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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8대왕 경문왕 김응렴

재위기간 14년 861~875년


경문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응렴 金膺廉


<김부식>응 膺 을 의 疑 라고도 한다


이며

희강왕(신라 43대왕 희강왕 김제륭) 의 아들인

아찬(신라 6등벼슬) 계명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광화


<김부식> 광의라고도 한다


부인입니다


왕비는 김씨 영화부인입니다


경문왕 원년(1년)

3월

경문왕이 무평문 武平門 (서라벌 서형산 부근에

있었던 문루) 에 나아가서

죄수들을 크게 사면했습니다


경문왕 2년

정월 봄

이찬(신라 2등벼슬) 김정을 상대등 ,

아찬(신라 6등벼슬) 위진을 시중에 임명했습니다


2월

경문왕이 직접 신궁 神宮 (시조를 제사하던 성소) 에

제사지냈습니다


7월 가을

당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습니다


8월

입당사 入唐使 (당에 파견된 사신) 인

아찬(신라 6등벼슬) 부량 등의 일행이 익사했습니다


(바다건너 당에 가다가 물에 빠져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문왕 3년

2월 봄

경문왕이 국학에 가서

박사 博士 (경학[유교 경서]을 가르치던 벼슬) 이하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경서(유교 사상 교리 서적) 의 뜻을 강론하게 하고

정도에 따라 선물을 주었습니다


10월 겨울

복숭아와 오얏꽃이 피었습니다


11월에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영화부인의 아우를 둘째 왕비로 삼았습니다

그 후 경문왕이 흥륜사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경문왕>대사(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 가

전에 말했던 세 가지 이익이란 무엇입니까 ?


(이전 이야기에서 헌안왕대의

경문왕이 되기 전의 김응렴은 왕의 명령에 따라

왕의 두 딸중 언니나 여동생 한명을 결혼해야 되서

갈등하고 있었는데

이에 흥륜사 스님에게 조언을 들었는데

흥륜사 스님은 언니랑 결혼하면

세가지 이익을, 여동생과 결혼하면 세가지 손해를

볼 것이라고 했고 이후 김응렴은 언니와 결혼하고

헌안왕 사후 왕위에 오르게 됬습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흥륜사 스님>형(손윗사람을 뜻하는 말 = 언니)과 결혼하면

그것이 당시에 왕과 왕비의 뜻대로 되는 것이니

(당시 헌안왕과 왕비 역시 더 나이가 있었던

언니를 빨리 출가[결혼] 시키려 했던거 같습니다)


왕과 왕비가 기뻐하여 당신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질 것이니

이것이 첫째 이익입니다


(왕과 왕비의 사랑을 받음 ->신라시대에는

아들이 없을 경우 사위도 왕위 계승권에 속할 수 있었음

->김응렴의 입지가 넓어짐

[근데 건국초기에는 신라가 작은 도시,부족국가였기에

이런 식이 가능했어도 신라시대 후기에는

점점 근친혼이나 이런식의 양위에

대한 불만 역시 제기됬을 수가 있습니다] )


이로 인하여 왕위를 잇게 될 것이니

이것이 둘째 이익입니다


그리고 (왕이 되면) 결국은 처음부터 원하던

둘째 딸을 취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셋째 이익입니다


(김응렴은 결국 처음부터 예쁜 둘째딸을 원했지만

정략적 판단에 의해 못생긴 첫째딸을 선택했는데

보통 여자들 쪽에서 못생긴 능력남과 결혼하는 일은

흔하다지만 남자들쪽에서도 돈많은 과부녀와 결혼한다거나


[예를들면 어마어마한 대농장과 노예를 소유한

과부와 결혼했는데

불륜을 저지른

어린이 위인전에는 안나오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그림자,,  ]


이런 경우가 은근 존재합니다


무슨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 하는데

역사적으로도 돈많은 여자들에겐 많은 남자들이

달라붙었기도 했고 저는 신체, 육체적 차이를 제외하면

남녀의 심리는 보편적인 면에서는

사실상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남자던 여자던간에 일단 능력이나 재력등은

사랑이 먼저가 되야지 능력이나 재력을 먼저 보게되면

결국 불행이 시작되고 파멸의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만 맞으면 가난하더라도 부부가

