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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인물들>

[3집 Moment]

[환인과 환웅]

[웅녀와 단군왕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우거왕의 중계무역]

[고조선의 멸망]

[준왕의 남하]

[사방으로 퍼진 고조선 유민들]

[폐기된 기자조선]

[한사군]

<라봉봉>

 

[3집 Moment]

라봉봉 역사 이야기가 방대해지며

한 독자분께서 블로그 글 찾기 힘들다고

챕터 나눠달라하신적이 있어서

이전에 라봉봉 어린이 한국역사를

가수들 앨범처럼

1집 First Stroy 와 2집 Humanism 으로 나누었고

1집 First Story 는 역사의 기본적 정설과 큰틀에 대한 이야기였고

2집 Humanism 은 1집같은 내용 약간에 왕이나 대통령(~박근혜 대통령까지 , 문재인 대통령은 현직이라 안씀 !)

같은 국가 지도자의 개인적 일생사를 썼고

옛날 역사서 식으로 치면 왕의 이야기 '본기' 정도 됩니다

 

이제 1집과 2집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3집에 진입하게 되었고

3집은 왕이나 대통령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밑에서 활약하거나 어찌보면 왕보다 더 권력이 강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장군 , 귀족 , 양반 , 선비 , 권세가 , 2인자 , 역사에 남은 일반인 등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옛날 역사서식으로 치면 '열전' 에 속하는 이야기입니다

 

3집생각에 여러 생각이 나고 가슴이 부풀기도 하고 하며

3집 제목을 어떻게 할까 2집 쓸때부터 꾸준히 몇번씩 바꾸기도 했고

글을 쓰기 망설이기도 하고 지웠다 쓰고 그러기도 했습니다

 

1집 제목은 첫이야기니 First Story 고 !

 

2집 제목은 왕이나 대통령들의 정책이나 업적이야기라기보다

그들의 개인사 , 일생사와 사랑등에 대한 이야기기에 Humanism 이고 !!

 

처음엔 3집이름을 영원히 산다는 불사조를 뜻하는 'Phoenix' 로 생각했는데 !!!

(제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불새' 를 매우 감명깊게 봐서도 있음ㅋ)

 

3집에선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김유신 장군 , 이순신 장군같은 한국위인 겸 그시대의 중심인물을 써야하고

또 그러면서도 열전에 반역열전이 있듯이

연개소문처럼 반역열전에는 있지만 여러 평가가 있는 인물이나

이완용처럼 대한제국 총리대신까지 지낸 엘리트 관료임에도

매국행위를 했던 인물도 써야하기에

훌륭한 위인들과 이런 인물들을 같이 써야했기에

제목을 불사조같은거로 짓는게 좀 불가능한 이름이 됬고

계속 강렬한 이름이 생각나서 중의적 의미인 불꽃 , Flame 이라하려다

역시 이완용때문에 (짜증) 불꽃도 쓰기가 머시기 했고

이외에도 기억 Memory , 조각 Piece , 퍼즐 Puzzle 등 여러 생각이 났지만

 

결국 최대한 간지가 폭발해야하고 중의적 의미를 고심하고 고심하다

찰나 , 일시적임 , 계기 , 순간 , 기회 등 여러 뜻이 있는 Moment 로 정했고

왕이 아님에도 강감찬 , 이순신 같은 국가영웅인물에겐 환란의 시기 시대정신이자

한국사 핵심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시기라는 뜻에 맞게되고

살아생전 권력을 가졌으나 윤원형 , 김자점 , 이완용 등 악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의 경우엔 

결국 화무십일홍 일 뿐이기에 찰나 , 일시적임 Moment 가 맞게 되는 것이고

한명회나 신숙주같은 적당히 능력있고 완전 악인까진 아니라해도

기회주의자에 줄 잘잡은 권력자이자 권신은

기회를 뜻하는 Moment 가 맞고

하여튼 선과 악인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열전에 가까운 이름이라 생각되고

또 보통 열전에 충효로 이름난 선비나 장수들이 기록되듯이

사군자처럼 은은하나 강렬한 뜻을 내포하는 단어라 생각됩니다

 

4집은 제가 2집때 왕 , 대통령 이야기 쓰다가

의외로 여성이 차별받던 그시절에도

왕비나 대비들도 원경왕후나 문정왕후처럼 쎈년들은

왕들이 킹받아도 아무것도 못하쥬 ? 할 정도로 권력이 ㅈㄴ게 쎘고

 

(인간은 결국 원시시대때나 조선 , 현대시대 할 것 없이

남녀는 결국 구조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먹고 먹히는 관계임ㅋ)

 

왕들이나 대통령도 왕비나 영부인들 작품이라는 것에

소름이 돋았기에

 

