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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청년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쓰고나서

현재 방문자가 급 많아진거 같습니다,,

그만큼 먹고사는 문제인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먹고사는게 해결되면 그 이상의 가치,꿈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꿈을 발굴한 남자,

트로이를 발굴한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 이야기입니다


<하인리히 슐리만 사진>


우리에게는 그리스 로마신화나 컴퓨터 바이러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그 트로이가 맞고 슐리만의 발굴로 더이상 그것은 신화가 아닌

현실이되고 세계 역사학계,고고학계의 학론들이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또 발굴 지역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관광자원이 되고요,,


<트로이는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트로이 목마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와 전쟁을 10년을 벌였는데도 성 함락이 안되자

오디세우스는 자신과 29명의 용사들이 숨을 목마를 하나 만들고

그곳에 숨고 모든 군사들을 철수하게하고 그리스인들이 물러가고

성밖에 목마 하나만 남자 트로이 인들은 기뻐하며 전리품이라 생각해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오게되고 그날밤 목마에서 나온 30명의 용사들이

성문을 열어서 트로이를 함락하게 됩니다,,

그동안 신화로 터부시됬으나 슐리만의 발굴로 인해

실제 있었던 전쟁임이 밝혀지게 됩니다

오늘날은 악성 바이러스 프로그램,겉보기에는

평범하나 실행하면 악성코드를 실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합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로도 불리나

세상을 바꾼 고고학자 슐리만의 이야기>


그의 자서전 <트로이를 향한 열정>을 읽긴 읽었는데

자세히 기억은 못하고 초반에 그의 사랑,고난등과

상인으로서의 성공,해외여행,발굴이야기 이런 형식으로 있었던거 같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했고 그 역시

세계사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셨으나

과정이 아쉬웠고 스스로도 아쉬워 하시는 모습이 자서전에 있었던거로

기억하는거 같습니다,, 그러면 꿈을 발굴한 남자 슐리만 이야기입니다,,


슐리만은 독일 농촌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전원생활의 옛날 서양 농가의 풍경이 생각나나

역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산다는거는 어려운 현실이었을거 같습니다,,

슐리만은 8살때 아버지에게 열성적으로 고대 역사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를 읽고 트로이 이야기를 보고

트로이에 매료되십니다,, 이런 트로이 신화들을 감명깊게본 슐리만은

직접 트로이를 발굴해서 신화가 아닌 현실로 찾아낼 꿈을 꾸게됩니다

이 8살때의 깊은 경험은 그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간직한 소중한 꿈으로

그가 어려운 생활을 하던,40살이 넘던 계속 가지고 가고 끝내 현실로 트로이를 발굴해

꿈을 이루게 되는 분으로 이에 사람들은 그를 꿈을 발굴한 남자라고도 부릅니다


<슐리만의 첫사랑,민나>



어린 슐리만은 트로이에 깊은 감명을 받고 동네 친구들을 붙잡고

마을의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일들이나, 트로이 이야기를 하게됩니다

친구들은 슐리만을 무시하고 어린 슐리만은 왕따가 됩니다 ㅠㅠ,,

그러나!! 마을에서 유일하게 어린 슐리만의 이야기를 주의깊게,진지하게 들어주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민나 마인케,민나> 였는데요

민나는 슐리만의 이야기를 전혀 지루해하지않고 손에 턱을 괴고 넋이 나간채로

슐리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슐리만이 트로이 발굴 꿈이야기를 할때면

멋져! 하며 맞장구도 쳐주고 슐리만의 가슴을 부풀게 했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결혼을 약속하며 어른이 되면 결혼해서

세계의 보물들을 찾아나서자고 약속하게됩니다,,

민나는 슐리만의 첫사랑으로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나,,

자서전에 그의 안타까운 울부짖음같은게 써있습니다,,

역사에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서동요같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있으나

