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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복 51년(실제로는 건복 46년이고 진평왕 51년이라고 합니다) 기축년

8월 가을

진평왕이 이찬(신라 2등벼슬) 임영리 ,

파진찬(신라 4등벼슬) 용춘(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  ,

백룡 ,

소판 蘇判 (=잡찬 , 신라 3등벼슬) 대인과 서현(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 등에게

군사를 주어

고구려의 낭비성 娘臂城 (오늘날 한강유역 혹은 충청도 지역 혹은

경기도 북부 지역으로 추정) 을 공략하게 했습니다


그 때 고구려인들이 군사를 출동시켜서

역으로 공격해오자

우리(신라) 측이 불리해서 죽은 자가 많고

여러 사람들의 사기가 꺾여 더 이상 싸울 생각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라군들>고구려군은 너무너무 무서워,,


김유신은 당시 중당 당주 中幢 幢主 (당주는 군대 편성단위

당을 통솔하던 무관벼슬) 였습니다

그는 부친(아버지, 김서현) 앞으로 나아가 투구를 벗고 말했습니다


<김유신>우리 군사가 패하였습니다

제가 평생 충효 忠孝 (충성과 효도) 를 다하기로 기약(약속 , 다짐) 하였으니


전쟁에 임하여 용감히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臨戰不可不勇 임전불가부용)


저는


' 옷깃을 들면 갖옷 裘 (짐승 털가죽 옷, 모피)이 바르게 되고

벼리(그물 조정 손잡이)를 당기면 그물이 펴진다. '


고 들었으니

제가 옷깃과 벼리가 되겠습니다.

(제가 무리의 핵심, 조정자가 되겠습니다)


그(김유신) 는 말을 마치고

말에 올라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호(야전[지상전] 에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방어설비 구덩이) 를 뛰어넘어

적진을 드나들며 (고구려) 적장의 머리를 베어들고 돌아왔습니다

아군(신라군)이 이를 보고 승세를 타고

분연히 (떨쳐 일어서는 기운이 세차고 꿋꿋하다) 공격하여

5천여 명의 목을 베고 1천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성(낭비성) 안 (고구려)사람들은 공포에 떨어

감히 대항하는 자가 없이 모두 나와서 항복했습니다


<김유신>마 ! 고구려 저놈들도 사람 아이가

쟤네도 우리를 두려워한다


<신라군>소인들은 김유신 장군만 있으면 두려울게 없사옵니다 !!


<김춘추와 구토지설(별주부전 [토끼와 거북이] )>


선덕대왕(선덕여왕) 11년 임인

백제가 대량주 大梁州 (대량주 大良州 라고도 하며

오늘날 경상남도 합천 , 여기서는 대야성으로

대야성은 백제 지역에서 서라벌[신라 수도]로 가는 관문이었고

신라의 주요 요충지였습니다)를 격파했습니다

(백제 의자왕의 대야성 함락)


그 때

춘추공(이후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딸

고타소낭 娘 이 (=고타소 아가씨가)

(대야성 성주였던) 남편 품석을 따라 죽었습니다


(그렇게 김춘추는 딸의 죽음에 잠시 정신이 나갔다가

얼마 후에,,)


<분노한 김춘추>아아 !

대장부가 어찌 백제를 삼키지 못하겠는가 ?


춘추(김춘추)는 이를 한탄하며

고구려에 청병(군사를 요청)하여

백제에 대한 원수를 갚고자 했습니다

왕(선덕여왕)이 이를 허락했습니다


(김춘추가 고구려로)길을 떠나기 전에

김춘추가 김유신에게 말했습니다


<김춘추>나와 공은


일심동체(한마음 한몸)로서

(吾與公同體 오여공동체)


나라의 기둥이오

이번에 내가 만약 고구려에 들어가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공이 무심 無心 할 수 있겠소 ?

(내가 고구려가서 위기에 겪으면 공은 무심하게 가만히 있을거이오 ? )


김유신이 대답했습니다


<김유신>공이 만일 돌아오지 못한다면

저의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 , 백제 두 왕의 궁정(궁궐 안)을 짓밟을 것이오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백성들을 대하겠소 ?


김춘추가 감격하고 기뻐하여

(김유신)공과 함께 서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며 맹세했습니다


(피의 맹세로 비슷한 단어로 삽혈 歃血 [마실 삽, 피 혈]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김춘추>내가 60일이면 돌아올 것이오

만일 이 기한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을 것이오.


<김유신>만약 60일이 넘으면 그때는 제가 군대를 이끌고

북진할 것입니다 !!


