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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3대왕 기루왕

재위기간 51년 77~128년


기루왕은 다루왕의 맏아들입니다


그(기루왕)는 뜻과 식견이 넓고 원대해서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다루왕 재위 6년에

그(기루왕)은 태자가 됬고

50년(다루왕 재위 50년)에

다루왕이 붕어,사망하자

즉위했습니다


<기루왕>44년동안 태자생활을 했군,,

앞으로 백성들을 위한 선정(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리는 정치)을 해야겠다


기루왕 9년

정월(1월) 봄

군사를 보내서

신라의 변경을 침공했습니다


4월 여름

을사에 객성이 자미 성좌로

들어갔습니다


기루왕 11년

8월 가을

그믐(달의 마지막 날) 을미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기루왕 13년

6월 여름

지진이 나서

땅이 갈라지고

주민들의 가옥이 무너졌습니다

사망자가 많았습니다


기루왕 14년

3월 봄

큰 가뭄이 들어서

보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6월 여름

큰 바람이 불어서

나무를 쓰러트렸습니다


기루왕 16년

6월 여름

초하루(매달 첫째 날) 무술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기루왕 17년

8월 가을

횡악(서울 삼각산의 백제시대 이름)의

큰 바위 다섯 개가

한꺼번에 떨어졌습니다


기루왕 21년

4월 여름

두마리의 용이

한강에 나타났습니다


<용 1>우어어어 !!


<용 2>으어어어 !!


<백제 백성들>으악 도망가자 !!


용은 왕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용이 두마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당시 백제 내부의 권력다툼이나

어떤 일이 있었을거라고도 해석된다고 하며

당시 여러 천재지변이 있는 둥

백제 사정이 몹시 힘들었을거라고

추측한다고 합니다,,


기루왕 23년

8월 가을

서리가 내려서 콩이 죽었습니다


10월 겨울

우박이 내렸습니다


기루왕 27년

기루왕이 한산에서 사냥하다가

신기한 사슴을 잡았습니다


기루왕 29년

신라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요청했습니다


기루왕 31년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았습니다


기루왕 32년

봄과 여름이 가물어서

흉년이 들어서

백성이 서로 잡아먹었습니다


7월 가을

말갈이 우곡에 침입해서

주민들을 약탈하고 돌아갔습니다


기루왕 35년

3월 봄

지진이 났습니다


10월 겨울

또 지진이 났습니다


기루왕 37년

신라에 사신을 보내서

예방(예를 갖추는 의미로

인사차 방문함) 했습니다


기루왕 40년

4월 여름

서울(수도) 성문 위에

황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6월

열흘동안 큰 비가 내려서

한강물이 넘쳐서

주민들의 가옥이 유실됬습니다


7월 가을

관리에게 명령해서

수해를 당한 논밭을

복구하게 했습니다


기루왕 49년

신라가 말갈에게 침략을 당하자

서신을 보내와서

구원병을 요청했습니다


기루왕이 다섯명의 장수를 보내서

구원하게 했습니다


기루왕 52년

11월 겨울

기루왕이 붕어,사망했습니다


<라봉봉>기루왕은 51년(52년)을 재위한 왕인데도

한번에 쓸 수있을 정도로

이야기가 적습니다,,

기록 시작부터 재위 9년으로 시작되고

기루왕 뿐만 아니라 다른

백제 기록도 부실해서 현재에도 백제사는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대신 일본측 기록에 백제 이야기들이

자세히 실려있고 이는 일본이

사실상 백제의 분국 分局 (본국에서 갈라 따로 설치한 국)

즉 백제는 일본의 모국 母國 (부모나라)이나

다를게 없었기 때문이고

이는 우리나라 대한민국,백제의 역사를

높이기 위한 거짓을 섞은

논리적인 비약이라기보다

사실이었습니다,,

(대신 일본인들이

자신을 높이기위해 부모,스승나라였던

백제를 깎아내리며

역사를 조작한 적은 많고

일본인들의 성격이 이상하다는

말이있는 원인이

이런 역사왜곡에서 시작된거 같습니다

역사왜곡은

사실상 혼을 망가트린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또한 진실은 변하지 않기에,,

백제는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의 국가라

할 수있습니다])


고구려 이야길 쓰다가 백제 이야기를 쓰니

일본 감성의 느낌도 나고(정확히는 백제 감성)


물론 고구려인들도 당시 만주는

기후가 따뜻했고 농경민족이었으나

결국 북방지역과 거친 자연속에서

반농,반유목민족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그 문화가 상당히 거칠었는데


백제는 사실상 순수 농경민족이었던 남방의

따뜻한 마한지역에 자리를 잡았기에

고구려에 비해 부드러운 느낌이

나기도 하는거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했기에

백제식 이름,지명들이 많이

사라진것은 아쉬우나

현재 일본에는 백제의 문화나

백제식 이름 등이 잘 보존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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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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