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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을 헐어버린 영류왕>


영류왕 14년

당나라에서 고구려에

광주 사마 장손사를 보내서

수나라 전사들의 해골을 묻은 곳에

제사지내고

당시에 세웠던 경관을 헐어버렸습니다


경관은 고구려 - 수나라 전쟁 당시

고구려에서 전사자의 유해를

한곳에 모아 장사지내고

전공을 기념하기위한 합동 무덤,

전승 기념비라 할수있었고


영류왕은 친당정책의 일환으로

경관을 허물었고

이에 고구려 강경파 대신들의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려 강경파 대신 1>

우리가

피땀흘려서 지켜낸 땅의

전승기념빈데

우리와 얘기도 없이 허무는 구만 ,,


<고구려 강경파 대신 2>

우리를 무시하는거도 아니고

해도해도 너무하는거 아닌가 ?


경관은 우리의 자주성을

상징하는 기념비인데

왕은 상의도 없이

그냥 허물어 버렸소 !


아예 당 황제에게 쓸개도

내줄것 같이 구는구만?


이 나라가 앞으로 어찌될지 ㅉㅉ,,


<영류왕의 천리장성 축조>


2월 봄

영류왕이 백성을 동원해서

긴 성을 쌓았습니다


<영류왕>경관을 허무니

반발이 심하군,,

나도 내 나름대로

성을 쌓으며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려하는데

여간 힘이 드는구나,,


영류왕이 쌓기 시작한

긴 성은

성의 동북쪽은 부여성부터

시작해서

동남쪽으로 바다까지 1천여리가

되었고

이 성은 16년만에

준공되었습니다


이 성은 천리가 되어서

천리장성이라고도 하고

고구려가 멸망할때까지

고구려의 서부 방벽으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수행하게 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영류왕 21년

10월 겨울

신라 북쪽 변경에 있는

칠중성을 침공했습니다


신라 장군 알천이 막아서

칠중성 밖에서 우리(고구려)와 싸웠고

우리 군사가 패배했습니다,,


영류왕 23년

2월 봄

세자 환권을 보내서 당나라에

조공했습니다


당 태종이 위로하고

선물을 특별히 후하게 주었고

영류왕이 당나라에 자제들을 보내서

국학에 입학시켜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9월 가을

햇빛이 없어졌다가

사흘이 지나자 다시 밝아졌습니다


<라봉봉>

영류왕은 오랜 고구려 - 수나라 전쟁이후

집권한 왕이었고

당시 수나라와 전쟁할때의

전쟁영웅 출신의 왕으로서

이렇게 성을 쌓거나

그래도 24년을 재위하며

나름의 지구책은 보였다고 할수있으나


당시 당나라에서는

당 고조에서 당 태종으로 바뀐시기였고

당 태종은 형제의 난,쿠데타로 집권한

상당한 야심가라고 할수있었고


고구려 입장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내실을 안정시켜야 했으나

당시 당나라의 요구를

아무런 실리도 없이 들어주며

고구려내 강경파 대신들의

불만이 생겨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영류왕 역시 전쟁으로 지친

고구려 백성들을 안정시키며

당과의 우호적으로 지내려 했으나

정작 당태종은 고구려와

우호적으로 지낼 마음이 없는

강경파,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야심이 있는 인물이었고


영류왕의 대당정책은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굽신됬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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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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