문학에는 위대한 개츠비같은 막장 치정극도 있고 우리가 더 나은 판단을 하려면

좋은거만 찾는다기보다 입에 쓴 약이라고도 생각하고 경계해야될 사례로 봐야되는

이야기들도 있는거 같습니다,,


다시 슐리만 이야기로 가서,,

슐리만은 민나와 어른이되어 결혼해서 같이 먼저 황금요람,은접시,숨겨진보물,무덤들을

조사하고 마지막으로 같이 트로이를 발굴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슐리만 자서전,첫사랑의 떨림 민나 중에서,,>

<슐리만>트로이가 실재한다는 확신은 내 인생 행로의 수만은 우여곡절속에서

한번도 꺾이지 않았다 이는 신에게 감사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 두사람(슐리만과 민나)이 어린시절부터 상상했던 꿈은

그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흐른뒤, 인생 후반기에 민나와 멀리 떨어진곳에서

실현될 운명이었다


그렇게 두사람은 미래를 약속했으나,,

슐리만의 집은 가난했고 14살때 슐리만은 학교를 중퇴하고

잡화점 오늘날로는 편의점 같은데 직원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다 배를 타는 직원으로 옮기고(적은 월급이었던거로 기억합니다,,)

그가 배를 탈때 첫항해때 배가 침몰해서,,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암스테르담에 가서 무역회사에서 일하게됩니다

어리고 가난한 환경에 학교도 안다녔던 슐리만이 취업한곳은

모두 연봉이 적었던것 같고,, 슐리만은 이렇게 일하면서도

언어공부를 정말 열심히 합니다,,

저가보기에 언어에 정말 재능이 있으셨던분 같고

오늘날에도 슐리만 언어공부법,영어공부법은 인터넷에 있을정도로

유명합니다 슐리만의 주장으로는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교육은 엉터리고

언어를 배울나라의 고전들을 보고 암기하면 된다(참쉽죠?) 이런 느낌이었던거 같습니다,,

저도 그대로 믿고 해봤는데 안되더라고요,,그냥 이분이 언어를 매우 잘하시는거 같고

원래 언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외국어 몇개씩 하시는거 같습니다,,

대신 저는 외국어 몇개씩은 못해도 외국 역사 10개국 이상은 알거 같습니다,,

그렇게 암스테르담의 무역회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슐리만은 2년만에

영어,프랑스어,네덜란드어,스페인어,포루투칼어,이탈리아어를 모두 마스터했다고 합니다,,

유럽어가 사실 비슷비슷한거 같기도하나 절대 쉬운일은 아니었다 할수있겠습니다


<슐리만의 자서전 중에서>(나 슐리만은)뛰어난 집중력 덕분에,

한 언어에(한 언어를 배울때) 6주이상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ㅋ)


22세의 슐리만은 러시아를 상대하는 무역회사 직원이 되었고

역시 러시아어도 6주만에 유창하게 마스터합니다

근데 그의 공부법이 은근 웃긴게?? 배울 언어 잘하는 사람 한명 고용해

옆에서 교재를 읊게했고 즉 과외를 받았다고도 할수있겠으나

뭔가 타고난 언어습득력이 있으셨던분 같습니다 옛날에는

인터넷,동영상도 없었기에 발음같은거는 직접 들어야 알수가 있었을수도

있는거 같고요,,

그렇게 슐리만은 상인생활과 언어공부를 하면서도 고향의 민나와

트로이에 대한 꿈을 생각합니다 민나는 트로이였고

트로이는 곧 민나였다는 비유를 인상적으로 본거 같습니다,,


<슐리만의 기도>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민나가 결혼하지 않게 해 주소서


그의 언어공부,실력은 그가 이후 유럽에서 상인생활을 할때

여러나라에 물건을 사서 다른 나라들에 팔아야했기에

유창한 언어실력은 그의 상업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애초에 성실한 사람이었던것은 분명해서