(평강공주는 너무 유명한 이야기고

소름돋는게 박정희나 김대중도 육영수 , 이희호 작품이었고

미국 영부인 힐러리가 클린턴 대통령과 주유소에 갔는데

힐러리 전남친이 주유소 사장하고 있어서

클린턴이 당신이 저사람이랑 계속사귀었으면 주유소 사장 부인이 됬겠을것이라 놀리자

힐러리가 '아니 , 저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됬을거야' 한것처럼)

 

3집에서 그런 여성인물들은 일단 뒤로 넘기고

규중에서 역사를 바꾼 여인들인

왕비나 영부인들 , 여성인물들 이야기들을 쓸까 생각중이지만

일단 2집이 거의 1년넘게 걸렸는데 3집은 어떻게 될지 몰라서

4집까진 아직 고민할 수준은 아니라 생각되고

 

하여튼 , 2집을 쓰면서 여러 블로그 기술들이 응축됬고

또한 갑자기 1000~2000명대 방문자가 폭삭 빠져서 아쉽기도 하지만

댓글과 하트도 과분하게 많이 받았다 생각하고

 

(블로그 짬바가 생기며 점차 그림 퀄리티랑 글 질이 높아지니 방문자와 관계없이

댓글이랑 하트는 더 는듯 ;;)

 

제일 좋았던 것은 제가 2집쓸 무렵인

작년부터 이제 영어와 외국어(다개국어잼)를 매우 잘 할수 있게 되서

제가 상류층에 무난히 진입한 느낌이라

요즘 매일 새롭고 희망찬 내일에 가슴이 부풀고 있고

언젠간 영어로 역사 이야기를 쓰는것도 생각하고 있고

옛날부터 마음속에 응어리같은게 있었는데

이젠 제가 생각한대로 막혔던 일이 풀리는 느낌이라

그런게 소제되어서 행복하고 뭔가 봉인해제된 느낌도 들고

하여튼 요즘 다시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하여튼 ,

앞으로도 부족한 제 글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고

라봉봉 어린이 한국역사 3집 Moment 를 시작하겠습니다 !!

 

시작하기전에 한번 소리 한번 지르겠습니다

 

빼애애애액!!!!!

 

[환인과 환웅]

고조선은 우리 한국역사 ,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서

구석기 , 신석기 선사시대와 구분되는

문자로 기록된 인물과 지명 , 유물 등이 나오는 본격적인 역사시대인데

너무 오래전이라 그 기록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진 않고

중국 역사서에 중국식 사관으로 기술된

중국인들이 본 고조선인들이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전설 정도가 전부입니다

 

고조선 영역도

 

고조선 신화가 기록된 한국 고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조선열전이 쓰여진 중국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 사기

 

하여튼 ,

고조선 시대 기록에 나오는 인물로는

환인 , 환웅 , 웅녀 , 단군왕검 등이 있고

 

환인 , 환웅 , 단군왕검상

 

삼국유사에선

옛날에 환인(=제석 帝釋 신들의 제왕 , 대충 한국판 제우스 개념) 의

서자(첩에서 난 아들)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하여 구하였는데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삼위산 태백봉우리) 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하여

세가지 하늘의 보물 천부인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고

 

청동검 , 청동거울 , 청동방울 (천부인)

 

환웅은 3000명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

 

<일연>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에 신령한 나무 신단수(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왔고

이곳을 신시(신의 도시)라 하고

자신을 환웅천왕이라 했습니다

 

한국 성황당의 나무

 

환웅천왕은

풍백(바람대장) , 우사(비선생) , 운사(구름선생) 을 거느리고

곡식 , 생명 , 질병 , 형벌 , 선악을 맡아 관장하고

인간의 360여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에 머물러 다스리고 교화했습니다

 

농경기술자로 해석되는 풍백 , 우사 , 운사

 

[웅녀와 단군왕검]

이때 ! (두둥~)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령스러운 환웅천왕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고

이때 환웅은 영험한 쑥 한줌과

마늘 스무쪽을 주면서 이르기를

 

<환웅>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형체를 얻을 수 있으리라

 

고 했고

 

마늘과 쑥 챌린지를 시작하지~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먹고 금기한지 21일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됬으나

호랑이는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했습니다

 

 

웅녀

 

여자가 된 곰 , 웅녀(곰여자) 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는데

매번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고

이에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였고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 이라 했습니다

 

한민족 시조 단군왕검

 

단군왕검은 중국 요임금이 즉위한지 50년일때에

(혹은 요임금이 즉위한 시기와 동시에)

 

평양성

 

<일연>지금(고려)의 서경

 

에 도읍하고 비로소 나라이름을

 

'조선'

 

이라 불렀습니다

 

<조선 태조 5년 조선문신 권근이 명나라 황제에게 지어 바친 시>

전설을 듣자니 아득한 옛날 / 聞說鴻荒日

단군님이 나무밑에 내리었다네 / 檀君降樹邊

임금 되어 동쪽 나라 다스렸는데 / 位臨東國土

저 중국 요 임금과 때가 같다오 / 時在帝堯天

전한 세대 얼마인지 모르지만 / 傳世不知幾

해로 따져 천 년이 넘었답니다 / 歷年曾過千

그 뒷날 기자의 대에 와서도 / 後來箕子代

똑같은 조선이라 이름하였네 / 同是號朝鮮

 

