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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잘못 타고난

(하필 고구려 광개토대왕 재위기,,)

백제 진사왕>


백제 16대왕 진사왕

재위기간 7년 385~392년


진사왕은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며

침류왕의 아우입니다


그는 사람됨이 용맹하며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습니다


침류왕이 붕어했을 때

태자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태자의 숙부(작은아버지) 진사(진사왕)가

즉위했습니다


일본측 기록인 '일본서기'에는


<일본서기>백제의 침류왕이 죽자

왕자 아화(백제 17대왕 아신왕)의

나이가 어리므로

숙부(작은아버지)인 진사가 왕위를 빼앗아서

왕이 되었다


라고 기록되있습니다

즉 일본기록인 '일본서기' 에서는

나이가 어려서 숙부가 즉위했다는

한국 기록인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같으나

빼앗았다는 것이 나오는 게 다르고

일본서기에서는

왕위를 찬탈(빼앗음)

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진사왕 2년

국내(나라 안)의 15세 이상 되는

사람들을

징발 徵發 (국가에서 특별한 일에 필요한 사람이나

물자를 강제로 모으거나 거둠)

해서 관문의 방어시설을 설치했습니다


그 길이가 청목령(경기도 개성으로 추정)에서

시작해서

북으로는 팔곤성,

서로는 바다에 닿았다고 합니다


7월 가을

서리가 내려서 곡식을 해쳤습니다


8월

고구려가 침입했습니다


진사왕 3년

정월(1월) 봄

진가모를 달솔로 임령하고

두지를 은솔로 임명했습니다


9월 가을

관미령에서 말갈과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진사왕 5년

9월 가을

진사왕이 군사를 보내서

고구려의 남쪽

변경 邊境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

을 공격했습니다


진사왕 6년

7월 가을

혜성이 북하 성좌에 나타났습니다


9월

진사왕이 달솔 진가모로 하여금

고구려를 치게해서

도곤성을 함락시키고

포로 2백명을 사로잡았습니다


진사왕이 가모(진가모)를 병관좌평으로

임명했습니다


10월 겨울

진사왕이 구원에서 사냥하다가

7일만에 돌아왔습니다


진사왕 7년

정월(1월) 봄

궁실을

중수 重修 (낡고 헌것을 다시 손대서 고침)

하면서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서

진귀한 새를 기르고

기이한 화초를 가꾸었습니다


4월 여름

말갈이 북쪽 변경의

적현성을 공격해서 함락시켰습니다


7월 가을

진사왕이 서쪽지방의

큰 섬에서 사냥하다가

직접 사슴을 쏘아서 명중시켰습니다


8월

진사왕이 다시 횡악 서쪽 지역에서

사냥했습니다


진사왕 8년(392년)

5월 여름

초하루(달의 첫번째 날) 정묘일

일식이 있었습니다


<진사왕>잠을 못자서인가,,

등골이 서늘하구나,,


<백제 신하들>어라하(왕) !!!!!

고구려에서 왕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

(392년 음력 5월 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 즉위)


<진사왕>그래 ?

어떤 자라냐 ?


<백제 신하들>고구려 태자

담덕(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의 본명)

왕위를 이었는데


그는 체격이 크고

생각이 대범한 자라고 합니다 !!!!!


<진사왕>너네 왜이리 흥분했냐 ?

아,, 진정들 하게,, ;;


<백제 신하들>ㅠㅠㅠㅠㅠ

전해들은 바로는 그는

우리 근초고왕에게 돌아가신

그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에 대해서

우리 백제에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고 합니다,,


<진사왕>,, 진정들 하시고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라 !!


7월 가을

고구려 왕

담덕(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의 본명)

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북쪽 변경을 침공해서

석현성 등 10여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진사왕>뭐이리 빨리와,,

북쪽 변경의 성들이 순식간에

무너지는구나,,


<백제 장군들>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어라하(왕) !!,,

그러나 그(광개토대왕)는 매우 용맹하고

용병 用兵 (군사를 부림,지휘,쓰다)

에 능통한 자이옵니다 !!,,


<진사왕>아주 작정하고 우리를

잡으려 하는구나,,


지금은 근초고왕때와 정반대의

상황이다


고구려왕 담덕은

비상 非常 (예사롭지 아니하다, 평범하지 않고 뛰어나다)

한 자이니

대항을 피하고

성문을 걸어 잠그고 지켜라 !!


진사왕은 담덕(광개토대왕)이

용병 用兵 (군사를 부림,지휘,쓰다)

에 능통하다는 말을 듣고

대항하기를 회피했습니다


백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한수 북쪽의 여러 부락(마을)을 빼앗겼습니다


10월 겨울

고구려가 관미성을 쳐서 함락시켰습니다


<백제 장군들>어라하(왕) !!

고구려 왕 담덕(광개토대왕)이

군사를 일곱방면으로 나누어서

20일만에 우리 관미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진사왕>관미성은 사면이 절벽이고

바다로 감싸여있는 천혜의 요새인데

함락되는게 말이 되는가 ?

그대들은 모두 제정신이 있는겐가 없는겐가 !!


