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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장애인,어린이는 사회적인 약자라 할수있고

보호받아야하는 분들입니다 저역시 이런 분들을 자주 만나는거 같은데요

물론 여자는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별이 다른거 뿐이니까요

(여성 노약자,장애인,어린이 제외요,,)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개념같은게 부족한 어린이들도 본거같고,,

말을 잘 못하시는 분도 봤고

치매에 걸려서(스스로 치매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횡설수설하시는 노약자 분도 봤고

저도 언젠가는 늙을거라는 생각도 든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회적 운동을 하신분들의

이야기를 쓰게된거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된거고 운동이라 하기도 민망하나

당시에는 사회적인 충격이었고

혁신이라는게 다 그런거라 할수 있는거 같습니다,,

<어린이>라는 용어를 만드신

소파(다산 정약용의 다산같이 호입니다 작을 소 물결 파 小波 작은 물결이라는 뜻입니다)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소파 방정환>


방정환 선생님은 1899년 한성부,오늘날 서울에서 상인집안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어렸을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난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조선총독부 토지 조사국에서 서류 필사원으로 일하게 되십니다,,

조선 총독부는 일제 강점기때 일제가 우리나라 서울에 설치한

조선,한국인들을 지배하는 기관으로 식민지배 기관이라 할수있습니다

조선 총독부 토지 조사국은 당연히 순수한 의도의 토지 조사라기보다

식민 지배기관답게 조선인들의 토지를 수탈하는 기관이었습니다

생활고로 이런일을 하셨으나 토지 수탈로 지탄을 받는 기관이었기에

곧 사퇴하셨다고 합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당시 소년 입지회라는 곳에서

활동하시며 어린이를 위한 놀이와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됬다고 합니다

이후 3.1 운동때 민족 대표 33인중 한명이셨던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

선생님의 딸과 중매 결혼을 하게되는데요

장인 손병희 선생님의 도움으로 중단했던 학업을 다시 해나갔고

보성 전문학교 법학과 오늘날 고려대학교 법대에 입학합니다

당시 보성전문학교는 천도교 재단에 인수됬다고 합니다,,


즉 방정환 선생님은 인맥,혼맥(결혼 인맥)으로 처가집의 덕을

많이 본 사람이라 할수있는거 같습니다,,

이거는 사실 ㄱㅊ은 이야기라 할수는 없는거 같습니다,,


다시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로 가겠습니다,,


이후 방정환 선생님은 장인 손병희 선생님을 도와 3.1운동에도

참여하다 고문을 받다가 풀려나기도 하셨고,,

청년 문화운동을 시작하십니다

당시에는 3.1 운동이나 무장 투쟁,, 이외에도

우리 스스로 계몽하고 배워서 스스로 힘을 길러서 독립하자는

민족 계몽운동(대한제국때는 애국계몽운동입니다)같은 경우도 있었고

방정환 선생님도 이런 지식인중 한명이셨다고 할수있겠습니다

이후 어린이 운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어린이라는 용어는 없었고

어린이들은 어린놈,애새끼,,

어린것,이놈 등으로 부른게 다였다고 할수있습니다,,

양반가나 왕가에서도 아이들은 일찍죽어서

귀신들이 질투하지 않게 개똥이,똘복이같이

아명,아이 이름을 천하게 짓고(미신,,) 이후

개명,이름을 바꾸는 방식들이 유행??,,했던거를 보면

부유한 집들도 다르지 않았다고 할수있습니다

개발도상국 부자와 선진국 부자의 소유액이 비슷하더라도

삶의 질은 선진국의 부자가 더 나을수 있듯이

(비유이고 개발도상국 비하가 아닙니다,,)

결국 당시 조선 사회 지배층들도 조선 일반백성,민중들의

사고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할수있고

이에 사회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느낀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 사회운동을 시작하게 된거 같습니다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하기도 하십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명언 1>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방정환 선생님은 당시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하자하시며

1923년 <어린이>라는 아동잡지를 발간하십니다

<당시에는 이린어라고 써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은거 같습니다,,>


<어린이 잡지 창간호 첫머리,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예찬과 인간애가 있는 말 같습니다>

죄 없고 허물 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 나라!

그것은 우리 어린이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어느 때까지든지

이 하늘 나라를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사람이

모두 깨끗한 나라에서 살게 되도록

우리의 나라를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초기에는 인기가 없었으나 방정환 선생님은 구연동화등으로

열심히 광고하고 이후 잡지 <어린이>는 당시 초대형 잡지로 크게 됩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강연,동화 구연등으로 우는 학생들도 있었고

이를 감시하던 일본경찰도 방정환 선생님의 인품에 감동해

일본인이었다면 더 나았을거라고 안타까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재정난과 운동권,조직 분열과

과로,스트레스,비만,과도한 흡연 등 여러 건강문제가 겹쳐서

33살의 젊은나이에 1931년 요절,일찍 사망하십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어린이 존중 사상과 어린이라는 용어,

어린이날은 오늘날에도 남아 우리에게 전해져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유언>

1 문간에 검정 말이 모는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왔으니 가야겠다,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


2 이 나라 어린이를 위하여 좀더 힘쓰지 못하고 가니 미안하다


두 유언다 돌아가시면서도 어린이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첫번째 유언에서 문간에 검정말,검정마차는 저승사자같이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을 의미하는걸까요??,,

실제로 방정환 선생님은 낭만파적인 인물이었던거 같고

이런 말을 남기셨으나 우리게게는 보통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 라는 명언으로 유명한거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 지식인들은 무기력했고

시인 이상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첫구절의

소설 <날개>같이 광기와 혼란한 사회속에서 살았던 분들 같습니다

이상 시인이나 윤동주 시인도

일제강점기때 젊은 나이에 요절,일찍 사망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인간존중 사상,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전해져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날의 약속>

어린이를 내아들놈,딸 년하며 자기의 물건같이

여기지 말고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에게는 잡지를 자주 읽히십시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어린이를 절대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보십시오

그리고

제발 어린이를 때리지 마십시오 - 소파 방정환


어린이들은 어리고 약한 존재입니다 배우 김혜자 선생님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말이 떠오른거 같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절대 폭력을 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명언 2>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입니다. 어른들은 미래의 희망이요,

주인공이 될 우리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존경합시다!


저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습니다 비록 오늘날 보기에 미약한것도

있었으나 어른들의 보호를 받았고 현재는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린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또 우리 모두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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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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