다른 지역에서도 여러 신용이 있었을것이고요


그는 그렇게 러시아에서도 언어공부와 상업일을 하며

꽤 돈을 벌고 자리를 잡았을때 24세의 그는 다시 고향으로 가서

민나에게 청혼을 하려갑니다

그러나,, 민나는 이미 어찌보면 연락도,소식도 없이 행방불명??,,된

슐리만이 다시 돌아와 청혼하러 왔을때는

이미 지역의 농부와 결혼을 하려했고 결혼식 4일전이었다고 합니다,,

한국 기업 현대의 정주영 회장도 강원도,북한쪽 고향에서

소한마리 훔쳐서 서울에

상경해 꽤 돈을벌고 다시 아직 한국전쟁 이전, 38선이 완전히 닫히기전에

첫사랑을 만나러 하얀 신사복,구두에 자본가 스타일로 차려입고

(정주영 회장은 가난한 출생으로

성공한 사업가가되어 다시 고향을 찾았습니다) 고향으로 간적이

있었는데 이미 첫사랑이 결혼해 아이가 둘이 있어서

밥 얻어먹고 왔다는 이야기와 비슷한거 같습니다,,

두분다 마지막 잎새같이,어려운 일,역경,비난에서도 그들을

살아가게하는 힘의 원천이었던 '첫사랑'이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평생을 아쉬워하셨다고 합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원인으로는

여자들도 기다리거나 수동적으로

바라기만 해서는 안된다는것과 죽었는지,살았는지도 모르고 너무

오랜기간동안 서로 단절되있었던거도 문제 같습니다,,


그렇게 슐리만과 민나는 헤어지게됩니다,,

사실 아직 4일이나 남았는데 평생 서로 잊지못할거면

민나와 결혼할 시골농부 입장도 불쌍한거고

농부에게 이야기를 한다거나 한번 시도라도

해보는거도 나쁘지 않을거같은데요,,(결혼 4일전이긴 해도 아직 결혼도 안했고

이미 꽤 상인으로 자리잡아서 성공한 슐리만인데 문제될게 뭐있었겠습니까,,)

문학이나 만화에서도 이런 주인공들 보면 답답해서 짜증나는거 같습니다,,

스스로는 추억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하는거 같으나 사실은

정 반대로 그 상대와 결혼한 사람 입장에서는 결혼할 사람이 딴마음을

품고있는데 매우 화가 나지 않을수가 없고

문학에서는 보통 이렇게 결혼하면

바람이 나는 사례들이 많이 나오는거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볼때 여러 문제들이 나타날수 있을거 같습니다,,

이런거 보면 위인이어도 솔직히 아닌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슐리만도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됩니다,,

슐리만에게 민나는 트로이 발굴의 꿈과 동급이었고

성공해서 고향을 찾았더니 민나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큰 좌절을 겪게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그의 트로이에 열정은

멈추지 않으나 트로이 발굴,열정에 해온거같이 민나에게도 근성있게

더 용기내거나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는거 같습니다,,

이후 30여년이 지난뒤 트로이를 발굴하고나서 남의 아내가 된 민나에게

발굴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50대가된 슐리만이 민나에게 보낸 편지,,>민나 내가 우리 어릴적 꿈을 이뤘어


<상인시절>

그렇게 민나의 결혼에 충격,좌절을 겪게된 슐리만은

계속해서 트로이를 생각하며,, 다시 상인 생활을 시작합니다,,


트로이 발굴을 현실화 하려면 수많은 땅을 파는 도구들과

인부들,기술과 자원이 필요했고 이는 큰 돈이 필요했기에

슐리만은 40살까지는 다른거를 생각하지 않고

돈을 모으기로 하고 상업에 집중합니다,,

(근대 유럽 부호들은 과시용으로,, 수많은 과학도구를 사며

화학,과학등에 빠지거나 고고학에 빠지곤 했다고 합니다,,

이는 돈이 많이 드는 분야라는거를 의미할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렇게치면 미술,음악,역사 할거없이 돈 많이 안드는 분야가

