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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인물들>

[원삼국시대]

[부여]

[부여 동명왕과 고구려 동명왕]

[건국신화의 실제의미]

[해부루와 금와]

[아란불과 동부여 천도]

[천제의 태자 해모수]

[해씨 고구려설]

[부여 왕사]

[금와왕과 유화부인]

[부여 대소왕 VS 고구려 대무신왕]

[우태와 소서노]

[부여인이 세운 백제]

[부여인의 진취성]

<라봉봉>

 

[원삼국시대]

그렇게 고조선 멸망이후 고조선 유민들은 만주 , 한반도로 흩어지게 됬는데

고조선 중심지는 중국 한나라의 조선총독부 개념인 '한사군' 이 설치되어

한나라 관리의 직할 지배를 받게 되었고

결국 고조선 유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변방으로 밀려가서 다시 조선인들의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고조선 옛 영역은 여러 이름없는 도시국가 , 소국들이 일어났고

그중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가장 크게 일어나며 소국들을 흡수해가며

삼국시대가 시작됩니다

 

그치만 ,

고조선 멸망 이후부터

아직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일어나기 전 시기가 살짝 있었는데

이 시기를 삼국시대 전 과도기시대 ,

원시 삼국시대라는 뜻의 '원삼국시대' 라 불리고 있고

혹은 '열국시대' 라고도 합니다

 이 시기때는 북방의 '부여' 가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고

고조선을 가장 제대로 계승한 핵심국가였습니다

 

원삼국 시대 지도

 

[부여]

부여는 송화강 유역의 국가로서

북만주 지대에 위치하는데

부여가 번성하던 시기는 북만주일대는 오늘날처럼 그리 춥지는 않고

농사도 잘되는 온난한 기후였고

이후 소빙하기로 만주가 척박하고 추워져서

여진족 등 유목민족만 살게 됬고

농사를 짓지 못했다고도 합니다

 

한민족 영산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송화강

 

부여는 이후 고구려에게 흡수됬고

삼국시대만큼 체계적인 역사가 있는 국가는 아니었기에

우리가 보통 부여는 짧게 이야기하는 형편인데

그럼에도 고조선멸망 직후 잠시 한국인들 국가중 우두머리 노릇을 했던 나라기도 하고

특히 중요한건 고구려가 부여의 체제와 체계를 그대로 계승해서 발달했기에

고구려를 알려면 부여 역시 알아야하고

 

이로인해 보통은 한국역사를 묶을때

고조선-삼국시대-남북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대한민국 이렇게 묶지만

신라보다 고구려를 더 중요시하는 한국 민족주의 사학계에서는

한국 근본국가를 고조선-부여-고구려-통일신라와 발해-고려-조선-대한민국

이런식으로 엮고 있고

부여가 간단히 넘기기엔 고구려 자체가 부여에서 나왔고

또한 고구려 , 부여에서 나온 백제 역시 아예 대놓고

왕족 성씨가 부여씨고 국가이름을 훗날

'남부여' 라고 공식적으로 바꾸기도 했고

그로인해 오늘날에도 충청도에 부여군이 존재할만큼 부여가 결코 한민족에게

가벼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고

역시 백제의 후손인 이웃나라 일본 역시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는 미워하는데(?)

이상하게 부여 , 고구려 , 백제 이런거는 기마민족 이런거로 엮으며 좋아하는 듯 합니다

 

부여는 쓰기 복잡한게

단순히 너무 옛날나라여서가 아니라

가야처럼 여러 형태로 존재했고

실존했지만 또한 이름이 너무 많아서

쓰기가 되게 복잡하고

 

대충 한국 북방지역 , 만주지역 사람들이

아따 우리가 부여랑께

아니제 우리가 진짜 부여랑께 하며

하는 구석이 있고

 

이게 유목민족 특성일지도 모르겠는데

마치 만주지대의 여진족이 건주여진 , 해서여진 , 야인여진 등으로 분류된 것처럼

만주지대가 워낙 땅이 넓다보니

부여 역시 북부여 , 동부여 , 졸본부여 , 갈사부여 , 남부여(이건 백제) 등

다양한 부여국가가 존재하였고

그만큼 멸망했던 고조선의 광활한 만주 지대를 대충 부여라 묶기도 했고

만주라는 명칭은 조선시대때에서야 여진족 관련지명으로 등장하기에

대충 만주지방을 그당시 부여지방이라 불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만주는 한국인들이 사용한 지명은 아니고