또한 도읍을 백악산 , 아사달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1500년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재위 1500년경)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긴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고 나이가 1908세 였습니다

 

[단군조선]

여기까지가 

우리민족 최초의 역사 고조선의 이야기 + 고조선 사람들이고

여기서 중요한 단군의 할아버지인 환인은

일연스님이 '제석 帝釋' 을 이른다는데

제석은 신들의 제왕 ,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을 뜻하고

불교쪽에 나오는 신이라

한창 국교로 불교가 활성화됬던 고려시대 ,

고려스님이 쓴 기록이고

 

또한 풍백 , 우사 , 운사도

도교 관련표현인데 도교 역시

불교와 같이 삼국시대에 한국에 전파되었고

 

이런 단군신화는

당시 고려시대 존속한 유교 , 불교 , 도교 등

여러 신앙과 민간전통신앙이 짬뽕됬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보통 해석으로는

환인은 하늘신 ,

환웅은 하늘신의 아들 ,

단군왕검은 환웅의 아들이자 하늘신의 손자로서

 

고구려시대때에도 고구려 태왕들에게 이어진

 

'천손 사상(하늘의 후손 사상 , 고구려 1대왕 고주몽 아버지가 해모수고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임)' 

 

과 연관이 있는 이야기이고

 

환인이 환웅에게 주었다는 천부인은

청동검(군사력) , 청동거울(권력) , 청동방울(제사 , 종교) 로서

환웅이 당시 3가지 최신과학기술을 가진 이주민세력이라 해석되고

 

풍백 , 우사 , 운사는 

바람과 비와 구름을 뜻하고 즉 농경기술을 가진

환웅과 3000명의 전문가 , 이주민 집단의 대이동이었다 해석됩니다

 

마늘과 쑥먹기 챌린지에서 도망친 호랑이와

챌린지에 성공하고 환웅과 결혼에 골인한 웅녀(곰여자) 이야기는

 

환웅세력이 결국 호랑이부족이 아닌 곰부족과 결탁했다는 의미로서

당시 한국에서 곰과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섬기는

'토테미즘' 사상이 있었고

곰부족의 승리로 끝났고

 

고구려 씨름도속 곰과 호랑이(왼쪽) , 고구려인들도 실제로 곰과 호랑이를 그림에 넣을 정도였고 고려때도 단군신화가 ㄹㅇ 헛으로 나온 이야기가 아님

 

씨름도 속 곰과 호랑이

 

참지못하다 인간이 되지 못하고 쪽박친 호랑이와

참고 노력해서 인간이 되서 신데렐라가 된 웅녀의 이야기는

수많은 한국전래동화의 패턴과도 비슷하고

한민족은 곰같이 강인하고 인내의 정신을

지녔다고 해석하면 됩니다

 

단군왕검의 이름에서

단군은 제사장 , 왕검은 정치 , 군사지도자를 뜻해

당시 고조선이 제정분리 사회가 아닌

종교와 정치가 일체되 왕이 제사장까지 겸했던

제정일치 사회로 해석되고 있고

 

하여튼 이런 이야기들은 이전에도 몇번 한적이 있고

대부분 한국인들이 상식으로 알고있는 우리민족

고유의 한국신화입니다

 

[기자조선]

한국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세우신

단군할아버지는 중국에서 온 기자에 의해 도읍을 옮기고

이후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됬다하는데

단군조선 이후는 기자조선이라 불리며

기자는 상나라(은나라) 의 왕족이며

기자는 상나라 말기 주왕이 사치하는 것을 보고

주왕에게 간언했는데

 

<기자>상아(코끼리 이빨) 젓가락을 쓰면

그릇도 흙으로 만든 그릇이 아니라

뿔이나 옥그릇을 써야 할 것이고

그 그릇에 담는 음식도 코끼리나 표범의 고기처럼

진귀한 음식을 차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비단옷을 입고

고대광실(고래등같이 넓은 기왓집)에서 살아야 할 것이니

젓가락에 맞는 격을 찾다보면 천하의 재물을 동원해도

모자를 것이다

 

(사치하면 한도끝도 없다 !)

