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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오페르트 독일사건이 있고나서 또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1868년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이 있었던거같습니다

메이지유신은 일본이 에도막부,도쿠가와 정부에서 권력을 일본왕에게

가게하는거같습니다 이를 다시 왕정으로 간다해서 왕정복고라 하는데요

일본인들이 말하기를 일본왕을 천황이라고하는데요

이 천황이라는게 우리는 일제강점기같은 식민지배가 있어서 이 용어에 거부감이있는거같고

이당시에 1869년 일본도 조선에 국서를 보냅니다 옛날에는 발신자가

쇼군이라 했는데 덴노,천황이라 바꾸고나서 흥선대원군의 조선에서도 이에 불쾌해하면서

국서를 거부했다고합니다,,

또 조선국왕 폐하라면서 국서를 보내는게 관례였으나 본국 천황이 조선국왕에게

이렇게 편지의 내용도 바뀝니다 조선 정부에서도 일본이 변화하고 그랬다는것을

알게되는거같습니다 메이지 유신까지는 일본이 한국보다 실질적으로

문화,경제력에서 이미 더 나은상태였다면

메이지 유신과 이편지사건부터는 표면적으로도 조선에 더이상 저자세로

나가지 않겠다 이런거같습니다

이러다 나중에 운요호사건으로 조선은 일본에 개항하게되고

일본에서는 한국을 정복하자는 정한론이라는게 나와서 1905년 을사조약,1910년 조선은

일본에 멸망합니다

사실 일본도 원래부터 조선을 정복하려기보다 은근 조선의 이웃나라이기도하고

조선의 근대화를 생각하기도 했던거같습니다 그러나

조선정부에서는 일본=오랑캐,야만인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아시아에서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시작하고있는 일본 외교사절들을 무시한거같고

일본 사절들도 더이상 저자세로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조선정부에서는

일본사절을 문전박대 문앞에서 푸대접한다는 뜻인데요 이런거도 있었던거같습니다

일본은 그러면서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했던 아시아의 희망 이런거에서 제국주의국가로

가는거같습니다 조선정부도 변화하는 세상에서 너무 느리게 반응했던거는 아닐까요


이렇게 1869년 일본 국서사건이 있고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납니다

신미양요는 이전에 1866년에 제너럴 셔먼호라는 미국 상선인데

무장상선,대포같은게 있는 상선이 평양에와서

평양에서 먹을거를 제너럴 셔먼호에게 주고 돌아가라 했는데요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을 올라와서 측량을 하고,,

이에 조선군이 갔는데조선 병사와 백성들을 죽입니다,,

그래서 평양감사 박규수가 사람을보내서 지금이라도 안늦었으니 돌아가라 했는데도 또다시

보낸사람을 붙잡아두고 통상을 요구했다고합니다,,

그러다가 강가에 작은배들을 보내서 기름을 띄워서 불을 질러서 배를 불태오고

육지로 나온 배에 탄사람들은 분노한 평양인들에 의해 죽은거같습니다,,

제너럴 셔먼호는 강가에는 모래톱이라고 모래가 있는곳에 배가 껴서

움직일수 없었던 상태였던거같습니다

,,이런 사건을 빌미로 미국군대가 조선에 또다시 강화도로 오게되는데요,,

이를 신미양요라고 하는데요 신미년에 양인들의 요란 이런거로 보시면될거같습니다

병인양요는 병인년에 양인들의 요란,,같고요 그런데 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둘다

강화도냐면 조선국의 수도는 한양 오늘날 대한민국수도 서울인데요

서울에는 한강이 있고 이 한강은 흘러서 서쪽으로해서 서해바다로 나가는데요

강화도 바로옆이 서울이라 강화도쪽으로해서 강을 올라가면 서울이 나타나서 같습니다

신미양요 역시 그런거같고요

이당시 신미양요는 미국이 조선을 개항시키려는 목적도 있었을거같습니다

옆나라 일본은 미국 페리제독에 의해 별다른 전쟁이나 그런거없이 개항을 한거같습니다

조선은 강화도에서 미국군대와 싸웠고,,미국군 3명이 죽고 조선군 300명이 넘게 죽은거같습니다,,

미국은 조선을 개항시킬수 없을거같다 해서 강화도에서 나갑니다

사실상 이당시 미국은 조선군대를 학살하다싶이 한거같습니다 그런데

광성보전투에서는 조선군대가 무기가없는데도 흙이나 돌멩이를 던지며 싸웠고

미국인들도 이에 충격이 있는거같습니다 여태 아시아에서 이렇게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 사례가 없었던거같습니다,,

또 조선인들도 서양이 이렇게 강하다는것을 알게되고 충격이 있는거같습니다,,

어재연장군은 강화도 광성보를 공격하다가 사망하십니다,,

그리고 미국이 어재연 장군의 깃발 어재연 수자기를 가져가는데요 오늘날에는

미국정부에서 한국정부에 빌려주는 형태로 한국에 왔다고합니다

2007년부터 10년 빌려주는 형식인데 현재 2017년인데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원군은 미국이 돌아가자 척화비라는 비석을 세웁니다

친하게 지내는거를 배척한다라는 뜻같습니다

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해 올 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며,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라고 써있는거같습니다

조선은 쇄국정책,나라문을 닫고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하는데요

그러나 결국 신미양요 2년뒤 최익현에 의해 또 고종도 나이가 들자

되자 대원군은 실각합니다 그러다 신미양요가 있고 4년뒤에 일본이 운요호라는 함대를 보내는데요

이역시 신미양요같이 통상을 요구하며 조선을 압박하려는 방식이었던거같습니다

신미양요때같이 조선군은 일본에 맞서거나 그러지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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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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