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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0대왕은 애장왕입니다

13세에 즉위하고 숙부 김언승(41대왕 헌덕왕)이

섭정하는데요

성인이 되고 개혁을 시도하다가 숙부에게 살해당합니다

애장왕 3년에는 가야산에 해인사가 창건됬다고합니다

해인사는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입을 막으려,,(불교로 국난을 물리치기를

바랬었을까요,,)

만든 유네스코 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이 보관되 있는곳입니다

김헌창을 시중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헌덕왕때 김헌창의 난을 일으키는 사람인데요 전라도,충청도까지

거의 신라 영토 절반이 일어나는 반란같습니다,,

애장왕은 어른이 되면서 유교적 왕권 강화책을 하려다가

숙부인 김언승에게 살해당합니다,,


41대 신라왕은 헌덕왕 김언승 입니다

애장왕을 죽인 숙부 김언승이 왕이 되는데요,,

애장왕때부터 어린 조카왕을 섭정했다가 조카가

나이가들고 왕권강화적 정치를 하려다 조카를 살해하고 왕이됩니다,,

이당시 한때 왕이 될뻔했던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은 명주,강릉에서

있다가 신라 상대등이 되다가 헌덕왕이 왕이 되고나서 시중자리에서 물러나고

무진주,웅천주같이 옛날 백제땅 도독으로

가게 되는거 같은데요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나라 이름을 장안국이라 하는데 옛 백제땅,유민들??이 모두

김헌창에게 붙었다는거 같은데요 아직도 백제인이라느 그런 생각이 있었던거일까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신라정부가 이런 거대한??반란을 막을 힘은 있었던거 같습니다

김헌창은 신라군에 쫒기다 자살합니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는거 같습니다

신라인들은 해적이되서 일본을 약탈하는거 같은데요

이를 신라구라고 합니다 나중에 일본 왜구들이 신라구가 하는거를

배꼈을까요,, 신라구는 우리 기록에는 없고 일본기록에는 있습니다

신라 말기 신라 백성들은 이렇게 도적화되거나 해적화,

아니면 자영농을 포기하고?? 그나마 사람대우를 받는 승려가 되려하거나

그랬다는거 같습니다


헌덕왕때에는 봄에 백성들이 굶주려 자손을 팔아 생활하기도 했다고합니다,,


김헌창의 난이후 3년뒤 김헌창의 아들 김범민이 북한산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나 진압됬다고합니다,,

그리고 십량주에서 흰까마귀를 바쳤다는데요 이 이전에도 40대 애장왕때는

흰까치나 붉은까마귀

39대 소성왕때는 한산주에서 흰까마귀를 바쳤다는데요

흰까마귀나 흰까치는 길조라는데요 과학적으로는

백색증 알비노나 그런걸까요,,정작 신라는 이당시 여러 혼란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42대 신라의 왕은 흥덕왕 김경휘 입니다

원성왕의 태자 인겸의 셋째아들,소성왕,헌덕왕의 아우라고 합니다

흥덕왕은 골품제에 따라서 의식주나 생활용품을 규제합니다,,

흥덕왕은 신라정부의 안정을 중요시 한거같은데요

그래도 골품제로 안정을 중시하는거는 아닌거 같습니다

당시에도 당나라에서는 신라 골품제를 이상하게 보는거같고

이렇게 신라는 골품제 신분을 유지하려고 근친혼들이 있어왔던거

같습니다

그래도 흥덕왕은 정치는 그래도 이렇게 신라 후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잘했던 왕 같습니다

당나라에서 찻잎을 가져와서 지리산 하동군에 심었다고합니다

또 해상왕이라 불리는 장보고가 이때 등장합니다

흥덕왕은 장보고에게 벼슬과 병권을 주고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동아시아 바다의 치안을 지키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당시 해적이 있었던거 같은데요 장보고는 흥덕왕의 지원으로 당나라,일본,신라의 바다에서

무역을 하고 그러면서 이로 얻은 이득을 신라 왕실에 바쳤다고 합니다,,


또 흥덕왕은 애처가였다는데요

왕이되고나서 2개월뒤에 부인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혼을 하려하지도 않았던거 같고요

삼국유사에서는 당나라에 다녀온 사신이 암,수 앵무새를 바쳤는데,,

암컷 앵무새가 죽자 수컷 앵무새에게 거울을 달아줬는데

수컷 앵무새는 자기 짝인지알고,,거울에 쪼다가 아닌걸 알고 슬피울다가 죽었다는거 같습니다,,

이에 흥덕왕도 이에 동질감을 느꼈다는거 같습니다,,


흥덕왕때 해상왕이라고 불리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만듭니다

장보고 이야기는 나중에 써야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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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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