 

기자 상상화

 

이에 주왕은 기자를 옥에 가두었고

이후

역성혁명(고려 왕씨에서 이씨로 바뀌듯이 왕조 , 왕의 성씨교체)

이 일어나며 상나라에서 주나라로 천자국이 바뀌었고

주 무왕이 기자를 풀어주었고

기자는 주 무왕에게 통치방법 홍범 9주를 전해주었고

이후 기자는 동쪽으로 떠났고

주무왕은 기자를 조선에 봉했는데

기자는 주에 입조하지 않았다 합니다

 

기자는 중국 현자 , 현인이긴 하지만

어쨋거나 기자는 중국인이고 중국사에 나오는 인물이라

기자가 조선에 들어와 단군조선 이후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기자조선설은

중국 한나라가 한국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복속시키려했고

기록이 한나라대에야 등장하기에

한국사학계에선 기자조선의 존재를 부정하고

단군-위만조선으로 바로 넘어가지

중간에 기자조선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있고

 

근대적 연구방법이 도입되기 전인 19세기 전까진

대충 중국의 현자 기자가 고조선으로 책봉받아왔다며

한국에서 숭배해왔는데

기자는 오랫동안 한국 유학자들에게도 숭배되왔는데

 

그러다 점차 조선시대부터는

우리민족 시초이자 100% 한국인인

단군할아버지가 더욱 부각되며

단군사당이 기자사당 옆에 중건됬고

양쪽다 모시면서

단군(독자성)을 인정하며 한국 역사를 중국 요순시대로 끌어올리고

기자(국제성)를 인정하며 중국의 현자에게 영향을 받고

한국 문화가 중국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는 의도를 보였고

 

지금기준으로 보면 중국인인 기자가

한국을 다스리는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옛날 조선시대까지 중국의 위상은

우리에겐 지금 미국이었고

또한 기자는 일반적 인물이 아니라

상서 , 주역 , 논어에서 대현인으로 부각되는데

그런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기에

이 뜻은 원시적 유학이 이미 한국에 유입됬고

유교국가 고려 , 조선의 자부심이며

중국인들이 동이 , 동쪽 오랑캐라 깔보지만

기자는 중국 고대국가 상나라와 주나라 스승으로서

중국임금들을 가르친 인물이기에 한국이 중국임금의 스승이

다스린 국가며 한국을 욕하는 것은 중국 대현인을 욕하는 것과

다름 없고 조선시대 유행한 소중화 , 우리도 최선진국 중화(중국) 에

버금가는 국가다라는 사상때문에 기자도 중요하게 모셔졌고

 

(비유를 하자면 미국 대통령 스승정도는 되나

미국 대통령은 못됐던 미국 지식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한국에 건너가서

한국 대통령이 된 느낌이랄까 ?)

 

세종대왕도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을

'삼조선' 이라 보기도 했지만

 

그러다 점차 19세기부터 근대식 역사학과 민족주의가 생겨나고

최첨단 과학과 문화 , 법도를 지녔던 세계 초강대국 중국이 몰락하자

점차 중국인인 기자가 ㅈ같아졌고

한국역사학자들은

생각해보니 기자에 관한 그런 썰은 있지만

중국측 기록이고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식민지배를 위해 퍼트렸을 수도 있다는 거고

딱히 기자조선에 대한 유물도 없고

당시 한반도로 중국문화의 급격한 유입도 없기에

기자조선은 현재 한국역사학계에서 정면으로 부정되고 있고

 

대충 옛날엔 중국과 사대외교관계도 있고

중국이 최선진국이다보니 대충 단군 다음 기자 이러면서 모셨지만

19세기부터의 중국의 몰락 + 민족주의와 실증적 역사학의 시작으로

기자조선은 중국의 한국지배를 위한 조작이라거나

굳이 있을 필요가 없어지게 됬고

현재 한국사학은

단군조선에서 곧바로 위만조선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굳이 기자조선에 대해서 요약하면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중국과의 관계 +

중국임금의 스승인 대현자가 한국을 다스렸다 오오 이러며

나름 중요하게 모시긴 했는데

이후 국가 자존심도있고 딱히 기자조선의 증거도 없어서

빠졌다 보면 됩니다

 

[위만조선]

위만조선은 인정은 되지만

고조선 기록은 너무적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나라가

중국이다보니 이역시 중국측 기록에 의존하는 형편인데

삼국유사와 중국 역사서 전한서 조선전에 이르기를

 

처음에 연나라(중국 동북부 국가 , 지방으로서

한민족의 만주와 국경 충돌이 잦았음) 때부터

일찍이 진번 , 조선을 빼앗아 거기에 관리를 두었고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자 요동의 변방지역에 속했으며

한나라가 일어났지만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 해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고

연나라 임금 노관(한고조 유방의 친구) 이 배반해서

흉노에 들어가자 연나라사람 위만이 망명해서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서 상투에 오랑캐 복장을 하고서는

 

한민족 고유의 의상인 상투와 한복

 

동쪽으로 요새를 빠져 달아나

패수를 건너 진나라 빈 땅의 아래위에 와 살면서

진번 , 조선의 오랑캐들과 예전의

연나라 ,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차츰 복속시키고

임금이되서 왕검에 도읍하고 무력으로 그 이웃 작은 읍락들을

침범해서 항복시키니 진번 , 임둔이 모두와서 복속하여

사방이 수천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한국삼국유사와 중국사서 기록임 ,

저번에도 중국사 썼더니 중국인이냐고 시비걸려서 짜증났음)

