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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공왕은 진성여왕의 오빠 신라 49대 왕 헌강왕의

서자 라고 합니다 야합으로(들에서 합친다는 한자어로

정식 부인에서 낳지 않은 아이를 말합니다)길에서 만난 여인과 사이에서 낳은

아이로 진성여왕은 효공왕에게 살아있을때 왕위를 주고

얼마뒤 사망합니다,,

진성여왕때부터 신라는 본격적인 혼란, 사실상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거 같고 이에 진성여왕은 살아있을때 효공왕에게 양위하거나

쿠데타라는 말도 있는거 같습니다,,

그렇게 태자가 된 효공왕 김요는 신라 52대 왕이 됩니다,,


지방에서는 양길,궁예,견훤 등 세력이 일어났고

신라 조정에서는 이런거를 통제하지 못했고 이에

효공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27살정도에 사망합니다,,


그리고 또 특이한 신라 정치를 알수있는게

갑자기 700여년(728년)만에 박씨가 다시 신라 왕이됩니다,,

효공왕의 처남,헌강왕의 사위인 박경휘가 신라 53대 국왕이 됩니다

나라가 바뀌지 않고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이 왕이 되는 사례는

한국역사에서 신라에서 보이는 특이한 사례같은데요

그렇다고 신라 정치체계가 매우 민주적이라기에도

성골,진골같은 골품제,신분제들로 신분을 유지하려 근친혼등을

하는 폐쇄적인 사회였던거 같습니다,,

신라 후대에 혼란의 상황에서 뭐라도 바꿔보려는 정치권의

자포자기 심정의 의지였을까요,,


신라 53대왕 신덕왕 입니다

이당시 신라는 이미 지방에서 후백제,후고구려같이 아예

새로운 나라로 독립을 해서 나라땅이 줄어들었고

신덕왕은 6년의 재위기간중 5년때에 견훤의 대야성 침략을 막기는

막아내었으나 이미 나라땅은 거의 경상도나 경주일대에서만 영향력이

있을 정도였을거 같습니다,,


신라 54대왕은 경명왕 입니다

신덕왕의 아들로 박씨입니다 이후 55대왕 경애왕까지 박씨이다가

마지막 56대왕 경순왕 때 김씨 마지막 왕 김부,경순왕으로

신라왕조는 끝나게 됩니다,,


이당시 신라밖??,,에서 고려 건국이 있었습니다

궁예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관심법 등으로 신하나 백성들을 괴롭힌거 같고요,,

이에 가장 가까운 신하라 할수있는 왕건도 관심법으로 죽이려 하다가

다른 장군들은 왕건을 왕으로 해서 반정,,을 일으키고 궁예를 쫒아냅니다

궁예는 평복차림으로 살다가 백성들에 걸려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왕건은 당대에 후백제나 신라에도 덕있는 장군으로 알려진 사람 같습니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고려로 하고요 역시 줄타기를 매우 잘하는??,, 신라에서도

당나라에게 그랬던거 같이 친 고려 외교로 가게되는데요,,

이에 후백제 견훤은 신라 주요 거점,성인 대야성을 공격해 함락시킵니다

대야성은 김춘추(태종 무열왕)의 사위 김품석과 딸 고타소가 죽은곳으로 신라에게는

매우 중요한 다른 지방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하는데요

이곳을 함락당한뒤 신라 수도 경주는 무방비의 상황이 된거 같습니다,,

경주에서 55대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잔치를 하다가

후백제군의 기습에 죽게되는 원인이 된거 같습니다,,

경명왕은 망해가는 신라를 살려보려,,

왕건과 우호관계를 맺는다거나 불교의 힘으로 막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들이 실제로 효과를 보던게 신라 초중기였으나

사람들도 이미 익숙해진 방법이었고 이미 망해가는 신라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거 같습니다,, 신라는 백제 의자왕때 백제의 귀신들이 나온다거나 망조가

있었던 기록같이 경명왕때도 그림속 개가 나왔다거나 활줄이 모두 끊어지는등

망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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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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