열심히 노력해서 부유해 질 수 있을 텐데

또 마음이 안맞으면 한쪽이 부유해도 다른 쪽에 의해

점점 가난해 질 것인데,,

정략결혼은 어리석은 행위라 생각됩니다 )


경문왕이 크게 웃었습니다


<경문왕>일석이조군요 허허허허허 (탐욕)


<흥륜사 스님>허허허허허 (아무리 봐도

얘는 나쁜놈이야,, 부처님의 자비가 함께하거라 허허,, )


경문왕 4년

2월 봄

경문왕이 감은사 感恩寺 (경주시 동해안에 있었던 절 ,

문무왕과 관련있음) 에 가서

바다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4월 여름

일본국 사신이 왔습다


경문왕 5년

4월 여름

당의종이 정사 태자우유덕어사중승 호귀후와

부사 광록주부겸감찰어사 배광 등을 보내서

선왕(헌안왕) 을 조상(위문)하는 제사를 지내고

동시에 비단 1천 필을 부의로 주고

경문왕을


개부의동삼사검교대위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상주국신라왕


으로 책봉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경문왕에게 관직을 임명하는 문건 한 통 ,

황제의 신임표 한 벌 ,

비단 5백 필 ,

옷 두 벌 ,

금 은 그릇 일곱 개를 주고


왕비에게는 비단 50필 ,

옷 한 벌 ,

은 그릇 두 개를 주고


왕태자에게는 비단 40필 ,

옷 한 벌 ,

은 그릇 한 개를 주고


대재상 大宰相 (재상, 최고위 벼슬) 에게는 비단 30필 ,

옷 한 벌 ,

은 그릇 한 개를 주고


다음 재상에게는 비단 20필 ,

옷 한 벌 ,

은 그릇 한 개를 주었습니다


경문왕 6년

정월(1월) 봄

경문왕의 선친을 의공대왕으로 봉하고

어머니 박씨 광화부인을 광의왕태후로 봉하고

부인 김 씨를 문의 왕비로 봉하고

왕자 정 (이후 신라 49대왕 헌강왕 김정) 을 왕태자로 삼았습니다


1월 15일

경문왕이 황룡사 皇龍寺 에 행차해서 연등 행사를 보고

그 자리에서 백관들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10월 겨울

이찬(신라 2등벼슬) 윤흥이

아우 숙흥 , 계흥과 함께 역모를 꾀하다가

일이 발각되자 대산군 岱山郡 (오늘날 경상북도 성주군) 으로

도주했습니다

경문왕이 명령을 내려 그들을 붙잡아 참수하고

일족 一族 (혈족, 가족) 을 처형했습니다


경문왕 7년

정월(1월) 봄

임해전 臨海殿 을 중수했습다


5월 여름

서울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8월 가을

홍수가 나고 곡식이 잘 여물지 않았습니다


10월 겨울

사신들을 여러 곳으로 파견해서

백성들을 위문했습니다


12월

객성이 금성을 범했습니다


<라봉봉>가장 인상깊은 이야기는

나름 알게모르게 큰그림을 그려

두 자매와 결혼한 경문왕의 이야기고

일부로 권력을 위해 못생긴 첫째딸과 참고 결혼하고

결국 왕이 되고 이쁜 둘째딸과 결혼한 경문왕으로,,

권력이 뭔지 피튀기는 싸움 말고도

이런 면도 권력의 더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첫째 왕비인 김씨 영화부인과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고 이들은 헌강왕 , 정강왕 ,진성여왕이

되는 삼남매 왕으로

왕부잣집 ??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이쁜 여동생이 아닌

못생긴 언니와 결혼한 경문왕도 영악하긴 한데

나름 삼남매도 낳은 것을 보면

결혼이라는게 꼭 외모뿐만 아니라

사회적 조건과 환경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외모 vs 재력 논쟁의

대표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냥 미인 + 재력 + 능력 + 덕성 + 지성 + 순결

기타 등등까지 같춘

인물이 있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드믈더라도

또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맞춰가는게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가 싶습니다 (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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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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