 

일단 위만이 중국인이긴 해도

중국 내륙중심 토종중국인이라기보다

연나라 사람이니 중국동북부 , 즉 고조선 국경지쪽 사람이어서

고조선 문화와 교류가 잦았던 지역민이었고

그래도 상투를 틀고 오랑캐옷(한국옷) 을 입었기에

나름 외부인임에도 고조선인으로서

귀화를 하겠다는 의미였고

 

당시 고조선 상황도 좋지가 않았는데

고조선은 일찍이 세력을 떨치며

국경이 붙은 연나라와 대립하며

스스로 왕을 칭하였지만

연나라 장군 진개의 공격으로 서쪽 여토 2천여리를 뺐기며

세가 크게 약화됬고 

이후 중국을 통일하며 전국시대를 끝낸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쌓아 요동까지 이르다

당시 고조선왕인 부왕은 진나라가 공격해올 것이 두려워

겉으로는 복속했으나 조회에 참석하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고

부왕의 아들 준왕때는 진나라가 망하고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두고 싸우자 연나라 , 제나라 , 조나라 출신의

수많은 중국인 유이민들이 혼란을 피해 고조선으로 넘어왔고

준왕은 이들을 고조선 서쪽에 머물게 합니다

 

한나라 건국 이후엔 연왕 노관이 정치적 이유로 흉노로 망명하고

그 아래 있던 위만 역시 더이상 한나라에 있을 수 없어

고조선으로 망명하며 준왕에게

자신을 서쪽으로 머물게 해주면

중국의 유이민들을 모아 나라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겠다 했고

준왕은 위만의 말만 믿고 크게 아끼어

박사라는 지위를 내리고 100리 땅을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는데

 

위만은 중국의 망명자를 모으며 점점 세를 키웠고

어느날 위만은 준왕에게 사람을 보내

한나라가 열갈래로 군대를 나누어 쳐들어오니

급히 왕궁으로가서 왕을 지키겠다 속인후

준왕을 공격했고

준왕은 위만의 군대와 맞서 싸웠지만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을 데리고

바다를 경유해 남쪽으로 도주했고

왕위찬탈을 성공한 위만은 그렇게 고조선의 왕이 됬습니다

 

위만은 그러면서 점차 주변세력을 복속시켰고

한나라는 새롭게 고조선왕이 된 위만을

외부 신하로 삼아 그의 통할권을 인정해주었고

위만은 한나라로부터 권리를 보장받는 대신

동이 부족들이 한나라 변경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고

이에 위만의 위세는 더욱 커졋으며

위만조선은 한나라와 동이부족간 교역의 중계자 역할을 하며

막대한 재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고조선

 

위만조선은 계속 확장해 진번 , 임둔 세력도 복속시키고

고조선 영역은 사방 수천리에 이르럿으며

이러한 이유로 한나라의 망명자들은 지속적으로 늘어

고조선은 더욱 번성했습니다

 

위만은 비록 뒷통수친 짱깨지만

나름 고조선에 망명할때 고조선 의복을 입고

귀화자의 예의를 갖췄으며

중국에게는 국경을 정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중국에 인정받고 동이족들을 제어하며 세를 불려갔고

교역 중계자역할까지 하는 영리한 모습을 보였고

비록 찬탈했지만 왕이 된 이후에도

조선이라는 국명은 그대로 유지했으며

토착고조선 세력들을 이끌며 고조선의 마지막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우거왕의 중계무역]

위만왕 손자 우거왕대에 이르러서는

우거가 길을 막아서 진번과 진국이 한나라 천자를

만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성해져있었고

 

(만주의 고조선은 중국 한나라와 한반도의 중간에서 중계무역하며 번성함)

 

우거왕 , KBS 한국사기

 

한나라 천자는 섭하를 시켜 우거를 타일렀는데

우거는 끝내 천자의 명령 받들기를 거부했고

아무 소득없이 돌아가게 된 섭하가

천자(한무제 , 중국 역사가 사마천 고추 자르기도 하고 성깔 ㅈ같은 정복군주였음) 의 처벌이 두려워

패수에 이르자 마부를 시켜

자신을 바래다 준 조선비왕 장을 죽이게 하고는

패수를 건너서 도주했고

돌아가서 천자에게 보고하기를

 

<섭하>조선의 장수를 죽였다

 

하니 천자는 공적이 훌륭하다 생각해

힐난하지 않고 섭하게게 벼슬을 내려

요동 동부도위로 삼았고

 

이에 고조선은 섭하를 원망해

군사를 일으켜 섭하를 기습공격해 살해했고

이에 천자가 죄인을 모집에 조선을 공격 ,

5만대군으로 한나라는 고조선을 쳤습니다

 