없는거 같습니다,,)


그의 13개국 언어능력은 상업,해외에 나가서도 큰 도움을 주었고

러시아에서 창업,미국 골드러시(황금을 찾아 캘리포니아쪽,서쪽으로 미국인들은

이동했습니다)때는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은행을 창립하고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고 합니다,,

1853년 크림전쟁과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을 통해

재산은 눈덩이같이 불어났다고 합니다,,

일본도 1945년 미국에 패전하고 온나라(일본)가 거지,고아로 뒤덮였다가,,

한국전쟁이나자 일본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이제 일본은 살았다!라고 외치며 한국에 전쟁물자를 팔며

수많은 경제성장을 시작하게 됩니다,,

슐리만은 당시 남북전쟁을 예감,미리 목화를 사놓고 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자본가 차림의 슐리만으로 모피를 입고있습니다,,>


슐리만 소유 상단에 물건들이 위치한 창고였나 배가 불탄적이 있었다는데요,,

슐리만은 전재산을 잃을뻔 했으나 운좋게도,, 물건들이 안실려 있어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는거 같습니다

슐리만은 민나와 헤어지고 다른 여인과 결혼,청년부터 중년시절을 계속

상업,돈벌이에만 매진하다 이후 백만장자가 되고

이 이상의 부는 공명심에 속한다며 상단에서 은퇴합니다

그는 은퇴할때 자신의 배들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슐리만은 평소에도 글쓰기를 했고 스스로 고백하기를

상업보다 차라리 언어쪽 일을 했으면 행복했을거라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상업도 백만장자였으나 상단을 이끌어야되고

수많은 슐리만이 팔았던 향신료나 약재,모피,인디고 염료,

소금,후추,황,납,알류미늄들의 품질이나 상품들도

신경을 써야했고 분명 그의 13개국 언어능력은 해외를 돌아다니며

상업을 할때 큰 도움이 됬으나 차라리 언어쪽 일을 했다면

더 편하고 즐겁게 돈을 벌었을수도 있으셨던거 같습니다,,

수많은 돈을 모으고 상업을 그만둘때 업무용 배를 불태운거를 보면,,

배수의 진,더이상 물러나지 않겠다는 각오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저의 생각에는 전쟁으로 돈을 벌기도하고,,

상업에서 큰 돈을 벌기는 했으나

은근 스트레스가 많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40년간 생각하던 트로이의 꿈을 이루는 슐리만 >


상업을 그만두고 백만장자가 된 슐리만은

트로이를 발굴할 모든 경제적 조건을 갖추게 되었고

앞으로 벌어둔 돈으로 고고학에 매진할때 한 말이 있었습니다,,


<트로이 발굴의 꿈을 시작하려는 슐리만>

1863년 말에는 내가 기대했던 것을 훨씬 능가하는 재산을 가지게 될 정도로

나의 사업은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 ,,,

나는 나를 그토록 매혹시켜 왔던 연구(트로이 발굴)에 전념하기 위하여 사업에서 은퇴했다


가난한 어린시절부터 성실히 노력해

백만장자가 된 중년의 신사 슐리만은 상단을 정리하고

그동안 벌어둔 돈으로 아직 트로이 발굴전에 세계일주,여행을 하게됩니다

중국과 일본도 들리셨으나 안타깝게도 당시 조선은 가지 않으십니다,,

슐리만은 <현재의 중국과 일본>이라는 책도 냈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며 결혼한 부인과 자식들과도 멀어졌고

이후 슐리만은 유럽에서 공부하다 미국의 부인에게 오라했으나

부인이 가지 않겠다하자 이혼이 쉬운 미국법을 이용해 부인과 이혼합니다,,

슐리만은 소르본 대학에서 문법이나 문학,시,철학등을 공부하고

로스토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렸을때 학교를 중퇴했으나 결국 백만장자의 자본가가 된 슐리만은

