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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


영류왕 25년

정월(1월) 봄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영류왕은 서부 대인 연개소문에게

명령해서

장성(천리장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게 했습니다


10월 겨울

개소문(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였습니다,,


11월

당 태종은 영류왕이 죽은것을

듣고 동산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고

명령을 내려서

물건 300단 段 을 주고

지절사를 보내서

조문하고 제사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라봉봉>영류왕의 지나친 친당정책에

고구려 내 강경파 대신들의

불만이 폭주했고

그 결과 강경파 대신의

대표였던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수있습니다,,


삼국사기를 편찬하신 김부식은

연개소문을 반역열전에 넣었습니다


그는 고구려의 대신으로서

반역자였지만,,

또한 절대 굽히지 않았던

마지막 고구려의

자존심이었다고 할수있고

고구려의 마지막 불꽃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김부식님은 유교적 사관으로

그를 반역열전에 넣었고

신채호 선생님은 구 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책을 세우고

당태종을 격파한 중심인물로 평했고

북한에서는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들고있고

한국에서는 평가가 아직도 엇갈리는

인물로 집권과정의 비정당성은

그의 능력에 계속 발목을 잡았다는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할수있습니다,,


그 불이 해로운 대화재인지

마지막 고구려인들의 자존심의 불꽃인지는

오늘날에도 여러 평가가 있으나

그는 정말 마지막까지 고구려인다웠고

(착하다, 나쁘다가 아니라

고구려인 답다라는 뜻입니다,,)

저도 그가 고구려의 마지막 불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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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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