[고조선의 멸망]

당시 한나라 한무제는 정복군주로서

이전 베트남 남월도 멸망시킬정도로 해외원정에 적극적이었기에

거칠것이 없었고

고조선군은 험난한 지형에 의지해 싸웠고

왕검성에서 버티던 고조선군은 내분이 일어났고

 

왕검성 전투

 

그러다 우거왕은 암살당했고

우거왕 사후에도 성기의 지휘 아래 고조선군은 계속 항전했지만

성기 역시 암살당하고 위만조선은 결국

내분으로인해 86년만에 멸망하고

고조선 멸망이후 평양엔 한사군이 설치되었으며

 

(일제의 조선총독부 같은 격)

 

고조선 유민들은 3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한사군에 남아서 유민으로 살아가거나

대거 남하해 한반도로 흡수되거나

고조선 산하에 있던 군락국가로 흡수됬고

이후 고조선 지역에 있던 국가들이 일어나며

한국사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됬고

삼국시대가 태동합니다

 

고조선 멸망후 사혼의 구슬조각처럼 흩어진 조선유민들 , 원삼국시대 세력도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일어나기 전까진

멸망한 광활한 고조선 영토+한반도 내에서는

수많은 도시국가 , 군락국가들이 존재했고

이중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였던

졸본(고구려) , 한성(백제) , 서라벌(신라) 이

주변 도시국가들을 흡수하며 중앙집권화 되며

삼국시대가 열렸고

고조선 멸망부터 삼국시대가 열리기의 과도기를

원삼국시대라고도 합니다

 

하여튼 고조선 멸망기는

우거왕이 한나라와 동이부족들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부를 쌓고 갑질도 하다 멸망한거라

고조선 전성기와도 겹치는 시긴데

가장 강성할때 멸망한게 특이할 수도 있지만

당시 고조선은 한창 청동기에서 철기로 교체되는

철기혁명을 맞고 있던 시기였고

 

구리(청동) 보다 녹는점이 높아 가공기술이 더 필요했던 철

 

철광석 양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가공이 어려웠기에 인류는 희소했지만 가공이 쉬웠던 구리(청동)를 가장 먼저 사용했음 , 철을 다루는 제련술의 발달로 세계사는 농업혁명과 정복전쟁이 동시에 시작되었음 , 유익하쥬 ?

 

청동기와 철기차이는

말과 자동차의 차이보다

더 엄청난 차이기에 철기시대가 시작되며

인류는 정복전쟁도 활발히 일어나게 됬고

충분히 급격한 사회변화로

청동기시대를 대표했던 고조선이 무너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청동검 복원모습 , 고조선 전통검

 

원삼국시대부터 사용된 철검 환두대도 , 고구려 전통검

 

[준왕의 남하]

마지막으로 !

고조선 준왕인데

준왕은 오늘날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는

고조선의 왕으로서

 

위에서 쓴 기자조선설을 따르면

준왕은 기자조선 마지막 왕이고

 

(철기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위만조선이

청동기문화인 기자조선을 밀어냈다는 설도 있음)

 

기자의 40여세손이었던 준왕은

점차 이런 위만의 반란에 왕위를 찬탈당했고

가까운 신하와 궁인들을 거느리고 바다로 달아나

남쪽 한땅(한반도 남부 , 남한지역) 으로

망명했고 이곳에 정착해

나라를 건국하고 마한을 공격해 깨트리고

스스로 한왕 韓王 을 칭했고

이후 준왕의 후손들은 사라졌지만

한인들은 이후에도 그의 제사를 받들었습니다

 

준왕의 후손들이 절멸되자 마한사람이 다시 자립해

진왕이 됬고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과 만주는 고조선(위만조선) ,

한반보 남부지방(남한) 은 한 韓 또는 진 辰 나라라 불렸고

이는 중국 한 漢 나라 , 중국 진 秦 나라와는 한자가 다릅니다

 

진국 혹은 삼한이라 불린 마한 , 진한 , 변한

 

[사방으로 퍼진 고조선 유민들]

그렇게 한국 북부지방은 조선(고조선) ,

남부지방은 한 혹은 진국이라 블리었고

고조선 멸망이후 고조선 유민들은 남부지방으로 많이 흡수되거나

고조선의 뒤를 이은 한국 전통 북방국가 부여로 흡수됬고

부여에서는 고구려가 나왔고

 

남부지방은 마한 , 진한 , 변한으로 나뉘어

그 지방에서는 각각 백제 , 신라 , 가야가 나오게 되며

한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기자조선에 비해

위만 , 준왕 등은 역사로 인정받는 이유는

일단 여러 증거와 유물들이 있고

준왕의 경우는 당시 한반도 남부에 고조선계의 유물들이 나왔기에

점차 고조선의 계승이나 고조선인들의 세력권으로 편입된

영향관계가 뚜렷히 나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상 고조선 주요인물들이었고

이외에도 대부례 , 삼 , 노인 , 성기 등 고조선 인물들이 있다하나

고조선 기록은 그렇게 많지 않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중국) 인들의 시각에서

