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왕 10년 2월 봄
오나라 왕인 손권(당시 중국은 소설 삼국지의 배경인
삼국시대였습니다) 이 사신 호위를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동천왕은 그 사신을 억류했다가
7월 가을에 그의 목을 베어 위나라에 전했다고 합니다,,
고구려는 초강대국, 제국이었던 한나라가
위나라,촉나라,오나라 삼국으로 분열되자
이에 변화하는 외교 상황에서
가까운 나라였던 위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던거 같습니다,,
동천왕 11년
고구려에서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위나라의 연호가 개정된 것을 축하하였고
이때가 경초 원년(조조의 손자, 조비의 아들인 조예의 연호)
이었다고 합니다
동천왕 12년 위나라 태부 사마선왕이
군사를 동원하여 공손연을 토벌했고
이에 친 위나라 정책을 했던 고구려에서는
동천왕이 주부 대가로 하여금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돕게했다고 합니다
동천왕 16년
동천왕은 중국 왕조인 위나라와 친하게 지내면서도
고조선 고토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잊지 않았습니다
동천왕 16년에는 동천왕이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격파했다고 합니다
동천왕 17년
1월 봄에 동천왕은 왕자 연불을 왕태자로 삼고
국내의 죄수들을 사면했다고 합니다
동천왕 19년
3월 봄에 동해 사람이 미녀를 바쳤고
동천왕은 그녀를 후궁으로 맞이 했다고 합니다,,
10월 겨울 동천왕은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 북쪽 변방을 침공했다고 합니다
신라와 고구려의 충돌기록은 동천왕때가 최초같은데요
고구려는 태조왕때까지 주변 소국들을 정벌하고
초강대국 중국 한나라에 맞서며
동북아의 강국으로 거듭났고
이때부터는 중국의 굵직굵직한 국가들인
위나라나 한국 삼국시대 주요 국가인
신라등과 충돌하게 되는거 같습니다
고조선 멸망 이후 그땅에는 여러 소국들이
생겨났고 고구려는 소국들을 통합했고
남쪽에서는 마한,진한,변한들이
백제,신라,가야라는 나라로 나타나게되고
슬슬 본격적으로 삼국시대가 시작되갑니다,,
물론 당시 신라는 동남쪽 구석에 위치해
고구려,백제에 비해
선진국이었던 중국과 교통이 어려워
문물이나 문명 발달이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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