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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원왕 13년

2월 봄

고국원왕은 아우를 연나라에 보내서

자신을 신하로 칭하면서

예방(예를 갖추는 의미로 인사차 방문함)케 하고

1천건에 달하는 진기한 물건들을 바쳤습니다

이에 연나라 왕 황(모용황)이 곧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의 시체를 돌려보냈고

고국원왕의 살아있는 어머니는 그대로 남게하여

볼모(약속 이행의 담보로

상대편에 잡혀 두는 사람이나 물건)로 삼았습니다,,


7월 가을

고국원왕은 평양의 동황성으로 옮겨왔습니다


<김부식>동황성은 지금 서경(고려에서 평양을 부르던 말,

삼국사기를 쓰신 김부식님은

고려시대 사람이었습니다)의

동쪽 목멱산에 있다


또 사신을 진나라에 보내어 조공을 바쳤다고합니다


11월 겨울

다섯자의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고국원왕 15년

10월 겨울

연나라 왕 모용황은

모용각으로 하여금 침공케 해서

남소를 함락시킨후

수비군을 두고 돌아갔습니다


<고구려 장군들>폐하 !

연나라 모용황이 또다시 공격해서

남소성을 함락시켰습니다 !

저희에게 군사를 주시면 당장,,


<고국원왕>치욕스럽지만 참아야 한다,,

어머니가 연나라에 인질로 잡혀계신다,,

분명 연나라는 오래가지 못할것이다 !


그렇게 고국원왕은 또다시

인내하고 기다렸습니다,,


고국원왕 19년

고국원왕은 동이 호군 송황을 연나라에

돌려 보냈습니다 송황은 연나라를 탈출한 망명자였고

고구려는 연나라에 이렇게 계속 저자세로 나오며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연나라왕 모용준은 그(송황)의 죄를 용서하고

이름을 활이라고 고쳐서

중위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고국원왕 25년

1월 봄

고국원왕은 왕자 구부(고구려 17대왕 소수림왕)를

왕태자로 삼았습니다


12월 겨울

고국원왕은

연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볼모와 공물을 바치고

왕모(왕의 어머니, 고국원왕의 어머니)를 돌려보내 주기를 요청했고

연나라왕 모용준은 이를 허락하고

전중장군 도감으로 하여금

왕모 주씨를 호송하여 고구려로 귀국하게 했습니다

또 고국원왕에게 정동대장군영주자사의 작호를 주고

낙랑공으로 봉하니

이전과 동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라봉봉>고국원왕이 연나라에게 계속 당하면서도

치욕스러운 상태에서도 계속 저자세로 나왔던게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어머니가 연나라에 인질로 잡혀있었고

끝내 다시 무사히 돌려보내게 했다는거는

인간적으로 훌륭한 업적이라 할수있습니다

자신의 가족도 못지키면서

어떻게 나라를 지킬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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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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