그들은 드디어 작별했습니다

그 뒤에 김유신은

압량주 押梁州 (오늘날 경상북도 경산시) 군주 軍主 (주 장관) 가 되었습니다


김춘추가 훈신(사람 이름) 사간(=사찬 , 신라 8등벼슬) 과 함께

고구려에 사절(사신)로 가는 도중

대매현 代買縣 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대매현)고을 사람

두사지(사람 이름) 사간(=사찬 , 신라 8등벼슬) 이

푸른 베 3백 보(1척 23cm , 1보 =6척이면 1보=138cm 니까

414m) 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두사지>현재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반정을 일으키고

상당히 불안한 시기이옵니다

혹시 긴히 쓰일 일이 있을 것이니

이 푸른색 베를 챙겨 가십시오


<김춘추>고맙소 !


(김춘추 일행이) 고구려 경내(국경 안)에 들어가니

고구려왕(고구려 마지막왕이자 28대왕 보장왕 고보장) 이

태대대로(혹은 대막지리, 연개소문을 위한 특별 관직) 개금(연개소문) 을 보내서

객관(사신이 머무는 숙소)을 정해주고

또한 연회를 열어 우대해 주었습니다


<연개소문>김춘추라 했던가 ?

(이자는 보통의 눈빛이 아니군,,)


<김춘추>예

(생각보다 씩씩하고 뛰어나게 생겼군,,

이자가 사실상 고구려 왕이라지,,)


어떤 사람이 고구려 왕(보장왕)에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신라 사자(사신, 여기서는 김춘추)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 그가 온 것은 아마도 우리의 형세를 정탐하려는 것 같으니

왕께서는 잘 처리하시어 후환이 없게 하소서


고구려 보장왕은

김춘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서

그(김춘추)를 곤혹스럽게 하고자 하여 그(김춘추)에게 물었습니다


<보장왕>마목현 麻木峴 (조령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 과

죽령 竹嶺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에 사이에 있는 고개) 은

본래 우리나라(고구려) 땅이니

만약 이를 우리에게 돌려 주지 않는다면

(김춘추 그대는 신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김춘추가 대답했습니다


<김춘추>국가의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은 감히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보장왕이 분노해서

그(김춘추)를 가두고 죽이려 하다가 미처 죽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보장왕>딱보니까 보통 인물이 아닌데,,

죽이자니 반발이 클테고

그렇다고 살리면 고구려에 후환이 있을거 같고,,


김춘추는 (두사지에게 받은) 푸른 베 3백 보를

보장왕의 총신 寵臣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 선도해에게 몰래 주었습니다

도해(선도해)가 음식을 준비해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자 농담으로 말했습니다


<선도해>그대도 일찍이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났는데

의사가


<용궁 의사>토끼의 간을 얻어 약에 섞어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


고 하였소

그러나 바다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수 없었소

그 때 마침 거북이 한 마리가 용왕에게 아뢰었다오


<거북이>제가 그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북이는 마침내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보고 말했소


<거북이>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맑은 샘과 흰 돌이 있고

무성한 숲과 맛있는 과실이 있어 ~

추위와 더위도 없고

맹금도 침범할 수 없어 ~

네가 갈 수만 있다면 근심걱정 없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얌 ~


<순진한 토끼>오오,, 좋아


<거북이>내 등에 타 크킄


<순진한 토끼>오오오 알겠쓰 ~


그리고 거북이는 토끼를 등에 업고 2~3리 (780m ~ 1.2km) 쯤 헤엄쳐 갔다오

그제서야 거북이가 토끼를 돌아보며


<거북이>크킄 지금 용왕의 딸이 병에 걸렸는데

토끼 간으로 약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수고를 마다않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라고 말했소

이를 듣고 토끼가 말했다오


<토끼>아 ! (침착하자 침착해,,)

나는 천지신명(하늘님, 신)의 후예인지라

오장 五藏 (심, 간, 비, 폐, 신장) 을 꺼내어 씻어서 다시 넣을 수 있어 ~

일전(몇일 전)에 속이 약간 불편한 듯하여

잠시 간과 심장을 꺼내어 씻은 후에 바위 밑에 두었어 ~ ㅠ

그런데 너의 달콤한 말을 듣고

곧 바로 오는 바람에 간이 아직도 거기에 있으니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지 않겠어 ?

그렇게 하면 너는 구하려는 약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더라도 살 수 있으니

어찌 둘이 서로 좋은 일이 아니겠니 ?