옛날에 미련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 학교를 다니기도 하신거 같습니다,,

슐리만은 자서전에서 오히려 어렸을때는 건강하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더 건강해지고 아픈곳도 없어졌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히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슐리만은 어리고 젊은시절은 정말 매우 가난했을것이고

영양식도 잘 못먹고 자랐을거 같고 백만장자가된 중년에는

오히려 먹고싶은거,사고싶은거 다 살수있고 호화 저택에서 살던

자본가 슐리만이었기에 건강해졌을거 같고 실제로도 그렇게

자서전에 쓴거로 본거 같습니다,,


슐리만은 그렇게 아내와 이혼하고 바로 트로이와 관련된 나라인

그리스 건너가 그리스인 어린 여인과 결혼해서

거대 저택에서 살게됩니다,,

결혼한 과정도 어이없는게,, 트로이를 발굴해야 하는 슐리만은

그리스 문화에 정통한 보조자가 필요했고

이에 아테네 신문에다가 아내 모집 공고를 냅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친구의 친척이었던 17살의 그리스 아내와

47살의 백만장자 슐리만은 결혼을 하게됩니다,,

이는 사랑이라기보다 철저히 슐리만은 그리스 여인의 그리스어와

트로이 발굴을 할때의 보조자,현지인이라는것때문,

어린 그리스 여인은 사랑보다 백만장자 중년 남자의

돈때문에 결혼한 사이라고 생각됩니다,,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 이름도

안드로마케(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아내)와

아가 멤논(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로 트로이와 관련있는 이름들입니다,,

세상에,, 아내몰래 첫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이름을 짓는 경우들은

들은거 같으나 그가 얼마나 트로이에 미쳐있는지를 알수있게된 이야기 같습니다,,


슐리만은 꿈을 위해서라면 과정들은

팽겨치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마인드로 산거 같습니다,,

결국 그리스어와 그리스문화에 정통한 아내와

꿈을 이루기위한 조건으로 결혼한거나 마찬가지 같습니다,,

물론 슐리만은 그리스어도 6주만에 마스터했다고 합니다,,

즉 아내와 이혼하고 어린 그리스 여인과 결혼하고

어린 아내와 같이 트로이를 발굴하고, 트로이 발굴을 하고,꿈을 이루고나서

옛 첫사랑인 민나에게 편지를 보낸 미친 남자라고도 생각되는거 같습니다,,


슐리만은 1868년 46세때 결국 그동안 모아두었던 수많은 돈으로

발굴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후 터키,오스만 정부의 허가를 받고

그리스 건너 터키지역에서 트로이 유적발굴을 시작하는데요,,

그의 발굴작업에는 슐리만과 같은 고고학의 꿈을 가진

학자 프랭크 칼버트라는 사람과

돈이 넉넉했던 슐리만의 합작으로 이루어지게됩니다


그의 인생 일대의 모험,어찌보면 8살때의 꿈을 잊지않고,

계속 그 꿈을 생각하며 40년간 간직해오다 드디어 시행하게됬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렇기에 슐리만을 근성가이,근성 사나이라는 말도 있는거로 본거 같습니다,,

슐리만의 발굴작업의 인부들의 반응은

'부잣집 도련님이 건설도 아니고 땅파고 뭐하는 짓이지?' 하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던거 같습니다 사실은 슐리만은 부잣집 도련님

출생도 아니었고 고고학이었으나 이미 그는 백만장자가 되있어서

그렇게 비춰진거 같고 또 고고학도 당시에는 별 개념도 없었던 시대였던거 같습니다

당시에는 학자들도 슐리만을 트로이 전설따위를 믿고

무턱대고 발굴을 한다며 비웃었다고 합니다,,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유적>


<하인리히 슐리만의 미케네 유적>


저가 사는 고양시 일산에서 매달 몇천만원정도 은행에 저축하면 저축 vip,

지역 지점 저축 1위가 되는거 같은데요,,

지역사회에서 이미 유명해지는것으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을

슐리만은 이미 지역사회,유럽에서 백만장자로 유명하게 된거 같습니다,,


그러다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 이후부터 고고학 붐,유행이 서양에서 일어나고