오랑캐를 멸망시킬때 나온 장수들 수준이라 볼 수 있고

한편으론 고조선이 우리 최초의 국가임에도

기록이 없어 그 기록을 우리나라를 멸망시킨 중국인들의

기록에 잠깐 나오는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만약 일제강점기가 계속됬고 한국이 완전히 일본에 병합됬다면

점차 역사서가 불타서 우리 역사가 사라져 한반도 내의 역사를

일본측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거고

실제로 한국은 고조선 멸망이후 일제강점기 35년의 10배가 넘는 시간동안

중국 한사군의 지배를 받았기에

외국역사계에서는 물론 한국사를 잘 모르는 그들의 주장일 뿐이고

한국역사계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외국역사계는 한국 역사의 시작을

한사군을 완전히 이땅에서 축출시킨 고구려로 보기도하는 안습한 부분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역사를 감정적이게가 아닌

현실적으로 봐야하고 그만큼 당시 중국이 크고 강대한 세력이었고

광활한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민족을 400년간 식민지배할 정도로 군사 , 경제 , 문화력이 뛰어난

당대 초강대국이었다는 점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중국이나 일본을

단순히 미워하거나 감정적으로만 대해서도 안되고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도 그들처럼 강해지고 힘과 실력을 키워야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후에도 한민족 조상

고조선 유민들은 자신이 중국과는 전혀 다른

고조선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400년넘게 유지해오고

끝내 한사군을 축출시키고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냈다는 것으로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조선 , 고조선은 특별한 나라였다는 것이고

 

(국뽕 이런게 아니라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그시절 400년이면 민족이 사라지고도 남을 시기인데

400년동안 중국에 저항하고 흡수당하지 않은것 자체만으로 확실히 고조선인들은

중국인들과 근본이 확실히 달랐고

중국에 대등하거나 독자적인 문명수준이 있었다는 증거임)

 

중국에선 출토되지 않는 비파형 동검 , 고조선 대표유물

 

단군왕검 할아버지의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하라' 는

홍익인간 정신도

고조선때부터였고 외국 전설과는 완전히 다른 한민족만의 정 문화가 있는 이타적인 사상이었고

이렇게 중국과는 전혀 다른 민족의식이 고조선때부터 형성됬습니다

 

 

[폐기된 기자조선]

대충 조선시대까지는

단군-기자-위만 조선을 삼조선이라 엮었고 우리가 그걸 계승했는데

현대시대부터는

근현대 역사학에 오며 관념론적 역사학이 아닌 실증 , 유물이 중시되며

기록에만 있지 실존적 증거가 없는

토종 중국인인 기자는 조선에서 빠졌고

단군-위만조선으로 이야기하는 형편입니다

 

[한사군]

고조선 멸망 이후엔 그렇게 '한사군' 이라는

중국의 한반도 식민지배기관이 설치되었고

한국은 일제강점기 35년보다 10배가 넘는 기간인

400년간의 중제강점기(?) 를 겪게 됩니다

 

확실히 만주지역이 광활한 평원 이외에도

중원(중국) 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관문이기도 하다보니

만주에 있었던 고조선 역시 중국인들의 피난이 잦았고

이는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이후 일본에 의해 건설된 만주국 역시 마찬가지였고

현재 중국 동북지역이 되서도 여러 민족이 섞인 땅이 되었고

 

예전엔 오랫동안 한국을 단일민족국가라 가르쳐왔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잠시 폐쇄적이게 되서 그럴 뿐이지

고조선 , 고구려 , 고려 , 만주 등의 사례를 보면

단일민족이라기보다 우리도 다민족이나 대륙국가적 기질이 있었다는 점이

확실한 것이고

 

만주는 원래 순수 한국인들의 땅이었지만

순수한민족은 유목민 , 중국인들에게 밀리거나

만주땅이 빙하기 등으로 점차 추워지며 한반도로 남하했고

만주의 남은 한국인들은 그곳에 온 중국인집단이나 여진족같은 유목민족에 흡수되갔고

그렇게 한민족이 시작한 땅 고조선 중심지인

만주는 점차 중국인 , 이민족들에게 야금야금 먹혀갔고

특히 문화수준이 높고 인구력이 많았던 중국인(한족)들에게 조금씩 뜯겨갔다 보면 됩니다

 

재난과 환란을 피해 이주하는 중국인을 그린 중국서화

 

부동산도 그렇지만

거대한 대륙같은 경우는 단순히 돈이나 경제력 , 기술력이 많다고

경영 , 관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분명 어느정도 인구가 뒷받침 되어야 그땅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이고

 