대충 그지대는 원래 순수한국인들은

'요동' , '부여' , '고려(고구려)' 이런식으로 불렀고

만주 , 발해를 꿈꾸며 이런 말들이 있지만

애초에 만주나 발해 자체가 우리(한국)식 지명이 아니고

대충 요동이나 부여 , 고려가 맞긴 맞습니다

 

[부여 동명왕과 고구려 동명왕]

하여튼 ,

부여 이야기는 이전에도 잠시 했던거 같은데

이번엔 부여인물들 이야기입니다

 

잠깐 부여인물 전에 해야할 이야기는

고구려 1대왕 동명성왕 주몽이

부여궁궐에서 자라다 학대를 받고 부여에서 탈출해

남하해 고구려를 세우는 고구려 건국신화가 유명한데

 

이게 원래 부여건국신화에 있었고

부여에도 동명왕 신화가 있는데

부여 동명왕은 고구려 동명왕(주몽 , 동명성왕) 과 

이름이 같은데 설화도 매우 유사한 인물이었고

 

KBS 역사스페셜 나온 부여 동명왕

 

원래 고리국 왕의 계집종이 임신을 해서

왕이 죽이려하니 계집종이 하늘의 기운이 와서 임신했다해 죽이지 못했고

아들을 낳자 돼지우리에 던졌더니

돼지가 입김을 불어넣어서 데펴주었고

마굿간에 넣었더니

말 역시 입김을 불어넣어 데펴주어 죽지 않았고

이에 왕은 하늘의 아들인가 여겨

계집종에게 기르도록 했고 이름을 동명이라 했고

 

동명은 활을 잘 쏘아서 왕은 나라를 뺏길까 두려워

죽이려 했고 이에 동명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엄호수에 이르니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주었고 동명이 그것을 밟고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풀어버리니

추격하던 고리국 병사들은 건널 수 없었고

동명은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왕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천명 !

 

고구려 동명왕 신화와 거의 90%가 똑같고

고구려 동명왕은 거의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날과 부르드워의 차이마냥

원래 게임에 메딕과 럴커 , 발키리 정도나 추가한 수준으로

부여신화에서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 , 아버지가 해모수라는 것 ,

활을 잘쏴서 이름이 주몽이라는 것 등만 살짝 추가해줬고

이름도 같고 부여 , 고구려 건국신화가 거의 똑같고

오늘날 현대 역사계에서는

그만큼 고구려가 부여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나라라고 해석하는 부여설화입니다

 

고구려 동명왕 건국신화가 쓰여진 광개토대왕비

 

[건국신화의 실제의미]

이렇게 동명왕은 대충 넘어가주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부여시조가

 

'해모수'

 

인데 해모수는 주몽 아버지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또한 부여와 고구려 설화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로서

 

해모수는 천제(하늘황제 , 하늘신) 의 태자였고

 

참고로 이게 중요한 이유는 고조선 건국설화에서

하늘신 환인의 아들 환웅이 내려와서 인간세상을 다스렸다는

천손사상 신화와 똑같은 이야기고

 

그니까 ,

부여는 고조선 신화를 똑같이 따라했고

고구려는 부여 신화를 똑같이 따라했고

계승하며 발전했다 보면 되고

 

종교 , 과학 , 정보 , 통신이 발전하지 못한 고대일수록

왕의 출생에 대한 신령스러운 전설은 지배자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건국신화는 중요한 국가적 사상이었고

괜히 삼국시조가 다들 알에서 태어나거나 대서사시같은게 있는게 아니고

그만큼 부여에겐 고조선의 정당성을 계승하는데

고조선의 천손사상을 가져오는게 중요했고

고구려에겐 부여의 정당성을 계승하는데

유목국가였던 부여의 마굿간 전설이나

활잘쏘는이가 물고기와 자라를 밟고 탈출해

나라를 세웠다는 신화를

가져오는게 중요했던 것입니다

 

만주지방은 광활한 평야지대로서

쪼물쪼물한 산악지형인 한반도와 달리

소와 말 , 바퀴달린 수레가 없어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지대였고

그렇기에 고구려 동명왕의 마굿간에서 동물들이 보살펴줬다는 설화는

부여왕이 마굿간에서 동물들에게 보살핌당했다는 설화와 똑같은 것이고

그냥 대놓고 복사 붙여넣기를 했다고 보면 됩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속 수레끄는 소

