름없이 우레(천둥)이 쳤고

혜성이 서북쪽에 나타났다가

20일만에 사라졌습니다


초고왕 22년

5월 여름

서울의 우물과

한수가 모두 말랐습니다


초고왕 23년

2월 봄

궁실을 중수했습니다

군사를 출동해서

신라의 모산성을 공격했습니다


초고왕 24년

4월 여름

초하루(달의 첫째 날) 병오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7월 가을

우리(백제)군사가 신라와

구양에서 싸우다 패배해서

죽은 자가 5백명이었습니다,,


초고왕 25년

8월 가을

군사를 출동시켜서

신라 서쪽 국경에 있는 원산향을 공격하고

더 진격해서 부곡성을 포위했습니다


신라장수 구도가 기병 5백명을 거느리고

저항했습니다


<백제 장군>신라군의

저항이 극심하군,,

지는 척하며 유인해야겠다,,


우리 군사가 퇴각하는 척하자

구도는 와산까지 추격해왔습니다

이 때 우리 군사가 반격해서

크게 승리했습니다


초고왕 26년

9월 가을

치우기별(혜성의 일종으로 꼬리가 깃발이

나부끼듯 구부러진 것)이

각성과 항성 성좌에 나타났습니다


초고왕 34년

7월 가을

지진이 났습니다


군사를 보내서

신라 변경을 침공했습니다


초고왕 39년

7월 가을

군사를 출동시켜서

신라의 요차성을 공략하고

성주(성의 주인,우두머리) 설부를 죽였습니다


신라왕 나해(신라 10대왕 석내해, 내해 이사금[왕]

한자표기상 나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가

분개해서

이벌찬 이음을 장수로 삼아서

6부의 정예군을 거느리고와서

우리(백제)의 사현성을 치게했습니다


10월 겨울

혜성이 동정(오늘날 쌍둥이 자리)

성좌에 머물렀습니다


초고왕 40년

7월 가을

태백성(금성)이 달을 범했습니다


<라봉봉>초고왕대에는

신라와의 전쟁이 잦았고

서로 뺏고 뺏기는

공방전이 계속됬습니다

이 역시 백제 다루왕과 신라 탈해왕의

싸움같이 백제와 신라의 직접적인 싸움이라기보다

마한(백제)세력과 진한(신라)세력의 싸움에

각각 맹주,우두머리라 할수있었던

백제와 신라의 싸움으로 여겨진다고도 합니다


또 초고왕대의

천문관측기록도 살펴보면

당시 백제가 별자리나 천문등을

관측할 수 있는 과학,수학,천문학

지식,기술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거 같습니다


초고왕 40년

태백성(금성)이 달을 범했다는 기록은

실제로도 맞다고 여겨진다 하고

백제가 서기 205년부터는

행성과 달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관측하고 있었으며

그 관측결과를 기록해서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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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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