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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11대왕 비류왕

재위기간 40년 304~344년


비류왕은 백제 6대왕 구수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라봉봉>구수왕의 맏아들(첫째아들)은

사반왕이었고 얼마안되서

바로 고이왕으로 바뀌었고

고이왕 재위기간 52년

책계왕 재위기간 12년

분서왕 재위기간 6년인데

그 다음왕인 비류왕이

구수왕의 둘째아들로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고이왕이 즉위했다해도

거의 70세에 백제의 왕이 된거고

오차가 없이 사실이라면

40년을 재위했으니

거의 110세까지 재위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론 고구려 6대왕 태조왕도

거의 118세까지 살았고

옛날시대,고대인들은 대체적으로

영아 사망률이 높아서

평균수명이 짧았지만

영아 이후부터는 현대인들과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있고

자연파괴나 훼손이 덜했고

기술도 발달하지 못해서

결국 자연식,

매일 유기농 음식만 먹었고,,

땅과 곡식,자연의 에너지들이

풍성했던 시기이기에

정말 오래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고대에 역시 현대인들이 보기에

불편함, 어려움이 많았고

시대마다의 장점과 단점등이 있습니다


아니면 구수왕의 손자거나

잘못기록됬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이왕과 그 후손들인

8대왕 고이왕 - 9대왕 책계왕 - 10대왕 분서왕

이렇게 '고이왕계'로 백제의 왕위가 이어지다가

분서왕이 낙랑군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되자

다시 초고왕의 후손들인

5대왕 초고왕 - 6대왕 구수왕 - 7대왕 사반왕

그리고 7대왕 사반왕의 동생이었던

비류왕이 11대왕이 되며

다시 '초고왕계'가 백제의 왕위를 잇게됬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구수왕의 둘째 아들인 비류왕은

성격이 너그럽고 인자해서

사람을 아끼며

또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평민으로 살면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분서왕이 붕어,사망했을때

비록 여러명의 아들들이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왕으로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신하와 백성들의 추대에 의해서

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백제 신하들>어라하(왕)께서

비록 왕위 계승에서 밀려서

오랫동안 평민생활을 하셨으나

인자하고 어진분이니 다행이군,,


<백제 백성 1>헉 나랑

저잣거리에서

친구사이셨는데 건길지(왕)가

되시다니 ;;,, 착한분이기는 하셨지,,


<백제 백성 2>그래도 다행이야

전 건길지께서 낙랑의 자객에게

살해당하시고 혼란한 와중이었으니,,


비류왕 5년

정월(1월) 봄 초하루(달의 첫째날) 병자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비류왕 9년

2월 봄

비류왕은 사신을 파견해서

민간을 순회하며

어려움을 살피고


홀아비,과부,고아,자식없는 늙은이들로서

자력 自力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는 자들에게

일인당 곡식 3석씩을 주었습니다


<비류왕이 파견해서

민간를 돌아다니는 사신>어라하(왕)께서

오랫동안 평민생활을 하셨으니

어라하를 속일수는 없겠지,,


오랫동안 평민생활을 하셔서인지

백성들의 삶을 속속들히 꿰뚤어 보고

계시는 구나,,

백제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자들이 많았군,,


4월 여름

비류왕은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찾아가서 뵘)했습니다


비류왕은 해구를 병관좌평(지방의 군사에 대한

일을 하는 백제 고위 직책)에 임명했습니다


비류왕 10년

정월(1월) 봄

남쪽 교외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비류왕이 직접 제물에

쓰일 고기를 베었습니다


<비류왕>평민시절에 내가 힘깨나 썼지 ~


<백제 신하들>역시 기존

어라하들과는 다르시군,,


비류왕 13년

가뭄이 들었습니다


큰 별이 서쪽으로 흘러갔습니다


4월 여름

서울(수도)에서 우물이 넘치고

그 속에서 흑룡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용, 흑룡은 물을 관장해서

어룡과 더불어 기우제 祈雨祭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비는 제사)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하며

봄에 가뭄이 들었는데

4월 여름에 우물이 넘치고

흑룡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가뭄이 끝나고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비류왕 17년

8월 가을

대궐 서쪽에서 활 소는 누대를 쌓아놓고

매월 초하루(달의 첫째 날)와

보름날(매달 15일) 활쏘기를 연습했습니다


<비류왕>내가 평민시절 활깨나 쐈는데

어라하가되니 활만질 일이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니

이거는 이해해 주기를 바라오,,


<백제 신하들>동명왕(주몽)께서도

활을 잘쏘셨는데

아무렴 문제될게

있겠사옵니까 ?

이는 백제의 큰 복이옵니다 ~


<라봉봉>그렇게 연령과 재위기간때문에

의심도 있는 비류왕이라해도

성격이 너그럽고 인자하며 사람을 아껴서

평민시절부터 명성을 떨치게 됬고

왕이 되어서도 평민생활을 해서인지

백성들의 현실적인 삶을 알 수 있었기에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하며

분서왕이 자객에게 살해당한뒤

어수선하고 어려웠을 나라의 상황에서도

유능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보여주게됬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평민출신 왕은

평민 생활을 해봤기에 곧 무조건적으로

착하고 어진왕이라는 거는 아니고

이는 평소 그의 어진성격이

평민시절이나 왕이 됬을때에도 변함없이

이어진 것이고

지배층이었던 신하들만으로도,

지배당하는 피지배층이었던

백성들만으로도

왕이 된것이 아니라

신하들과 백성들이 추대한 왕이라는

이야기는 그가 정말 나라 백성을 위한

유능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리학에서는


'평민출신 왕,지도자는 평민생활을 했기 때문에

좋은 왕,지도자일 것이다'


같이 이렇게 쉽게 결론 내리는것을

정말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약자가 성공하기 바라는 심리에

응원하는 현상인 '언더독 효과'라고도 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평민출신,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하거나

지도자가 되어서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한다'


라는 우리나라 속담같이

자신들의 어려운 시절을 망각하고

더 폭군이 된다거나 하는 사례들도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도

훌륭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집에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었음에도

독재자나 폭군으로 돌변하는 사례도

있기에 사람 사는 세상은

자신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만 편집하며

보고싶은 방식으로만

봐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비류왕은 오랫동안 평민생활을 하면서도

그 인덕과 사람을 아끼는,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기에

왕이 되어서도 훌륭한 선정을 해나갔고

귀족들에게는

멋진 어라하(백제귀족들이 왕을 부르는 말)

이자

백성들에게는

멋진 건길지(백제백성들이 왕을 부르는 말)

였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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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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