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일제는 중일전쟁 당시 난징대학살로

난징에서 30만명 이상의 중국인들을 학살한 것에 이어

일본군은 만주 하얼빈에 '731 부대' 라는 화학전 , 세균전 관련 부대를 만들어

만주 하얼빈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민간인들을 가둬놓고

치명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했고

일본군은 한 · 중 생체실험 대상자 민간인들을

'마루타(통나무)' 라 부르며

몸에 균을 주입하거나 가스실에 집어넣거나

몸에 동상을 걸리게 하는 등

엽기적인 실험들을 자행했고

이로 인해 많은 한국 , 중국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수많은 잔인한 인체실험을 자행한 '일본군 731 부대'

 

또 일본은 중일전쟁으로 중국 주요도시들을 점령하며 남진했고

이러한 일본군에 중국에 거점을 확보해놓은 서양인들 역시 피해를 입었기에

느낀 서양 및 미국은 일본에 석유 수출을 금지시켰습니다

 

한편 유럽등에서는 독일 나치 히틀러 등에 의해 세계 2차대전이 터져

서양 열강들의 아시아 식민지 관리가 소홀해졌고

이 틈을 타 석유 고갈 등 궁지에 몰린 일본은

서양 세력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뺏어

동남아시아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으로

추축국인 나치독일 및 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맺었고

이에 동남아시아에 많은 이권을 가지고 있어

위기를 느낀 미국 및 서양 열강들은

'ABCD 포위망' 으로 일본을 압박했는데

 

ABCD는

 

'미국(America), 영국(Britain), 중국(China), 네덜란드(Dutch)'

 

의 약자로

미국 및 서구 나라들은 일본에 석유 및 전략물자 수출을 금지해

일제를 압박했고

미국과 일본의 협상도 결렬되자

이에 일제는 '대동아 공영권' 이라는

서구 열강에 지배당하는 아시아 세계를 일본이 해방시켜주고

일본 중심으로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누린다는

말도안되는 망상의 논리를 펼치며

미국을 공격하기로 결심합니다 ,,

 

ABCD 포위망
대동아 공영권

 

당시 일본의 동맹 나치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미국 역시 대공황의 몸살로 외국에 신경쓰지 못하고 움츠려 있었기에

일제는 독일이 서양을 , 일본이 아시아 , 태평양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을 펼치기 시작했고

미국은 덩치만 큰 겁쟁이라 오판하고

결국 미국의 태평양 하와의 섬에 있는 군사기지 '진주만' 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합니다

(진주만 공습 1941년 12월 7일 , 2차 세계대전 - 태평양전쟁 개전)

 

진주만 공습

 

평화로운 휴양도시이자 군사도시였던

하와이의 진주만의 갑자기 공격받자

미군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치명적인 피해와

치욕스러운 패배를 겪었으며

이후 일제는 파죽지세로

동남아와 남태평양 일대를 석권하고

인도와 호주까지 위협했는데

분노한 미국은 총력전태세로 전환해

2차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됬고

결국 미국이 참전하자 독일 히틀러는 자살하고 나치독일은 항복하게 됬고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해전 등 미국 해군의 반격으로

궤멸되었지만 일제 병사들은 일본왕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받고

또 항복했다가는 고국의 가족들이 몰살당할 상황이었기에

일제는 병사들에게 자살돌격인 '반자이 돌격' 이나

'카미카제 특공대' 등 비윤리적 자살돌격을 강요해

미군을 당황시키며

태평양 전선은 고착화됬습니다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미군앞에서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를 외치며 칼을들고 자살돌격하는 일본군의 엽기전술 '반자이 돌격' 으로 총탄포화속에 사실상 아무런 효과도 희망도 없었지만 미군은 일본의 생명경시사상등에 충격을 받습니다

 

미군함정에 폭탄을 실은 전투기를 자폭시키는 자폭공격 '카미카제 전술' 로 조종사들은 일본군의 겁박에 강제로 비행기에 타야했고 조선인 출신도 있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극심한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일제는 일본 본토와 가깝고 태평양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식민지 조선(한국) 에서 무자비한 마구잡이식 수탈을 자행했는데