(이런것 때문에 돈많은 사람들도 자식없거나 그러면

일부로 좁은평수에서 사는 사람들 많고

돈이 없어도 자식이 많아서 일부로 시골같은데서 넓게 사는 사람도 있음)

 

단순히 중국이 뛰어나고 한국이 후진적이어서 만주를 뺐겼다기보다

만주지역은 한반도지역처럼 천연요새격인 산악지형이 아니라

광활한 평원지형이기에 분명 한반도와 다르게 접근해야하는 지형이고

토질과 생태계등은 만주와 한반도가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세계사에서도

사방으로 탁트힌 메소포타미아(전쟁이 잦아 현실적 사고관)와

사막으로 가로막혀 폐쇄적이었던 이집트(전쟁이 없어 내세적 , 사후세계적 사고관)가

서로 바로 근처에 있었음에도 얼마나 다르게 발전해왔는지를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자기가 나고자란 땅의 영향을 받아 생각하고 사고하는게 분명 있고

 

광활한 만주평원

 

한민족은 비록 만주에서 나왔지만 그런 환란을 피하고 안정을 찾아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한점도 있기에

만주와 한반도는 마인드부터 다르고

그랬기에 기분좋지 않은 현실이지만 대륙국가였던 중국인들이

험준했던 한반도 내부까지 진입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점차 대륙기질의 만주를 빠르게 적응해가며

긴 시간에 거쳐 야금야금 흡수해갔다 생각됩니다

고려도 공민왕때 이성계 장군이 잠깐 만주 수복에 성공했음에도

결국 고려의 인구력 , 부양력 등이 뒷받침 하지못해서 다시 만주에서 철수해야했고

 

중국인구가 너무 많으니 중국인들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팽창한 면도 있고

강대하고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하며

광활한 영역을 지녔던 고조선 멸망사례를 보면

앞으로 우리가 우리 소중한 강산과 땅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 그러한 중국에게도 배울점은 무엇인지를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라봉봉>실제로 역사연구가들의 이야기로는

초기 한국문명과 중국문명이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는데

중국이 압도적으로 성장하고 발전 , 팽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의 사용(한자) , 황화강 개척 등 대규모 치수사업으로 인한 행정의 발달 ,

기술발달 , 법령과 체제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이 당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고

동아시아세계는 19세기 이전까지 초강대국이었던 중국의 독주체제로 성장해왔고

한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 멸망 역시 그런 동아시아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나라인 중국 한나라인들에게 멸망당했고

고조선의 내분으로 멸망당했다고도 하나

그냥 국력 자체가 상대가 되지 않아서도 있습니다

 

저는 중국인 , 일본인 아니고 토종 한국인이고

식민사관도 아니고

그냥 현실이 당시 중국이 미국이었고

국력차라는게 분명 존재하기에

일제강점기 역시 한국 지배층이 무능해서만이라기보다

일본이 에도막부 시절부터 서양과 교류하며 쌓아온 과학기술력과 경제력 , 인구력에서

한국을 압도했기에 한국이 식민지가 된 것도 분명 있고

엄중한 현실을 감정적으로만 봐서도 안되고

우리가 부족했던 것도 인정 해야합니다

 

한국 최초의 국가 고조선에 대한 기록 역시

거의 중국측 사서로 봐야한다는 안타까운 현실이고

 

그럼에도 멸망 이후에도 우리조상 고조선인들은 끝까지 자신들을

조선유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이땅에 뿌리내렸다는 점이고

한민족이 중국의 400년 지배에도 동화당하지 않고

고조선 영역을 수복해냈다는게 참 신기합니다

 

힘이 강하면 팽창하게 되는 것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국가 , 제국들이 그래왔었고

한국 역시 강한시기에 팽창하였고

21세기 이후 세계는 전쟁은 일단 무조건 없어져야한다 생각하지만

동서남북으로 강대국에 둘러쌓인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항상 힘을 기르고 실력을 키워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전 한국사의 모든 파트를 써왔음에도

어린시절부터 항상 고대나 고구려나 삼국시대 역사를 제일 좋아했는데

널찍하게 탁트힌 평야에 자유롭고 기상과 패기가 있었던 시기고

또 역사시대의 첫시대기에 서로가 축적된 경험도 부족해서

헬이기도 한데 인류의 낭만같은게 엄청나게 많이 존재했던 시기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주몽 , 대조영 같은 사극들이 방영됬는데

원래 의도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에 맞선 한국 방송사들의 특별기획이었지만

또한 그 사극드라마들은 우리가 나약해지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있고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꿈을 꿔야하고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 국민들에게 선조들의 기상과 자존심을 심어주는

중요한 드라마였다고도 생각됩니다

 

당장 만주나 고조선 , 고구려 할 것없이

현재 작디작은 한반도도 반쪽으로 두동강나

부끄러운 후손이 된 것이 현실이고

항상 우리민족이 우리역사를 바르게 공부하고

지혜와 힘을 길러야한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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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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