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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의 자객에게 살해당한 분서왕>


백제 10대왕 분서왕

재위기간 6년 298~304년


분서왕은

책계왕의 맏아들(첫째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풍채가 걸출해서


책계왕이 그를 사랑해서

항상 옆에 두었습니다


책계왕이 붕어,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서

분서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10월 겨울

죄수들을 크게 사면했습니다


<분서왕>죄가 가벼운 자나

억울하게 갇힌자들은

모두 사면하라 !


<백제 백성들>총명하신 분이야

성군이 되실게 분명해 !!


분서왕 2년

정월(1월) 봄

분서왕이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 拜謁 (지위가 높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가 뵈다)

했습니다


분서왕 5년

4월 여름

낮에 혜성이 나타났습니다


분서왕 7년

2월 봄

낙랑(중국 한나라에서 조선[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지배기관)

의 서현을 기습해서

빼앗았습니다


10월 겨울

분서왕이 낙랑 태수가 보낸

자객 刺客 (사람을 몰래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에게 살해됬습니다,,


<라봉봉>백제 10대왕 분서왕 역시 부왕,아버지 왕인

백제 9대왕 책계왕과 같이

중국인에게 사망하게 됬고,,

이렇게 삼국사기의

분서왕의 기록 역시 짧게 끝납니다,,


아버지와 아들 대대로 짧은 기록에

중국인들에게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객은 일본 문화,서적들에서

닌자라는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는

이야기로 이렇게

사실은 중국이 원조였습니다,,

일본의 암적인 이야기인

암살자인 자객이나

자살하는 할복같은

이야기들은 중국 한나라시대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것으로 봐서

사실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분서왕 이야기에서 분서왕이

자객에게 암살당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백제의 왕이

자객에게 암살당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없고

한국 여러 이야기에 전해집니다


바로 신라인 황창랑 이야기로

황창랑이 신라 어느시대 사람인지

모르고 황창랑은

낙랑에서 보낸 자객이라기보다

신라인이었는데

백제왕중 살해당했거나

정황상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왕도

많아서 죽인 백제왕이

분서왕이라는 것은 확실하지 않아도

자객에게 암살당한 왕이었기에

분서왕으로 추측하는거 같습니다


황창랑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왕을 죽인 황창랑>


신라에는 황창,황창랑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이 15~16세쯤 되서

칼춤을 잘추었는데


신라임금을 뵙고 말하기를,,


<황창랑>신이 원하건대

임금을 위하여

백제의 왕을 쳐서

임금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신라임금이 허락했고

곧 황창랑은 백제에 가서

거리에서 춤추니

백제의 사람들이 담처럼 둘러서서

구경했습니다


백제 임금이 이를 듣고

황창랑을 궁중에 불러들여서

춤추게 하고 구경했습니다


창(황창랑)이 백제 임금을

좌석에서 쳐서 죽이고

황창은 곧 좌우의 백제 신하들에게

살해됬습니다,,


황창의 어머니가 듣고

울부짖다가

눈이 멀어졌습니다,,


<신라인들>저런 쯧쯧,,

어린 창도, 창의 어머니도

안타깝구나,,


신라사람들이 황창의 어머니를 위해서

눈이 도로 밝아지게 하려고

꾀를 내어서

사람을 시켜서

뜰에서 칼춤을 추게하고

속여서 말하기를,,


<신라인들>창이 와서 춤을 춘다 ~

창이 죽었다는 전일의 말은 거짓이다 ~


하니 황창의 어머니가 기뻐서 울며

눈이 도로(원래대로)

즉시 밝아졌다고 합니다


창이 어려서 능히 나라 일에

죽었으므로 향악 鄕樂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사용되던 궁중음악의 한 갈래)

에 실어서

전해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동국여지승람-


이는 '동국여지승람'에 나온 이야기이고

다른 황창랑 이야기로는

그가 8살에 왕을 위해서

백제 시장,거리에서 칼춤을 추다가

백제왕이 궁중으로 불러서 춤추게 하니

춤추는 척하다가 백제왕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열하일기'나 '임하필기'에 실려있고


무예도보통지 제3권 본국검에는,,


<무예도보통지>'동국여지슬람'에 이르기를

황창랑은 신라사람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나이 일곱살에 백제의

시중 市中 (성,도시 안)에 들어가

칼춤을 추니

구경꾼들이 담처럼 에워 쌓았다


백제 임금이 듣고서 불러다 보고는

마루에 올라와서 칼춤을 추라고

명령하였다

황창랑이 기회를 엿보아

임금을 찔러 죽이니

백제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신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기고

그의 얼굴을 본떠서

가면을 만들어

칼춤의 형상을 만들었다


하는데

지금까지도 그 칼춤이 전한다'


고 하였다


라고 기록되있고


황창랑 黃倡郞 의 이름이

실제이름이 아닌

한자 풀이 해석으로 보면


어린이에게 병역세를 부과한

조선시대 악습인

'황구첨정' 뜻같이

황 黃 은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고

창 倡 은 광대 창자로

말그대로 어린 (칼춤추는) 광대라는

뜻이 되고

본명을 모르니 뒤에 물결랑 郞 자를 붙여서

황랑창이라 했다는 해석도

일리가 있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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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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