 

무용총 벽화속 말타고 사냥하는 고구려인들

 

[해부루와 금와]

하여튼 , 

옛날 부여에는 해부루라는 왕이 다스렸는데

해부루는 늙을때까지 아들이 없어 고심하던중

산천에 제사를 지내서 아들 낳기를 기도했는데

하루는 그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렀을때

말이 그곳의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해부루왕이 괴이하게 여겨 돌을 굴려보게 하니

그 돌안에는 금빛 개구리모양 어린아이가 있었고

해부루는 하늘이 나에게 주신 아들이라며 기뻐하며 아들로 삼고

이름을 금개구리 , 금와라 지었습니다

 

부여 금와왕 기념우표 , 대한민국 정부

 

[아란불과 동부여 천도]

금와가 장성하자 금와는 부여 태자가 됬고

하루는 국상 아란불이와서

 

<아란불>하느님이 나에게 내려와 이르되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니

너는 여기서 피하라 ,

동쪽 바닷가에 땅이 있는데

가섭원이라고 한다

땅이 기름져서 오곡을 재배하기 적합하니

가히 도읍을 정할만 하다

 

라 했다 전했고

부여왕은 결국 아란물의 말을 따라

가섭원으로 나라를 옮기고 나라이름을 동부여라 했고

 

원래 부여자리엔

어디서왔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자칭 천제의 아들이라는 해모수라는 인물이 와서

그곳에 도읍을 정해서 나라를 세웠다 합니다

 

[천제의 태자 해모수]

해모수는 무슨 세계관속 인물(?) ,

부여 , 고구려 유니버스에 계속 등장하는 미지의 인물인데

 

고구려 건국설화에서는

해모수는 천제의 태자로서 (고조선 환인-환웅개념)

다섯마리 용이 끄는 수레(오룡거) 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왔는데

하늘과 땅의 거리는 이억만팔천칠백팔십리였고

따르는 사람 백여명은 고니(백조)를 타고 날개옷을 화려하게 입었다하고

 

(하늘에서 환웅이 내려오자 무리 3000명이 따랐다는 고조선 신화와 비슷하쥬 ?)

 

까마귀관과 용광검과 오룡거를 타고 내려왔다는 해모수

 

그때 맑은 음악 옥소리처럼 넓게 울리고

채색구름은 뭉게뭉게 떴다고 합니다

 

해모수는 아침엔 인간세상에서 ,

저녁에는 하늘궁전에 돌아갔고

그때 성북쪽에 맑은 하천이 있으니

하백의 세 딸이 아름다웠고

해모수는 꾀를 내서 술상을 차려 세 딸에게 덫을 놨고

이중 맏딸 유화가 잡혔는데

분노한 하백이 해모수와 겨뤘지만

하백은 사위(?) 해모수에게 캐쳐발리고 아무것도 못했고

 

결국 하백은 능력남 해모수를 사위로 인정 어인정 해주었고

근데 해모수는 막상 장인을 이기자

유화를 임신시켜놓고 하늘로 도망쳤고 (싸튀 ;;)

 

ㅈ된 유화는 금와왕이 거두어줘서

부여왕실에서 자랐고 알을 낳았고 그게 주몽인데

주몽은 결국 금와왕의 견제를 피해

남하에 고구려를 세웠다는게 고구려 신화이고

 

부여랑 고구려 건국신화가 복잡하게 섞여있고

부여 , 고구려 유니버스에서는 이렇게 해모수가 계속 등장하고 있고

이게 좀 복잡한데

대충 해모수 전설에 대한 공통점은 해모수가 하늘의 아들이라는 점이고

차이점은

하나는 해모수가 부여지역에 나라를 세웠다는 거고

하나는 해모수가 유화 임신시키고(뱃속에 주몽) 하늘로 싸튀했다는 것입니다

 

전설에서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로서

신령스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화제가 된 MBC 사극 드라마

'주몽' 에서는 일단 사극이기에 해모수의 인간성을 강조하며

금와와 함께 고조선 독립운동을 한 고조선 부흥운동가로 나오고

장님이 되어 심안의 눈으로 아들 주몽을 수련시키는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고

하여튼 뭔가 이름부터 간지고 신비스러운 느낌이라

예나 지금이나 한국 문학속에서

해모수라는 인물은 뭔가 간지 쩌는 인물로 나오는 현실입니다

 