일단 각종 수탈은 기본이고

전투기에 쓸 연료를 만든다며 한국에서 송진채취를 강요했고

한국의 농촌 , 도시 할 것없이 소나무가 있는곳이면

마구 송진을 채취할 것을 강요했고

한국의 곡물 , 광물 수탈 물량을 늘렸고

철강재도 부족하자 한국의 운송량 적은 철로를 뜯어가고

사찰에 있는 종과 집에 있는 놋그릇 , 숟가락까지 공출이라는 명분으로

마구 뜯어갔고

물자 뿐만 아니라 한국 남녀사람들은

남자는 일자리를 준다고 속이거나 강제 징용등으로

'징용' 등으로 끌고가 일본에서 가두고

노예노동식으로 석탄을 채취하게 한다거나

(대표적 예 : 지옥의섬 혹은 감옥섬이라 불리는 하시마섬 [군함도])

 

지옥섬 '군함도'

 

또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일제군에 '징병' 되어

끌려가 태평양이나 오지 등 이름모를 섬에서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쓰이거나

비행로 건설등을 하다 죽어갔고

 

한국 여성들은 취업알선 브로커나 취업사기등을 통해

의사와 반하여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는데 (대부분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교육 받지 못한 여성들)

위안부는 사실 좋게 부르거나 형식적으로 통칭하는 말이지

'일본군 여성 성노예' 라 불리는것이 바람직 하고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 및 일제치하 여성들은

일본군에 감금되어 일본군의 성욕을 풀기 위해

매일같이 수십명의 일본군에게 강간당하고

일본군의 구타와 가해가 일상적이었다고 합니다

(군도나 칼등으로 몸을 긋거나 담뱃불로 지지거나 등)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여성 성노예)

 

단 일본군이 위안부에게

철두철미한 위생관리와 급여지급을 했고 위안부는

화려한 생활을 했다는 기록도 분명 있기는 있지만

군대란 부대마다 천차만별의 상황이 있기도 하고

일본군이 당시 워낙 막장에 비인륜적 엽기적 전쟁범죄들이 엄청나게 많기에

당연 일본군 위안부들이 좋은 대우를 받기는 어려웠고

 

식민사관 등에서 이러한 일부 자료를 악용해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거나

일제와 일본군이 미개한 한국을 근대화시켜주거나

개념이 있었다 하는데

이게 개념없는 노예짓인게 뭐냐면

비유를 하면 노비가 노비주인한테 매일 강간당하고 맞고 노동력과 돈을 바치다

병걸려 죽고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았는데

가끔 노비주인이 잘해줬다거나 그나마 선량했던 노비주인의 부인이

가끔 밥좀 챙겨주거나 글자좀 알려준거 가지고

훗날 노비에서 해방된 노비의 후손이

 

'노비주인는 우리를 수탈하지 않았다  ,

노비주인가문에 의해 우리는 문맹에서 벗어났다'

 

라 설치고 다니는 꼴이고

이렇게 부끄러운 짓들이 오늘날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

얼마나 자행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치 히틀러가 동물보호법 제정했다고 칭송하는 꼴로

그렇게 치면 역사의 폭군들도 잘한거 한두개는 있었고 하여튼 근데 일본에서

식민사관 학자를 키우려 돈을 제공한다고도 하는데

막상 돈에 역사와 양심을 판 자들이고 역사수준도 높지 않아

정작 중요할때는 도움도 안될것입니다)

 

일본군 중

어떤곳은 위안부들에게 옥쇄(일왕을 위해 옥이 부셔지듯이 아름답게 자결하라는 용어)

에 동원해 몰살당하게 만든 곳도 있었고

겨우 보리밥 한덩이와 무한조각을 주며 50명의 일본군을 받아야 했다거나

성고문 , 죽도록 때리거나 생리때에도 일본군의 강간을 당했고

위안부의 배를 쭉 갈라 자궁을 들어냈다거나

쇠꼬챙이로 몸을 지지거나 반항하는 여성들은 못판에 굴려지거나 목을 베고

시신을 삶아 위안부 소녀들에게 강제로 먹이는 등 여러 만행을 저질렀고

 

(참혹한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증언)

 

위안부는 한국 뿐만 아니라 일제에 강제로 성노예가 된 많은 세계 여성들의

가슴아픈 상처이자 일제의 끔찍한 전쟁범죄중 하나입니다

 

일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제작된 '위안부 평화비' (흔히 '소녀상' 이라 불림)

 

일제는 전쟁중 수탈을 극대화시켜

한국을 군사기지화 시키고

한국의 국유림 , 민유림을 불문하고 목재부터 나무껍질 , 나뭇잎 , 소나무 뿌리까지

철저히 수탈해 한반도의 산림 면적등은 매우 감소해

한국의 산들을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렸고

자신들도 패망할 것을 알았는지 혹은

전쟁중 마지막 발악인지 한국의 자원이란 자원은 싸그리 쓸어가져가게 됬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하는 자들이 꼭 봐야하는 역사적 팩트)

