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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기사

2월

보장왕의 서자(첩이 낳은 아들)

안승이

4천여 호를 인솔하고

신라에 투항했습니다


4월 여름

당고종이

3만 8천 3백호를 강,회의 남쪽과

산남,경서 등지에 있는

모든 주의 빈 지역으로 이주시켰습니다


함형(당고종 7번째 연호,,) 원년 경오

4월 여름

검모잠(고구려인)이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당나라를 배반하고

보장왕의 외손자 안순을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김부식>[신라본기]에는 승(안승)으로

되어있다


당고종이 대장군 고간을

동주도행군총관으로 삼아서

이를 토벌케 했습니다


안순은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도주했습니다,,


혼란의 상황이고

당시의 상황을

확실히 알수는 없으나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조선(고조선)의 후손들이

건국한 나라였고

특히 신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때

고구려의 구원도 있었고

세 나라는 언어도 같았기에

당나라에 멸망할바에

신라로 가는게 낫다는게

고구려 귀족,지배층들의

생각이었을거 같습니다


2년 신미

7월 가을

당나라 장군 

고간이 안시성에서

우리,고구려의 남은 군사를 격파했습니다


그렇게 당태종의 대군도 막아냈던

철옹성(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방비나 단결 따위가

견고한 사물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

안시성도

결국 나라가 멸망하자

버티다 못하게 된거 같습니다,,


3년 임신

12월

고간이 우리,고구려의 남은 군사와

백빙산에서 싸워서

우리 군사를 격파하니

신라에서 군사를 보내서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그러나 고간이

이를 다시 격파해서

2천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갔습니다,,


4년 계유

5월 여름 윤

연산도총관대장군

이근행이

호로하에서 우리,고구려 군사를 격파하고

수천명을 사로잡았고

남은 군사들은 모두 신라로 도주했습니다


<신라로 도주하는

고구려 군사들>중국도 통일을 해서

힘이 강해졌는데

우리도 민족대통합 한번 해봐야 않겠니 ?


차라리 신라로 가는게 낫지

내 죽어도 당나라에 항복은 못하겠다우 !


<라봉봉>그렇게 오랜 역사의

고구려인들은 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조선(고조선)멸망 이후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위해

선조들이 그랬던것같이

끊임없이 부흥운동을 계속했습니다


고구려인들의

이 정신은 당나라가 고구려 멸망 이후

신라에게까지 간섭을 하려하자

당나라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고구려 유민들의 도움으로

신라인들이

본격적으로 당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거두며 다시 고구려 영토와 백제,신라영토에서

당나라군들을 몰아낸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이후 고려의 거란과 금나라에 항전,대몽항전

그리고 조선의 왜란(일본),호란(청나라)과 같은

국가적 위기의 의병,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부흥운동이 성공한 사례는

백제가 개로왕대에 고구려 장수왕에게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옮겨서

다시 중흥에 성공했던 사례가 있고


고구려 부흥운동은 다시 백제의 왕족 부여씨가

계속 이어온거같이는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결국 고구려인 대조영의 발해 건국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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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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