드라마 주몽에서 아들 주몽을 수련시키는 해모수

 

해모수와 유화부인 , MBC 창사 45주년 특별기획 주몽 (2006~2007) Jumong

 

[해씨 고구려설]

해모수는 성이 해씨라거나

해모수라는 이름 자체가 부여나 고구려 건국시조를 뜻한다는 말이라거나

여러 해석도 존재하고

 

실제로 해는 태양을 상징하는 순우리말이기에

부여 왕족 성씨였다 하고

해모수가 시조라고 합니다

 

이 해모수가 중요한 이유는

같은 해자인 해부루도 있지만

의외로 고조선 초기 왕실에서 이름에 해씨가 자주들어갔고

고구려 1대왕 동명성왕 아버지는 해모수 ,

2대왕 유리왕의 아들은 해명태자가 있었고

3대왕 대무신왕은 대해주류왕이라 불렸고

4대왕 민중왕은 해색주 ,

5대왕 모본왕은 해우(혹은 해애루) ,

17대왕 소수림왕은 소해주류왕 

 

등 이상한치만큼 고구려 왕실에는

해씨 이름이 많았고

이에 고구려 왕족들은 원래 성씨가 해씨였는데

고씨로 교체되었다는 가설인

 

'해씨 고구려설'

 

도 있을 정도고

 

비록 주류설은 아니지만

실제로 해씨=고씨 라고 하고

해는 태양이고 고는 높을고 , 하늘 , 해라는 뜻도 있기에

실제로 학계에서도 해씨=고씨라고 보고도 있습니다

 

해(태양)를 숭배했던 고구려 , 사극 주몽 장면

 

[부여 왕사]

고구려 , 부여 유니버스에서 계속 등장하는 해모수인데

삼국사기에서 해모수는

해부루가 동쪽으로 수도를 옮길때

원래 해부루가 다스라던 곳에 나라를 세웠다하고

 

삼국유사에서는

북부여를 건국한 시조 해모수의 아들로

해부루가 나오고있고

 

대충

 

1대왕 해모수

2대왕 해부루

3대왕 금와왕

4대왕 대소왕

 

이렇게 보는듯 합니다

 

[금와왕과 유화부인]

하여튼 해부루왕은 이후

위에서 쓴것처럼 아들이 없어 기도하다

바위밑에서 금빛 개구리를 닮은 아들을 주워서

금개구리 , 금와라 이름짓고 태자로 삼아길렀고

금와는 해부루왕 뒤를 이어 부여왕이 됬고

 

금와왕은 싸튀한 해모수의 아이를 밴

유화부인을 거두어 해모수의 아이인 주몽을 기르게 했고

주몽은 부여궁실에서 길러지다 금와왕의 장남 대소태자의 질투때문에

엄사수를 건너 하늘의 도움을 받아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주었고

그렇게 주몽은 졸본땅으로 달아나 고구려를 건국합니다

 

(부여 , 고구려 설화가 얽히고 섥히고

각각 비슷한데 말이 조금씩 다르기에

대충 큰틀로 이해하면 됨)

 

부여 동명왕처럼 강을 건너는 고구려 동명왕 주몽(그림 재탕)

 

이후에도 주몽 어머니 유화부인은

부여에 남았고

고구려 주몽임금의 어머니 유화가 부여에서 사망하자

부여왕 금와가 태후의 예로써 장사지내고 신묘를 세워주었다하고

고구려왕 주몽임금 역시 부여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주어서 그 은덕을 갚았다 합니다

 

드라마 주몽에선 작가의 여러 상상력이 발휘되서

금와왕이 같이 한나라에 무장투쟁했던 친구 해모수의 아내인 유화를 짝사랑+집착하고

친구와 의리를 지키고 주몽을 견제하기 위해 유화를 인질 겸 돌봐주지만

끝내 금와는 유화의 마음을 얻지는 못하고 애증 등 복잡한 관계로 남았고

 

실제 기록에서도 유화부인은 아들이 남쪽에서 왕이 됬음에도

부여에 남아 대우받다 사망했기에

부여의 갈래에서 고구려가 나왔고

부여와 고구려가 굉장히 엮여있고 애증의 관계같은게 실제로 있었습니다

 

[부여 대소왕 VS 고구려 대무신왕]

금와왕에겐 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금와왕이 죽자 장남 대소가 뒤를 이어 부여왕이 됬고