카나본 경,하워드 카터의 이집트 투탕카멘 유적 발굴도

슐리만 이후입니다,,


<카나본 경과 하워드 카터경의 투탕카멘 유적 발굴 이야기>


그의 발굴 기록,스스로의 이야기를 보면


<슐리만의 발굴당시의 스스로의 기록>

새벽 3시반에 일어나 4시에 바다로 가서 수영을 잠깐하고 돌아와

발굴에 나서고 8시 아침을 먹고 발굴하고 낮잠을 자고 발굴하다

저녁에 식사. 두끼 식사와 수영 외에 나머지는 불같은 더위속에도 발굴에만 매달렸다


트로이 발굴에 전재산,온몸을 던진 슐리만은 1870년부터 만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발굴에 매달립니다,,

슐리만을 아마추어라 비하하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천재란 이런것이다를 몸소 보여주는 근성 사나이 같습니다,,

세계사에서도 에디슨도 수천번의 실험끝에 전구를 만들고

화학사에서도 화학자들이 원자의 비밀을 밝힐때

노가다 작업으로 계속 반복하며 실험을 해서

원자의 원리들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슐리만은 얼마후 장식물,가재도구,유물들을 발견했고

지하 1층부터 지하7층까지 층층히 파내갔고

학계의 분석결과 그곳은 트로이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꿈을 이룬,, 거대한 유적지를 발굴한 슐리만은 뭔가가 허전했는데요,,

바로 황금 유물들입니다,,

1873년 발굴에 매달리던 슐리만은 한곳을 집중적으로 파헤쳤고

매몰 위험이 있었으나 그곳에서 팔찌,브로치,목걸이 등 황금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슐리만은 발굴현장 인부들에게 오늘은

휴가니 편히 쉬라고 집으로 돌려보냈고,, 조용히 아내와

같이 둘이서만 그곳에 들어가 황금들을 만지게 됩니다,,

8700점의 황금유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슐리만이 발굴한 대표유물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


저도 책과 인터넷에서 본 글들을 솔직히 짜집기 하는거라,,

순서나 연도가 약간 부정확할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슐리만은 황금 장신구들을 어린 아내 소피아에게 씌우고 입히고

사진기자를 불러 사진을 찍어 자랑을 하기도 했고,,

터키 정부의 허락으로 터키땅에서 발굴했으나

나온 황금 보물들이 앞으로 터키정부에 알려지면 바로 압수라 할수있었기에

슐리만은 조용히 보물들을 고국인 독일로 빼돌리게 됩니다,,

결국 트로이 황금유물들은 독일로 가게되고 2차 세계대전때

독일을 점령한 소련군에게 넘어가서 소련,러시아쪽으로도 가게됩니다

1996년 러시아에서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 유물들이 나왔고

이후 독일정부는 반환을 요청하나 러시아는 거부,

이에 그리스와 터키도 소유권을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나

러시아는 정당한 전리품이라며 거부했고

천재고고학자 슐리만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으나 과정들이 잘못되서

지옥문,헬게이트를 여시고 가셨다고 할수있습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슐리만??>


슐리만에게는 아마추어 고고학자라는 오명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가 발굴한 유적이 트로이인게 사실로 들어나나

그가 생존할 당시에는 그게 확실하지 않아 긴가민가 했던 상태였고

슐리만은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롬버스가 나는 인도를 갔다고 죽을때까지 주장한거같이,,