 

당장 평범했던 저의 친가와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도

일제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결혼하셨고

일제의 수탈을 피하기 위해 외할머니는 집에 놋그릇 등을

몰래 뒷산에 묻어두셨다 했고

노답이었는데 오늘날 일제를 찬양하는 자들이

처음엔 관종으로 보여졌지만 점차 보수적 사관임을 내세우며

일본의 우수한 모습과

역사왜곡을 교묘히 섞어 일제의 식민지배나 일제강점기를 미화시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퍼트리고 있고

점차 양지로 나와 식민지 근대화론 서적 '반일 종족주의' 같은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고 (히틀러 '나의투쟁' 과 비슷한 느낌)

 

솔직히 역사를 팔거나 피해자를 가장하는 자들도 역겹고

위안부문제가 정치인 , 기회주의자들 논리의 희생양이 되는 것도 안타깝고

요즘 이런 식민지 근대화론 뿐만 아니라

한국에 근본도 없고 역사도 조상도 몰라보는

역겨운 문화들이 양지로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됩니다

 

하여튼 한국지역에서는

이러한 일제의 광적인 수탈 이외에도

친일파들의 행적도 눈에 띄게 많아졌는데

 

이화학당(오늘날 이화여대) 의 여성 계몽활동을 하던 김활란은

신문에 한국 여성들의 정신대(위안부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안부는 성착취 , 정신대는 노동력 착취 [군수공장 등] )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글을 수백편 썼고

(같은 이화학당을 나온 유관순 열사와 대조됩니다)

 

많은 한반도의 '지식인' 이라 불린 친일파들은

매일같이 신문이나 강연회를 열어 '(일제를 도와) 전쟁터로 나가자' 며

한국인들을 독려하거나 강제로 내몰았고

이러한 친일인사들은 같은 민족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며

관직에 오르고 부를 축적했습니다

 

일제가 전쟁에 열을 올리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광복군 등을 조직해

영국 , 미국과 협조해 일제에 대항했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국내외에서 일제에 대항했습니다

 

일제는 미군 등에 태평양에서 밀리는 와중에도

계속 항복하지 않고 버티며 미국에 많은 피해를 주게 되었고

 

(태평양전쟁은 유럽전선과 달리 해전 , 정글 , 섬 중심이라

은폐나 버티기가 용이했고 이에 미군이 많은 피해를 입었음)

 

결국 미국은 일제에 대한 대공습을 시작하게 됬고

계속해서 일본 본토 및 수도 도쿄에 대한

네이팜탄(화염폭탄) 투하등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일본 본토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충격에 받은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 을 선언했는데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1945년 8월 15일 정오(낮 12시) 일본왕 히로히토는

라디오를 통해 항복방송을 했고

이날 12시 이 방송을 들은 한국인들은 처음엔 어리둥절 하다

점차 소문등으로 일제가 항복했다는 것과

조국이 해방 , 광복됬다는 사실을 알고

그날과 다음날 바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환호했습니다

 

라디오로 일본왕의 항복방송을 듣고 오열하는 일본인들 (사진처럼 당시에도 일본은 제대로된 반성을 하지 않았으며 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일본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미국은 일본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일제 전범세력들을 전후 다시 데려오는 등 역사청산을 제대로 안했고 이로 인해 일본인들의 역사 무관심과 역사왜곡 및 전쟁피해자의식은 오늘날에도 계속됩니다)

 

한국인들은 35년간의 긴 식민지배 및 일제의 중일전쟁 · 태평양전쟁기동안의

'민족말살정책' 으로 인해 일본인으로 살던 한국인들도 있었고

 

(짧게 나치독일의 지배를 겪은 프랑스와 상황이 다름)

 

태극기를 그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도 많아서

노인들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태극기를 그려냈고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덧칠해 급조한 태극기들을 들고 거리에 나와

만세를 불렀습니다

 

<광복전 독립운동가 및 시인 '심훈' 이 광복을 꿈꾸며 쓴 시

'그날이 오면 중에서'>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같이

종로의 인경(人磬 종)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

 

8.15 당시 광화문에 사거리에 세워진 일장기위에 그려진 태극기 (8.15 당시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은 사진)

 

광복에 환호하는 한국인들

 