결국 갈래가 같았던 부여와 고구려는

비록 유화부인때문에 서로 의리를 지키기도 했지만

건국때부터 주몽이 부여군사에게 쫓기기도 했고

결국 만주지역 패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했고

고주몽의 손자 ,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 고무휼은 할아버지를 죽이려했던

부여 대소왕과 격전을 치뤘고

 

전통적 강국이었던 부여와

신생국가 고구려의 대결이었고

 

직접 전장에 나선 대소왕은

고구려군을 기습하려다 진흙탕에 빠져서 군사를 움직이지 못했고

이때 고구려 장수 괴유가 대소왕을 붙잡아 목을 베었습니다

 

진창

 

왕을 잃었음에도 부여군은 다시 일어나 고구려군을 격퇴했고

대무신왕의 고구려군은 대소왕의 목을 벴음에도 많은 피해를 입고 돌아왔고

부여 역시 고구려군을 물리치긴 했지만

대소왕이 사망하자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하여튼 해모수 , 해부루 , 금와 , 대소가

우리에게 그나마 친숙한 부여 핵심인물들이라 보면 되고

부여는 그렇게 고조선의 계승국가이며 고구려의 시조국가이자

고구려와의 패권다툼에서 고구려에 흡수된 국가라 보면 됩니다

 

고구려에 편입된 부여와 동부여

 

[우태와 소서노]

이외에도 유명한 부여인이 또하나 있는데

'우태' 라는 인물로서

 

우태는 해부루의 서손(서자의 아들) 로서

해우태라고도 하고

 

원래 백제시조 온조 , 비류가 고주몽의 아들이라 하지만

다른 설로 의하면

비류와 온조의 아버지는 우태였고

우태는 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으로서

졸본의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으며

우태는 일찍 죽어 소서노는 과부로 살다 이후 주몽과 재혼했고

 

(주몽은 일단 부여에 예씨부인과 아들 유리가 있었던 상황이었고

소서노와 비슷한 상황에서 주몽은 애둘맘인 과부 겸 졸본유지 소서노와 결혼하여

고구려 건국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도 함)

 

주몽은 소서노+우태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를 친아들처럼 대했지만

부여에 살던 이복형 유리가 고구려로 오자

결국 비류 , 온조 , 소서노는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를 세우게 됩니다

 

주몽과 소서노와 온조와 비류가 그려진 백제 온조 우표 , 대한민국 정부

 

나라를 두개나 세웠던 한국사 여걸 소서노 , 채널A 천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부여인이 세운 백제]

우태는 짧게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엄연히 부여 왕족이고

그만큼 백제가 부여와 혈연적으로 연관이 되있음을 보여주는 인물이고

백제 역시 백제8대귀족인 대성팔족에

부여식 성인 해씨가 등장하고

 

삼국사기 백제 건국왕인 온조왕 기록에

온조왕이 해루를 우보로 임명했는데

 

<김부식>해루는 본래 부여인인데 그 도량이 넓고

식견이 깊었으며 일흔이 넘어서도 체력이 강하여

등용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고

여기서 중요한건 해루가 부여인이라는 것이고

그만큼 백제 건국세력에 부여인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해씨 , 부여인은 그만큼 고구려와 백제 건국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많습니다

 

이로인해 백제는 아예 왕실 성을 부여씨로 삼아

백제 건국왕 온조왕의 이름은 부여온조 , 

백제 마지막왕 의자왕의 이름은 부여의자가 됬고

훗날엔 나라이름을 백제에서 남부여로 고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학교식 역사나

일반적으론 부여가 별로 중요한 나라로 여겨지진 않으나

실제론 고구려 , 백제 건국세력의 중추였던 핵심세력이었던게 부여인들이고

신라는 의외로 동남부에 짱박혀있었기에 부여인들보다는

이전 멸망한 고조선 유민들이 여섯마을(6부)을 모여살다 키운나라라

부여와는 별 연관이 없고

기존 고조선 유민이나 남부지방에 살던

농경민족인 진국 , 한국과 연관이 깊은 나라이고

 

반대로 고구려나 백제는 부여 , 북방 유목민족과 연관이 깊은 나라이고

국가 기풍이 고구려 백제와 신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도 했고

이로인해 멸망때에도 비슷한 연관이 있었던

고구려와 백제 , 일본이 동맹을 맺고 신라를 괴롭혔고

신라는 결국 두들겨 맞다가 중국 당나라와 손을 잡고

삼국통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국시대 말기 전개된 십자외교(고구려+백제VS신라)