계속 트로이를 발굴했다고 하다가 본인도 긴가민가 하셨는지 돌아가실때

아닐수도 있다고 말하시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본거 같습니다,,

비슷한 사례로는 탐험가 로얄 아문센도 남극점은 최초가 맞고

북극점은 본인도 최초로 갔는지 논란이 있었으나 사후에

북극점 탐험도 최초인게 밝혀지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이는 어찌어찌 그렇다쳐도,,

슐리만은 당시 고고학에서 붓이나 조심히 땅을 파내려갔다기보다

고고학을 모르는 인부들을 모아서

삽을들고 언덕을 파내려가는 형태로 발굴을 했고

발굴 당시 발견된 석조물들이나 기초석들도

당시 파내져서 언덕아래로 굴러내려갔다고 합니다,,

또 발견된 장신구들을 아내 소피아에게 씌우고 사진을 찍으며

자랑을 한것 등으로(오늘날에는 매우 유명한 사진이 됩니다,,)

오늘날에도 아마추어 발굴 논란이 있습니다


<이사진으로 슐리만의 아내 소피아에게 유물들을 씌우고 찍었습니다,,

세계 고고학사나 슐리만에 관련하면 나오는 매우 유명한 사진입니다>


그러나 슐리만 스스로도 발굴 스케치,기록등 여러 흔적들을 꼼꼼히 남겼다는것,

연구 성과를 꾸준히 발표했다는것과

어린시절부터 계속된 준비,돈모으기, 발굴당시에

3년동안 계속 매일 나가서 일했던 그의 자세와 열정은

결코 아마추어라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슐리만이 우리에게 남긴것은 트로이가 실존했다는 거를 밝혀내셨다는것과

당시 유럽인들은 세계에서 식민지를 넓히고 가장 잘나가고 있었고

스스로 고대부터 문명의 중심,태생지였다는 일종의 자아도취등이 심했는데요,,

슐리만의 고대 문명 발굴로 인해 유럽인들도 동양과 교류속에서

발전했다는거를 알게됬다고도 본거 같습니다,,

슐리만의 발굴로인해 고대 전설,신화속 지역이었던 트로이가 발견되고

미케네 문명이 발굴되 고대 유럽사의 미스터리들이 풀리게됬고

이는 세계인들에 큰 충격을 주고 이후 고고학 붐,고고학 시대가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할수있습니다,,

슐리만은 세계 고고학의 선구자이며 유물 빼돌리기,유물 파괴,사기등 여러

악행으로도 유명하나 그의 순수한 열정,업적은 모두가 인정하기는 합니다,,


슐리만은 그렇게 꿈을 이루고나서 돌아가실때

이탈리아 나폴리에 길에서 발작을 일으켜

쓰려졌다는데요,, 평소 진주종,귓병을 앓고있었으나

전문의들도 고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슐리만은 홀로 쓰러져 있었는데요,,

백만장자였으나 초라한 옷차림을 입고있었고

이에 옷차림을 보고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해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꿈을 이룬 사람의 허무,초라한 죽음이 아닐수 없습니다,,

꿈을 발굴한 남자,몽상가로도 불린 고고학자 슐리만,

그리스를 사랑한 그의 장례는 그리스 국왕과 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리스 아테네에서 치뤄졌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꿈을 잊지말고

의지와 근성의 슐리만같이

시간을 떠나서 꿈을 이뤄나가는 사람이 됩시다~~!!,,


<하인리히 슐리만 1822-1890 >


슐리만에 관해 또하나의 사실은 슐리만은 독일인이었고

그는 卐 문양,우리 절에서 볼수있는 그 문양을

트로이 유적에서 발견해 卐 문양을

아리아 민족(독일 민족)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전파했는데

이후 나치,히틀러는 이문양을 나치 독일의 상징 기호로 악용하게 됩니다,,

졸지에 卐 문양은 하켄크로이츠, 나치의 상징이 됬다고 합니다,,

수천년간 卐를 사용한 불교,힌두교 신자들은 갑자기 공포의 상징이 되버린

문양이 되게 됬다고 할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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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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