일제가 가둔 서대문 형무소의 정치범과 경제범 , 독립운동가들이 석방되갔고

반일 인사를 가두고 고문하던 친일 경찰들은 도망가기 시작했으며

서울 및 각도의 한국사람들은 기뻐서 눈물흘리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황급히 재산을 처분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짐을 싸기 시작했고

일본인이나 친일파들에 대한 보복공격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 보복하지 않고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용인했고

단 보복공격은 남에서는 그닥 크지 않고 이북쪽에서는 좀더 있었다 합니다

 

(특히 이후 미군과 소련군이 한국에 들어오자

미군은 원활히 서둘러 일본인들을 귀화시키려 했고

소련군은 물자 현지조달을 명분으로 일본 여성 강간 및 일본인 수탈을 함)

 

일본은 1945년 태평양전쟁 종전 후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됬고

이미 일본 본토는 미국의 폭격 , 대공습 등으로 폐허가 되어

굶주려가던 상황이라

그나마 공습피해등이 없었던 한국지역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나

한국에 많은 재산 , 산업시설을 보유한 일본인들은

폐허가 된 자국에가기도 그렇고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가 됬지만

결국 서서히 물러가게 됬고

전쟁 , 광복직후 일본인들은 패전국민이 되어 절망적인 상황이 시작했고

한국인들은 임시정부 역시 귀국길에 오르며 새로운 나라 ,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라봉봉>일제는 35년간의 긴 식민기간동안

인적 , 물적 수탈 이외에도

한국인들의 심리와 정신을 완전히 굴복시켜 일제에 동화시키려는

정신적인 지배를 하려 교육과 역사를 왜곡시켰고

그 결과 '식민사관' 이 탄생했는데

광복 이후 많은 학자들이 식민사관에 맞서왔고 식민사과이 허울뿐인 주장이라는 것은

이미 완파가 됬고 더이상 공론화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들어 '반일종족주의' 같은 식민사관 서적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니

어이가 없는 것을 떠나서 식민사관이 다시 부활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고

 

일제에 부역해 막대한 이권을 챙긴 친일파나

교육등을 제대로 받지 못해 역사 · 민족의식 등이 희박한 사람들 ,

오랜 식민지배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을 점차 잊어가던 사람들 등

일제강점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거나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지만

민족사적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 대체적으로 참혹한 시기였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주장을 교묘히 편집해 다수 혹은 일본 극우세력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한 글들이 바로 '식민사관' 이라 할 수 있고

정작 이러한 주장들이 담긴 식민사관 글에는 일제에 참혹히 당한 사람들에 대한

서술이 생략되거나 삭제되있다는 문제점이 있고

그런식으로 하면 세계의 독재자들이라 불린 인물들도

좋은점만 포장하면 충분히 선인이나 의인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고

결론적으로 그러한 서적이나 주장들은 '사이비' 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식민사관이나 사이비 주장 , 학설들을 믿고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사회는 독재자가 나타나기 쉬우며 부정부패가 판치기 쉽고

그 결과로 인한 피해는 그것을 지지하고 믿은 사람들에게 되돌아 오는데

 

일본왕을 신같이 모셨던 ,

그러나 전쟁에는 정치인이나 군인 등이 시켰다거나 아무것도 몰랐다며

피해자 행세를 하는 일본인들 역시 그러한 전쟁범죄에서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고

 

한국인들 역시 불온한 식민사관 주장 , 서적 등을 계속 믿고 추종하고

구매해 베스트 셀러로 만들면 점차 본질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식민사관의 노예가 되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저 역시 사치나 성매매 등

다른 분야로도 망하는 우리나라 한국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그래도 일단 역사만큼은 오랫동안 역사 블로그를 운영했던 사람으로서 ,

나름 우리나라에서 역사블로그 중 가장 많이 읽히는 블로그 중 하나로서

식민사관에서 역사를 지켜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여튼 선대 학자들의 노력으로 파훼되고

극소수나 음지분야에서도 망상으로 치부되거나 비판받던

식민사관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오늘날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터지고나서

방사능에 오염되 사실상 망한나라인 '일본' 에서 점차 극우세력들이 일어나

역사를 왜곡하며 일본인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눈을 돌리려 하며

식민사관을 부활시키고 한국이나 외국 등 여러 나라나 학자들에

돈을 뿌리고 있는 것이 근본원인으로 보이며

 

저는 요즘 일본사를 2011년 이전과 2011년 이후로 생각할 만큼

후쿠시마 사건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제가 청소년 시절인 2011년까지만 해도 제기억에 일본은