 

남한지방을 옛날엔 마한 , 진한 , 변한 이렇게 해서

한국지방이라 불렀는데

이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한의 한자와 같고

한민족 , 한국의 어원이 됬고

 

백제는 신라처럼 같이 남한지방에 있었음에도

의외로 부여인이 지배층 , 한인들이 피지배층이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도 달랐다 하고

 

(백제 지배층은 부여 , 고구려어를 썼고

백제 피지배층은 마한어 , 한국어를 씀)

 

백제 지배층 , 피지배층의 언어가 완전히 다르고 그랬다기 보다는

다소 달랐다 보기는 하지만

그만큼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세력이 확실히 달랐던 것은 사실이라

백제는 인구도 많고 중국과 교류도 하기 유리하고 땅도 비옥했음에도

이상할정도로 국론 단합도 잘 안되서

귀족세력의 힘이 엄청나게 강했고 ,

왕도 자주 암살당했고 권력다툼이 잦았고

 

(참고로 부여도 비슷한 상황이라 부여도 왕권이 약했고

백제 대성팔족은 부여 사출도와 비슷한 느낌임)

 

반대로 신라는 백제처럼 북방외부지배세력의 급격한 유입보다는

고조선유민 , 한국인이 섞여서 발전했기에

대체적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융화가 잘됬고

삼국통일 이후부터는 귀족사회의 부패와 골품제때문에 사회분열이 극심해지나

적어도 삼국통일 이전까지는 대충 사회단합이 잘됬기에

안정적으로 삼국통일을 하는 원동력이 됬을 수도 있고

 

그만큼 고구려 , 백제지방이 부여족 , 북방유목민족이 정착하기 좋을 만큼

광활하고 풍요로운 지방이는 점이고(만주평야 , 한강 김포평야 , 전라도 호남평야)

그렇게 고구려 , 백제는 진취적인 부여문화 , 유목문화로 발전했고

신라는 동남쪽에 폐쇄적인 지형에서 보수적으로 , 낑낑대며 발전했다 보면 됩니다

 

한강유역에 자리잡은 백제 첫수도 위례성

 

하여튼 고조선 멸망 이후 고조선 유민들이

부여 , 고구려 , 백제 , 신라지방에 골고루 퍼졌듯이

 

고조선을 계승한 부여 역시

고구려 , 백제 지방으로 남북으로 골고루 퍼졌고

 

(신라는 후미져서 부여계가 안퍼진듯 하고

대신 고구려가 팽창하기 전

다른 기마민족인 흉노족이 초원길 타고 신라로 쑥 들어왔다고도 함)

 

한국 신라계는 조선(고조선)+부여가 섞인 고구려 , 백제와 달리

순수 조선계라 보면 되고 신라인들이 삼국통일하며

부여 , 고구려 , 백제 문화들이 신라로 흡수되거나

파괴됬다 할 수 있고

 

이때매 백제의 후손들인 일본 역시

유독 신라를 미워하고 혼자 열폭한 기록이 많고

신라와 일본은 신라의 통일 전후 할 것 없이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후 진취적인 나라였던 고려가 등장하자 

일본은 고려를 되게 좋아했고

다시 신라처럼 보수적인 나라 조선이 등장하자

별로 안좋아했고

일본 역시 부여 , 고구려 , 백제 뽕도 있고

기마민족에 대한 동경도 있어서

한때 현대 일본역사계에선 '기마민족 정복왕조설' 이 유행하며

부여에서 내려온 기마민족이 한반도 남부와 일본까지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는 설이 유행하기도 했고

원래는 일본이 자기들이 한반도 지배를 했다고 하기 위해 만든 학설이나

실제로 일본내 철기 , 기마풍습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때가 있었기에

실제로 민족이동설은 실제로 분명 있긴 있었고

 

(일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불새' 에서는

백제인의 일본유입 외에도

이런 기마민족설을 모티브로 삼은 편이 등장하기도 함)

 

부산에서 발굴된 말투구

 

나름 진취적인 유목민족의 모습으로 부여뽕 , 부여로망 , 기마민족에 대한 로망이

한국 , 일본내에 분명 있긴 있었고

부여인들은 그렇게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한 보이지않는 세력이었고

역사 이면에 가려진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고조선 , 신라 , 조선 이런 나라들은