<백제 장군들>,,(하,, 가뜩이나 고구려가 무서운데

니나 잘해 좀 ㅡㅡ,,)


진사왕은

구원 狗原 (직역하면 개언덕, 강아지언덕)

에서 사냥하며 열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1월 진사왕이 구원의 행궁에서

붕어,사망했습니다


갑자기 나라가 위급한 와중에

사냥을 나간거도 이상하나

옛날의 사냥은 단순한 여가라기보다

군대 점검으로도 볼수는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사냥후 사망하기도 했고

일본측 기록인 '일본서기'에는


<일본서기>백제의 진사왕이 왕위에 올라

귀국(왜,일본)천황에게 실례하여

기각숙녜, 우전시벌숙녜, 석천숙녜, 목토숙녜를

보내 무례한 상황을 꾸짖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이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이후 '일본서기'에서는

기각숙녜 등이 아화[아신왕)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라고 써있습니다,,


왜(일본)는 당시 백제에게

문화와 기술등을 전수받았던 시기고

문명과 거리가 멀었는데도

문명국이었던 백제가 왜의 눈치를

봐서 진사왕을 죽였다는거는

일본서기 특유의 허세와

조작으로 보이나


백제 내부에서 진사왕을

죽였다는 기록으로 보아서

원래 왕위를 이어야했던

아신왕계 세력의 반란이

있었던 거로 보여진다고 합니다


<라봉봉>그렇게 어린 조카를 대신,

혹은 어린 조카의 자리를 빼앗고

왕위에 오른 진사왕은

(혹은 한국에 기록에 찬탈이라는

표현,묘사등은 없고 그렇다고

원래 왕위를 이으려했던

어린 조카인 아신[아화,이후 아신왕]을

죽인 것도 아니여서

어린 조카를 대신 왕위 올랐으나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찬탈 비슷한 느낌을 냇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기준의 정통성이 부족했거나

찬탈(왕위를 빼앗음)이 사실이라면

비정상적으로 즉위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했던

진사왕은

번번히 무리한 토목공사등을

실시해서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거 같고

궁궐 수리등 토목공사등을 일으켜서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려 했고


이로인해 국력손실로

고구려에게 패배하고 백제 지배세력의

동요를 일으켜서

진사왕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와해 瓦解 (조직이나 계획 따위가 산산이 무너지고 흩어지다.

기와가 깨진다는 뜻에서 나온 말)

시키는 결과가 되서

죽게됬다는 해석도 있는거 같습니다


또 진사왕은

어찌됬건 왕위에 올랐으면

할아버지 근초고왕이 확장시킨

영역들을 내실을 다지며

관리를 했어야하는데


가뜩이나 고구려는

백제 근초고왕에게

사망한 고구려왕 고국원왕의

죽음에 악과 약이 받쳐올랐을 시기인데

고구려를 공격하기도 했고


진사왕 말고도

백제 11대왕 비류왕도

직계후손이 아닌

왕실 직계후손이

어려서 왕위에 올라

부족한 정당성이

있었고

비류왕은 내실을 잘 다져서

백제를 안정의 시기로 이끌었고


진사왕 역시

근초고왕 당시

넓어진 백제 영토에

성을 쌓은 모습들은

나름의 내실을

다지려는 시도들로

보여지는거 같고

진사왕도


'용맹하고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는 평같이

평범한 시대를 산 인물이라면

그래도 어느정도 박수를 받을

왕으로 여겨질 수도있겠으나


당시 고구려에서는 왕이

백제와 싸우다 죽었던 시기에다가

광개토대왕이라는 인물이

나오던 시기였기에


백제 역시 좋은 시기는 아니었고


즉 능력이나 인물성 정도는

그래도 성벽을 쌓고 어느정도

나라 방어와 내실을 신경쓰기도

한 모습을 보였기도 했으나

백제에 벼르고있었던 고구려에

광개토대왕이라는 인물이 나오게 됬고

고구려도 근초고왕에게 죽은

고국원왕대 당시에도

여러 위기가 있었어도

규모자체는 큰 강대국이었기에

하여튼 인물 자체는 아예 무능하지는 않았어도

시대는 백제에게 좋은 시기는 아니었기에

비운의 왕이기도 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비슷한 예로는

조선 26대왕,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광무황제가 있는데


고종도 인간성 자체는 소탈하기도하고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평범하고 좋은 군주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조선 주변의 강대국들이 나타나고

워낙 시대가 제국주의의 광풍이

불던 시기였고

주변에 강대국들이

일어나는 시기였기에

당시 시기에는 평범한 왕으로는

금방 주변국에 침략당하는

시대였다고 할 수있고


진사왕 역시

주변국에서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나왔다면

그냥 무난한 왕이라

기록됬을 수도 있겠지만

고구려의 영웅이라 할 수있고

한국사의 위인이라 불리는

광개토대왕이 고구려에 나온게

그의 불운이라면 불운이라

할 수있는거 같습니다,,


당시 백제 귀족들은

고구려가 성들을 함락시키고

한수 북쪽,백제 수도 바로 위 마을들이

함락당하는 그런 상황속에서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다가

결국 무능하다는 죄로

진사왕을 죽이게

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개인의 능력만이 중요한게 아니라

시대와 환경,사회적인 요인들도

무시해서는 안되고

모두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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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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