전쟁범죄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며 평화로 나아가는 모습 및

과학대국 및 동경할 수 있는 아름답고 세련된 선진 문화대국의 모습이었고

2011년 일본은 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대폭발로

사실상 사람이 살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 것이 분명해졌는데

일본 정부는 그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 , 조작해 자국민들의 귀와 눈과 입을 막았으며

이후부터는 뭔가 '맛탱이가 간 느낌' 의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2011년 이후부터 극우세력들이 일본정권을 장악하게 됬고

극우적 식민 사관들이 다시 부활해 한국에도 돈을 뿌려 이상한 식민사관들이 요즘들어

속속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고 '일본의 발악' 으로도 보이는데

 

이후 일본사를 쓸 예정이라 이 부분은 중요히 다룰거지만

하여튼 요즘 식민사관이나 일본은

그냥 뭔가 옛날 식민사관같이 두렵고 위협적인 느낌이라기 보다

그냥 무슨 발악같은 느낌이고

저는 나름 2011년까지 일본은 역사에 대해 온건하고

반성하며 한국에 우호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생각하고

요즘 일본이나 새로 일어난 식민사관은 그냥 덤덤한 느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이 엄연히 살아있는 이 시대에

거짓말 , 반성없는 주장을 되풀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한국인들 역시 일본에 대한 논리적 , 이성적인 올바른 대처가 필요하다 생각하며

 

하여튼 중일전쟁시기부터 1945년까지 한국사는 일제의 광적 수탈에 의해

극도로 잔혹한 시대를 겪었고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이 되며 한국인들은 나라가 분단되는 것은 생각도 못한 채

새로운 나라 건설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할 수 있습니다

 

길고 긴 식민지배가 끝나자

한국 (대한민국 , 남한) 은 광복후 일본과 한일협정을 통해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금을 받았는데

당시 정권이 군사정권기라 국민들 역시 이 협정에 많은 반대가 있었고

또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진 상황이라 헐값에 급하게

보상을 받았다는 문제가 있고

개인이 받아야할 돈을 국가가 받았고 개인에 대한 원만한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한국 정부의 문제도 있지만

한국이 당시 한국전쟁등을 겪을때 그틈을 타 전쟁물자등을 팔아 많은 이익을 얻어놓고

이후 더욱 가난해진 한국에 헐값에 보상금을 퉁쳐버린 일본 역시

윤리적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 생각되며

 

법 역시 힘의 관계 등을 통해 부당하게 악용하는 것도 문제인데

일본 역시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이 한일협정으로 퉁쳐버리려 한다면

그것은 윤리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는 것이고

 

한국 현대사 이야기를 하며 한국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쓸 것인데

한국 정부나 기업 역시 당시 한일청구권 배상들은

박정희 정부 당시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적확보를 위해

'경제 제일주의' 노선을 타며 급격히 졸속적으로 처리했기에

문제가 된 것이고 당시 한국은 워낙 가난하고 힘이 없어

'악마의 유혹' 같이 일본과의 계약을 급격히 처리하게 됬고

(단 한국 국민들의 반발이 컸음)

 

당시 한국은 독재상태 및 심신미약의 상태였다 할 수 있는데

일본 역시 피해자가 심신미약인 상태임을 이용해

졸속적으로 조약을 체결하고 배상이 끝났다 주장하는 것은

이전 일본 제국주의 시절 힘의논리로 한국의 외교권을 뺏은

을사 '조약' 을 맺은 것과 다름없고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역사를 되풀이하는것이라 생각하며

 

법 , 조약 역시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힘과 법을 이용해 법을 악용해

사람과 역사를 기만하고 짓밟으려 해서는 안되며

또 남북분단의 책임도 있는

일본은 북한지역 사람들에게 역시 직접적인 배상을 해야하고

반성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오늘날 계속해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개인보상 및

사과가 있어야 한다 말이 나오는 것이고

대표적인 사례가 오늘날에도 생존해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인데

일본 정부도 문제지만 할머니들도 하나둘 사망해 가시는 와중에

일회성 이벤트성 전시행정보다는 올바른 외교 등 한일 양국의

근본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하며

양국 모두 한일협정 및 여러 해결노력 이후에도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들을 공유하고 기억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올바른 '직접배상' 을 해야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대한

정부차원 배상뿐만 아닌 개인차원 배상은 아직도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았음 ,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정부 역시 이 문제에서 회피할 수는 없으며

이는 한일 양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음)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