보수적 , 외교와 예 , 학문적 , 농경적 성향이 짙었다 생각되고

부여 , 고구려 , 백제 , 고려는

진취적 , 유목적 , 상업적 , 해양적 성향이 짙었다 생각되는데

 

이 때문에 고조선 , 신라 , 조선은 문화가 보통

안정적이지만 은은하거나 조용하고 별 존재감이 없고

부여 , 고구려 , 백제 , 고려는 문화가

웅장하고 화려하고 ㄹㅇ 삐까번쩍한게 많은편이고

 

그런것때문에 솔직히 고구려나 백제사가

격렬한 이야기와 재미가 진짜 있고

신라사는 얘네가 최종승자다보니 배울점도 많고 분명 대단한건 맞는데

그냥 노잼 모범생이 엄마아빠말 잘 듣고 계속 조용히 공부해서 서울대간 느낌이라

고구려 , 백제처럼 광활한 광야 , 유니버스 , 대서사시나

문제아 , 사고뭉치들 , 별다른 스펙타클한 이야기는

신라에는 없는 편이고

보수성이 강했던 신라의 강한 장점이기도 했지만

또한 점차 신라 역시 보수적인 패턴이 반복되자

신분제와 노잼에 지쳤던 신라 민심은 나중엔 결국 고려의 등장을 불러일으켰고

고려도 이후 너무 진취적이다보니 외적이 들끓자

다시 고려민심이 보수적인 조선을 택했다 생각되고

고려는 그렇게 부여 , 고구려 , 백제를 계승한

한국사 마지막 진취적 왕조였는데

역사계에서도 진취성과 보수성은 오늘날 진보와 보수 ,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으로 이어지고

예나 지금이나 이런 면은 주요 문제였고

진보 보수 사상갈등 이런게 옛날에는 근대~오늘날 현대처럼

본격적으로 학술화되고 체계화되서 화두에 오르지 않았을 뿐이지

조선때는 사림과 훈구 ,

고려때에도 묘청과 김부식 , 

삼국시대때는

진취적인 부여 , 백제 , 고구려계와

보수적인 조선 , 신라계로 분명 있긴 있었다 생각되고

둘다 장단점도 있었다 생각되고

 

그렇게 부여는 소와 말 키우기를 국가적으로 중요시 여기고

거대한 대지를 옮겨다니며 도시들을 잇고 상업을 활성화시키고

국가들을 건설한 진취적인 나라였다 생각됩니다

 

부여 마지막 불꽃이었던 백제건국

 

<라봉봉>일단 부여사는 고대사기도 하고 사료마다 기록 , 순서가 제각각이라

세밀세밀하게 보기보단 대충 큰틀에서 읽는게 중요하고

혹시나 사료보다가 고구려 기록과 헷갈리는거도 조심해야합니다

 

제가 이전 이야기에도 그렇고

고대시대 낭만이 있었다는게 이런거고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일어나기 전 원삼국시대는

광활한 고조선이 멸망해서 한국지방(만주+한반도)이

소수 점령지에서만 중국 한사군의 통치가 일어나고

나머지는 전부 무주공산이 된 상황이었고

 

이시기 고조선의 후예를 대표했던 부여인들이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동서남북으로 이주하며

국가를 건설했고 (만주에서 서울까지 !)

고조선과 부여인의 후예들은 그렇게 훗날

한민족을 식민지배했던 식민기관인 한사군을 축출하고

고조선의 옛 영토를 수복하는데 성공합니다

 

부여인들이 세운 나라중

가장 오래살아남고 우리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국가가

바로 고구려와 백제입니다

 

부여는 오늘날 우리(대한민국)에겐 존재감 없는 잊혀진 역사지만

고구려인들과 백제인들에겐 기본적으로 밑바닥 내면심리에

자신들이 부여인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고

우리의 아주 중요한 민족국가였고

 

저는 부여인 최고 아웃풋은

시작은 해모수 , 끝은 소서노였다 생각되고

 

특히 소서노는

여자가 나라를 두개나 그것도 한국사 근본국가인 고구려와 백제를

동시에 건국했는데 이건 해모수처럼 신화나 전설도 아니라

진짜 한국 역사에 나온 역사기록이라서 더 중요한거고

참 대단한 부여인이자 우리 선조할머님(?) 이셨고

부여인들은 그렇게 대담하고 진취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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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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