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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왕 23년

2월 봄

유리왕이 아들 해명을 태자로 삼고

국내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했습니다


유리왕 24년

9월 가을

유리왕이 기산의 들에서

사냥하다가

비상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조정에 등용해서

우씨 성을 주고

유리왕의 딸을 아내로 삼게했습니다


유리왕 27년

정월(1월) 봄

왕태자 해명이 옛 도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힘이 세고 용감했습니다


황룡국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서 센 활을 선사했습니다


해명이 그 사신 앞에서

활을 당겨 꺾으면서 이르기를,,


<해명태자>내가 힘이 센 것이 아니라

활 자체가 강하지 않다


고 말했습니다


황룡왕이 부끄러워 했고

유리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해서

황룡왕에게 이르기를,,


<유리왕>해명은 자식으로서

효성이 없으니


청컨대 나를 위하여

죽여버리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3월

황룡왕(황룡국왕)이 사신을 보내서

태자(해명)와 만나기를 요청했습니다


해명태자가 가려고 하니

어떤 사람이 만류하며 간 諫

(간하다, 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다)하기를,,


<어떤 사람>오늘 이웃나라에서

이유없이 만나자고 하니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고 했습니다


해명태자가 말하기를


<해명태자>하늘이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나를 죽이려 하지 않거늘 같습니다)

황룡왕이 나를 어찌하겠는가 ?


하면서 드디어 해명태자는

황룡국으로 떠났습니다


황룡왕이 처음에는 그,해명태자를 죽이려 했으나

만나보고는,,


<황룡국왕>으음,,

(고구려 왕께서 자신의 자식을

죽여달라 부탁했지만,,

해명태자가 풍채가 좋고 인물이

훤하구나 죽이긴 아까운 인물이고

고구려와 괜히 척져야 할 이유도 없겠지,,)


황룡국왕은 감히 해명태자를 해치지 못하고

예절을 갖추어서 돌려보냈습니다


유리왕 28년

3월 봄

유리왕은 사람을 보내서

해명에게 말했습니다


<유리왕이 보낸 사람이 전한

유리왕의 말>내가 도읍을 옮긴 것은

백성들을 안정시켜

국가의 위업을 다지려는 것인데


네가 나를 따르지 않고

힘이 센 것을 믿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자식된 도리가

이와 같을 수 있는가 ?


그리고 해명태자에게 칼을 줘서

자결하게 했습니다,,


해명태자가 즉시 자결하려 하니

어떤 사람이 말리면서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대왕(유리왕)의

맏아들(유리왕의 첫째 아들 도절)이

이미 죽었으므로


태자께서는 정당하게 후계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 왕의 사자가 한 번 와서 말한다 하여

자결한다면


왕의 지시가 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


이에 해명태자가 말했습니다


<해명태자>전번에 황룡왕이

강한 활을 보냈기에


나는 그들이 우리나라를 업신여길까

걱정되어


일부로 활을 잡아 당겨 꺾음으로서

답한 것인데


뜻밖에 부왕(아버지 왕 = 유리왕)의

견책을 당하게 되었다


이제 부왕이 나를 불효하다고 생각하여

칼을 내려 자결케 하니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겠느냐 ?


해명태자는 여진 동원(동쪽 언덕)으로 가서

창을 땅에 꽂아 놓고

말을 타고 달려서

그 창이 찔려 자결했습니다,,


이 때 해명태자의 나이가

21세였습니다,,


해명태자는 태자의 예식으로

동원(동쪽 언덕)에 장사지내고

그곳에 사당을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그 땅을 창원(창[찌르는 무기] 언덕)

이라 했습니다


<김부식>논자(논하는 자,논하는 사람)는 말한다


효자가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마땅히 어버이의 곁을 떠나지 않은 것으로

효도를 삼아


마치 문왕(중국 주나라 문왕)이 세자 시절에

행동하듯 하여야 한다

(주 문왕은 세자시절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잘 가르쳤다고 합니다)


해명은 옛 도읍에 살면서

용맹을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으니

그는 당연히 죄를 범한 것이다


또한 전해오는 말에 이르기를


'아들을 사랑하거든

옳은 방향으로 가르치고

사악한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왕이 처음에는 한 번도 가르친 일이 없다가

죄악이 이루어진 다음에

지나치게 미워하여

죽여버리고 말았으니


이야말로

애비(아비)는 애비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다고 할 수있다


<라봉봉>유리왕은 정치를

상당히 감성,감정적으로 했던 거 같습니다,,

실제로 여러 경험이 생기고

일이 숙달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감성,감각적으로

일해도 대게 맞는 경우가 있는거 같으나

문제는 예외도 있고 그게 완전한

정답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건데

유리왕은 아직 어렸던

셋째아들 무휼(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

이 총명하다는 것을 알고

후대를 위해

그를 왕위에 앉히고 싶어했던

마음도 있었을 거 같습니다,,


그러나 둘째아들 해명도 용감하고

힘센 태자였기에

함부로 첫째 아들,태자였던

도절도 죽은 마당에

둘째 아들 해명을 건너뛰고

아직 어렸던

셋째 아들 무휼에게 물려주기도 그랬고

이에 해명태자를 죽음으로 몰고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록 광기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뭐라 함부로 생각해보기도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유리왕의 행동들이

김부식님의 평같이

아비,아버지 다운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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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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