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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백제 책계왕>


(*전사 戰死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 죽다)


백제 9대왕 책계왕

재위기간 12년 286~298년


책계왕은


<김부식>혹은 청계라고도 한다


고이왕의 아들입니다


그는 체격이 장대하고

의지와 기품 氣品 (인격이나 작품 따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품격)이

걸출 傑出 (남보다 훨씬 뛰어나다)했습니다


고이왕이 붕어,사망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책계왕이 장정(젊고 기운이 좋은 남자)을

징발해서

위례성을 보수(건물,시설의 낡은것을 고침)했습니다


고구려가 대방을 치자

대방은 우리(백제)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앞서

책계왕이 대방왕의 딸 보과를

부인으로 맞이했기 때문에

그래서 책계왕이,,


<책계왕>대방은 우리와 장인과

사위 관계의 나라이니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어야 한다


고 말하고

마침내 군사를 출동시켜서

대방을 구원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이를 원망했습니다,,


<고구려인들>네이놈 백잔 百殘

(잔인한 殘 백제 百 라는

뜻으로 고구려인들이 실제로 백제인들을

낮춰 부른 말) 오랑캐놈들아 !


우리 시조 동명성왕(주몽)께서

너희 백잔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이거늘

아버지의 나라(고구려)가

선조 조선(고조선)의 땅을 점거하고있는

중국 오랑캐들을 부수려 하는데

감히 오랑캐들의 일을 돕다니 !!


고구려인들이 백제에

'원망' 까지 했다는 표현은

원망이란 감정은 애초에 관심도 없거나

다른 나라로만 여겼다면 딱히 생기지도

않았을거 같은데

고구려인들이

옛 조선,고조선의 땅에 지배기관

중국인들이 설치한

대방군을 몰아내려 했을때

그래도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왔던

같은 부여,고구려 출신 민족이었던

백제인들이 대방군을 돕자

실망감이 컸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백제의 첫번째 수도인

한성백제, 오늘날 서울 송파구에는

여러 고구려식 돌무지 무덤(돌들을

쌓아 만든 무덤)

있고 이로 인해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정확성과 백제 건국자들이 부여,고구려계

출신이었다는것이 사실로 입증됬습니다


<책계왕>비록 대방이

조선땅에 설치된

중국의 군현이라 하나

중국은 또한 장인의 나라,,


그러나 또한 조선 유민들이

대방의 중국인들에게 지배받고

복잡한 형세구나,,


책계왕은 고구려의 침략을

염려해서

아차성과 사성을 수축해서

방비하게 했습니다


책계왕 2년

정월(1월) 봄

책계왕이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拜謁 지위가 높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가 뵈다)

했습니다


<책계왕>선조이자 

온조 어라하(왕)의

아버지인 동명왕이시여

선조의 나라인 고구려를 돕지 못하고

장인의 나라 한나라를 돕게됬습니다

부끄럽고 어리석은

부여책계에게 용기를 주소서 !


책계왕 13년

한나라(낙랑군 같습니다)가

맥인(동예로 추정한다고 합니다)들을

이끌고 와서 침략했습니다


<책계왕>한나라가 쳐들어왔다고 ?

내가 대방군(한나라가 조선땅에 설치한

지배기관)을 도와준 것을 잊었단 말이냐 ? !!

한나라는 장인의 나라란 말이다 !!


<백제 신하들>어라하(왕)시여

우리는 그저 한나라의 속임수에

놀아난 것입니다 !!


<책계왕>당장 갑옷과 칼을 가져오라

내 시조 온조 어라하께서 직접

낙랑(한나라가 조선땅에 설치한 지배기관)에

맞서시던 거 같이

나역시 직접 나서겠다 !


책계왕은 직접 나가서 한나라와

맥인들의 군대를 방어하다가

적병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라봉봉>책계왕의 기록의 전부입니다,,

여기서 한나라가 공격해왔다는 기록은

사실 이미 당시 한나라,중국은 유비,조조,손권이

나온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삼국시대가 끝나고

한나라가 멸망하고 통일왕조인 진나라(서진)가

등장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한나라로 기록된 이유는

낙랑군,대방군이 한나라가 조선,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조선땅에 설치한 기관이었고

'한사군'으로도 불리기에 한나라라고 불렸거나

오랬동안의 중국의 통일왕조였기에

한나라 = 중국 이라 생각했던거 같습니다

비슷하게 일본은 오랫동안 중국 당나라와

교류했기에 오랫동안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중국을 당나라라 불렀습니다


책계왕이 어디서

전사 戰死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 죽다)

했는지는 불분명 해서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님이

책계왕이 중국 대륙에서 전사한거를

일부로 누락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실제로 백제는 해양대국이었고

바다건너 요서지방(만주 왼쪽)을

영토로 삼았거나

바다건너인 중국대륙을 공격하거나

중국과 싸웠다는

기록들이 있어서

당시 그런 사정을 잘 몰랐던

고려시대 인물이었던 김부식은

백제의 강역을 축소했다는

비판,이야기들이 있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이 조선인들의

강토에 설치한 지배기관인

낙랑군과 대방군을

고구려인들은 끊임없이

축출 逐出 (쫒아내거나 몰아내다)

하며 옛 조선땅을 되찾으려 했고

장인의 나라였던 한나라 대방을

도운 책계왕은

고구려의 원망을 받았고

끝내 결국 한나라군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백제 9대왕 책계왕이 대방왕(형식상 왕이고

중국 한나라에서 임명한

대방태수라 할수 있겠습니다)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은

책계왕의 아버지였던

백제 8대왕 고이왕대에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을

공격해서 주민들을 잡아왔다가

낙랑태수가 분개 憤慨 (몹시 분하게 여기다)하자

화근이 일어날까봐

다시 주민들을 되돌려 보낸일이 있었고

이에 고이왕은

한나라가 설치한 대방태수의 딸과

아들 책계를 혼인시켜서 화근을 덜어보려

정략결혼 政略結婚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키는 결혼)

을 했을거라고 추정한다고도 합니다


나라를 잃고 지배를 받게되는

식민지배가 장기화되는게

무서운 이유중 하나가

오랫동안 식민지배가 장기화되면

지배 국가(한나라)의 사람들과

지배를 당하는 나라잃은 피지배 국가(조선[고조선])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 혼인을 하며

후사가 이어지면

언어를 잃어버리며

역사를 잊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곧

민족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실제로 중국에 동화되서(같아져서)

나라와 역사를 잃은 민족도

있습니다


저도 이러한 경우들에 대해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고

물론 정말 사랑한다면

국경도 초월하겠지만

이렇게 식민지배로 인해서

당사자간의 사랑이 아닌

정략결혼이나 국가의 명령등

의무적이게 서로 결혼하게 된다면

여러 혼란등이 생기는게 사실입니다,,


끝내 책계왕은 장인이었던

중국 한나라인인 대방왕(태수)를

도우며 같은 민족이었던

고구려인들의 원망만 삿고

결국 중국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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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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