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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6대왕 고국원왕

재위기간 40년 331~371년


고국원왕은 국강상왕이라고도 합니다

이름은 사유이고

혹은 쇠 釗 라고도 했습니다


미천왕 15년에 태자가 됬고

32년 봄에 미천왕이 붕어(사망)하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고국원왕 2년

2월 봄

고국원왕은 졸본에 가서

시조의 사당에 제사지내고

순행하며 백성들을 위로하고 늙고 병든자를 구제했습니다


<고국원왕>나의 조상님의 땅의

백성들을 결코 굶기지 않으리라 !


3월

고국원왕은 졸본에서 돌아왔습니다


고국원왕 4년

8월 가을

고국원왕은 평양성을 중축했고


12월 겨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고국원왕 5년

정월(1월) 봄에는

북쪽에 신성을 쌓았습니다


7월 가을

서리가 내려서 곡식을 해쳤다고 합니다


고국원왕 6년

3월 봄

큰 별이 서북방으로 날아갔습니다

사신을 진나라에 보내서

방물(고장에 특산물)을 공물로 바쳤습니다


고국원왕 9년

연나라 왕 황(모용황)이 침입해서

그의 군사가 신성까지 이르렀습니다

고국원왕이 동맹을 요청하자

그들은 곧 돌아갔습니다


모용황은 모용외의 아들로

모용외는 고구려와 맞선 인물이었으나

유능한 모용 선비족의 왕이었습니다

미천왕때 모용외는 지략으로

고구려와 단선비,우문 선비족 연합군을 물리친

모용 선비족의 왕이었고

그의 아들 모용황대에 이르어

아버지 모용외의 기반을 토대로

연나라(전연)를 건국합니다


고국원왕 10년

고국원왕은 세자를 보내서

연나라 왕 황(모용황)을 예방케 했습니다


고국원왕 12년

2월 봄

고국원왕은 환도성을 보수하고

국내성을 쌓았습니다


8월 가을

고국원왕은 환도성으로 옮겨왔습니다


<라봉봉>

당시 연나라는

떠오르는 강국이었습니다

고국원왕이 이렇게 조공을 하고

저자세 외교로 나간이유는

그가 무능해서라고 생각된다기보다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은

상당한 팽창정책을 했던 왕이었고

이로 인해 고구려 영토와 인구는

크게 불어나있는 상태가 됬을거 같습니다

또한 미천왕의 낙랑,대방의 정복,축출로

백제와 국경을 맞대게 된 환경변화가 있었고

백제 역시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고구려는 만주지역의 압도적인 철 생산량과

풍부한 말자원등이 있는 나라였으나

또한 이렇게 사방으로 외국과 국경이 마주하게 됬고

미천왕대의 영토확장,낙랑군 정복후

백제와 국경을 마주하고 본격적인 삼국시대가

시작되며 지켜야할 국경선들이 넓어지고 많아지게 됩니다


또 고국원왕은 이후 재위당시 하필이면

백제 왕이 백제의 위대한 정복군주였던

근초고왕의 재위기였기도 했습니다,,


고구려가 당시 국제 외교에서

저자세로 나온것은 고구려의 힘이 약해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정말 힘이 약해서 살기위해

저자세로 나온 외교는

신라가 있으나

당시 고구려는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대에

풍요로운 농경,수준높은 기술과 문화를 가졌던

한사군 낙랑군,대방군을 정복,수복한 사태였고

이는 고구려 사회의 수많은 문화충격과

혁신등이 일어나는 상태였다고 할수있습니다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대에

큰 확장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루었기에

고국원왕대에는 이렇게 외국과 저자세로 나오며

정복지를 위로하고 밥을 먹으면 소화가 반드시 필요하듯이

이렇게 쉬어야 하고 안정기가 필요했기에

확장보다는 저자세로 나온게 아닐까 싶습니다


고국원왕은 무능한 왕은 아니었고

문제는 이후 고국원왕 재위당시

백제의 왕이 백제 최전성기 왕이었던

근초고왕이었기에,,

고국원왕은 근초고왕에게 죽게되는

비운의 고구려 왕이 됩니다,,

그의 인생은 비극과 굴욕으로 점철(얼룩져)되있으나


결코 무능하거나 고구려 상황

자체가 나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넘어지거나 쓰러져도

못일어날수있는 사람이 있고,,

금방 일어날수가 있는 사람이있습니다


금방 일어날수 있는 사람은

기초체력이 탄탄한 사람으로

넘어져도 일어나

다시 걸어나갈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금방 일어날수 있는 사람쪽이었고

당시에는 고구려를 크게 견제할만한

세력도 없었기에 고국원왕의 저자세 외교는

굴욕적이라 보이지 않습니다

고구려는 저자세 외교로 갔어도

실리를 충분히 챙기고 있었고

정반대로는 주변국에 황제국,형노릇을 했으나

주변국,동생국가들에게 계속 돈을 바쳐서

평화를 구했던 중국왕조 송나라가 있습니다,,


고국원왕의 인생을 보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생각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은

겸손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우리 속담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속이 꽉차게되고 풍요로운 열매(쌀)를

맺습니다 반대의 말은 빈 수레가 요란하다입니다,,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이 정복한 지역으로

고구려는 수준높은 기술발달과 혁신이 있었고

국정 스타일도 크게 변화하게 되고 점점 무거워집니다,,

그러다 이후 너무 무거워져서 감당할수가 없게되면

고구려와 고대시대 국가들은 멸망하고

그들이 남긴 유산들을 바탕으로

중세시대(고려)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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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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