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루왕 21년
2월 봄
백제 왕궁 뜰에 있는
큰 홰나무(회화나무)가
저절로 말라 죽었습니다
3월
좌보 흘우가 사망하자
다루왕이 슬프게 울었습니다
(左輔屹干卒 좌보흘간졸, 좌보 흘간이
죽었다는 뜻으로
흘우가 백제 건국공신 10중 한명이라하나
흘우는 없고 흘간만 있는거로 보아서
흘우는 흘간 같습니다)
다루왕 28년
봄과 여름이 가물었습니다
(가물다 땅의 물기가 바싹 마를 정도로
오랫동안 계속하여 비가 오지 않다)
죄수들을 재심사하고
사형수들을 사면했습니다
8월 가을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했습니다
다루왕 29년
2월 봄
다루왕이 동부에 명령해서
우곡성을 쌓아서
말갈을 방어하게 했습니다
다루왕 36년
10월 겨울
다루왕이 낭자곡성까지
토지를 개척했습니다
다루왕이 신라왕에게
사신을 보내서
만나기를 요청했으나
신라는 거절했습니다
<다루왕이 보낸 사신이
전한 다루왕의 말>우리 한번
만나보는게 어떻겠습니까 ?
<신라왕(탈해 이사금, 탈해왕)>가기 딱 싫노 !
안갈거다 이기야 ~ !
(신라의 영역이었던 경상도 표준 사투리)
,,
<다루왕>,, 으음,, 신라왕이 그랬다고 ? ,,
신라놈들은 말투부터
마음에 안든단 말이지,,
한번 손봐줘야겠군,,
다루왕 37년
다루왕이 군사를 보내서
신라의 와산성을 공격했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군사를 옮겨서 구양성을
공격했습니다
신라는 기병 2천명을 동원했으나
우리(백제) 군사는 이들과 대적해서
물리쳤습니다
<백제 장수들>신라인들도
보통이 아니군,,
앞으로 경계해야 할 나라다,,
다루왕 39년
와산성을 공격해서 빼앗고
군사 2백명을 그곳에 두어서
수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서
신라에게 쫓겨났습니다
다루왕 43년
군사를 보내서 신라를 침공했습니다
다루왕 46년
5월 여름
그믐(달의 마지막 날) 무오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다루왕 47년
8월 가을
장수를 보내서 신라를 침공했습니다
다루왕 48년
10월 겨울
다시 와산성을 공격해서 함락시켰습니다
다루왕 49년
9월 가을
와산성을 신라가 회복했습니다
<신라군사들>야이 백제 놈들아 !
다시는 신라를 무시하지 말라카이 !
또오면 내 죽여삔다 !
다루왕 50년
9월 가을
다루왕이 붕어(사망)했습니다
<라봉봉>신라 4대왕 석탈해,탈해 이사금(왕)은
백제 2대왕 부여다루,다루 어라하,건길지(왕)의
라이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백제와
신라는 한창 성장기의 시기였고
백제는 한강유역, 신라는 경상도쪽에서
성장하던 시기였기에
서로 만나기 어려웠던 시기였고
서로 소백산맥 일대까지 진출하지 못했기에
오늘날에는 이 전쟁을
백제가 속한 마한과
신라가 속한 진한과의 충돌로 보고있으나
마한,진한의 이름 대신 마한과 진한의
맹주(우두머리)라고 할수 있었던
백제와 신라의 이름으로 기록됬다고도
보고있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사투리는 일부로 지역에 맞는
고증을 충실히 또 이야기의 어감과 재미를
살리려 넣는거고 특정 지역,인물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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