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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왕 11년

4월 여름

유리왕이 여러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유리왕>선비(선비족)가 자기네 땅의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우리와 화친하지 않으며

정세가 유리하면 나와서 약탈하고

불리하면 들어가 수비를 하니


나라의 걱정거리로다


만약 이들을 제거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장차 큰 상을 주겠노라


부분노라 앞으로 나와서,,


<부분노>선비의 지세가 험준하며

사람들은 용감하고 우직하여

힘으로 싸우기는 어렵지만


꾀로써 그들을 굴복시키기는 쉽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유리왕이 말하기를


<유리왕>그러면 부분노,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


부분노가 대답했습니다


<부분노>거짓 간첩을 만들어

그들에게 보내어 거짓말을 하되


우리나라는 작고 군대가 약하므로

겁이나서 움직이지 못한다


라고 하면

선비가 반드시 우리를 얕잡아 보고

수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 틈을 기다려

정병 精兵 (우수하고 강한 군사)을

거느리고 사잇길로 들어가서


산림 속에 숨어서

그 성을 노리고 있겠습니다


이 때 대왕께서

약간의 군사를 적의 성 남쪽으로

출동시킨다면


적은 틀림없이 성을 비우고


먼 곳까지 추격해올 것입니다


그리되면 저는 정병을 거느리고

그들의 성으로 달려 들어가고


왕께서 용감한 기병을 거느리고

그들을 양쪽에서 협공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리왕은 이 의견을 따랐습니다


선비(선비족)는 과연 성문을 열고

군사를 출동시켜서 추격해왔고


이 때 부분노가 군사를 거느리고

성으로 달려 들어가니


선비가 이것을 보고

크게 놀래서 다시 성안으로 달려 들어왔습니다


부분노는 성문에서 싸워서

그들을 수없이 목베어서 죽였습니다


그 때

유리왕이 깃발을 들고

북을 올리며 전진했고


선비가 앞뒤로 적을 맞이해서

대책이 없고 힘이 다하자

항복해서 속국이 됬습니다


유리왕이 부분노의 공로를 생각해서

상으로 식읍 食邑 (국가에서 특히 공신에게 내려서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한 고을) 을 줬습니다


부분노는 사양하며 이르기를


<부분노>이는 대왕의 덕이 훌륭하신 결과입니다

저에게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


라고 말한채

끝까지 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리왕은 부분노에게 황금 30근과

좋은 말 열 필을 줬습니다


<라봉봉>유리왕 瑠璃王 의 정식 이름은

유리명왕 瑠璃明王 입니다


고구려 2대왕 유리명왕,유리왕대 부터

이렇게 선비족과의 전쟁이 시작됬고

공교롭게도 고구려는 선비족이 세운

국가인 당나라에 멸망합니다,,


선비족은 유목민족으로

유목민족들은 보통 북방,춥고 거친 초원이나

지역 등에서 농경보다는 목축을 하며 살았고

남방민족들 같이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지않았고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으나


유목민족 역시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살았던 것이고

결국 세력이 커졌을때는

남하해서 나라를 세우기도 했고


선비족은 특히 유목민족 특유의

실리적인 기풍을 바탕으로

여러 강력한 통일 제국을 건국하며

중국땅으로 진입해서

중국 지역을 통일하기도 했고

무시할 수 없었던 민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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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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