<순진한 거북이>오오오,, 나도 사실 너한테 거짓말 해서 죄책감이 있었는데

그거 참 다행이군,, 알겠쓰 ~


거북이 그 말을 곧이 듣고 (다시 토끼를 태우고) 돌아갔는데

(토끼가) 언덕에 오르자 마자

토끼가 풀 속으로 뛰어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했다오


<토끼>어리석기도 하구나

네놈은 !

어찌 간이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 ?


거북은 이 말을 듣고 멍청(어리벙벙)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는 말이 있다오.


<김춘추>아아 (음,,)


<선도해>내가 무슨말 하려는지 알겠소 ?

(그냥 고구려 왕에게 땅 주겠다고 거짓말하고 도망치렴)


<김춘추>아아 그렇소 !!


춘추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뜻을 알아 차렸습니다

그(김춘추)는 보장왕에게 글을 보내 말했습니다


<김춘추>두 영 嶺 (고개, 여기서는 마목현과 죽령) 은

본래 대국 大國 (큰 나라, 여기서는 고구려)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여 우리 왕에게 이를 돌려 보내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미덥지 않다면 저 태양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태양이던 부모던 신에 맹세를 한다한들

안지키면 그만이겠지만,,

좀더 생존률을 높이기 위한 김춘추의 센스입니다)


보장왕은 그 때서야 기뻐했습니다


(한편 신라에서는) 김춘추가 고구려에 간 지 60일이 지나도록 안돌아오자

김유신은 국내(나라 안, 신라) 의 용사 3천 명을 선발하여 놓고 말했습니다


<김유신>위기를 당하면 목숨을 내놓고

어려움을 당하면 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열사 烈士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

의 뜻이라고 나는 들었다


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백 명을 대적하고

백 명이 목숨을 바쳐서 천 명을 대적하고

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만 명을 대적한다면

천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어진 재상(김춘추)이 타국에 구금되어 있는데

어찌 두렵다 하여 일을 도모하지 않겠느냐 ?


이에 모든 사람(신라 3천 용사)들이


<신라 3천 용사>비록 만 번 죽고 한 번 사는 일에 나아갈지라도

어찌 감히 장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


라고 말했습니다


김유신은 마침내 선덕여왕에게 떠날 날짜를 정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이 때 (이 소식을 안) 고구려의 간첩인

승려 덕창이 고구려에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고구려의 왕(보장왕)에게 알리도록 했습니다


(덕창의 소식을 들은) 고구려 왕(보장왕)은

전날 춘추의 맹세를 들었고(태양의 맹세)

또한 첩자의 말을 들은지라

그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후한 예로 대우하여

김춘추를 귀국하게 했습니다


고구려 국경을 벗어나자

김춘추가 전송하러 나온 자에게 말했습니다


<김춘추>내가 백제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고구려에 와서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대왕(보장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전에 대왕에게 보낸 글은 죽음을 모면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고구려 전송자>이런,,


<김부식>이는 본기 선덕왕 11년 기록과 같은 사건인데

내용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모두 고기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그대로 기록하기로 한다


<라봉봉>낭비성 전투에서 김유신 장군은

그렇게 신라의 핵심이 되겠다 선언하고

돌격해서 고구려 적장의 머리를 베어왔고

이에 사기가 오른 신라군은 고구려군을 물리쳤는데

이는 상당히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이후에도 김유신 장군이 자주 쓴 방법으로

화랑 반굴과 관창을 백제 계백군에게 돌격시킨다거나해서

신라군의 사기를 높이려 했던 것으로

김유신 장군이 자주 사용한 방법이라 할 수 있고

이는 화랑의 세속오계

임전무퇴 臨戰無退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 정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김유신 장군 본인이 낭비성에서 돌격 했을 때는 오랜 수련을 한 그답게

적장의 머리를 베고 홀로 살아 돌아오기는 했으나

그의 부하들은 그같이 숙련되지는 못해서

사실상 자살돌격을 했다 할 수 있고

삼국통일기 당시 거칠고 극도로 상무적이었던 기풍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로는

김춘추와 구토지설의 이야기로

김유신 장군의 평생의 친구였던

김춘추가 고구려에서 갇혀 위기가 닥치자

고구려인에게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듣고

거짓말을 치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로

여기서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오늘날 별주부전 이야기와 같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별주부전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기록은 김유신과 김춘추가 신라정권을 장악하기 전의

성장기 기록이라 할 수 있고

그렇게 김유신 장군과 의리의 관계였던 김춘추는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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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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