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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왕 유리왕 이후 셋째아들인 무휼이 왕위에 오릅니다

이분이 대무신왕입니다


3.대무신왕


대무신왕이 무휼왕자일때요

부여는 틈만나면 고구려를 괴롭혔다한거같습니다 속국같이요

대소왕이 유리왕에게 사신을보내 부여에 복속할것을 명령했는데

이때 어린 무휼이 부여사신에게 달걀이 쌓인 접시같은거를 보여주고

알을 쌓아놓은자는 위태로울것이요 알을 건들이지 않는자는 안전할것이다라말하며

이당시 부여가 계속 전쟁위협 그만하라는 무휼왕자의 말이었던거같습니다

무시하고 부여가쳐들어오자 10살의,,무휼은 적은병사로 숨어있다가

부여군을 물리쳤다하는데요,,

왕이 되고서도 대소왕이 또 괴롭혔다한거같습니다

대소왕이 사신을보내 붉은까마귀를 보내왔다하는데요 머리하나에

몸이 둘이었다합니다,,이에 대소왕이 두나라는 하나가될것이라 뭐라하자

대무신왕이 우리 고구려는 남쪽에있고 남쪽의 색은 붉은색인데

북쪽의색인 검은색이 붉은색이됬으니 또 상서로운동물을

부여가아닌 고구려가 가지게되었으니 두나라는 어찌될지 알수가없다라했답니다

이에 대소왕은 후회했다합니다,,

누란지위라는 계란이야기나 이런까마귀이야기 등을보면 대무신왕이 영리한면이있었던것같습니다.

한나라의 공격을 막기도했고

이때 아들 호동을시켜 최씨낙랑국을 멸망시킵니다 이낙랑국은

한사군 낙랑과 다르다고 하는것같습니다.


이번에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이야기인데요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아들로 고구려 왕자였습니다

얼굴이 수려해 이름이 호동好童이었다합니다

호동왕자는 옥저에서 낙랑왕의 행렬을 보고 만났다합니다

고구려의 팽창을 두려워한 낙랑왕 최리는 호동왕자와 자신의딸 낙랑공주를결혼시키는데요

이당시 낙랑국에는 적군이쳐들어오면 북을울리는 자명고라는게 있었다하는데

뭐 신비의 북이라기보다 봉화대같은 어느 시스템같은게 아닐까싶습니다

호동왕자는 낙랑을 멸망시키려했고 부인 낙랑공주에게 자명고를 찢으라합니다

사랑에빠진??낙랑공주는 자명고를찢고 고구려군대는 몰래쳐들어오는데

북소리를 듣지못한 낙랑군은 고구려에 멸망합니다

이북은 어느 시스템을 낙랑공주가 없애버리지않았나싶습니다,,

이에 최리는 낙랑공주에 자결을명하고 고구려에 항복하고요,,

호동은 낙랑공주의 죽음을 보게됩니다,,

고구려에 돌아온 호동왕자,,

대무신왕의 첫째부인이 호동왕자가 왕이될까봐 두려워해 대무신왕에게

호동이 자신을 희롱했다 거짓말을하고

호동왕자는

내가 만약 변명을 하면 이것은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我若釋之 是顯母之惡 貽王之憂 可謂孝乎

라 말하고 자결합니다

이에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호동왕자가 작은 의리로 큰정의를 저버렸다 비판하는데

이당시 호동은 낙랑공주가 죽고 별 살아갈 희망도 못느낀거같고

그런데 저도 역시 자결은 아닌거같습니다 사마천사기를보면

뭔 의리때문에 자결하고 일본에서도 옛날 악습인 할복이있었는데

이는 다시는 해서는 안됩니다

애초에 낙랑공주에게 북을 찢으라한거도 호동이었고 그렇다고 또 자살하는거는

절대 안됩니다

안타까운 사람같습니다,,


대무신왕이 사망하고 첫째부인의 아들이 너무어려

대무신왕의 동생이 왕이됩니다

4대왕 민중왕인데요

재위기간이 5년이신데 5년동안 고구려인들 1만이 자연재해로 한사군 낙랑군으로

귀부했다합니다 귀부는 이민같은거라 보시면될거같습니다,,

민중왕은 민중원이라는 곳에서 사냥하다가 석굴을 발견해 그곳으로 자신의 묘지를 정했다합니다

그래서 민중왕이라 불리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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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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